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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지만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 63
눈이 퀭... 해가 쨍쨍 중천에 떳다.
어젯밤에 한숨도 자지못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침대에 누워 기쁨이의 일기장을 뒤적뒤적거린다.
이런걸 내 맘대로 봐도 되나 싶기도 했는데, 라영이가 가지고 있던 거라면 기쁨이가 허락한거겠지?
아, 근데 내가 읽는건 허락받지 못한건가.
지금 거의 반 정도 읽었다. 밤새도록 읽었는데도 반이라니... 어찌나 자세히 길게 써놨는지.
일기를 이렇게 열심히 쓰는 애는 또 첨이다.
-드르르륵.
문자다.
[야머하는데]
내 서방 연후다.
지금 대답하면 분명히 놀자고 할텐데......
자는 척 할까.
아 노오린 또 나쁜생각하고 있네!
[응! 이제 막 일어났어!]
[크리스마스때 뭐할지 정하자]
[응?? 크리스마스??]
오늘이 12월 14일.. 크리스마스는 다다음주 목요일인데 벌써?
[너 작년에 기억안나냐 이브 전날 팬션 예약하려다가 실패했잖아. 꽉차서ㅡㅡ]
아맞다.
그때 스키장가기로 했는데 예약이 꽉 차버려서 가지 못했던 기억이......
어쩔수 없군, 일단 기쁨이의 일기장을 서랍 깊숙히 꾹꾹 숨겨두고 대충 씻고 옷을 걸친다음 연후네 집으로 향했다.
연후네 부모님께서는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계셨고 내가 들어오자 몹시 반갑게 맞아주었다.
"옆집에 사니까 좋구나~"
"저도 너무 좋아요!!"
"연후랑 놀고 있어, 아줌마가 케이크 만들어줄게!!"
"헉!! 오랜만에 만들어주시는 케이크먹는거예요?!"
"응, 가서 놀고있어~"
연후의 어머님은 제과제빵을 배운적이 있어 가끔 케이크를 만들어주기시도 했다.
어쨋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윗층으로 올라가 연후네 방으로 들어가니 컴퓨터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보자보자!"
"왔네."
"어디갈거야 이번엔?? 작년에 못갔던데??"
"응. 스키장."
"와!! 가고싶다!"
"너 못타잖아."
"치. 니가 가르쳐주면 되지."
그는 턱을 괴고는 모니터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작년에 봐두었던 그 팬션을 둘러보면서 내게 슬쩍 말을 꺼낸다.
"우리 둘만 가?"
"응?"
"둘만 가냐고."
"그럼 누구랑?"
"아냐."
기쁨이랑 라영이 얘긴가.
"기쁨이랑 라영이??"
"걔네는 알아서 놀겠지?"
"글쎄. 싸웠잖아."
"응."
"근데 연후야."
"어."
"그때 라영이가 너 껴안고 울었잖아."
"그게 껴안은거냐."
"아무튼... 나랑 기쁨이 간 뒤로 무슨얘기 했어."
"......... 그냥."
"뭔데. 뭔데그래."
"..............."
아무말 하지 않는다.
뭐야, 대체 무슨 얘기가 오갔던 거야!!
그의 뺨을 감싸 날 바라보게했다.
인상을 쓰며 내 손을 밀어내는 연후의 입에 쪽 입맞추고는 말했다.
"뭐야잉. 말해죠."
"............."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았다.
"불쌍하지않냐 유라영."
"엉?"
"왠지 좀 그래."
"아냐, 라영이는 마음만 먹으면 이기쁨같은애 트럭으로 가질 수 있댔어."
"풉."
웃는다.
웃으면서 내 머리를 헝크리더니......
"아가야, 그냥 우리 둘만 다녀오자."
"아가야는 무슨. 강원도?"
"어."
"재밌겠다!!"
"응."
연후도 씩 웃으면서 예약을 마무리했다.
비싸고 좋은 방이였다.
아주 경관도 좋을거야!!! 올해 눈 오는거 늦잠자느라 못봐서 한번도 못봤는데... 스키장에선 보겠당!! 이히히.
한참 얘기 하고 놀다가 연후네 어머님이 구워주신 케이크를 먹다가 밤 늦게야 집으로 향했다.
아 정말 집이 가까우니까 너무 좋구나! 밤 늦게까지 같이 있어두 되고!!
룰루랄라 대문쪽으로 향하는데 대문 앞 계단에 앉아있는 기쁨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악!"
하지만 그는 놀라지 않은 듯 날 보며 씩 웃는다.
엥.
"왜 놀라."
"여기 왜 숨어있어?"
"숨어있던거 아냐."
"그럼?"
"그냥 앉아 있었던거지. 으차."
자리에서 일어선다.
"신연후집 갔다왔냐."
"......응. 참 너 라영이랑 연락은 했어?"
