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3월 22일,(우리 50들의 국교 시절에 터진. 큰 사건)
북한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씨 탈북 기사다.
전날 과음한 탓에 겨우 판문점으로 가는 기자단 버스를 탄 김 부장은 군사
정전위원회 회의를 지켜보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 쉬고 있다가 오후 5시가
큰 사건이 터진 것을 직감한 김 부장은 남측 경비병을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다른 기자들은 버스 안에서 방송을 통해 김 부장이 보낸 긴급 뉴스를 듣고
북한 정치 체제에 환멸을 느껴 귀순을 결심한 이씨는 당일 판문점 취재를
나왔다가 유엔사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해 영국 대표의 승용차를 타고 어렵게
이씨는 이후 남한에서 대대적인 한영을 받으며 반공 순회 강연을 가졌고
이듬해에는 당시 35세 대학교수 이모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1969년 1월 본처의 조카로 남한에 거주하던 배경옥씨와 함께 위조
여권을 이용해 탈출하려다 베트남 틴손누트 공항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중정은 이씨를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 이라고 발표했다.
간첩의 대명사가 된 그는 검거된 지 6개월 만에 사형당했다.
거의 40년이 흘러 이씨가 위장 간첩이 아니었다는 판결이 나왔다.
21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배씨가 낸 재심 신청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6부는
지난 12월 19일 "이씨를 간첩이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이를
근거로 배씨의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중정의 불법 구금과 고문에 의해 조작됐으며 법원도
하지만 이씨는 벌써 고인이 됐으며 남쪽의 부인은 미국으로 이민간 지 오래다.
칠순이 되어 겨우 간첩 혐의를 벗은 배씨는 이미 아내와 이혼했고 아들마져
배씨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아온 희생자들이 오늘날 이처럼 진실이
또, 강호순 처럼 사람이기를 포기한 연쇄 살인범을 볼 때..
사람이 사람을 해하고 또 그 해한 이를 심판해야 할 사람들..
황금만능, 쾌락주의에 빠진 이세상은..
너 나 없는 깊은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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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의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한으로 지냈을 미국의 이씨 부인에게도
이 소식이 알려져..
한가닥 위안이라도 되었을까...?
(5월의 토요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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