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나에게는 두 번째인 장남들 모니터링.
겨우 2주만에 다시 찾아왔지만 그 사이 가을이 빠르게 나이를 먹어서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침 버스에 몸을 맡겼다.
처음 뵙는 서병쌤과 명숙쌤
첫 모니터링부터 함께한 인영쌤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오늘의 탐험단이었다
<초반>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야생동물 감시카메라, 즉 캠(CAM)이었다.
고등학생 김재민군이 주도해서 달아놓은 것이라던데
움직임이나 소리에 반응하여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 방식이었다.
야생동물들 중 많은 수가 사람이 다가가면 일찍이 도망쳐버리거나
애초에 야행성이라 조우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캠은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워 야생동물 관찰에 유용하다.
아쉽게도 메모리를 확인해 보았을 때 흥미로운 사진은 찾지 못했지만
이것은 한 장소밖에 찍지 못하는 캠의 공간적 한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캠을 다수 구비해 장남들 곳곳에 설치한다면
훨씬 더 효율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장남들 주변에는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지역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모니터링 전날 비가 왔는데, 이로 인해 만들어진 작은 모래 계곡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치 축소한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모양새였다. (실재로 원리는 비슷함)
모래로 이루어진 지형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건조한 환경 탓인지 [매듭풀], [띠] 그리고 [배암차즈기]와 같은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지 못하고 띄엄띄엄 보였다.
늦가을이 되어서 대부분 녹색빛을 잃은 채 지고 있었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그런 식물들 중 강한 자줏빛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이 토양의 성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 외의 이유에 의해서인지는 더 탐구가 필요해 보인다.
장남들 근처로 다가가면 갈 수록 갈대가 많아지고 초목이 우거지는데
아마도 논 때문에 토양 속 수분이 증가해서 그런 것 같다.
평소에는 지체없이 장남들 내부로 들어가지만
오늘은 장남들을 둘러싼 그물망 넘어, 관리받지 못하는 구역에 관심을 가져보았다.
여름 장마철 타이밍을 잘 맞춰 오면 맹꽁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씀을 신나서 하시면서도,
인영쌤은 이곳이 관리받지 못하는 사실에 안타까워하시는 듯 했다.
<중반>
다시 입구로 돌아와 장남들에 들어간 후엔 6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갔다.
이맘때쯤 기온이 낮아져 대부분의 곤충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지만 요새 늦가을 치고도 따뜻한 탓인지 아직 활발히 활동하는 곤충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젠 나에게도 친근해진 [섬서구메뚜기]와 [우리벼메뚜기]는 물론이고 [대륙고추좀잠자리]나 [박하잎벌레]도 발견했다.
박하잎벌레는 신기하게도 우리가 처음 주웠을 땐 천적에게 공격받는다고 여겼는지 철저하게 죽은 척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슬금슬금 움직이더니만 마음 편하게 배설까지 해버리는 웃긴 모습을 보여줬다.
6번 수로는 수목원 방향으로 쭉 이어지다가 갑자기 남쪽으로 꺾이게 된다.
이곳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키보다 더 큰 갈대들이 수로를 따라 줄지어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수풀을 양 손으로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정말 여기로 들어가야 하나요?' 라는 말을 꺼냈겠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에겐 길이 없는 것은 오히려 더 잘 보존된 환경을 조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나 다름 없다.
발 아래를 조심해가며 나아가던 중, 명숙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거 호박 아니에요??"
그 말을 의심할 틈도 없이, 근처 수풀 아래에서 커다란 호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생에 호박이 있는 것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지만, 믿기 힘든 것은 그 모양새였다.
내 머리통만한 크기며 영롱한 빛깔이며... 당장 팔아도 좋을 듯한 양품이었다.
야생에서 자란 것들은 대부분 못생기고, 질도 낮다고 여태껏 생각해왔는데,
내 편견이 보기 좋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호박을 보고 신난 우리는 드문드문 보이는 호박넝쿨을 따라 혹여나 다른 호박이 또 있을까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보기 힘든 것을 찾았으니, 바로 [멧밭쥐]의 둥지였다.
멧밭쥐는 고작 엄지 손가락 정도 크기의 초소형 설치류이다.
유난히 긴 꼬리와 가벼운 체중을 이용해 풀숲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아주 귀여운 친구다.
멧밭쥐는 다른 근연종과는 차별화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땅굴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새마냥 둥지를 짓는다는 것이다.
멧밭쥐는 긴 풀잎을 엮어서 지상으로부터 1m 정도 높이에 구형의 둥지를 만든다.
인영쌤이 둥지 하나를 가져가 잘라보셨는데, 보온을 위해 보드라운 털이 많은 물억새 씨앗을 겹겹이 쌓고, 버드나무 잎으로 수분흡수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둥지의 가장 바깥은 튼튼하고 주변색과 비슷한 벼과 식물의 잎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단순하게만 보였던 둥지에 이렇게 치밀한 설계가 들어가 있다니, 그야말로 자연의 작은 건축가가 아닐까 싶다.
<종반>
수로에서 나온 뒤, 우리는 서쪽의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가볍게 허기를 채우고 장남들을 나가려는데, 엄청난 수의 집비둘기 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집비둘기는 으레 무리짓고 다니기에 그 자체로는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무리 사이에 섞인 이방인이었다.
집비둘기와 비슷한 크기의, 아마 맹금류일 것으로 보이는 무엇인가가 무리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니고 있었다.
워낙 무리가 거대한 탓에 해당 조류를 정확히 포착하진 못했지만,
패닉에 빠져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는 집비둘기 떼의 행동에서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일찌감치 사냥하지 않고 마치 괴롭히듯이 행동하는 모습이 의아했지만
덕분에 우리는 집비둘기 떼의 에어쇼를 질릴 때 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번 모니터링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을 순서대로 정리해보았다.
고작 2주 전에 한 번 왔었는데, 크게 달라진 것이 있을까? 라고 생각한 내 자신이 무안하게도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새로운 발견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 탐사땐 또 어떤 경험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함께 모니터링에 참여해주신 인영쌤, 서병쌤, 그리고 명숙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번 모니터링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다.
첫댓글 탐험대원답습니다^^
글 쓴다고 수고가 많았어요
종현군^^
제가 부산에 가느라 함께 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어요~
새로운 얼굴들이 새로운 모습의 장남들을 기록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 자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