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OP의 역사
1945년 일본 패전 후를 기점으로 미국 군대가 일본에 상륙하게 되고
그런 미국 군대가 상주하던 미군부대를 전전하며 팝송을 따라 부르던 시절이라고 보는데요
그 때부터 일본의 대중가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알고 잇습니다
이 때부터 미국 대중음악의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과 일본인들의 정서가 융합되어
엔카(40년대 이전부터 민족음악을 대변하는 엔카의 형태는 존재하고 있었다)가 탄생하기 시작했죠
그 후 60년대에 세계를 주름잡은 비틀즈가 일본에도 방문하여 공연을 갖음에 따라
비틀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일본 음악계는 포크와 록이 움직이기 시작.
수많은 그룹 사운드 붐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이 때 사카모토 큐라는 사람의 sukiyaki라는 곡은 일본어로 불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기록.아시아 역사상 지금까지 유례없는 대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죠
그 후 70년대로 넘어오면서 일본 음악계는 크게 두가지 분류로 나누게 되는데요..
첫째는 미디어와 음악 산업의 발전으로 아이돌 가수의 원조격인 비디오형 가수들이 나타난 거구요
둘째는 그런 미디어에 반항하며 포크와 록의 전성기를 이루어낸 언더그라운드의 출현이죠
비디오형 가수의 원조인 Pink Lady와 일본 록 역사의 전설적인 그룹이라 알려져 있는
Happy End가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시기이고 대표적인 예라고 봐요
80년대는 여러가지 새로운 장르들이 각 분야에서 생성하기 시작.
미디어의 발달과 CD의 등장,가라오케의 일반화 등으로 소년대라던가 소녀대,히카루겐지 같은
전형적인 아이돌가수가 대거 등장.또 다른 한편에서는 80년대의 버블경제가 만들어낸
암울한 사회를 비판하는 로큰롤과 펑크,하드록 등에 록에서 한층 폭 넓어진 새로운 사운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는a
이 당시 제이락의 대표 이미지로는 X-Japan이나 오자키 유타카,Loudness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0년대,,[00년대는 현재형이므로-_-]/]
아시다시파 90년대는 세계적으로 일본 음악계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레코드사의 약세와 그에 따른 프로덕션의 강세로 아티스트들의 파워가 상당히 높아졌구요
또 인디의 활성화로 실력과 비주얼을 겸비한 아티스트들이 속출했고
새로운 음악 영역에서 신인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음악적 환경과 수준 높은 마케팅 전략이 일본을 세계 제2위의 음반 시장으로 만들어내고 있죠
J-POP의 대표가수 및 스타일
일본이라고하면 90년대 초반 도쿄러브스토리 라는 드라마곡인 오다카즈마사의 ラブ·スト-リ-は突然に 라는곡이 드라마 타이업이후 230만장정도의 초대박 싱글판매 기록을 통해
90년대 초부터 일본은 드라마 타이업이 시행되었구요.
90년대 초반이라고하면 역시 차게&아스카라는 그룹이 가장큰 획을 그은거 같습니다. 그들은 Say yes란 곡이 250만장이 넘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고 YAH YAH YAH라는곡도 230만장쯤의 대기록 다른 몇몇싱글들도 밀리언을 기록하며 90년대초를 그들의 세계로 만들었습니다. 90년대 초중반 쯤에는 TRF,미스치루,비즈가 두각을 드러나게 되고 TRF도 연이은 싱글 대박행진을 기록했고 미스치루는 innocent world라는 곡이 200만장이 넘는 초대박기록 그후 자신의 앨범이 300만장이 넘는 일본역대 1등의 앨범판매량을 기록하게되구요
그앨범 이후에는 Tomorrow never knows라는 싱글로 270만장이넘는 일본역대 1등의 싱글판매량을 기록하죠 비즈또한 10개가 넘는 싱글의 연이은 밀리언기록 정말 깰수없는 대기록입니다. 그후 코무로라는 사람이 만든 개그맨 가수인 H Jungle With t가 200만장이 넘는 초대박기록을 세우고 코무로 휘아에 있었던 시노하라 료코가 戀しさと せつなさと 心强さと라는곡의로 싱글 200만장 돌파를 기록했습니다.
90년대 초부터 밀리언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드림스컴투루라는가수는 90년대 중반 Love Love Love라는곡이 드라마타이업이 되며 오다카즈마사이후 250만장이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그후 코무로라는 일본가요계에 가장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있는데 그인물이 글로브라는 그룹을 만들어 첫 싱글부터 밀리언을 기록하더니 DEPARTURES라는 초특급 명곡을 발매 싱글 200만장이 경의로운 기록을 세운후 그 기세를 모아 앨범 글로브 발매 일본음반계에서 최초로 400만장이 넘긴 앨범이 되게 됩니다.
그후 90년대 중반부터 엄청난 두각을 들어내던 아무로나미에는 Sweet19blues가 300만장이 넘는 앨범판매 기록 그후 연이은 싱글 밀리언 마지막 결혼설이 있기전의 싱글인 Can you celebrate?는 일본웨딩송의로 이름을 날리며 싱글 230만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90년 중반에 밀리언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한 그룹들로는 오구로나미,스피츠라는 그룹도 상당한 유명세를 펼쳤구요
아 그리고 wands라는 그룹도 싱글면에서 밀리언 기록을 많이하며 일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그룹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97년도에 Glay라는 인기도 없던그룹이 However라는 곡이 싱글130만장을 기록하며 두각을 들어내게 됩니다. 하우에버의 대박이후 그들은 바로 그들의 베스트앨범인 Review라는 앨범을발매 앨범판매 490만장을 기록하며 96년있었던 글로브 앨범의 400만장 돌파를 단숨에 깨버리죠.
