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여:이 글은 한겨레신문 12월 10일(월)자 30쪽에 있는 고정 칼럼난인 [유레카]에 김이택님이 "정치검사"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좋은 글이라 여겨 이곳에 그대로 옮겨 놓았읍니다.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김이택의 [유레카]
정치검사
김이택(한겨레신문 논설위원)
1986년 11월 29일 법무부에 희한한 인사발령이 하나 났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란 정체불명의 검사장급 직제가 돌연 신설됐는데 인사 대상자는 차관급 자리를 차지해놓고는 출근은 안기부로 했다. 그가 바로 5·6공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검사. 소속만 검찰이었지 청와대와 안기부에 파견되는 형식으로 내내 권력 핵심부에서 실력자로 군림했다.
박정희 정권 이래 군사정권에선 검찰 자체가 정치권력에 예속된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기관에 불려간 검사들은 충실한 법률기술자로 독재정권에 부역했다. 박 정권 때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고 10·26 직전까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지내며 보안사와 각을 세웠던 김기춘 검사가 대표적이다. 박철언 검사를 따라 안기부와 청와대에 들어간 강재섭 검사를 비롯해 정형근·김영일 검사 등, 이들 중엔 나중에 직접 정치에 뛰어든 경우가 많았다. 민정당이 ‘육법당’으로 불릴 정도로 5·6공에 참여한 법률가들이 많았는데, 판사 출신으로 안기부 차장을 지낸 손진곤씨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검사 출신이었다.
군사정권에 직접 참여한 검사들이 원조 ‘정치검사’였다면 민주화 이후 검찰이 막강해지자 수사를 통해 권력에 아부하는 새 ‘정치검사’ 유형이 등장했다. 권력엔 솜방망이 수사, 야당엔 표적수사를 해주면 권력은 인사 특혜로 보답하는 ‘기브앤테이크’(주고받기)가 철저히 지켜졌다.
참여연대가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권을 남용한 14개 사건을 선정하고, 이에 책임이 있는 검사장급 이상 10명을 ‘정치검사’라며 퇴진을 요구했다. 선정 대상을 놓고 검찰 내부에서 논란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건 처리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있었는지 여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깨끗이 물러나는 게 조직을 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