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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성령에 따라 인생의 길을 걷는 우리 안에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육체에 따라 있는 자들은 그 육체의 일들을 생각하나 성령에 따라 있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롬 8:5).
로마서 8장의 메시지는 5절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절에서 8절은 크리스천과 크리스천이 아닌 자의 대조입니다. 두 유형의 크리스천들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들”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롬 8:4).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은 땅의 것들을 추구합니다. “육체의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열중합니다. “육체의 것들”은 하나님이 없는 삶의 모든 국면을 말합니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은 육체에 따라 걷습니다.1)
불신자들은 하나님 없는 살고 어디로 가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착하게 사니까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갈 것이야’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불신자들은 육체의 일들만을 생각합니다.
육체의 사고방식은 사망이나, 성령의 사고방식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이것은 “생각”(thinking)이나 “사상”(thought)으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이는 사상의 문제가 아닌 정신과 사고방식(mind)의 문제인 까닭입니다. 동사의 명사형이니, “주의를 기울임”, “열중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에 목표를 두고 어떤 것에 열망을 가지느냐는 것입니다(롬 8:6).
믿는 자가 육체의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는 때 어떻게 되는가요? 사망에 이릅니다. 그 이유는 그는 사실상 믿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음식에 갈급하지 아니한데 생명 작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갈급하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의 증거입니다.
평화가 사라진 것은 왜일까요? 왕들이 전쟁을 만듭니다(창 14:1~2). 전쟁의 생기는 이유는 세상에 왕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왕명에 불순종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서 전쟁이 납니다.
모든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평화”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예외 없이 성령(Spirit)을 따라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평화”는 성령(the Spirit)의 열매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사고방식은 사망이나, 성령의 사고방식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이는 육체의 사고방식은 하나님 안으로 적의인 때문이니,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함이니 할 수 있지 아니함입니다(롬 8:7).
7절은 6절의 이유입니다. “~ 안으로”를 뜻하는 전치사가 여기에 “~에 반대하여”(against), “~로 향하여”, “~께”(to)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육체의 사고방식은 하나님께 반대해 적의 있는 증오입니다. 하나님께 증오와 적의를 가진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육체의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진노에 부딪힐 방식으로 삶을 살게 하며, 육체에 의해서 산출된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2)
육체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쁘게 할 수 있지 않습니다(롬 8:8). 육체 안에 있는 불신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기에 복종하지도 않습니다. 그 때문에 육체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적의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자기만족을 향한 우상을 숭배하는 경향의 여러 다른 징후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중심적 모반을 여러 방식으로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육체 안에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3)
1. 크리스천들은 성령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9~11절에 “너희는 육체 안에 아닌 영(Spirit) 안에 있으니 만일 하나님의 영(the Spirit)이 너희 가운데 거주하시면 그와 같은지라, 어떤 사람이 크리스트의 영(Spirit)을 가지지 않으면 그의 이가 아니라. 그러나 만일 크리스트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면, 그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나 그 영(spirit)은 의로움 때문에 생명이나. 예수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신 이의 그 영(the Spirit)이 거주하신다면, 크리스트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신 이가 그의 영(his Spirit)을 통하여 너희의 그 필멸의 몸들도 살리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육체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쁘게 할 수 있지 않습니다(롬 8:8). 그렇지만 우리는 육체 안에 있지 아니하나 성령 안에(the Spirit) 있으니 만일 하나님의 영(the Spirit)이 우리 가운데 거주하신다면 그러합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크리스트의 영(the Spirit)을 가지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그의 것이 아닙니다(롬 8:9).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영(Spirit)”과 “크리스트의 영(Spirit)”이시며 “하나님의 영(Spirit)”과 “크리스트의 영(Spirit)”은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Spirit)이 그의 안에 거주하시는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성령(Spirit) 안에, 성령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모든 크리스천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Spirit)이 거주하시고 계십니다. 그런 까닭에 크리스천이면 예외 없이 성령(Spirit) 안에 있는 사람이며, 크리스천이면서 “육체 안에” 있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트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죽었으나 그 영(spirit)은 의로움으로 생명입니다(롬 8:10).