그후 유혹이란곡이 160만장 돌파 소울러브 130만장등 초특급 판매량을 기록하게되죠. 그렇게 흘러 98년 1월 지지도면에서 그다지인기가 많지않던 라르크엔시엘이라는 그룹이 winter fall이라는 싱글의 80만장 돌파로 두각을 들어내기 시작합니다. 그후 허니,침식 루즈컨트롤,화장 의 3개의 싱글 동시발매 밀리언기록 그후 snow drop의 밀리언 돌파,헤븐즈 드라이브라는 곡의 밀리언돌파 그후 Ark , ray라는 두개의 앨범을 발매 2개의 앨범모두 200만장이 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렇게 99년에는 우타다히카루라는 돌풍의핵이 등장합니다.
그는 automatic이라는 싱글로 데뷔 싱글130만장 맥시싱글76만장 합 200만장으로 데뷔가수가처음으로 싱글200만장을 돌파하게 됩니다. 그후 movin on without you라는 싱글 발매 90만장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엄청난 기대를 끌더니 First Love라는 앨범으로 일본역대 최고판매량을 기록 760만장이라는 경의로운 기록을 세웠다. 아그전에는 글로브가 Face places라는 300만장 앨범돌파도 했었다.
아그전 98년도에는 일본최고판매량을 자랑하는 비즈가 베스트앨범2개를 연이은 발매 한개는 일본최초로 500만장돌파를 기록하고 또하나의 베스트앨범은 400만장이넘는 대기록을 세운다. 그렇게 흘로 99년도에 우타다히카루가 이름을 날릴떄쯔음 하마사키아유미도 두각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그전에 a song for xx라는 앨범의 밀리언기록을 세우며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던 하마사키 아유미는 A라는 싱글의 160만장 돌파 Boys&Girls의 밀리언기록 등 상당한 저력을보이며 appers인가? 그앨범 2집앨범이라고하죠.
2집앨범의 300만장 돌파를 기록하게 됩니다. 90년대 후반 여자가수가 이름을 날릴때쯔음 love day after tomorrow라는 곡의로 데뷔하는 돌풍핵 쿠라키마이의 등장 130만장이라는 경의로운 기록을 세우며 일본계를 강타하더니 2000년도 stay by my side의 밀리언 돌파, secret of my heart의 밀리언 돌파를 하더니 그의 1집앨범 delicious way의 350만장 일본역대 10등안에 드는 앨범판매량을 기록하게된다.
그렇게 1999년도 쯔음에는 glay의 winter again의 160만장돌파 2000년도 그들의 2번째 베스트앨범인 driver가 260만장 돌파를합니다. 대충이러다가 2000년도에는 우타다히카루의 addicted to you의 180만장 돌파,wait&see의 160만장 돌파,Can you keep a secret?의 150만장 돌파의 초특급판매량을 기록하며 distance의 400만장 돌파를 하며 막강파워를 자랑하게된다. 그에못지않게 하마사키아유미도 M의130만장돌파,Seasons의 130만장돌파등 막강파워를 자랑하며 그의 3집앨범 duty의 290만장 대기록을 세우게됩니다.
아그전에도 모닝구무스메라는 여자 아이돌그룹의 러브머신 160만장돌파 러브레볼루션21의 밀리언기록등 아이돌파워를 자랑했고 90년중후반을 거의 점령하다 싶이한 그룹 스피드라는 그룹을 안적을뻔했내요. 그들은 첫싱글 body&soul의 70만장돌파이후 연이은 70만장돌파 steady라는고의 130만장돌파로 1집앨범을 200만장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우더니. 그후 my graduation이란 곡의 140만장돌파 alive의 100만장돌파 등등 대기록을 세우며 그들의 최고 대박싱글인 white love는 싱글 186만장으로 여자아이돌가수중에는 역대 최고를 자랑하는 판매량입니다.
그후 2집또한 200만장 돌파 그들의 베스트앨범 moment또한 300만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아이돌역사에 큰획을 그었고 킨키즈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킨키키즈는 硝子の少年라는 곡의 1997년 데뷔 데뷔앨범이 180만장이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연이은 밀리언싱글등 쟈니스 파워를 자랑하고있습니다. 그렇게 흘러 2001년도에는 하마사키아유미의 A best와 distance의 선의의경쟁을 불붙혀서 하마사키아유미도 400만장이 넘는 앨범을 만들게되구요. 그후 우타다히카루는 traveling,사쿠라 드롭등의 곡의로 3집앨범 deep river또한 350만장 돌파를 하게됩니다.아 그전에 사잔올스타즈라는 그룹또한 엄청난 큰획을 그었다는겄을 알려드립니다.
