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어 다시 오는 봄이 유난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의 자기영토 주장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으로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마지막 공휴일이 된 식목일에는 마치 그 마지막을 기억시키려는 듯 강원도 양양과 고성에서의 거센 산불이 낙산사마저 태워버리고 많은 이재민을 냈다. 이렇듯 안팎으로 시끄러워도 요 며칠사이에 예쁜 봄꽃들은 곳곳에서 활짝 피어 쓸쓸한 마음을 어느 정도 밝게 해주고 있다. 세상 일과는 관계없이 우주의 섭리는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근래에 높은 이혼율과 독신자의 증가로 다소 의식이 바뀌었지만, 변함없는 섭리 중의 하나가 결혼이다. 대구의 건축물을 둘러본 외지인들의 공통된 의견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예식장과 사우나 그리고 모텔이 잘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대구 건축인들도 거기에 동의한다. 이제 곧 결혼시즌이다.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꽃일까?
#예식장은 여성성을 담는 건축이다
예식장은 아시아 몇 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건축 유형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교회나 호텔 연회장을 이용하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일부 교회는 예식을 위해서만 사용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최근 호텔 부속 건물로 교회를 짓는 경우가 많다. 호텔에서 많은 축하객을 모시고 결혼식을 한 후에 다시 교회에서 선택된 소수만 모여 한 번 더 식을 올린다. 작지만 아주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예식이 주는 경건함과 엄숙함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 시대의 상황이 그저 인생에서 치르는 하나의 의식절차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모든 이용자는 예식장 건축이 기본적으로 경건하고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되길 원할 것이다. 예식장을 설계하는 모든 건축가는 현실 조건 속에서 최대한 그런 공간 개념을 추구하려고 노력할 것 같다. 필자 역시 글로리아웨딩(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을 설계하면서 그러한 면에 많은 고심을 했다.
설계 전에 이미 결정된 건물 이름 '글로리아'란 영광, 환희의 뜻을 가지고 있다. 동·서의 양측 홀은 각각 남과 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그 둘을 하나로 아름답게 묶어 한 덩어리로 일체화시키는 '집'이란 개념은 둘 사이에 로비공간을 두면서 하나의 타원으로 에워싸는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건물 최상층의 유리면과 덧붙인 유리날개 그리고 지붕의 난간마저 유리를 사용하여 밝은 햇빛에 반짝이는 왕관처럼 표현하였다. 그 타원왕관이 여성적이라면 그 위에 부착된 황금색으로 된 유리 격자창은 반지에 대한 남성적 은유의 요소이다. 결국 그 둘은 이 건물이 남과 여의 아름다운 결합을 위한 장임을 강조하고 있는 사인 같은 것이다.
외벽은 기능에 맞도록 하고 예식 홀은 매끈한 붉은색 화강석의 벽체로 하였으며 그 사이의 로비는 투명한 유리로 하여 두 가지 재료간의 대비를 강조하였다. 전면 진입부에서 바로 보이는 1·2층을 한 층처럼 보이게 한 통유리 면은 한 장 한 장이 운반 가능한 최대 크기로 또 다른 완만한 곡면을 만들고 있다. 이 건물에는 내·외부에 많은 곡선과 곡면이 사용된다. 근본적으로 필자는 결혼이란 행위의 형태적 표현을 여성적으로 생각했다. 우리 삶의 모체는 여성, 즉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던가. 이러한 여성적인 표현은 공간에서도 따스함과 아늑함 혹은 안온함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과연 외관에서 필자가 의도한 개념을 일반인들이 얼마나 알아챌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미술품을 보는 감상자가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듯이 건축 역시 그러하므로.
#좋은 풍경 속에서 건축은 더 아름다워 보인다
예식장은 기능상 서비스를 위한 상업용 건축이다. 상업용 건축은 당연히 경제성이 우선이지만 고급화·차별화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른 말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중요하게 된 것이다. 공간의 분위기는 궁극적으로 빛의 양, 방향, 세기 등의 조절로 만들어진다. 고딕 성당이나 교회 건축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글로리아웨딩에서는 공간에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도 건물 양쪽의 선큰 공간(지하공간에 바로 자연 빛이 들어오도록 대체로 지하 앞부분에 만든 외부공간)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온다. 1층은 사무실과 커피숍이 있지만 최대한 개방감을 부여하여 하나의 큰 로비개념으로 계획하였다. 2층부터 4층까지 각 층에는 두 개의 예식 홀이 있으며 그 두 공간 사이에 있는 로비의 전면 남측에 전 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면서 내부로는 축복을 나누는 만남의 장을, 외부로는 햇살 가득한 외부공간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즉 내·외부를 함께 볼 수 있는 적극적인 이동공간인 것이다. 이 동선공간의 난간은 모두 곡면유리로 되어 있고 수직적으로도 트여 있어 상하좌우 모든 곳으로 연결되는 축하 퍼레이드를 연출하는 중심공간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의 양 끝엔 원형으로 된 주계단실과 두 대의 원형 전망용 엘리베이터가 위치한다. 결국 불특정 다수의 원활한 수송을 위한 동선 공간이 남쪽에 위치하고 그 반대편인 북측에는 서비스를 위한 비상계단과 화장실 그리고 신부 전용의 누드 엘리베이터(벽을 유리로 만든 전망용 엘리베이터), 그리고 신부대기실과 폐백실로 구성된 서비스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최상층인 5층에는 450여명을 동시에 수용하는, 전벽이 유리로 된 대연회장이 있다. 그리고 옥상에는 야외 결혼식을 위한 조경공간과 관리사무 공간을 적절히 배치, 건물을 이용하는 입장에서 기능성과 시각성을 최대한 배려하여 효율적으로 디자인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주변 환경이 열악하여-공장과 대부분 방치된 대지상태-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한때 유행했던 달력에서 보는 초원 위에 있는 통나무집 같은 아름다움도 주변풍경이 뛰어난 배경으로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풍경이 없으면 훌륭한 건축도 없다. 비록 혼잡한 도시 속에서도 돋보이는 건물이 있다면 그것은 나름의 맛을 가진 도시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건물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되는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건물의 전면 주초석에 새겨진 설계자 이름이 가끔씩 부끄러울 때가 있다. 아마 모든 건축가는 '풍경마저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고뇌할 것이다. 그것이 건축의 힘든 부분임과 동시에 보람이다.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