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품 한우세트를 기어이 뜯고 말았습니다. 이유야 많지만 부패할까봐
비닐을 열어보았으니 너무 혼내지 마시라. 일등급 한우 한 덩어리를 뚝
잘라 파 무침에 둘둘 말아 먹었어요. 비록 혼 술이긴 하지만 안성한우
맛이 죽여줍니다. 거봉, 단감, 꼬막, 토스트, 꼬마김밥까지 장봐온 음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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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을 먹어치우고 초저녁에 잠을 청했고 눈을 떠보니 아직 해뜨기 전입니다.
가만있자 연휴지. 뭘 해야 슬프지 않을까? 응접실 테이블에 설거지가
한가득, 싱크대에 또 한가득 있었는데 그냥 소피만 보고 들어 와버렸어요.
날이 밝아 오면서 인력사무소에서 들려오는 노동자들이 목소리가 동변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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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느끼게 합니다. 서울을 지금갈까말까 망설이면서 고속도로 상황을 알아
봤는데 소통이 원활합니다. 작년에도 혼자서 추석을 샜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덜 외로운 것 같습니다. 어제 본 ‘안시성‘후기를 쓰고서 인 서울 해야겠습니다.
한국인들의 역대 지도자 1위는 세종대왕과 불멸의 이순신장군이라는데 이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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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그러나 통사가 없어서 그렇지 사실 규모면에서는 을지문덕이나
양 만춘 같은 장군들은 이순신을 능가할지 모릅니다. 인트로에서 수나라도 꺾지
못한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전쟁의 신 이세민이 나선 것으로 설명합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30만의 별동대를 평양으로 진격시켜 정벌하고 자신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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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대와 함께 양쪽에서 안시성에 압력을 가할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본 소감은 사극의 스케일이 할리우드 수준으로 커졌다는 것을
칭찬하고 싶고, 영화란 감동의 최고조를 위해 발단-전개-절정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디테일 면에서 강약조절이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전투만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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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는 느낌입니다. 당태종을 연기한 박 성웅이 일등, 양만춘을 연기한 조 인성을
2등을 주겠습니다. 무녀와 양만춘의 러브라인을 기대했었는데 파소와 백화로
설정한 것은 양만춘의 존재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사극 중에 ‘물괴’는
이미 개봉관에서 내려졌고 ‘명당‘과 ‘안시성’이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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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조선시대보다 삼국시대를 다루는 작품을 응원할 것입니다.
혹자는 조인성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는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열한 거리’에서 보여주었던 싸움꾼 조인성도 있고 ‘내 이름은 튀니티‘같은 서부
영화에서도 진짜 고수들은 유머와 위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성대’나 ‘토성’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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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은 글로만 읽었는데 시믈레이션을 보니까 실감도 나고 공부도 되었습니다.
영화 안시성과 관련된 논란들을 되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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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명 소품이나 등장인물(여군, 맥궁이 아닌 석궁 종류의 무기 등)에서 고증 논란은
피해갈 수 없지만 토성에 대한 설명, 철개마무사대, 당나라 군사가 패퇴하여 돌아
가는 과정 등에서는 충분히 좋은 점수를 줄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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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당서와 우리의 역사 모두 안시성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에 튀어나온 이름입니다. 다만 편의를 위해서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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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마무사대의 경우 전투에 말에 보호구를 씌워서 말을 보호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기습전 기동력이 필수인 작전에서는 보호구를 쓰지 않는다는 설정도 잘 표현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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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구려 성곽의 경우 흙을 아래로 넓게 경사를 만들어 쌓으면서 그 겉에 돌을 쌓아
만들어서 석포 공격으로 성벽이 훼손되더라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게 고구려 성벽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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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찰갑은 작은 쇳조각이나 가죽을 이어 붙여서 만든 갑옷입니다. 그리고 이 갑옷은
고구려에서 쓰던 것으로 화살의 관통력을 상쇄시키는 능력이 좋습니다. 실제로 역사
프로그램에서 찰갑과 판갑에 활을 쏜 결과 찰갑은 빗맞아 튕겨나갔고 판갑에는 화살이
박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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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 전투는 토산을 쌓는데 2달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럼 그 외에 전투는 20일
남짓이고, 그 사이에 전투를 했고 당태종 이세민은 도저히 성을 함락할 수 없다고 판단
해서 토산을 쌓았다는 말이 되니까 그 강력한 방어력을 이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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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써 놓은 양만춘에 대한 글을 참고로 올립니다.
고구려 보장왕 때 안시성의 성주로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키자, 끝까지 싸워
성주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당나라 태종이 침공하였을 때도 당나라군을 물리
쳤습니다. 대조영이라는 드라마에서 임 동진 씨가 오랜만에 열연을 하던데 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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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해서 양만춘이 주인공인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정사에는 이름이 전하지
않고, 송준길의"동춘 당 선생별집'과 박지원의"열하일기"등 야사에만 나온다니
우리 선조들은 역사도 기록하지 못하고 맨 날 기미지 생활만 했다는 것이 쪼매
원망스럽습니다. 어쩌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쨩개들이 다 지웠다는 설이 설득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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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보입니다. 양만춘은 지모와 용기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642년(영류왕 25)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성주의
지위를 유지한 것만 보더라도 보통 야문 장수가 아닙니다. 645년(보장왕 4)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을 함락시키고, 고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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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진의 고구려·말갈 연합군대 15만을 무찌른 뒤 안시성을 공격하자, 군사·백성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군을 물리쳤습니다. 특히 당나라 군대가 성 남동쪽에 토산(土山)을
만들어 공격해 오자 성위에 목책을 쌓아 대응하였고, 하루에도 6∼7회 교전하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당나라 군대가 60여 일 동안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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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다 높은 토산을 구축하고 성안을 공격하자, 토산 공격에 나서 정상을 점령하고
3일 동안 계속된 당나라 군대의 총공세를 물리치는 장면을 보는데 십년 묵은 체증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토산 밑에 굴을 파고 물을 채워 지반을
약하게 하였는데 믿기지가 않습니다. 하여간 겨울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추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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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이 다하자 당나라 군대는 퇴각하였는데, 이때 성위에 올라가 당나라 군대에게
송별의 예를 하니 당나라 태종이 그에게 명주 100필을 주면서 성의 방어를 하례하고
왕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도록 격려하였다고 합니다. 언제 어떻게 누구한테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니 고구려의 에녹인가?
2018.9.23.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