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편견과 일본의 팽창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露日戰爭, Rosso-Japan War)을 승리(勝利)하여 제국주의(帝國主義)클럽에 가입(加入)한 후 조선(朝鮮), 만주(滿洲), 내(內)몽골을 거쳐 중국대륙(中國大陸)으로 서서히 그 침략지역(侵略地域)을 넓혀가고는 있었음에도 기존 서구(旣存西歐)의 열강(列强)들은 일본을 얕잡아 보고 있었습니다.
서구 열강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말도 안 돼는 서구문명우월론(西歐文名優越論)과 동양인(東洋人)은 저열(低劣)하다고 인식(認識)하는 인종주의적 편견(人種主意的偏見) 때문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을 통하여 일본은 제국주의 클럽에 가입하였습니다
↑러일전쟁 종전과 전후처리를 위한 포츠머스 회의 당시 서구 언론의 만평.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 대통령(가운데)이 러시아제국과 일본제국 사이 조약을 주선하는 모습이다. 이 공로로 루즈벨트는 현직 대통령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비록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9세기 일본에서 막부를 무너뜨리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 개혁)이후 서양문물(西洋文物)을 적극(積極) 받아들여 급속(急速)히 국력(國力)을 발전(發展)시키고 있었으나 영국, 프랑스, 미국과 같은 서구 열강들은 내심(內心)으론 별것 아닌 하룻강아지가 낙후(落後)된 극동지역(極東地域)에서 오야붕 노릇을 하려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였을 뿐이고 일본의 기술력(技術力)이나 공업생산력(工業生産力)이 자신들의 수준(水尊)과는 엄청나게 뒤 떨어진 것으로 지레 폄하(貶下)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구 열강은 일본을 얕잡아 보고 있었습니다(1935년 동경에서 일본인들을 교육 중인 서구인)
당시 서구(西歐)가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로는 오늘날이야 세계 두 번째 경제대국(經濟大國)으로써의 경제력(經濟力)과 이와 상관(想觀)된 기술력(技術力), 산업생산력(産業生産力)을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사실 1930년대 이전의 일본은 산업능력이나 기술수준이 비록 괄목상대(刮目相對)한 발전을 하고는 있었음에도 오늘날만큼 세계를 선도(先導)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나름대로 국력을 키워 대외팽창을 가속화 시키고 있었습니다(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환송하는 모습)
또한 당시 극동지역(極東地域)은 말 그대로 세계의 변방(邊方)이었습니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워낙 멀리 있던 이곳에 대한 서구인(西歐人)의 관심(關心)이 그리 큰 편도 아니었고 교통(交通)이나 통신(通信)이 좋았던 시절(時節)도 아니어서 일본에 대해서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보(情報)도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구인들 스스로 일본의 잠재능력(潛在能力)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 1930년대 일본의 전함들인 야마시로(山城) , 후소(扶桑) , 하루나(榛名)
하지만 군국주의 정책(軍國主義定策)을 적극(積極) 펼쳐 대외 팽창(對外膨脹)을 노리던 일본은 이러한 무관심(無關心)과 편견(偏見)의 틈새를 이용하여 나름대로의 군비확충(軍備擴充)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科程)에서 섬나라인 특성(特性)을 최대한(最大限) 살려 강력한 해군력 확충(海軍力擴充)에 박차(拍車)를 가하였고 그 결과 1940년대 초 일본은 시나브로 미국, 영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世界最强) 해군력을 보유(保有)한 국가(國家)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 건조 된 중형(重型) 항공모함 소류(蒼龍)
더욱이 전 세계 식민지 경영(植民地經營)을 위해서 해군력을 분산 배치(分散排置)한 영국이나 대서양(大西洋)을 좀 더 중시(重視)하는 정책(定策)을 펼쳤던 당시의 미국과 비교(比較)하였을 때 태평양(太平洋)만 놓고 본다면 일본의 해군력을 능가(凌駕)할 나라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본해군이 세계 해군사에 선도적(先導的)인 업적(業績)을 남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항공모함(航空母艦)의 운용(運用)과 관련(關聯)한 것 입니다.
↑일본은 항공모함 운용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최초의 항공모함 전용함 호쇼)
일본은 영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이전의 군함(軍艦)을 개조(改造)하는 형식(形式)이 아닌 처음부터 항공모함 전용함(航空母艦專用艦)을 설계제작(設計製作, 호쇼, 1922년)하여 이를 세계최초(世界最初)로 운용하였습니다.
또한 뿌리 깊은 거함거포주의(巨艦巨砲主意)를 신봉(信奉)하여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전함(戰艦)과 순양함(巡洋艦)을 보유하였음에도 별도(別到)의 항모함대(航母艦隊)를 편성(編成)하여 원거리 전략타격(遠距離戰略打擊)을 나가는 방법(方法)을 연구(硏究)하고 실전(實戰)에 응용(應用)하기도 하였습니다.
↑초기의 함상 전투기 A4N1
이것은 항모(航母)를 단지 전함 위주(戰艦爲主)로 구성(構成)된 함대(艦隊)의 보조 항공전력 운용수단(補助航空戰力運用手段) 정도로만 생각하던 미국이나 영국과는 엄청난 차이(差異)가 있었던 것이었고,
태평양전쟁 초기(太平洋戰爭初期) 일본 승리(勝利)의 원동력(原動力)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항모의 효용성(效用性)을 높이 평가(平價)하고 있던 일본은 당연히 여기에 탑재(搭載)할 함재기(艦載機)에 지대(支待)한 관심(觀心)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