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 속, 뜻, 생각 등을 고쳐버리는 자자(自恣) 운동
자자(自恣) 운동이라는 것은 뭐냐?
죄를 짓지 않아야 되고, 허물을 짓지 않아야 되고,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되고,
업을 짓지 않아야 되거든요. 그렇잖습니까?
그런데 허물, 죄, 과오는 몸뚱이하고 입으로 짓는 거예요.
몸뚱이하고 입으로 짓는 거예요.
중생이 짓는 이 허물, 죄가 100가지 1,000가지도 더 됩니다.
이것은 이 마음 속, 뜻, 생각 등 이놈을 고쳐버려야 되요.
이놈을 정화하면 입으로 몸뚱이로 죄를 짓지 않아요. 이게 근본이고 원인이어요.
내가 책에서 이 마음 속에 탐진치(貪瞋痴)라는 세 마리의 독사가 있다고 했지요.
탐욕을 왕독사라고 했는데 그놈을 두드려잡아야 되는 거예요. 그놈을 두드려잡아야 돼.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많~은 번뇌망상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되요.
그래 버리면 입으로 몸뚱이로 지적당할 허물, 과오, 죄를 짓지 않아요.
그래서 이 자자(自恣)는 뭐냐?
내가 지금까지 살았는데 이러이러한 허물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고백하는 거예요. 그리고 참회를 구하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입으로 몸뚱이로 짓는 허물을 봤거든,
오계십선 모든 계율을 파하는 것을 봤거든,
계를 넘어서 승려로서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것은 모두 허물이 됩니다.
모~두 허물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보셨으면 일러 주시오,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자자(自恣)는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본 것, 들은 것, 의심난 것을 가지고 지적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나 내 마음 속의 이 탐진치 이놈은 저 도반도 모른다고. 안 그렇습니까?
그 부분은 스스로 고백하는 거예요.
‘나는 잘 화를 내는 못된 성격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고치겠습니다.’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또 정말 승려로서의 생명이 뭐냐 하면
성(性)-색심 음심, 아시죠?
이것이 승려에게는 정말 무서운 적인데,
‘나는 과거생에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여자 생각이 너무 많아서 살기가 좀 어렵습니다.’
하면서 솔직하게 토로하는 거예요.
음심(淫心)을 고백해야 되는 거예요.
‘앞으로 꼭 극복하도록 할 것입니다’ 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이것을 가장 무섭게 알거든요.
‘나는 미운 사람을 보면 저놈을 두드려 주고 싶어서 못살겠습니다.’
그 사람이 미우면 저절로 욕이 나가고, 생각하면 욕이 나가려고 하고.
또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 말이 나오면 그냥 흉보고 싶고.
사람을 미워하는 것, 이것이 더 나가면 저주로 가거든요.
미움이 있으면 시비하고 싸우고 저주하고 이렇게 나가거든.
질투 시기... 등.
그래서 어쨌든 내 마음 속의 못된 성격을 고백합니다.
자기가 게으르면 ‘나는 또 게으릅니다’ 하면서 게으르다는 것을 고백해야 돼.
게으르면 못 쓰는 거예요.
우리는 부지런 해야지. ‘나는 게으릅니다. 나는 잠이 또 많습니다.’
고백을 해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고칩니다.
그래서 모두 이렇게 자자(自恣)를 하도록 지금 하고 있어요.
이제는 우리 스님네들이 한 단계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 할 것입니다.
정말로 좋은 스님들이 될 거예요.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