J-POP의 대표곡
01. L'Arc~en~Ciel - HONEY
91년에 Bass인 TETSU를 중심으로 오오사카에서 결성된 밴드로 X 로 부터 시작된 비쥬얼 록 이라는 장르에서 현재 존재하는 최강의 밴드이다. 비쥬얼 록의 발전 시절에 마이너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인디즈 밴드의 꿈의 무대라 불리우는 신주쿠의 LOFT에서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흥행을 업고 93년 인디 데뷔 앨범 [DUNE]을 발매하였다. 이례적으로 인디즈에서는 보기 힘든 한정 반을 만장이나 찍어 삽시간에 전부 매진이 되어 메이저로 직행하는 티켓을 얻게 된다. 94년 싱글 비디오 "眠り よせて"로 메이저 데뷔, 96년에 발매된 앨범 [TRUE]가 오리콘 앨범 차트1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HONEY"는 99년 앨범 [RAY]에 실린 곡으로 라르크 안 시엘 의 음악의 최고의 정점에 위치한 시절의 음악이다. 당시"Honey", "花葬", "浸食" 3장의 싱글 을 동시에 발매하여 전부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였으며 파격적으로 앨범도 [RAY]와 [ARK]를 동시에 발매 하였고 상업적인 면에 많이 치중하는 일본음악계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는 높은 음악적 창작력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이고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음반이다.
02. Mika Nakashima - 雪の華
83년 카고시마현 출신으로 91년 드라마 '傷だらけのラブソング'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드라마의 주제가인 "Star"까지 불러 오리콘 차트 3위 첫 등장에 60만장을 넘는 판매고를 넘기는 등 신인으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데뷔 신고를 한다. 02년 10만장 한정으로 나온 두 번째 싱글 "Crescent Moon"은 발매 당일 매진되는 기록을 남겼으며 이후에 계속되는 발표하는 싱글 마다 모두 빅 히트를 기록하여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2002년 여성 신인상을 독식하였다. 2003년에도 그녀의 인기는 지칠 줄 모르며 계속 이어져 대망의 1집 앨범 [True]는 오리콘 앨범 차트 1위 첫 등장에 3주만에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판매고를 기록하여 최근에 여 가수 기근에 시달리는 일본 음악계에 새로운 히로인이 되고있다. 2003년 연말에 발매된 그녀의 2집 [LOVE]도 이미 100만장을 넘는 판매를 기록하여 일본 최고의 여성 가수라는 명칭에 당당한 그녀가 되었다.
"雪の華"는 그녀의 2집 [LOVE]에 실린 곡으로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할 수 있는 발라드 곡으로 기존의 1집의 분위기를 잘 이어주고 있는 곡이다. [LOVE]에서는 1집과는 틀린 여러가지 음악적인 시도를 선보여 앞으로의 행보가 더더욱 기대가 된다.
03. Ken Hirai - Ring
히라이 켄은 93년 오디션을 통해 가수를 시작하여서 95년 싱글 "Precious Junk"로 데뷔하였다. 초반에는 그리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으며 중간에 활동을 1년 이상 중단한적도 있었지만 꾸준한 그의 활동과 천부적인 목소리에 많은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2000년 8번째 싱글"?園", 2001년 13번째 싱글 "KISS OF LIFE"가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당당히 남성 최고의R N’B 가수로서 자리 매김을 하였고 2002년16싱글 "大きな古時計"가 싱글 음반에서는 보기 드문 80만장을 넘는 판매를 기록하였다. 여기에 실린 "Ring"은 2002년 겨울에 발매되어서 감동적인 뮤직비디오와 함께 많은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누가 들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하며 부드러운 보이스와 분위기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곡이 실린 5집 [LIFE is...]가 한국에도 발매가 되어 있으며 히라이 켄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04. 安全地帶 - ショコラ
80년대 어두운 세운 상가 뒷골목에 흔히 빽판이라고 칭했던 부틀랙 판이 있는 곳에 가면 반드시 발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인기가 많았던 음반이 바로 안전지대의 음반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어서 J-POP을 간단히 접할 수 없었던 힘들었던 그 때를 회상해 보면, 그들의 곡이 이렇게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되는 것이 매우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안전지대는 73년 콧물도 언다는 얼음의 도시 홋카이도에서 결성되어 백 밴드 등으로 활동을 하다 82년 마이너 레이블에서 싱글 "??色のスナップ"로 데뷔 하였고 83년 메이저 첫번째 싱글 "ワインレッドの心"가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천재적인 멜로디 메이커인 Tamaki Kouji를 전면에 내세우며 심플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로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내며 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가 되었다. 매 앨범마다 성공을 거듭했던 안전지대는 87년 멤버들의 각자 솔로활동을 시작으로 삐걱거리다 88년 활동중단을 선언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에 몇 번의 활동 재개를 하면서 계속적으로 밴드활동은 계속되었고 2003년 10월 안전지대 10집이 나오면서 많은 팬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ショコラ"은 그들의 10집에 있는 곡으로 이제 안전지대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고쳐주는 발라드 곡이다. 80년대의 전성기 때보다 더 깊고 진한 느낌의 곡으로 Tamaki Kouji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명곡이다.