"어, 만나고 왔어."
"그래. 라영이 괜찮아?"
"아니."
"아......"
"유라영 얘기말고 너랑 나랑 할 얘기 없냐."
"응?"
"왜 자꾸 걔 얘기만 꺼내."
"아... 그냥 난.... 그냥......"
뭐라고 할 얘기가 있냐.
고개를 숙이며 삐죽거리고 있는데 그의 손이 쓱 움직이더니 내 손을 잡는다.
깜짝 놀란 나는 손을 빼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날 대문 쪽으로 밀어넣는다.
대문에 박은 내 등이 아파죽겠다.
"뭐하는거야."
"뭐하겠냐."
"하지마."
"뭐 한데?"
"집에 가야지. 내일 학교 가야 되잖아."
"내일 학교가서 또 니옆에 앉아야되냐."
"........ 자리......바꿀까?"
"아니."
"니가 힘들면......"
"니가 없는게 더 힘들어."
어깨를 꽉 잡고 있던 손을 풀고는 한계단 내려간다.
그의 입가엔 씩 미소가 걸려있다.
"들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다가 내가 머뭇거리자 기쁨이네 집 쪽으로 쓱 사라져버렸다.
휴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어떻게 연후네 집이랑 우리집, 기쁨이집이 이렇게 가까울까... 괜히 불편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
.................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이게뭐야. 자리가 바뀌어져 있었다.
기쁨이의 책상은 저~ 앞쪽으로, 그리고 내 책상은 그대로.
내 짝은 다른여자아이였다.
기쁨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앞자리로 가서 앉았고 나만 서서 멀뚱멀뚱 라영이 쪽을 바라봤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라영이에게 문자가 왔다.
[이기쁨이가 앞으로간다고 쌤한테 말했데]
[그러쿠낭......]
반 분위기는 열공 분위기다.
내가 라영이와 떠들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기쁨이에게가서 장난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입을 꾹 다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책을 보다가... 핸드폰을 보다가를 반복했다.
방학은 29일.
그전에 크리스마스.
꺅, 크리스마스때 연후랑 단 둘이 스키장에에에에!!! 너~무좋아!!
"뭐가 그렇게 좋아?"
"꺅!!"
연후다.
연후가 우리반에!!
아무리 옆반이라도 방과후 말고는 우리반에 잘 찾아오지 않는데!
내가 소리를 지르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참, 내가 기쁨이랑 헤어지고 연후랑 다시 사귄다는게 학교 전체에 퍼져 난 예전보다 훨씬 더 나쁜년이 되어버렸다.
"소리좀 지르지마."
"웬일이야?"
"이기쁨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내 머리를 툭 치더니 기쁨이가 있는 앞자리로 향한다.
뭐야, 기쁨이한테 할얘기가 있다니. 것보다 우리반 여자애들의 눈빛이 장난이 아닌데?
역시 우리 연후 위험해!
연후의 무언가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기쁨이, 두 사람은 내 옆을 지나 복도로 나가 사라져버렸다.
뭐야? 대체 무슨일이야?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나 기쁨이의 자리로 향한다.
그리고는 짝꿍에게 물었다.
"연후가 뭐래?"
"나와봐. 라고 하던데."
"어? 그것뿐?"
"어."
"그렇구..헉!!!"
또다시 놀라 소리를 질러 버렸다.
내 옆에 조용히 엿듣고 있는 라영이 때문이였다.
내가 또 한번 소리를 지르자 라영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팔을 끌고 복도로 나갔다.
기쁨이와 연후는 복도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매점에 갔나.
둘만 가냐.
"뭐야? 무슨일이야??"
눈을 말똥거리며 라영이가 묻는다.
뭐야, 이 적극적인 자세는.
"몰라, 그냥 연후가 나와보라고 했다는 것 밖에는......"
"왜인지는 몰라?"
"응 나도 몰라."
"뭐지?"
"그러게......"
"얘네는어디 간거야?"
"글쎄. 없네."
"야! 너는 니 남편 관리도 못하냐?!"
갑자기 버럭 화내는 버럭유라영.
"어? 아... 저기 난......"
"아무튼. 맹해가지고는. 너 크리스마스때 신연후랑 재미보겠다?"
"어??? 아......"
"얼굴 빨개지는것 좀 봐. 어디가는데?"
"스키장!!!"
"오~"
라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연후.'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듯했다.
그러다가 곧 부러운 얼굴을 하며 내 어깨를 툭툭 치려는데 손을 멈추고는 재빨리 교실로 들어가버린다.
뭐야. 갑자기.
"자습안하고 나와서 뭐해."
연후의 목소리!!!!!!!!!!
깜짝 놀라서 자빠질뻔 한 걸 겨우겨우 균형잡았다.
