★ 수호지(水湖誌) - 41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0편 경양강의 호랑이 20-2
“에라, 모르겠다. 내친 김에 빨리 고개를 넘자.”그는 발길을 빨리 했다.
때는 10월이어서 해는 짧고 밤은 길었다.
무송이 고개 위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이미 산 너머로 떨어진 뒤였다.
‘빌어먹을 호랑이는 무슨 호랑이야?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못 올라오는 게지.’
그는 취기가 심해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전립을 벗어서 등에 걸고, 옷고름은
풀어 헤쳐 가슴을 드러낸 다음 잡목이 우거진 숲속의 큰 바위로 갔다.
“에라, 아무 데서나 한잠 자고 가자.”무송이 막 잠 들려는 찰라 난데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원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쫓는 법, 바람이 지나가자 숲속에서 눈이 세로로
붙고 이마에 흰 점이 박힌 한 마리 큰 호랑이가 뛰쳐나왔다.
무송은 깜짝 놀라 바위 아래로 몸을 굴려 뛰어내리며 몽둥이를 잡았다.
호랑이는 앞발을 꿇고 넙죽 엎드리는 듯싶더니 앞발을 번쩍 들며 몸을 날려 그대로
무송에게로 달려들었다.위기의 순간 무송은 엉겁결에 몸을 돌려 피했으나 아까 마신 술이
모조리 식은땀이 되어 온몸에 흘렀다.앞발로 허공을 치고 땅에 떨어진 호랑이는
무송이 피한 것을 알자, 이번에는 앞발로 땅을 버티고 뒷발을 번쩍 들어 그를 치려고 했다.
무송은 또 몸을 홱 돌려 피하였다.호랑이는 주홍 같은 입을 벌리고 한소리 크게 어흥 하고
울더니 흡사 쇠몽둥이 같은 꼬리를 번쩍 세워서 무송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송은 몸을 돌려 피했다.
본래 호랑이가 사람을 잡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앞발로 치고, 뒷발로 차고, 꼬리로 때리는 것이다.호랑이는 세 가지 방법이 안 통하자,
주홍 같은 입을 벌리고 울더니 다시 한 번 대들었다.
무송은 곧 두 손으로 몽둥이를 번쩍 치켜들고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그러나 잘못 쳐서
옆에 있는 나뭇가지가 뚝 부러지면서 손에 든 몽둥이도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 틈에 호랑이는 몸을 날려 앞발로 공격해 왔다.무송은 몸을 날려 피하고
재빨리 손에 잡았던 반 토막의 몽둥이를 내던지고 땅에 떨어진 호랑이에게 와락 달려들어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숨통을 눌렀다.
호랑이는 몸을 바동거리며 머리를 치켜들고 계속 힘을 쓴다.
그때 무송은 더욱 힘을 다해 호랑이 머리를 억누르며 발로 그 얼굴을 수없이 걷어찼다.
호랑이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으르렁대며 앞발로 땅을 허우적거려 순식간에
작은 구덩이 하나를 파 놓았다.무송은 즉시 그 속에 호랑이 입을 처박고, 왼손으로는
그 머리를 억누르고, 오른손으로는 철퇴 같은 주먹을 쥐어 호랑이 머리를 어지럽게
난타했다.60대쯤 후려 갈겼을 때 그처럼 사납던 호랑이도 눈으로, 입으로, 코로, 귀로,
선지피를 내쏟으며 축 늘어지고 말았다.“이제는 날도 저물었는데 만약에 호랑이가
또 한 마리 나오면 무슨 수로 그놈을 당해내랴. 한시 바삐 내려가야겠다.”
무송은 걸음을 재촉하여 산에서 내려갔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숲속에서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무송은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다.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호랑이 두 마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머리를 치켜들고 벌떡 일어선다.
무송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호피로 옷을 지어 입은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은 호랑이가 너무 사나워 잡지 못하고 호랑이 가죽을 쓰고 위장한 채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무송은 그들에게 호랑이를 때려잡았다고 말하자 믿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믿으면 올라가 보슈.”사냥꾼들은 믿지 못하고 매복하고 있던 장정들을 불러
횃불을 밝히고 올라가 보니 과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놀라고 기뻐하였다.그들은 사람을 급히 관가에 내려 보내 그 일을 알리고,
죽은 호랑이를 묶어서 장대에 꿰어 산에서 내려갔다.
