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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6: 1 디베라의 갈릴리 - 요 6: 6 빌립을 시험하고자
제 6 장 : 생명의 떡과 말씀
1. 오천명을 먹이심 ( 6: 1-15, 마 14: 13-21. 막 6: 30-44. 눅 9: 10-17 )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1-15절까지는 유월절 무렵에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에 차고 남았더라는 이적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적을 행하므로 6: 14에 그 사람들이 예수가 표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진짜로 이 세상에 오기로 한 선지자라고 판단을 했다.
이 말은 신 18: 15에 근거한 말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약속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유대 종말론에 의하면 메시야가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그 당시 메시야 사상은 여러가지로 복잡하다. ) 모세가 행한 출애굽의 구원을 되풀이 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종말의 구원을 제 2의 출애굽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민족의 해방, 즉 모든 이방인들을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의 주권을 되찾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풍성한 자유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제 2의 출애굽을 이룰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종말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메시야는 모세가 행하였던 모든 이적을 되풀이 할 것으로 보았다. 애굽의 이적과 광야의 이적을 되풀이 하여 만나를 먹이고 또 시내 산에서의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나타내실 것으로 믿었다.
요 6: 1 디베라의 갈릴리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
1] 그 후에 예수께서
‘그 후에’라는 말(메타 타우타)[이 일들 후에]은 시간이 상당히 지났음을 나타낸다.
5: 1의 ‘유대인의 명절’을 유월절로 본다면, 1년의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을 말한다.
2]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란 이름은, 주님 당시의 이름이 아니고 좀 후대의 것이었으나, 저자가 이방 교회의 식별을 위하여 "갈릴리 바다"란 말에 첨부한 것이다.
디베랴 바다라고 해야 당시 이방 사람들이 잘 알았다. 갈릴리 바다는 디베랴 바다 또는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불리었다.
* 눅 5: 1 -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그 바다는 남북으로 약 20킬로미터, 동서로는 가장 먼 곳이 약 12킬로미터이다.
3] 건너편으로 가시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 9: 10에는,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 벳새다 동네로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 눅 9: 10 -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벳새다는 갈릴리 바다 북동쪽 해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요 6: 2 큰 무리가 따르니 -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
큰 무리가 그를 따랐다.
1] 큰 무리가 따르니
베데스다의 연못에서 병 고침을 보고 들은 무리들은 병자가 아무런 댓가없이 치료받음을 보고 그들은 기적을 맛보려고 무리지어 예수를 다르는 것 같다.
2]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표적"이란 말(* 은, 예수님의 이적으로서 메시야이신 사실을 보여주는 표란 뜻이다.
이 표적들은,
* 마 14: 14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 막 1: 34, 40-42 –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 막 2: 11-12 –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 막 3: 1-5 –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 막 6: 5 -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 눅 9: 11 -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 요 2: 11 -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러나 대중은 예수님의 이적의 표적 성격을 잘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호기심과 육적 요구를 위하여 예수님을 좇았던 것이다. 26절 참조,
그들은 아직 그의 말씀이 이적보다 귀한 줄 몰랐다. 그것은 그가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9: 11은 예수께서 그를 따라온 무리를 영접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병 고칠 자들을 고치셨다고 기록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사건들에 대하여 많이 기록하지 않고 몇 가지만 자세하게 기록했으나, 본문이 암시하는 바대로, 예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 마 8: 16 -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 마 9: 35 -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 요 20: 30 -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 요 21: 25 -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6: 3 산에 오르사 -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1]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여기 말한 "산"(*)은 언덕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갈릴리 바다의 해변 언덕을 가리킨다.
유대의 랍비들은 보통으로 높은 데 앉아서 그 제자들을 가르쳐 주었다.
2]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제자들"은 열 두 제자를 가리킨다.
요 6: 4 유대인의 명절 -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1]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에 대하여는 2: 13의 해석을 참조하라.
여기 "유월절"이란 말(*)이 모든 사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교부들의 증거는, 이것이 없는 편을 지지한다.
홀트(Hort)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있는 것이 연대적으로도 자연스럽고 저자의 신학적 견지에서도 자연스럽다(Schlatter, Barrett).
이 유월절은 예수님의 전도사역 기간 중에 맞으신 세 번째 유월절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셨던 것 같고, 그 이유는 전후 문맥에서 볼 수 있듯이,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 요 7: 1 -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요 6: 5 오는 것을 보시고 -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
예수께서는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셨지만,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 떡에 대해 말씀하셨다.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눈을 드시고 큰 무리를 보신 것은, 그들을 위하여 무슨 좋은 일을 하시려고 그리하신 것이다.