10절의 “그 영”을 많은 학자는 성령(the Spirit)이라고 주장합니다.4) 그러나 “그 몸”과 대조되는 “그 영”은 사람의 영(the spirit)일 것입니다. 오늘날은 소수의 학자가 지지하는 견해지만 이것이 올바를 것입니다.5)
오늘날 대부분 영어 성경이 사람의 영(the spirit)으로 번역하고 있고, 킹 제임스 버전의 영어 성경은 성령(the Spirit)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킹 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주장이 잘못으로 드러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서 정동수를 이단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6)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그 영”을 사람의 영(the spirit)으로 봅니다.7) 사람의 “몸”과 사람의 “영”(spirit)이 여기 대조되고 있는 것입니다.8)
사람이 크리스천이 되면 그 몸은 죄를 통하여 계속 부패하여 갈지라도 그 영(the spirit)은 그때부터 의로움으로 생명의 씨앗을 가진 것입니다.
본문에 그 영(the spirit)이 생명인 새로운 사람이 언급되었습니다.9)
로마서 6장 11절에 “이렇게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는 죽은 자들이나 크리스트 예수 안에 하나님께는 사는 자들로 간주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크리스천이라면 우리는 지금 영생을 지니고 있습니다.10)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집니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 안으로(into) 옮겼습니다(요 5:24).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나는 그 부활과 그 생명이니, 내 안으로 믿는 자는 비록 그가 죽을지라도(even if) 살 것이고. 지금 살고 내 안으로 믿는 모든 자는 그 영원 안으로 죽지 아니할 것이니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 크리스트의 의로움으로 인해 그 영(the spirit)은 생명입니다. 이 의로움은 사람의 의로움이 아니라 주 예수 크리스트의 의로움입니다.
이는 만일 그 하나의 범죄에 그 죽음이 그 하나를 통해 지배하였으면, 더욱 많은 것에 그 은혜와 의로움의 선사품의 풍부함을 받는 자가 그 하나 예수 크리스트를 통해 생명 안에 지배할 것임입니다(롬 5:17).
하나의 범죄를 통해 모든 사람 안으로 유죄판결처럼, 하나의 의로운 행동을 통해 모든 사람 안으로 칭의입니다(롬 5:18).
죄가 죽음 안에서 지배한 것과 똑같이(just as), 이런 방식에 은혜도 의로움을 통하여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 안으로 지배하기 위해서입니다(롬 5:21).
예수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신 이의 그 영(the Spirit)이 거주하시면 크리스트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신 이가 그의 영(his Spirit)을 통하여 우리의 필멸의 몸들도 살리실 것입니다(롬 8:11).
나의 몸이 구원된다는 보증으로 그 영(the Spirit)이 거주하십니다.11)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계신 성령님과 같은 분이십니다. 몸의 부활을 떠나서는 완벽한 구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12)
예수님을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신 이가 그의 영(his Spirit)을 통하여 우리의 필멸의 몸들도 살리실 것입니다.
신자들의 몸은 크리스트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하게 될 것입니다.13) 죄와 타락이 가져온 결과들과 영향들은 제거되고 없어질 것입니다.14)
“살리실 것이라”라는 말씀은 마지막 때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15) 사람들은 죽을 때에 자기표현의 매개체인 그의 몸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의 필멸의 몸들도 살리실 것입니다. 크리스트를 일으키신 이가 또한 우리의 필멸의 몸들도 살리실 것입니다. 성령 안에 있는 사람들인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몸의 부활을 소망하기에 지금 고난을 능히 견디며 삽니다.
