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43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1편 요녀 반금련 21-2
물론 무대는 반금련이 다른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줄 알 턱이 없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오늘 밤부터 함께 살자.”무송은 형의 말을 듣고 그날 밤으로
즉시 거처를 형의 집으로 옮겼다.그날부터 무송은 형의 내외와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세월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느덧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었다.
동짓달 어느 추운 날이었다.날씨는 계속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붉은 구름이 하늘을
덮치더니 하룻밤 사이에 큰 눈이 내렸다.천지는 완연한 은빛의 세계로 변해버렸다.
반금련은 오늘이야말로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무송에게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눈 내리는 날 남편 무대가 떡을 팔러 나간 후에 반금련은 이웃집 노파에게 술과 고기를
부탁해서 주안상 하나를 거하게 차려놓고, 새벽에 근무하러 들어간 무송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얼마 후에 무송이 돌아왔다.
무송은 갓을 벗어 눈을 털고, 허리에서 전대를 풀고, 초록빛 도포를 벗고 방에 들어갔다.
반금련은 즉시 대문을 닫아걸고 뒷문에도 빗장을 지른 다음 준비해둔 상을 받쳐 들고
들어갔다.
“형님은 어딜 가셨어요?”“오늘도 장사 나갔죠. 자아, 어서 한 잔 드세요.”
“형님이 들어오시면 모시고 같이 먹죠.”“언제 들어올 줄 알고 기다려요? 자아,
어서 따뜻할 때 드세요.”무송은 마지못하여 잔을 손에 잡았다.
금련은 술을 권하고 눈가에 웃음을 띠면서 말한다.
“소문을 들으니 마을 동쪽의 기생과 살림을 차리셨다는 말이 들리던데,
어떻게 되신 거예요?”반금련이 짐짓 떠보는 수작이었다.
“괜한 소문입니다. 난 그런 사람 아닙니다.”“글쎄, 뉘 말이 옳은지 모르겠네요.”
“못 믿으시겠거든 형님께 여쭤보십시오.”
“형님이 그런 걸 다 알면 저렇게 떡 팔러 다니지 않죠.”
반금련은 무송에게 술을 권하면서 자신도 석 잔을 거푸 마셨다.
술이 오르자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을 스스로 억제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팔을 들어 무송의 어깨를 가만히 꼬집으며 한마디 던졌다.
“이렇게 얇은 옷을 입고 다니면 춥지 않으세요?”무송은 아까부터 형수의 거동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꾹 참고 아무 대꾸도
안 했다.그러나 욕정에 사로잡힌 반금련은 남자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반금련은 마침내 술을 한잔 따라 자기가 먼저 한모금 마시고 무송의 가슴에 안기듯
쓰러졌다.“이게 무슨 짓이오? 나는 짐승이 아니라 천하에 당당한 남자요.
만약 형수께서 이러시면 무송은 형수를 알아볼지 모르지만 이 주먹은 형수를
몰라볼 것이니 그리 아시오.”반금련은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무안하고,
한편으로는 분해서 얼굴이 주홍빛으로 변했다.
무송은 지체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잠시 후 무대가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온 것을 안 반금련은 황망히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무대는 아내의 눈이 퉁퉁 부어 오른 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웬 일이오? 누구하고 싸웠소?”반금련은 앙큼하게 말했다.
“당신이 변변찮아서 나까지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오.”“무슨 말이오?”
“무송이 녀석 말이에요. 날이 추운데 눈을 흠뻑 맞고 들어왔기에 내가 추위를 풀라고
술 한잔을 데워 주지 않았겠어요? 그랬더니 글쎄 이 녀석이 날 가지고
놀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 44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44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1편 요녀 반금련 21-3
그러나 무대는 무송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무송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말 함부로 하지 마. 남이 들으면 우리 모양만
부끄러워지겠소.”그는 곧 무송의 방으로 갔다.“너 점심 안 먹었거든 나하고 같이 먹자.”
그러나 무송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마침내 짚신을 벗고, 가죽신으로 갈아 신고, 웃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
전대를 메고 집을 나갔다.무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어디 가는 거냐?”그러나 무송은 역시 아무 대답 없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무대는 곧 안으로 들어가 금련을 보고 물었다.“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리니,
대체 웬일이야?”“웬일은 무슨 웬일이에요. 지은 죄가 있으니까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이지. 이제 보세요. 오늘 밤으로 사람을 보내서 짐을 찾아갈 거예요.”
과연 잠시 후에 무송은 관군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짐을 챙겼다.
무대가 쫓아나가 물었다.“송아, 너 대체 왜 이러는 거냐? 말 좀 해봐라.”
그러나 무송은 짧게 말할 뿐이었다.
“형님, 구태여 아실 것 없습니다. 그저 저 하는 대로 내버려두세요.”
무송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무대는 동생을 붙잡지 못했으나 다음 날 아우를 만나서
그 까닭을 물어보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여우같은 금련은 죄가 드러날까 무서워
선수를 쳤다.“만약 임자가 그 녀석을 만나면 나는 이집에서 나가버릴 테니 그런줄 아세요.”
무대는 그 말에 꼼짝도 못하고 형제가 한 고을에 살면서도 서로 소식을 모른채
십여 일을 보냈다.그 무렵 고을의 현감은 부임한 후에 많은 돈을 착복했으므로
그 돈을 동경으로 올려 보내 권력 있는 자에게 자신의 승진을 부탁할 작정이었다.
“동경에 예물을 보내야겠는데 자네가 수고 해야겠네.”
무송은 현감의 분부를 받고 술과 고기와 과일을 사들고 형을 찾아갔다.
“형님, 제가 이번에 동경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내일 떠나면 두 달을 못 뵙게 됩니다.
떠나기 전에 형님께 한말씀 당부하겠습니다.부디 아침에 늦게 나가시고 저녁에는
일찍 들어오시며 밤에는 문단속을 잘하십시오.또 남에게 욕을 당하시더라도
제가 돌아올 때까지는 모든 걸 꾹 참고 모른 체하셔야만 됩니다. 제 말씀을 들어주시겠다면
형님께서 제 잔을 받으십시오.”무대는 잔을 받아 들고 대답했다.
“모든 일을 네 말대로 하겠다.”무송은 둘째 잔에 술을 가득 부어 형수를 향해 말했다.
“우리 형님은 워낙 순박하신 분이라는 것을 형수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모든 대소사는
형수님께서 알아서 하셔야만 합니다.형수님만 매사를 잘 보살피신다면 우리 형님이야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옛말에도 울타리가 튼튼하면 강아지 새끼가 들어올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그 말을 듣고 나자 반금련의 얼굴은 귀까지 빨갛게 변했다.
“원 참, 나중에는 못 들을 말이 없겠네. 울타리가 튼튼하면 강아지 새끼가 들어올 틈이
없다니, 그게 누구한테 하는 수작이야?말이면 다 하나? 그래, 내 행실이 어때서
그따위 말을 하지? 아이구 분해, 아이구 분해.”그녀는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층계를 뛰어 내려가더니 분에 못 이겨 흐느껴 울었다.
무송은 형과 몇 잔 술을 더 나눈 다음에 다시 형에게 당부했다.
“형님, 안녕히 계십시오. 부디 제가 한 말씀을 잊지 마세요. 그저 무슨 일이 있든
꾹 참고 지내십시오.”무송은 거듭 당부하고 그 이튿날 새벽 예물 실은 수레를 거느리고
동경을 향하여 떠났다.
- 4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