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보화(普化)스님
보화(普化)스님은
반산 보적(盤山寶積) 선사의 제자로 항상 미친 사람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그당시 그런 기행을 하는
스님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오직 임제(臨濟)스님만이 심중을
알고 흉허물없이 잘 지냈습니다.
하루는 진주(鎭州)의 저자거리에
나와서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나에게 장삼 한 벌을 해달라."하며
졸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화스님에게 장삼을 지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스님은"이것은 내가 입을 옷이 아니다."하며 받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더욱 이상히 여기며 미친 중이라고
수군댔습니다.
어느 날 임제스님이 그 소문을 듣고는 장삼 대신에
관(棺)을 하나 보내니, 보화스님이 웃으며 "임제가 내 마음을
안다."하고는 그 관을 짊어지고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내일
동문 밖에서 떠나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동문 밖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는데 보화스님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오늘
여기서 죽지 않겠다. 내일 서문 밖에서 죽겠다."고 하며 관을 메고
떠나버리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욕을 하고는 흩어졌습니다.
다음 날 서문 밖에 또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보화스님은 "오늘
여기서 죽지 않고 내일 남문 밖에서 죽겠다."고 하며, 또
관을 메고 떠나버리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였습니다.
다음
날 남문 밖에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는데, 보화스님은 "오늘
여기서 죽지않고 내일 북문 밖에서 죽겠다."고 하며 또 관을
메고 떠나버리니,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미친
중이 거짓말만 하여 사람을 속인다고 삿대질을 하며 분위기가
살벌하였습니다.
다음 날 북문 밖에는 과연 보화스님이 관을
메고 나타났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화스님은 관 위에
묵묵히 앉아 있는데 마침 한 길손이 지나가므로 그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이 관 안에 들어가 눕거든 관 뚜껑을 닫고 못질을 해달라."고 하고는,
그 관 속에 들어가 누우며 관 뚜껑을 닫으므로 그 길손이
못질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길손이 성중에 들어가 그 이야기를
하니 진주성 사람들이 놀래며 북문 밖으로 보화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못질한 관 뚜껑을 열고보니 그 속에 있어야
할 보화스님은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때 마침 공중에서 은은히 요령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은
그 요령 소리가 나는먼 하늘을 바라보며 수없이 절을 하며 보화스님의
법력을 알아보지 못한데에 대해 통탄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보화스님이 보인 전신탈거(全身脫去)의 이적입니다.
이
사실은 선종 어록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임제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2.
왕가(王嘉)
왕가는
후진(後秦) 때 숨어사는 사람으로 유명한 도안(道安)스님과
친하였습니다. 도안스님이 돌아가실 때가 되어 왕가가 찾아가니
도안스님이 말하였습니다.
"나와 같이 가지않으려는가?"
왕가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아직 빚이 좀 있어서 빚을 갚고
가겠습니다."
그 뒤에 요장이 장안(長安)을 빼앗을 때 왕가는
일부러 성 안에 있었는데, 요장이 물었습니다.
"내가 곧
천하를 얻겠는가?"
"조금 얻겠다."
요장이
그말을 듣고 왕가를 죽여버렸으니 왕가가 말한 빚이란 바로
이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요장의 아들 요흥(姚興)이
천하를 얻었는데 요흥의 자(字)가 자략이었습니다. 그러니 '조금
얻겠다'란 말은 자략이가 요장을 죽이고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왕가가 죽던 날, 어떤 사람이 농상(壟上)에서 왕가를
만나니, 왕가가 자기를 죽인 요장에게 편지를 보내자 요장은
그 편지를 받아보고 크게 놀래며 탄복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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