2. 크리스천들은 육체에 빚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라 육체에 따라 살기에(to live) 그 육체에 아니나니. 이는 육체에 따라 너희가 살면 너희가 곧 죽으려고 하나(about to), 영(Spirit)에 그 몸의 행동들을 죽음에 놓으면 살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화에서 완전주의자(Perfectionist)의 교훈은 잘못된 주장입니다.16) 반작용(counteraction)의 원리라는 완전주의자의 반대도 잘못입니다.17) 우리가 크리스트를 의지하고 그 안에 거주하는 법을 배우기만 한다면, 크리스트께서 승리를 주셔서 우리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18)
믿는 자들은 육체에 따라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롬 8:4~5). 그러므로 신분에 변화가 생겼다면 삶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자들은 육체에 따라서 걷거나 육체에 따라서 있는 자들이 아니므로 우리의 신분에 맞게 육체에 따라서 살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분명한 점은 우리는 육체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롬 8:9). 크리스천들은 성령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며 육체 안에 있지 아니합니다. “육체”라는 나라에 속하지 아니하니 육체의 법에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빚진 자인데 육체에 따라 살기 위해서 육체에 아닙니다.
만일 육체를 따라 우리가 살면 우리가 곧 죽으려 하나, 영(Spirit)에 몸의 행동들을 죽음에 놓는다면 살기 때문입니다(롬 8:13).
성화는 크리스트께 넘겨주면 그가 나를 위해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계속해서 몸의 행동들을 죽여 나가야 합니다.19)
성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몸의 행동들을 죽여야 합니다.20) 믿는 자는 육체 안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롬 8:9).
믿는 자들의 새로운 지위가 새로운 관할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산다는 것은 죽음의 영역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21)
우리는 몸의 행동들을 죽이고 억제하여야(mortify) 합니다.22) 크리스천은 새로운 본성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가정의 양자가 되었고 새로운 왕국으로 옮겨졌습니다.23)
몸의 행동들을 죽여야만 하는데 이것이 성화에 관한 가르침입니다.24)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크리스천이 아니며, 그는 죽게 될 것입니다.25)
로마서 8:12~13의 성화에 관한 교훈은 신약성경 전체 교훈입니다.26) 두 구절은 신약성경의 성화 교리를 이해함에 핵심적인 말씀입니다.27)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된 교훈들은 자신을 위해서 이루어진 제2의 체험이라고 주장하나 신약성경의 말씀은 우리 자신이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28)
성경이 성화를 명령하는 것은 그렇게 살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 다 맡기기만 하라고 명령하였을 것입니다.29)
우리가 그 육체 안에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육체 안에 있지 아니합니다(롬 7:5, 8:9).
우리는 이제 육체 안에 있지 않은 까닭에 성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30)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be master) 아니할 것입니다(롬 6:14).
크리스천은 전에 “율법 아래” 있었으나, 지금은 “은혜 아래” 있습니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결단코 성화에 무능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31)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절대적으로 무능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었습니다.32)
거듭난 자는 은혜 아래 있는 자며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 자입니다. 신자는 반드시 자라나야 하고 발전하여야 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33)
크리스트의 생명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 속에서 일합니다. 성화는 그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명령으로 주어졌습니다.34)
우리는 세상의 빛들로 선택된 자들임을 잊지 아니하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빛이 사람들의 앞에 빛나게 하여야 합니다(마 5:16).35)
“성화”는 스스로 담당해야 하고 믿는 자들이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영(Spirit)에 몸의 행동들을 죽이면서 살아야 합니다.36)
“죽이라”라는 말은 동작하지 않게 하라, 끊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감으로써 죄의 문제를 회피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37) 사람이 수도원으로 도피하여서 산다고 몸의 행동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의 형식은 행복과 기쁨의 정신이 없는 폭군에 불과합니다.38) 존 록펠러가 교육받은 신앙이 이러합니다.