05. TUBE - ガラスのメモリ-ズ
2004년 1월 1일 일본가요가 개방될 때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을 한 밴드로 기록되어질 Tube는 일본에서는 Yamashita Tatsuro와 더불어 여름이 되면 꼭 듣게 되는 여름의 음악으로 일본에서 정착되어진 아티스트이다. 1984년 파이프라인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어 활동하다 85년 소니 뮤직과 계약 후 밴드이름을 Tube로 개명하며 메이저 데뷔 싱글 "Best Seller Summer"를 발매, 히트하며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모 맥주광고에서도 사용되었던 3번째 싱글 "Season In The Sun"이 빅 히트를 기록하며 정상의 위치에 올라섰다. 이후 수많은 히트 곡을 만들어내면서 일본의 여름을 책임지는 밴드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ガラスのメモリ-ズ" 는 한국의 남성 듀오 CAN이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를 했던 곡이다. 한국 내한 공연 때 CAN과 같이 공연을 해서 한국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곡으로 92년 15번째 싱글로 발표된 Tube의 대표 곡 중에 하나이다.
06. JUDY AND MARY - そばかす
미국이나 영국 같은 음악의 선진국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일본에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Girl-Pop이라 불리 우는 여성보컬이 주축을 이루는 록 음악 장르이다. 일본의 평론가들은 꽤나 체계적으로 이 장르를 설명하곤 하는데 JUDY AND MARY는 이러한 Girl-Pop의 역사에 있어서 제 2기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소개 할만큼 중요한 아티스트이다.
92년 결성되어 93년 메이저 데뷔 싱글 "Power Of Love"을 발매하였으며 클럽 라이브를 하면서 틈틈이 녹음한 1집 앨범 [J.A.M]을 94년 초에 발매를 한다. 그 후 지칠 새도 없이 같은 해 12월 2집 앨범 [Orange Sunshine]을 발매하는 놀라운 창작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쉼 없는 활동이 많은 팬들에게 알려진 것은 96년 9번째 싱글 "そばかす"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부터 였다. 97년 4집 앨범 [The Power Source]이 무려 2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후에 1년간 활동중지와 멤버 간의 사랑과 이별 등, 여러 문제를 노출하다 결국 2001년 해산을 발표하였다.
"そばかす"는 JUDY AND MARY의 대표 싱글이라고 해도 손색 없는 곡으로 이들의 매력을 전부 보여주고 있다. 초기의 곡들이 펑크 지향의 밝은 곡들이 대부분 이었던 것에 비해 95년 3집 [Miracle Diving] 부터 약간은 진지한 스타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였는데 그 결과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기 실린 "そばかす"이다.
07. 米米CLUB - 君がいるだけで
대학 축제에 참가하기위해 친구들끼리 모여서 결성되었다가 클럽의 정기적인 라이브를 시작하게 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85년 10월 앨범 [SHARISHARISM]로 데뷔 하였으며 춤과 노래 외에도 만화와 같은 캐릭터성이 합쳐진 엔터테이먼트를 강조한 무대를 선보여서 여타의 밴드들보다 라이브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그룹이었다. 이러한 것은 기존의 밴드들과 차별 되는 것이었고 이후 나오는 앨범들 사이에 녹아 들어서 독자적인 음악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90년대를 넘어가면서 그들의 대표 곡이라 할만한 싱글 들을 선보이게 되는데 90년 "浪漫飛行"가 빅 히트를 기록하였고, 최고의 전성기라 할만한 92년에 내놓은 싱글 "君がいるだけで"가 298만장이라는 놀라운 판매고를 보이며 일본 전국이 열광시켰다. 이들의 지금까지의 활동의 모든 에네르기가 전부 들어있는 곡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미성의 보컬리스트 이시이의 보컬에 극한을 맛볼 수 있는 명곡이다.
중반기 이후 멤버가 16명까지 늘어나면서 더더욱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며 활동을 하였지만 97년 해산을 하였고 밴드의 핵심 맴버인 보컬의 이시이 타츠야가 솔로활동을 시작하며 米米CLUB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08. ZONE - secret base ~ 君がくれたもの ~
ZONE은 1998년 여성 4인조로 결성되어서 99년 인디즈 데뷔 음반 "believe in love"를 발표 홋카이도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 메이저로 발탁되어 2001년 메이저 데뷔 싱글 "GOOD DAYS"를 발표했다. 당시 평균연령 14세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며 세련된 음악으로(게다가 연주를 직접 하는)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아직 어린 신인 밴드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01년 8월에 발매된 세 번째 싱글 "secret base ~君がくれたもの~"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부터 였다. 이것은 2002년 1집 앨범 [Z]가 오리콘 차트를 2위로 첫 등장을 하며 대중들의 Zone에 대한 관심도를 증명 해주었고 이후 내놓는 싱글 과 앨범마다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2003년 홍백가합전을(NHK에서 연말에 하는 한해를 정리하는 권위 있는 음악 프로그램) 끝으로 리더인 TAKAYO가 탈퇴하여서 많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무명시절에 같이 활동 했던 TOMOKA가 가입하여 새로운 ZONE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고 있다.
"secret base ~君がくれたもの~"는 ZONE이 현재의 위치에 있게 해준 그녀들에게는 각별한 곡이다. 미드 템포의 무척이나 단순한 멜로디로 소녀의 감정을 매우 잘 표현 해주고 있는 곡으로. 아이돌의 이미지가 강한 그녀들에게 밴드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준 수작이다.