그들이 고개 아래 도착하자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무송을 맞았다.
현감이 그에게 술을 내리고 상금 1천 관을 주었으나 무송은 받지 않고 말했다.
“소인이 범을 잡은 것은 요행이었지 힘과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었소. 듣기로는 저 사냥꾼들이
호랑이 때문에 현감의 벌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상금 1천관은 그들에게 내려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현감은 그 말을 듣고 곧 압사를 불러서 그날로 무송을 보병 장교로 삼았다.
- 42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42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1편 요녀 반금련 21-1
며칠 후에 무송은 거리에서 형 무대랑(武大郞)을 만났다.본래 무대와 무송은 이복
형제였지만 누가 보아도 형제라고 믿지 않을 만큼 외모가 딴판이었다.
아우 무송은 키가 팔 척에 외모가 당당하며 기력이 천 백 근이었다.
그래서 사나운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형 무대는 키가 오 척도 못되고, 외모가 누추하여 청하현 사람들은 그를 ‘세 마디
나무껍질’이라는 경멸어린 별명을 지어 불렀다.
그래도 무송이 청하현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무대를 멸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송이 집에 없자 고을 사람들은 무대를 업신여겼다.
더구나 무대가 반금련(潘金蓮)이란 계집을 아내로 맞아들인 후로는 놀림이 더욱 심했다.
반금련은 나이 22세로 낯짝이 요염하고 반반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청하현에서는
손에 꼽는 부잣집 하녀로 있었다.
따라서 그런 미모의 부잣집 하녀가 못생긴 남자에게 시집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이 공교롭게 꼬여 반금련이 무대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 사연은 이랬다.
어느 날 집 주인 영감이 평소에 반금련의 미모에 마음이 끌려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어두워질 무렵에 반금련의 손목을 잡아끌었다.그러자 요녀 반금련은 주인의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주인마님에게 그 사실을 고자질해 버렸던 것이다.
“마님, 주인어른께서 방금 저를 원하셨습니다. 마님의 원망이 두려워 거절했습니다.
이런 말을 올리는 제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러자 점잖은 주인 영감의 체면은 삽시간에 구겨지고 말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주인 영감은 그 앙갚음으로 반금련을 동네에서 가장 못살고 못생긴
무대에게 주고 말았던 것이다.그것을 보고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시샘을 했다.
동네 청년들은 연한 양고기가 잘못해서 개의 아가리로 들어갔다고 지껄이며 다녔다.
그러니 알고 보면 무대는 팔자에 없는 미인 계집을 얻어 오히려 골치만 앓고
있었던 것이다.그렇다고 반금련을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부잣집에서 쫓겨난 그녀 역시 다른 데 갈 수도 없어서 반금련은 별수 없이 무대와
붙어살아야 했다.반금련은 무대가 마음에 안 들어 속으로는 밤낮으로 딴 사내를
생각하고 있었다.그것을 무대도 다 알고 있었다.실제로 반금련은 동네 젊은 사내들과
온갖 소문이 자자하게 나올 정도로 생활이 문란했다.무대는 청하현에서 살 수가 없어
이곳 양곡현으로 집을 옮기고 전처럼 거리에 나가 떡 장사를 하면서 살다가 그날 우연히
동생 무송이를 거리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전에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고 보병장교가 된 장사의 성이
무가라는 말을 듣고 혹시 속으로 네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이었구나.
정말 잘 만났다. 어서 우리 집으로 가자.”무대는 즉시 자기 집이 있는 자석가(紫石街)로
무송을 데리고 가서 아내 반금련을 인사시켰다.
반금련은 무송의 인물됨이 뛰어난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형제가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경양강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장사라면
기운이 보통이 아닐 텐데 아직 장가를 안 갔다면 우리 집에서 살게 해야지.’반금련은
무송을 극진히 대접하고 관가에서 숙식을 하면 불편할 테니 집에서 함께 살자고 권했다.
- 4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