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심과 발심(發心)
/ 종범 스님
불교의 종교심은 '신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발적인 마음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으킬 발(發), 마음 심(心) 자, 발심(發心)이라 합니다.
'발심'이라고 하는 것은 자발적인 종교심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확실히 인식하고 확실히 그렇게 결정해서
다른 사람이 아무리 하지말라 하더라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그러한 마음가짐과
행동가짐이 바로 '발심의 생활관'입니다.
우리는 발심을 해야 합니다.
인생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고도의 자발적 종교심으로서 '발심의 단계'를
[기신론(起信論)]이라는 경전에서는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곧을 직심(直心),
둘째 깊을 심심(深心),
셋째 넓을 광대심(廣大心)을 일으키는 것이
'발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직심과 심심과 광대심은
끝없는 종교심이고 자발적인 신앙심입니다.
'직심'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우주와 인간을 똑바로 보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순간적인 것이 있는 동시에
또 영원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헛된 것이 있는 동시에 참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헛된 것과 참된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에 직심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게 똑바로 보는 것입니다.
헛된 것을 헛되게 보고, 참된 것을 참되게 보아서
분명히 내가 가야 할 것과 가지 않아야 할 것,
해야 할 내용과 하지 않아야 할 내용을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분명히 구분하고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직심인 것입니다.
다음에는 심심입니다.
'심심'이라고 하는 것은 깊은 마음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감정은 의존심이 많습니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스승에게 의존하고,
선배에게 의존하고, 후배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서 스스로 베풀려고 하는 감정보다는
다른사람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존심 때문에 항상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마음에 의해서
늘 불만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불만 때문에 다른사람이 베풀어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잘못하면 은혜를 원수로
되돌려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때문에 종교심이라는 것은 깊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하나를 깊이 보고, 분명하게 보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이해할 줄 알아서,
원망하고 분노하는 데 앞서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깊은 마음이
바로 불교의 관세음보살의 마음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인간을 다 동정하고
모든 인간의 잘못을 다 용서해서 하나의 자비로
승화시키는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다음에는 광대심입니다.
광대한 마음이란 오늘 이순간만을 위해서
무엇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순간이지만,
이 지구는 영원하고 우주는 영원한 것입니다.
(보다 크고 넓은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는 순간 속에서 죽어간다 하더라도
내가 죽어도 지구는 돌 것이요, 태양은 밝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
어떠한 광대한 뜻과 지표가 있어서
여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광대심'이라 하는 것은 보현보살의 마음입니다.
보현보살은 자기 한 사람의 영광과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사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고통을 다 덜어주기 위해서 사시고,
모든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분입니다.
이리하여 불교에서는 문수보살이라는 말이 있고,
관세음보살, 보현보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수보살님의 마음은
바로 현상과 실상을 똑바로 보는 직심이고,
관세음보살은 심심이요,
보현보살은 광대심입니다.
이러한 종교심을 가지고 생활에 임하게 될 때,
불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보살이라고 합니다.
인생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해서 여기에서
어떤 철학과 신조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옛조상들은 일찌기,
"생미백년(生未百年)이요,
사후천년(死後千年)'이라고 해서,
살아서는 백년 살기가 어렵지만, 죽어서는 천 년동안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듣지 않는 생활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말씀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불교에서는 이 원대한 이상 속에서
현실의 모든 고통을 헤쳐나가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보(菩)는 보리(Bhhodhi)의 약어로서
진리를 추구한다는 말이요,
살(薩)은 살타(Sattva)의 줄인 말로
현실을 헤쳐나간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현실 가운데에서도 이상이 있고
이상 속에서도 현실을 개척하고 창조할 수 있는
그러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인간, 개척적 인간, 미래를 향한
광대심을 가진 인간을 불교에서는 보살이라 합니다.
이 보살의 마음에 의해서 하나하나를
잘 창조적으로 해나가는 것을 자비(慈悲)라고 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종범 스님
- 그 림 / [수월관음보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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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합장)
부처님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