2]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빌립(Philip)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름을 받은 [빌립]("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은 영적으로 우둔하여 실수도 많이 하였으나,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늘나라의 기초석이 된 믿음의 선진이다.
갈릴리 베세다 마을에서 안드레와 함께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키우고 있었다.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진리를 찾던 그는 마침 베세다에 오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복된 인생이 되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의 넘치는 기쁨으로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주님께 인도하는 열심을 낳기도 했다.
예수님으로부터 최초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빌립의 앞길을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의 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지 못한 그의 발걸음은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영적으로 무딘 빌립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많은 가르침을 받고 기적을 목격하였으나 믿음과 인간의 합리적인 생각 사이에서 혼란이 계속되었다.
빌립의 마음에는 그 어떤 믿음의 열매도 결실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빌립의 충심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그에게 시험하시는 질문을 하셨다.
갈릴리 호숫가에 모여 있는 수많은 무리의 음식물을 구할 방법을 물으시는 예수님께 빌립은 인간의 방법 밖에는 제의할 것이 없었다. 전능자이신 주님의 곁에서 지내면서도 빌립은 그의 스승을 올바로 알고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머물러 있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신 문제는 그의 신앙을 시험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빌립은 신앙적으로 이 문제를 취급하지 못하였다. 그의 당한 것은 모세가 주린 백성을 앞에 두고 당한 난제와 같다.
* 민 11: 13, 22 –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엘리사의 종이 당한 것과도 같다.
* 왕하 4: 42-44 –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요 6: 6 빌립을 시험하고자 -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
1]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이 때에 자기의 권능으로 군중을 먹이실 대책을 벌써 생각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육신을 먹이는 문제보다 영적 문제, 곧, 제자들의 신앙 교육을 더욱 중히 여기셨다.
2]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그는 빌립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에게 문제를 주셨다. 그것은, 빌립이 그 군중의 가련한 정형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는 여부를 아시려는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비범한 방법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 수 있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신앙 여부를 알아보시려는 시험이었다(Grosheide).
이와 같은 시험은 신앙을 배양하는 데 유익하다. 시험(Test, Temptation)은 성도가 믿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혹은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특별한 사람, 환경, 질병 등이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시험하다’ 혹은 ‘유혹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나사’(nasah)이며, 이 단어에서 ‘시험’이라는 명사 ‘맛사’(massah)가 나왔다. 이 명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했던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며, 병기를 시험한 경우에도 사용되었다.
* 출 17: 7 -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 신 6: 16 –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 신 9: 22 –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 신 33: 8 -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 시 95: 8-9 –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 삼상 17: 39 -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알아보시려고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심으로써 그를 시험하시거나 히스기야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시려고 바벨론의 사신을 그에게 보내 시험하셨다.
* 창 22: 1-2 –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대하 32: 31 –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시험하는 것도 있다.
* 왕상 10: 1 -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 대하 9: 1 –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질문으로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매우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 단 1: 12, 14 –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주기도문의 '시험(Temptation)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의' 시험'은 원어 '페이라스모스'로 '유혹'(temptation, NIV)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
* 눅 11: 4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는 성도의 신앙을 꺾으려는 외적인 시련과 죄를 범할 수 있는 내적 유혹을 함축적으로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시험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중요한 것은 그 시험을 견디어내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로 시험에 들게하는 주체가 하나님인 것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나 약 1: 1-15에 의하면 하나님은 결코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 약 1: 2-4, 12-15 –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때로는 그분의 선한 뜻을 펴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기도 하신다.
* 눅 4: 2 -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 욥 1: 12 -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본문은 성도가 시험을 당할 때 굴복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이다. 이것은 마 6: 13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 신 6: 16 –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에 바칠 재산의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에게 거짓말한 것은 바로 주의 영을 시험하는 일이었으며 그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 행 5: 9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초대교회에서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율법(할례)을 강요하여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운 것도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드온이 행한 양털 시험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 삿 6: 17 -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이러한 일은 모세가 부름을 받았을 때에도 확인된다.
* 출 4: 3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고전 10: 13)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공생애의 사역을 앞두고 사탄이 시험하였다.
* 마 4: 3 -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궁극적으로 십자가 또한 시험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오히려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 18)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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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