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타] 찾을 수 있는 하느님
하느님은 결코 당신 바깥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는 노력조차도 당신 자신에게 온당치 못하다.
당신 안에서부터 비롯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당신 존재의 바깥으로 나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들 각자가 이 지상에 태어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존엄한 이유는 모든 것 중에서
최고의 미스터리 - 자아라고 하는 그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을 더 적절하게 말하면 하느님, 즉 당신 안에 있는 아버지이다.
태초에 당신을 신임한 이가 그였고, 그를 통하여 당신이 창조하고
진화하며, 결국 당신은 그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것이다.
당신은 하느님과 같이 될 것이다 - 자신 속에 있는 하느님을 완전하게
표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되고자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되어야 할 그 기준점으로서 하느님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제 그를 살펴보자.
내가 사랑하고, 내가 시중들고 있고, 그로 인해 모든 경이로움이 만들어지는 이 하느님은 생명 전체의 지속성이다. 생명왕국이 지속되는 것은 영겁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지금 이 특정한 순간에 하느님은 현재 있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있음인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지금 순간들에서 하느님은, 그 자체로 지속하고… 약동하고, 느끼며, 확장하고, 진화하는 - 자신의 존재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
모든 생명의 맥동이다.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귀착점이다.
그런데도 경계도 없고 시초도 없으며 종말도 없다.
하느님의 있음 자리는 현실 위의 현실, 차원 위의 차원,
우주 위의 우주이다.
당신이 있는 이곳은 조그마한 은하다. 당신들만이 이 은하계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꽤 오만한 생각이다.
이 은하계 하나에만 100억여 개의 항성이 있으며 그 모든 항성에 생명을 키우는 여러 행성이 돌고 있다. 태양계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수로 셀 수 없다. 크고 작은 행성의 수,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의 수는 더욱이 말할 필요도 없다. 수라는 것은 없다. 무한이라는 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당신 자신의
사고방식을 재조정하여 시간이나 거리, 계량을 넘어서 인식하여야 된다.
더 높은 현실계에서 보면 그러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존재한다. 하느님이 존재하기 시작한 태초는 언제인가?
그런 것은 없었다. 하느님은 항상… 생각이었고, 공간이었다 - 텔스타에
생명을 주고 그것을 지탱하는 허공이었다. 텔스타가 무엇인지 아는가?
이것은 빛을 물질로 변환하고 우주에 흩뿌려 놓아 별무리를 탄생하게 하는 것이다. 텔스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생각, 하느님, 공간 - 하늘에 보이는 별과 영겁이 있는 그 거대한 허공이다. 만약 하느님을 무한하고 결점이
없는 형상으로 보고 싶다면, 공간이라는 열려진 무한을 상상해 보라.
왜냐하면 공간은 보이는 모든 것을 감싸고 있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탱하고 신뢰하는 생각의 강이기 때문이다.
공간을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괘도를 가지고 항구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붙잡아 놓은 힘은 무엇인가?
이 공간상에 지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수백억 항성이 모여 있는 이 은하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것들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태양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드는 것일까?
모든 물질의 흐름을 허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빛이 지나갈 수 있는 그 고속도로는 무엇일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그렇다면 수백억 항성과 그 항성계를 지탱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나에게 보여 보라.
한 수준에서 보면 하느님은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물질이다.
다른 수준에서 보면, 서로 다른 차원의 시간 흐름이고 평행우주를 창조하는 시간왜곡이다.
또 다른 수준에서는 물질이 생겨나게 되는 빛이라는 스펙트럼이다.
가장 위대한 수준에서 보면
당신을 제 위치에 있게 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생각이며, 공간의 영원함이다.
하느님은 맥동하고, 확장하고, 진화하며,
지금 현재가 영원으로 지속되는 생명 전체이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을 허용하는 있음이고,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펼침이며, 미래에 실현될 모든 약속이다.
생명을 부여하는 움직임이자, 실현해야 할 목적도 이상도 없지만 계속하여 생명을 창조하는 - 생각에서 빛으로 그리고 물질로 - 무한한 사고작용이다.
항상 변화하고, 항상 창조하며, 항상 확장하고, 항상 존재하는, 움직이는
힘으로서,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고,
전능하며, 항상 진화하고, 항상 움직이며, 항상 허용하고, 항상 존재하는
그러한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지금의 하느님은 그 다음 순간에는 같은 하느님이 아닌데 당신은 어떻게 "이것이 하느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끝없이 열려 있는 우주를 인식하는가?
유한한 생각을 하는 마음으로는
시간과 거리, 공간, 물질을 초월하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유한한 마음을 가지고는 그렇게 먼데까지 도달하여
형용(形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하느님'이나 '아버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을지라도,
이것조차도 존재하고 있고, 존재했고, 존재할 모든 것
- 과거의 있음에서부터, 현재의 있음까지, 그리고 무한한 미래의 있음까지 - 을 언급하기 위한 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하느님이 되는 기준점을 찾을 수 있는가?
바로 당신 자신에게서다!
지금의 당신은 하느님의 형상이고, 아버지와 똑같은 분신이다.
당신의 근본은 지속하고, 진화하고, 변화하며, 창조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은 생각이고, 빛이며, 전기단위이고, 형상이다. 순수한 에너지이고,
놀라운 힘이며, 맥동하는 감성이고, 지고의 생각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과 힘, 신성, 은총이라고 인식되는 이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야말로 바로 '찾을 수 있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결코 당신 바깥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는 노력조차도 당신 자신에게 온당치 못하다.
당신 안에서부터 비롯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당신 존재의 바깥으로 나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신 안에 있는 아버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점이 꽤 근사하지 않은가?
당신이 무한한 창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번잡하게 노력해야 할 짐을 덜어 주고,
그리고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의 삶, 당신 자신의 사고 과정,
당신 자신의 있음에서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할 테니까.
하느님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아는 유일한 길은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 당신은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안다.
나와 하느님이 하나이고 내가 누구인지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처럼 되는 길은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단순히 당신 자신의 있음이 될 때, 당신은 끝없이 열리고,
무한하며, 창조적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허용하고 있고, 당신은 움직임이며,
당신은 고요하고, 당신은 기쁨이다.
당신은 순수한 에너지이자, 강력한 지향점이며,
모든 느낌이고, 모든 생각이다.
존재하고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 - 당신 존재의 전체로
그리고 당신의 온 숨결을 다하여 - 그리고 당신의 진정한 가치를
삶에 허용하는 것이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다.
단순히 당신 자신에게 허용하라… 있음이 되도록. 존재할 때,
당신은 모든 것이다.
하느님이 되는 길은…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람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