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쌀국수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북부 하노이에서 발달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옛 하노이 쌀국수 장수. 필자 제공
‘포(Pho)’ 이름으로 알려져…佛·中 서로 연고권 주장
남북 분단으로 월남에 전파, 패전으로 전 세계에 퍼져
베트남의 호찌민 시에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 포 빈(Pho Binh)이라는 이름의 쌀국수 전문점이다. 베트남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등 미국 유력 언론이 소개한 덕분이다.
이곳은 쌀국수도 맛있지만 음식점의 역사 역시 흥미롭다. 포 빈에서 파는 쌀국수의 별명은 ‘평화의 쌀국수’, 하지만 이곳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베트콩 아지트였다.
과거 이 레스토랑을 자주 찾았던 손님들은 사이공(현 호찌민)에 주둔 중이던 미군과 남부 베트남의 군인, 경찰 간부들이었다. 이들이 아래층에서 쌀국수를 맛있게 먹는 사이 F100이라는 조직명을 가진 베트콩 핵심 조직원들은 위층 골방에 모여 작전을 짜고 북부 베트남에서 들여온 무기를 숨겼다. 1968년 베트콩의 사이공 지역 구정 대공세도 바로 포 빈 레스토랑에서 기획됐다.
지금 포 빈은 세계적인 유명 레스토랑이 됐지만, 그 배후에는 이렇게 베트남 전쟁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나라 사람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베트남 쌀국수 자체도 역사적으로 애증이 얽혀 있는 음식이다.
포(Pho)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베트남 쌀국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분명한 베트남 음식이다. 하지만 엉뚱하게 프랑스와 중국에서 연고권을 주장한다. 두 나라 모두 한때 베트남을 지배했던 나라로 자국의 영향을 받아서 지금의 베트남 쌀국수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옛날부터 다양한 국수가 발달했다. 쌀로 만든 국수인 반(bahn)과 분(bun)이 있고, 밀가루로 만든 국수인 미(mi)가 있으며, 이들 국수를 어떤 재료로 조리하느냐에 따라 포·훗티유를 비롯한 다양한 국수로 나뉜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 먹는 포는 쇠고기 육수로 끓인 쌀국수에 우육을 얹어서 먹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베트남이 식민지였을 때 프랑스 요리의 영향을 받아 포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원래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 벼농사를 짓는 베트남에서 소는 생산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잡아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로 돼지고기나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185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베트남을 침공했고 이듬해인 1884년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지배자였던 프랑스 사람들은 베트남 하인에게 쇠고기로 쌀국수를 만들도록 요구했다.
20세기 초부터 쇠고기를 재료로 쓴 베트남 쌀국수 포가 발달한 배경인데 포라는 이름 자체도 고기와 채소에 갖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프랑스식 수프 포토프(pot au feu)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또 다른 주장을 편다. 베트남과 인접한 중국 광동과 광서성에서 발달한 쇠고기 국수, 우육면(牛肉麵)이 포의 뿌리라는 것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중국의 화교들이 베트남 수도인 하노이에서 일했는데 이들이 프랑스 사람들이 먹지 않는 쇠고기 부위를 이용, 우육면을 만들어 어깨에 메고 다니며 팔았다. 이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중국 광동 사투리로 ‘고기 국수’라는 뜻인 “육판(肉粉)”을 외치고 다녔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이들을 모방해 쇠고기 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베트남어로 “눅판(nhuc phan)”이라고 외치고 다닌 것이 베트남 쌀국수 포의 기원이 됐다는 것이다.
베트남 쌀국수가 프랑스의 영향인지 혹은 중국의 영향인지 아니면 순수 베트남 음식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베트남 왕조 시절 수도 후에에서 발달한 쌀국수 중에는 쇠고기가 들어간 것도 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를 겪다 보니 전통 음식인 쌀국수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러워졌지만 분명한 것은 쌀국수 포가 베트남 전체로 또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베트남 전쟁과 월남의 패전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쇠고기 육수에 우육을 얹은 쌀국수 포는 북부 하노이에서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자 북부 사람들이 월남해 사이공에 정착하면서 북쪽의 쌀국수 포를 남쪽에 소개했다.
질박한 북쪽 국수에 쇠고기와 닭고기를 얹고 갖가지 향신료를 듬뿍 첨가하면서 남부 베트남에서 포가 유행했다. 거리에 노점상이 넘쳤고 베트남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사가 됐다.
1975년 4월 30일, 월맹군 탱크가 월남 대통령궁에 진입하면서 베트남전이 끝났다. 그리고 수많은 남부 베트남 사람들이 쪽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하면서 보트 피플이 생겼다.
미국·프랑스·캐나다·호주 등 해외로 도피한 베트남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간편한 베트남 쌀국수를 파는 음식점을 열었다. 지금 세계적으로 베트남 쌀국수 포가 퍼지게 된 배경이다.
무심코 먹는 베트남 쌀국수에는 식민지배와 패전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내일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치욕스러운 국치일(國恥日)이기에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살펴본 베트남 쌀국수의 역사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