기쁨이는 연후의 뒤에서 무표정하게 날 보다가 휙, 교실로 들어가버렸다.
연후도 자기네 교실로 가려는 걸 붙잡아서 물었다.
"무슨얘기 했는데??"
"담배피고왔어."
"헉! 너 아직도 안 끊었어?!"
"바보야. 안폈어. 냄새가 없잖아."
"아, 그.. 그래. 아무튼 무슨 얘기 했어."
"그냥 별얘기 안했어. 너랑 상관없거든. 공부해라. 오빠랑 같은 대학 가려면."
"악! 궁금해잉!"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춘다.
그냥 쪽- 하고 멀어질줄 알았는데 이런 공개된 복도에서 진한 키스를 하다니... 이러다가 선생님이 오시기라도 하며언!!
막 정신이 혼미해 졌을때 입술을 떼버리는 연후.
"공부해라."
"아....."
그러고는 쓱 들어가버리네.
치.....
입을 삐죽이고는 발을 탕탕 몇번 구르고 교실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교실 분위기는 싸아-해졌다.
역시... 지금 나 전따야.
나랑 놀아주는건 연후랑 라영이랑 기쁨이밖에 없어.
지금은... 기쁨이랑 라영이도 위태위태 하지만......
집에가서 읽다 만 기쁨이의 일기장을 펼쳤다.
나 좀 변태인가...... 사실 이 일기장을 보면서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
다른 마음으로 한 행동이 기쁨이에게는 이렇게 받아들여 졌구나... 그런것들이 많았다.
보면서 사실 엉엉 울기도 했고 피식 웃기도 했고, 추억들이 사라락, 스쳐지나갔다.
몇개월 안되는 시간이였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재밌었는데.
일기장을 다 읽는데는 일주일이 걸렸다.
반지사건에서 부터 기쁨이와 헤어진 이후...
산 역사다 정말.
이렇게 열심히 쓰다니.
"뭐하는데."
"악!!!!!!!!!!!"
엄~~청 오랜만에보는 오진오빠!!
난 재빨리 일기장을 이불 밑에 숨기고는 인사를 했다.
"어... 어떻게 들어왔어??"
"어떻게 들어오긴. 근데 뭘 그렇게 숨기냐."
"그동안 어딨었는데??"
빨리 화제를 돌려야해.
"놀러갔다왔지."
"언니랑?"
"어. 넌 기쁨이랑 잘 지내고 있냐?"
"어???아, 아니. 아 빨리 나가! 왜 멋대로 들어오고 그래!"
"오빠가 동생방에 못 들어오냐. 오랜만에 봤는데 반갑단 소리도 안하고."
섭섭한 표정이다.
그래, 너무너무너무 오랫만이라 반갑긴한데.
깜짝 놀랐잖아!
"반가워!"
"옆구리 찔러 절 받기네. 알았다. 나간다."
"응!!!"
쿵,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오진오빠.
놀래라 정말 !!!
-드르륵!!
갑작스런 진동탓에 한번 더 놀라버렸다.
요즘에 왜이렇게 놀라는 일이 많아! 무슨 내가 잘못 저지른 거라도 있나.
[노오린뭐해]
연후다.
그러고보니 다음주 수요일에 출발이구나!!
꺅!! 넘 재밌겟다.
단 둘이가는 여행. 대체 얼마만이야?!
[쟈기생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ㅋㅋㅋ'로 문자하나를 다 채운 연후.
[ㅡㅡ모양 ㅋㅋ]
[못생겨서ㅋㅋ 준비다되가냐]
[강원도 갈거?]
[어~]
[엉! 준비할게 뭐있나!!! ㅋㅋㅋ]
[ㅡㅡ 추울테니까 옷 준비 잘해]
[응 알써!!]
[내일 월요일이냐]
[응!!]
[ㅋㅋ 보고싶다]
[나두!!! 지금 볼까??응??]
[됐어 ㅡㅡ 낼 보자. 잔다]
뭐야.
답장안할거야.
침대에 누워서 딴 건 다 잊어버리고 크리스마스만을 떠올렸다.
아, 떨려.
정말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이 도무지 오지 않았다.
어쩜 좋아!!
하지만 또 그러다가 기쁨이 생각...
급 우울.
요즘에 나 조울증인가봐...
연후생각하면 기쁜데, 기쁨이 생각하면 슬퍼......
내가 만든 결관데...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하면 기쁨이에게 더이상 상처주지 않고 끝낼수 있을까.
첫댓글 아...........난 아무리 그래도 연후가 좋다ㅠㅠㅠ
연후랑잘되니깐좋아요ㅠㅠㅠㅠㅠ기쁨이랑라영이가잘됬으면좋겠는데...휴빨리다음편이요!!!!!ㅠㅠㅠㅠ
아~ 아무래도.... 연후가 제일인거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