09. Chitose Hajime - ワダツミの木
1979년 일본의 큐슈의 가장 남쪽인 카고시마현 가장 구석진 외진 섬에서 태어난 Chitose Hajime는 초등학교시절부터 민요를 배워 민요대회에 참가해 수상을 할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고등학교 때 현민 민요대회에서 최연소 대상을 차지하며 그녀의 독특한 창법을 다져갔다. 2001년 3월 마이너 미니음반 [Hajime Chitose]를 발매하여 민요의 창법에 바탕을 둔 독특한 음악 세계를 선보여 많은 평론가의 관심을 모아 2002년 2월 메이저 데뷔 싱글 "ワダツミの木"를 발매한다. 신인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탄력을 받기 시작한 그녀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5월에 차트1위에 올라서더니 오랜 시간동안 차트에 머물며 스테디 셀러가 되었으며 데뷔 음반 [ハイヌミカゼ]도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녀만의 세계를 만들었으며 다른 사람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 속에서 꾸준히 음반을 내주고 있다.
치토세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음성이다. 약간 비음이 섞이고 조금 탁한 듯한 목소리는 슬픔이 섞여있는 느낌을 준다. 거기에다 어린시절부터 배운 민요의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은 다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음악적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여기에 실린 "ワダツミの木"이며 단 한 곡으로도 그녀의 매력에 빠지기 충분하다.
10. DREAMS COME TRUE - LOVE LOVE LOVE
오랜 세월을 끊임없이 팬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DREAMS COME TRUE.
한 밴드에 있어서 대표 곡이란 무엇인가. 오랜 시간 활동해온 밴드일수록, 또 수많은 히트 곡을 낸 밴드일수록 "대표 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더욱더 그 대답이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88년 데뷔해서 폭 넓은 팬들에게 끊임없이 사랑 받아 온지 올해로 16년째를 맞고 있는 DREAMS COME TRUE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 "LOVE LOVE LOVE"는 현명하고 당연한 선택이다. 곱고 시원시원하게 뻗은 보컬 요시다 미와는 이 곡에서 아름답고 절제된 보컬을 선 보이고 있다.수많은 사람들을 동감하게 하는 멜로디와 가사덕분에 1995년 싱글 커트 되어 대히트를 기록한 이후 아직까지도 애창되고 있는 "LOVE LOVE LOVE"는 이들 밴드의 간판 곡이 되었다.
11. the brilliant green - There will be love there - 愛のある場所 -
1995년 고교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오쿠다와 마쯔이가 보컬 카와세가 가입하면서 결성되었다. 결성직후 클럽공연을 위주의 활동에 일찍부터 많은 평론가들의 찬사가 쏟아지면서 곧바로 메이저와 계약, 1997년 9월 맥시 싱글 "bye bye mr. Mug" 로 데뷔하였다. 일본 보컬의 고정적인 약점이었던 영어보컬을 훌륭히 소화한 카와세와 더불어 일반적인 일본 록 스타일에서 한걸음 앞선 음악을 선보여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라디오를 강타하였고 실질적 첫번째 싱글 이라 할만한 "There will be love there - 愛のある 場所-"은 브릿 팝의 센스와 일본 록의 절묘한 조합으로 나온 수작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나온 "冷たい 花"도 연속 대히트를 기록하며 이 곡들이 실린 1집 앨범 [The Brilliant Green]이 130만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보여주었다. 이후 꾸준한 활동을 보이다 2001년 보컬 카와세 토모코의 솔로 프로젝트‘tommy february 6’활동을 개시하며 잠시간의 밴드 활동 중지를 선언하였다. 한편 'tommy february 6’는 데뷔 싱글 "everyday at the bus stop"이 15만장을 넘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12. HYDE - HORIZON
일본 비쥬얼록의 현존하는 대표 밴드, L'ARC-EN-CIEL의 보컬리스트로 2000년 이후 밴드가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2001년 싱글 "EVERGREEN"을 발표로 솔로활동을 시작하였다. HYDE외에도 각 멤버들이 각자 솔로활동을 하여서 많은 팬들은 라르크 안 시엘의 해체된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하였지만 2004년 한일 동시 발매된 싱글 "READY STEADY GO"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전히 일본의 록계를 대표하는 밴드이다.
팬들의 많은 기대 속에 나온 2002년 하이도의 솔로 1집 [ROENTGEN]은 밴드시절의 음악과는 차별을 두어 좀더 섬세한 음악을 주어 라르크 안 시엘 때의 그를 좋아했던 많은 팬들에게는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다. 2003년에는 전MALICE MIZER의 보컬리스트였던 GACKT와 함께 'MOON CHILD'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비쥬얼 록계의 2대 꽃 미남의 만남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잠시 간의 외도를 후 1집보다 좀 더 풍성하면서 스트레이트한 음악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밴드시절과는 또 다른 음악을 선보였고 여기에 실린 "HORIZON"은 바로 그러한 결과이다. 2003년 연말에 선보인 2집 [666]에서 최근 음악적 성과를 선보였는데 결과는 솔로로서도 전혀 부족함 없는 합격 점으로 하이도의 팬 뿐만이 아닌 라르크 안 시엘의 팬이라면 꼭 구매해야 할 음반이다.