믿는 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능력을 행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고, 자신 안에 거주하신 성령에 의해 몸의 행동들을 죽일 때 살 것입니다.39)
우리의 고통은 언제나 우리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현세가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저세상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40) 현세는 잠깐이나 앞으로 도래할 저세상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삼가고 하지 아니하여야만 합니다.41) 우리는 혀를 나쁜 것에서 제지하고 입술들을 계략을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나. 나쁜 것을 떠나고 선한 것을 행하고 평화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42)
시편 1편 1절에 “악인들의 조언에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거주하지(sit) 아니한 그 사람의 행복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눈에 언약을 잘라내어 보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욥 31:1). 마음으로만 죄를 허락하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43)
죄를 범한 때 자신을 절망의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홍진과 풍진 때문에’ 고통을 당하지 말아야만 합니다.44) 성화는 저절로 되지 아니하며 신자들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칼뱅은 몸의 행동들을 극복함(mortify)을 강조하였습니다. 칼뱅은 억제함(mortification)의 교리를 성화 교리에서 다룹니다.45)
그는 “크리스트와 연합”(union with Christ) 교리를 강조합니다. 칼뱅의 “성화” 교리는 “크리스트와 연합” 교리에 기초합니다. 이 “연합”의 결과는 “칭의”와 “성화”라는 “이중 은혜”입니다. “성화”는 점진적으로 크리스트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46)
칼뱅은 “회개”를 “중생”(regeneration)으로 해석합니다. 회개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중생에 의해 하나님의 의로움을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입양하신 자들을 회복시키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회복은 한순간이나 하루나 한 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47)
믿음에 대한 논의가 회개와 죄 용서를 빠뜨리면 효과가 없습니다.48) 크리스천은 일평생 회개를 계속하며 살아야 합니다.49)
사람 자체가 “육체”입니다(요 3:6).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육체”입니다.50)
우리는 앞에 로마서 3장에서 사람의 부패성을 살폈습니다.51)
로마서 3장 10~11절에 “의로운 사람은 있지 않으며 하나도 않으며. 깨닫는 자가 있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탐색하는 자가 있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울은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고 깨닫는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빗나가고, 함께 그들이 쓸모없게 함을 받고, 선량을 행하는 자가 있지 아니하며 하나조차 있지 아니합니다(롬 3:12).
파울은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으로써 인류 전체를 공격하였습니다.52) 모든 자가 죄를 범하였습니다(롬 3:23).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 원죄는 모방에 그 기초를 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나면서부터 부패한 상태에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타락하여 인류 전체도 타락하게 되었습니다.53)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그러하고 모든 사람 안으로(to) 죽음이 퍼졌습니다(롬 5:12).
죄는 “죄에 대하여 죽은” 신자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죄의 법(the law)”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롬 8:2). 그런데도 죄는 신자들 안에 여전히 거주합니다.54) 죄는 믿는 자들에게 죄를 범하게 유도합니다.
로마서 6장 1~2절에 “죄에 계속하면 은혜가 증가하였기 위해서인가? 죄에 죽은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그 안에 살 것이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크리스트 예수 안으로 세례를 베풂을 받은 것은 그의 죽음 안으로 세례를 베풂을 받은 것입니다(롬 6:3).
우리가 그 죽음 안으로 세례를 통하여 그에게 함께 매장함을 받았으니 크리스트께서 죽은 자들에서 그 아버지의 영광을 통해 일어나신 것 같이 이렇게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안에 걸었기 위해서입니다(롬 6:4).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음을 본받아서 우리의 욕망에 대하여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도 파울은 우리에게 크리스트를 따를 것을 권고할 뿐 아니라 훨씬 더 높은 것을 제시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크리스트께서는 우리를 그의 죽음에 동참시키심으로써 우리를 그의 죽음에 접붙임을 받게 하십니다(롬 6:5).55)
구약에서 세례의 원형(prototype)은 홍해를 건넌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군대를 바다에 죽게 하신 사건(출 14:26~28)은 육체를 죽이는 일을 상징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즉 죄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파라오인 악마가 우리를 괴롭히며 피곤하게 한다고 해도, 세례는 우리의 파라오가 이미 물에 빠져 익사하였음을 상징합니다.56)
아담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전염시킨 “죄”라는 유전적 질병으로 인해, 모든 사람은 사악하고 부패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57)
믿는 자들도 여전히 죄인들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들은 중생을 통하여 죄의 속박에서 풀려납니다.58)
우리의 옛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아니, 죄의 몸이 폐지되었으며 죄에 예속되지 아니하기 위해서입니다(롬 6:6).
