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 산수를 잘 못하면 벌어지는 일
지난 총선에서 정당이 산수를 제대로 했다면
제1당이 초과 의석 없는 연동형 밀어붙이고
제2당이 자해성 위성정당 만들기 앞장서고
소수당이 자해성 들러리 서는 일 없었을 것
연동형 비례제는 초과의석이 가능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2020년 총선 결과에 대입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실제로는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과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실제로는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정당투표 득표율은 각각 38.8%와 33.8%다. 정의당(9.7%)과 국민의당(6.8%)까지 4개 정당만 최저 기준인 3%를 넘겼다.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163석, 미통당 84석, 정의당 1석, 국민의당 0석을 얻었다. 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려면 단순 비례제에서 얻을 수 있는 의석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민주당 129석, 미통당 108석, 정의당 36석, 국민의당 27석이 나온다. 이 결과에 가깝게 지역구 의석을 고려한 조정을 하는 게 연동형 비례제다.
민주당은 단순 비례제라면 얻을 수 있는 의석보다 34석을 더 얻었기 때문에 추가로 받을 의석은 없다. 미통당은 단순 비례제라면 얻을 수 있는 108석에 못 미치는 84석을 얻었기 때문에 모자란 24석을 받는다. 정의당과 국민의당도 같은 식으로 35석과 27석을 받는다. 그러면 의원 총수는 334명이 된다.
연동형 비례제의 마법은 초과의석에서 나온다. 본래 비례의석 47석에 민주당이 얻은 초과의석 수(34석)만큼이 더해져 81석이 다른 정당들로 배분되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은 득표율만큼의 의석을 확보한다(단순화를 위해 무소속 5석을 빼고 계산했기 때문에 앞 문단의 계산으로는 81석에 5석을 더한 86석이 배분됐다).
2020년 총선은 실제로는 초과의석 없이 30석으로 준연동형을 실시했다. 결과는 민주당 183석, 미통당 103석, 정의당 6석, 국민의당 3석이다. 민주당은 연동형이라면 초과의석을 포함한 의원 총수(334석)의 과반에 못 미치는 163석에 그쳤을 것이지만 준연동형으로 의원 총수(300석)의 5분의 3이 넘는 183석을 얻었다. 미통당은 의석수로는 108석과 103석으로 비슷하지만 처지는 나빠졌다. 연동형 비례제를 기를 쓰고 막고 준연동형에서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가 압도적 제1당을 허용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연동형에서라면 36석과 27석을 얻었을 것이나 6석과 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연동형이 군소정당에 유리하지만, 준연동형에서 군소정당은 오히려 병립형 비례제에서만도 못한 결과를 얻었다. 병립형 비례제라면 지역구에서는 거대 양당을 찍고 정당투표에서는 소수당을 찍는 유권자가 나오지만 위성정당으로 인해 ‘분리 투표’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위성정당만 없으면 준연동형은 작동할 것인가.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초과의석은 지역구로만 나오고 미달의석은 채워주는 제도에서 위성정당을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준연동형에서는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이 없다. 법으로 금지해도 법을 우회한 위성정당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난 총선에서는 미통당이 앞장선 위성정당으로 민주당이 재미를 봤지만 언제든지 제1당이 바뀌어 낭패를 볼 수 있다.
연동형 비례제를 위해서는 초과의석이 필요하지만 국민은 국회 의석 증가에 거부감이 강하다. 그래서 ‘의원 대우와 권한 줄이기’부터 거론하지 않는 연동형 비례제 주장은 하나 마나 한 소리다. 현재 의원 총수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270명 정도를 의석 배분의 기준으로 삼고 지역구를 220석으로 줄여 비례대표의 여지를 80석 정도 둔다면 300석을 상한으로 한 연동형 비례제가 가능하다. 초과의석이 많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의원 총수가 줄어 국민에겐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방식은 거론하지도 않는다.
당장 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할 수 없다면 병립형 비례제로 돌아가야 한다. 다만 병립형 비례제도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권역별 중대선거구제의 활용이다. 각 정당이 권역별로 여러 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낸 뒤 후보들이 득표한 순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할당된 수만큼 당선시키는 것이다. 유권자는 명단은 결정하지 못하고 순위만 결정할 뿐이지만 그래도 정당은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병립형 비례제의 민주성을 점차 강화하는 바탕 위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 비례의석을 80석 정도로 확대한다면 비례제의 이상에 보다 근접한 연동형으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모색할 기회가 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