13. Tamio Okuda - 花になる
한국에서는 가수로서 보다는 여성 듀오 밴드였던 PUFFY의 프로듀서로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Unicorn이라는 밴드의 리더로서 그리고 밴드 해산 후에는 뛰어난 솔로 활동으로 J-POP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 할만큼 중요한 인물이다. 85년 Unicorn을 결성해 87년 첫 앨범 [BOOM]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아이돌 밴드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89년 대규모 오케스트레이션을 사용하고 당시 유행하던 비쥬얼 록 밴드를 비웃기라도 하는듯한 드라마틱한 구성의 훌륭한 곡들로 가득 차있는 3집 앨범 [Hattori]를 발표하며 새로운 전개를 맞이한다. 마치 새로운 밴드로 환생한 것과 같은 음악적 변신은 당시 음악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고 그 후 왕성한 활동을 하다 93년에 해산하였다. 94년 약 1년간의 침묵 후에(오쿠다가 낚시에 취미가 있어 낚시를 하며 보냈다고 한다.) 솔로 데뷔 싱글 "愛のために"를 발표, 100만장이 넘는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솔로 활동 이외에도 96년 PUFFY의 1집의 프로듀서로서 참가하여 대성공을 거두면서 다시금 그의 가수 이외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東京スカパラダイスオ?ケストラ같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공동작업으로 그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花になる"는 2002년 그의 13번째 싱글로 이전의 오쿠다가 해왔던 작업들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은 보여 주는 노래로, 이전의 오쿠다 타미오 특유의 유머스러움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작품이다. 최근의 작품에서는 이전의 음악에서 보여주던 유머가 적어지고 있는데 이 곡은 그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14. T.M.Revolution - WHITE BREATH
1970년에 태어난 Nishikawa Takanori의 솔로유닛 T.M.Revolution은 Takanori Makes Revolution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96년 5월 데뷔 싱글"?裁~モノポライズ"발매하였고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97년 발매된 4번째 싱글 "Level 4"에서 부터 였다. 그의 독특한 의상과 성격과 카리스마로 많은 화제를 일으키며 이러한 강한 개성때문인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 확실히 나타나는 팬을 가지고 있다. 여담이지만 80년대에 Komura Tetsuya가 참가했던 TMNetwork와 이름이 비슷하여 많은 사람들을 착각(일본인들도...)하는데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여기에 실린 "WHITE BREATH" 97년 6번째 싱글로 발표하여서 큰 인기를 얻은 곡이며 J-POP이라는 음악의 스타일의 아주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15. PUFFY - アジアの純?
가수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아미가 자신 혼자로는 부족함을 느껴 같은 소속의 유미에게 같이 활동할 것을 권하면서 퍼피가 결성되었다. 데뷔 싱글 "アジアの純?"이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였고 데뷔 미니 엘범 [amiyumi]의 호평, 2번째 싱글 "これが私の生きる道"가 발매 동시에 오리콘 챠트 1등을 차지할 정도로 팬들에게 어필하였다.
데뷔직후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파파파파파피"라는 프로그램으로 퍼피 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캐릭터상품을 만들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음악적으로는 데뷔 때부터 오쿠다 타미오라는 일본 음악계의 거목을 만나 일본 록에 바탕을 둔 가볍고 복고성향의 록 음악을 선보여 많은 팬들에게 인기를 모왔다. 한마디로 그녀들은 독특한 캐릭터적인 이미지와 음악적인 완성도, 두 가지에서 전부 성공을 한 보기 드문 케이스의 듀오였다. 99년 이후 인기는 많이 하락하였으나 이전보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꾸준히 좋은 음악을 선보이고있으며 특히 동남아시장에서 매우 높은 인기를 얻었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アジアの純?"은 퍼피의 대표곡으로 그녀들과 오쿠다 타미오의 개성과 전부 담겨있는 곡으로 퍼피하면 떠오르는 유쾌함과 가벼움, 자유스러움이 전부 보여주는 명곡이다.
16. The Gospellers - ひとり
91년 일본의 일류 대학인 와세다 대학의 아카펠라 서클 Street Corner Symphony에서 결성된 5인조 보컬 그룹으로 94년 마이너 데뷔 미니 앨범 [Down To Street]을 발매했다. 같은 해 12월 싱글 "Promise"로 메이저 데뷔 이후 95년 10월에 첫 앨범 [The Gospellers]를 발표했다. 이후 콘서트를 중심으로 TV, CM 라디오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싱글과 앨범을 발표해온 고스페라즈는 단순 아카펠라에 만족하지않고 Hip Hop, Soul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점점 많은 팬들을 확보하였다. 2001년 3월 16번째 싱글 "ひとり" 가 순수 아카펠라 곡으로는 오리콘 역대 최고 순위인 3위를 기록하면서 수많은 팬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 곡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아카펠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다투어 아카펠라 대회를 열고 기독교인도 적은 일본에서 국민 가스펠 아카펠라 합창단을 만들어도 될 만큼 고스페라즈를 추종하는 아카펠라 그룹이 수없이 탄생, 일본 전국이 아카펠라 열풍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한 큰 인기를 얻은 그들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클럽과 조그만 공연장에서 라이브를 하며 그들의 영역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17. X - ENDLESS RAIN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한참 전에도 X는 한국 안에서 수많은 숨겨진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들이 밴드로서 활동했던 당시만해도 무스 한 통을 다 썼을 것 같은 이들의 "닭 벼슬" 머리와 화려한 메이크업, 그리고 약간 오버하는(?) 뮤직 비디오 등으로 한국 팬들에게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격한 메탈만이 진정한 록이라는 신앙을 굳게 믿고 있었던 피 끓는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이쁜이 메탈"이라고 불리워 지기도 했던 X.