그러나 신자들이 충분히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 속에는 계속 싸워야 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59)
신자들은 자기의 무력함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악을 유발하는 불씨가 남아 있어 욕망이 계속 튀어나옵니다. 그리하여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며 자극합니다. 이런 종류의 욕망이 생기게 하는 부패성 그 자체가 “죄”입니다. 성도들이 죽을 몸을 벗어버리기까지 항상 죄가 있습니다. 신자들의 육체에 악한 욕망이라는 부패성이 거하기 때문입니다.60)
우리가 그 몸의 행동들을 죽이는 방법의 한 가지는 “자기부정”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만일 어떤 사람이 나의 뒤에 왔기에 바란다면, 그는 자신을 부인하고 그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서 나에게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불행으로 가득 찬 생애를 보낼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61) 하나님께서는 치욕, 가난, 질병 등으로 우리를 괴롭히십니다.62)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63) 십자가는 우리의 인내와 순종을 훈련합니다.64)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치료 약으로 우리의 육체를 제지하십니다.65) 하나님 아버지께서 역경으로 징계하시는 십자가도 있습니다.66) 의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십자가도 있습니다(마 5:10).67)
마태복음 5장 10절에 “복되노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함을 받은 자들은, 그 하늘의 왕국이 그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들어 올림으로 몸의 행동들을 죽여야 합니다. 성령에 몸의 행동들을 죽이는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살 것입니다.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11-18.
2)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488.
3)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89.
4) John Murray, 『로마서 주석』, 아바서원 번역팀 역 (서울: 아바서원, 2014), 392. Ernst Käsemann, 『로마서』, 國際聖書註釋, 번역실 옮김 (서울: 韓國神學硏究所, 1986), 368. C. E. B.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Romans 1-8 (New York: T&T Clark Ltd, 2004), 390. James D. G. Dunn, Romans 1-8, WBC 38A (Nashville: Thomas Nelson, 1988), 431. N. T. Wright, 『로마서』, 장용량, 최현만 옮김 (평택: 에클레시아북스, 2014), 334.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92. 홍인규, 『로마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 2001), 145.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이레서원, 2008), 777. 김광수, “바울 신학에 기초한 로마서 8:10의 번역과 해설”, 『성경원문연구』 제21권 (2007): 83-88.
5) Joseph A. Fitzmyer, 『로마서』, 김병모 옮김 (서울: CLC, 2015), 784.
6) https://www.logos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9909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01.
8) 백대영, 『로마서의 이신칭의와 믿음의 순종 이해』 (석사학위 논문, 백석대학교대학원, 2016), 117.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03.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04.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21.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22.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24.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26.
15)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391.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29.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31.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32.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37.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41.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43-144.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45.
2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47.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49.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51.
2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59.
2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61.
2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62.
2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63-164.
3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65.
3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67.
3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69-170.
3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71-172.
3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73-174.
3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78-179.
3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81.
3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83-184.
3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85.
3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87.
4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89.
4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91.
4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92.
4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94-195.
4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5』, 196-197.
45) 장해경, “칼빈의 ‘죄 죽임’(mortification)의 교리에 관한 주석적 고찰”, 『신약연구』 제8권 제2호 (2009): 260. (259-287)
46) 장해경, “칼빈의 ‘죄 죽임’(mortification)의 교리”: 261.
47)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3. 9.
48)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3. 1.
49)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3. 2.
50)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Ⅱ. 3. 1.
51)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Ⅱ. 3. 2.
52)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Ⅱ. 3. 2.
53)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Ⅱ. 1. 6.
54) 장해경, “칼빈의 ‘죄 죽임’(mortification)의 교리”: 264.
55)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Ⅳ. 15. 5.
56)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Ⅳ. 15. 9.
57) 장해경, “칼빈의 ‘죄 죽임’(mortification)의 교리”: 263.
58)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3. 10.
59)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3. 10.
60)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3. 10.
61)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8. 1.
62)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8. 2.
63)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8. 3.
64)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8. 4.
65)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8. 5.
66)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8. 6.
67)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8. 7.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잠 19:29).
💖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상처를 받는 일도 많겠지만
그 선한 마음에 깃든 아름다운 영혼은 곧 치유되어 더 나은 삶으로 발전하므로
연정이 동정이 아닌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깊은 연민을 갖으시길 바랍니다.
선한 마음을 지닌사람들은 행복하답니다.
늘 건강 하고 즐겁고 풍요하게 삶을 이어가시는 행복한 나 날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