"이쁜이"라는 말에서 감이 오듯, X는 유독 수 많은 소녀 팬들의 가슴을 찔러대던 흔하지 않은 멜로디가 살아있는 락 밴드 였다. 그런 X의 대표곡 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ENDLESS RAIN".
더욱이 이 곡은 X 특유의 섬세하고 등 시릴 정도로 감각 있는 멜로디가 살아있는 곡으로, "이쁜이 메탈"의 최고봉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전체적으로 애절하고 비장함이 서려있는 피아노 선율과 보컬 토시의 애절한 보이스가 잘 어울려서 그 분위기를 한껏 살려냈다.
J-POP의 종류
일반 음악과 장르는 동일해요..팝,락,블루스,R&B, 사이키델릭, 해비베탈, 재즈,등
즉 종류가 일반 음악장르와 동일합니다.
J-POP의영향
2000년6월 말 발표된 일본 대중문화개방 3차 개방 조처는 국내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끼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2천석 이상의 공연장에서 일본어로 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1, 2차 개방 이후 클럽 등의 소규모 공연장이나 대중음악 페스티벌에서 간간이 일본의 언더밴드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 잠실 올림픽경기장 같은 대규모 공연장에서 일본 주류 가수들의 인기곡을 들을 수 있게 됐다.
*200만장 넘기는 가수가 열서너명
여전히 음반시장은 빗장이 걸려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노래를 다운받고 음반을 구입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 됐기 때문에 이번 조처는 일본 대중음악의 전면개방에 가깝다. 발표된 지 두달이 지나면서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일본 대형가수들의 국내 상륙이 시작되고 있다. 22년 동안 활동하면서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공연 때면 6만~7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남성 듀오 차게 앤 아스카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8월26일과 27일 첫 테이프를 끊는다. 9월에는 국내 팬사이트만도 수십개에 이르는 아이돌 스타 아무로 나미에가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이들의 음악은 장르적으로 교집합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흔히 함께 묶어 J-POP이라고 부른다. 따지고 보면 일본 대중음악이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J-POP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음악이 아니었다. 한 예로 표절시비가 붙었던 국내 댄스곡의 대부분은 J-POP 곡들을 베꼈다는 혐의를 받는다. 표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 대중음악의 큰 두 갈래인 댄스와 발라드의 인기곡들이 J-POP의 색깔을 많이 띠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J-POP은 일본 스타일의 팝음악, 즉 서구의 팝음악을 일본화시켜 발전된 일본의 대중음악이다. 디즈니나 다른 서양의 애니메이션과 구별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니메라고 부르듯 일본 대중음악에만 독특하게 붙이는 용어다. 아니메와 J-POP이라는 용어의 발단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아니메는 외국인들이 붙인 일본 애니메이션 일반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J-POP은 일본인 스스로 만든 일본 대중음악의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J-POP이라는 용어는 일본 대중음악이 큰 변화를 겪던 70년대 만들어진 신조어다. 시장을 휩쓸던 엔카의 위력이 약해지고, 서양에서 들어온 팝음악에 일본색에 의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이를 가리키는 현대적인 일본대중음악을 J-POP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엔카라는 고전적인 의미의 일본대중음악, 그리고 안그라라고 하는 언더그라운드 록이나 포크 음악과 구별되는 J-POP이 가지는 일본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한 예로 지난해 J-POP의 신성으로 떠오른 17살의 여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데뷔 앨범 는 일본에서 840만장이 팔렸다. 같은 해 국내 최고를 기록한 조성모의 (120만장)에 비해 일곱배에 달한다. 일본과 한국의 인구 차이를 감안한다면 세배 반에 이르는 규모다. 이뿐만 아니라 한해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가수가 열서너명에 이른다. 단일 앨범으로 국내에서 200만장 기록을 넘겼던 음반은 김건모의 <핑계>뿐이다. 일본 음악시장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싱글음반의 판매량까지 포함한다면 그 판매량은 거의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현재 일본 음반시장의 규모는 약 6조억원.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고 인구 대비 세계최고다.
*J-POP의 주력은 댄스가 아니다!
일본 대중음악 또는 J-POP에 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로 J-POP이 아이돌 스타 중심의 댄스음악이라는 오해가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기획사가 만든 10대의 보이그룹, 걸그룹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국내에서는 일본음악이 바로 댄스음악이라는 식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실상 J-POP의 특징은 그 다양성에 있다. 물론 일본에서 아직까지 아이돌 스타의 위력은 대단하다. 일본의 H.O.T라고 할 수 있는 스맵이나 일본의 S.E.S 또는 핑클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피드는 텔레비전 쇼와 10대들의 잡지 표지를 장식하며 팬 군단을 몰고 다닌다. 그러나 일본의 조용필이라고 비유할 만한 포크록 듀오 차게 앤 아스카 역시 공연 때면 수십만 관중을 운집시킨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처럼 일본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오리콘 차트 7월24치를 보자. 뉴 엔트리로 1위에 오른 곡은 라는 록음악으로 남성 록밴드 B'z가 불렀다. 이들은 1988년 데뷔한 노장 뮤지션으로 그동안 정상자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싱글 음반만 3천만장 가까이 팔아치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은 텔레비전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수로 유명하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 순위 프로그램 출연으로 앨범 판매에 사활을 거는 국내 대중음악 시장과 극명한 차이를 이룬다. B'z 아래에는 출산 뒤 활동을 재개한 아무로 나미에와 힙합 그룹 드래곤 애쉬, R&B 가수 우타다 히카루, 10대 아이돌 댄스 그룹 기니기니 기즈 등이 10위 안에 들어 있다.
J-POP에서 독보적인 가수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록음악, R&B, 테크노, 댄스 음악 등 장르가 다양하고 장르마다 정상급의 가수들이 수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가수 한둘이 무림천하에 군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J-POP을 소개하고 있는 일본 대중음악 평론가 신용현씨의 말이다. 이런 다양성 가운데서도 90년대 이후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만드는 록밴드들의 강세를 들 수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팬클럽이 만들어지는 등 큰 인기를 모았던 비주얼 록그룹 X-JAPAN은 록음악의 광범위한 인기몰이에 도화선이 된 그룹이다. X-JAPAN이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오늘날 밴드들도 따라가는 길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친구들끼리 거리에서 연주하다가 일본 록음악의 텃밭인 라이브 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 당시 자신들이 만든 인디레이블 엑스터시에서 찍어낸 첫 앨범 1만장이 1주일 만에 매진되면서 메이저 음반사인 소니와 손잡게 됐고 이를 통해 두 번째 앨범에 이르러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여전히 인기 높은 비주얼 록 장르에서 정상을 달리고 있는 글레이나 라캉시엘 같은 그룹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비주얼 록은 아니지만 스피츠나 미스터 칠드런 같은 록그룹 역시 언더그라운드를 거쳐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오며 10년 동안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단순한 싱어가 아니라 싱어 송 라이터를 선호하는 현상은 록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장르에서도 늘어나고 있다. 신용현씨는 지난해 우타다 히카루의 경이적인 성공을 만든 요인에는 작사, 작곡, 노래 모든 것을 다한다는 독립적인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면서 가수들이 직접 만든 곡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 전체 음악계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이돌 스타, 탁월한 기획상품
80년대보다 시장 장악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기획상품인 10대 아이돌 스타는 여전히 J-POP의 큰 축을 떠받치고 있다. 아이돌 스타의 탄생과 성공 전략은 한국과 일본 대중음악산업이 매우 흡사하다. 수려한 외모가 그 중심에 놓이고 기획자에 의해 훈련받은 가수들은 텔레비전의 각종 쇼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면서 성공의 승부를 건다는 점에서 그렇다. 90년대 일본의 아이돌 스타의 돌풍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수가 이번에 내한하는 아무로 나미에와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제작자 고무로 데쓰야다. 10대 초반부터 걸 그룹에서 활동하던 아무로 나미에는 17살 때 고무로 데쓰야를 만나면서 96년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고 긴 생머리와 미니 스커트, 롱 부츠는 젊은 여성들의 유니폼이 될 정도로 요란한 신드롬을 일으켰다. 글로브라는 댄스그룹의 리더로도 활동하는 고무로는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TK 패밀리, 즉 그의 휘하에 소속된 가수 군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무명가수를 발굴해 그들에게 직접 만든 곡을 주고 음반제작에서 공연까지 필요한 세부사항들을 직접 지시한다. 고무로는 가라오케에서 노래하고 클럽에서 춤추는 90년대 젊은이들의 생활습관을 간파해 따라 부르기 쉽고 춤추기 좋은 곡들로 승부를 본다. 또한 방송을 통해 가수를 홍보하고 가라오케에서 인기곡을 띄우는 방법으로 스타를 만드는 전형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고무로의 방식은 우리나라의 음반기획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텔레비전 방송 중심과 댄스음악 위주의 국내 대중음악을 비판할 때 고무로 데쓰야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클릭!일본문화>의 지은이 김봉석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고무로 데쓰야가 철저하게 상업적인 음악을 해왔지만 주류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변화, 발전을 추구해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평가한다. 김씨는 "한명의 여성 보컬과 DJ, 세명의 댄서라는 독특한 편성을 실험한 그룹 TRF의 성공이나 아무로 나미에가 유로테크노 댄스에서 R&B 가수로 변신하며 노래 가사 속에 일본 여성들의 성장과정에 따르는 감수성의 변화를 포착해낸 것은 J-POP의 상업성에 질적 성숙을 보태준 예"라고 덧붙인다.
*한국시장 지배는 불가능한 일
이제 서서히 상륙을 준비하는 J-POP이 한국의 대중음악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낙관적이지 않다. 일본계 음반사인 포니 케년 코리아의 이자묵 대표는 초기에는 소비자들의 호기심 때문에 많으면 전체 시장의 15%까지도 점유할 수 있겠지만 시장이 안정되면 7% 미만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신용현씨 역시 비슷한 수치를 예측하면서 대중음악이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기 위해서는 듣는 이의 심성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