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9월 25일 금요일이자 추석 명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 이야기를 드립니다.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아멘
저는 육십 년대에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는 전쟁이 끝난 직후라 가난했습니다. 시골은 도회지 보다 더 가난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시골에는 거지가 거의 매일 동네에 들어와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밥을 얻으려 다녔습니다. 동냥 깡통을 양쪽에 하나씩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대게는 두 명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밥을 얻으려고 걸인들이 동네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알아채고 짖어대는 것은 동네 개들이었습니다. 개들이 짖는 소리에 거지가 찾아온 것을 알고 사람들은 삽짝 문을 닫기 바빴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걸인이 동네에 왔을지라도 우리 집 삽짝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지에게 줄 밥이 항상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당에 서있는 걸인에게 밥을 갖다주도록 나에게 시킬 실 때는 “밥이 적어서 미안하다고 말해라” 하고 시키셨습니다. 밥을 적게 주는 것이 미안해서 우리가 걸인에게 사정을 하면서 밥을 주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가난하면 돈도 아니고 밥을 얻으려 다니겠습니까? 가난하다는 것은 서러운 것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가난한 자를 지독하게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무능하고 게을렀어 가난한 것이라 생각했으며...,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해서 가난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가난한 자를 싫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난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에도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 말씀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재물이 없어 경제적으로 궁핍하여서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혹은 마음이 심약해서 다른 사람을 늘 의존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 하는 것은 물질적인 큰 궁핍이나 또는 질병이나 사고 등을 통하여 육체적인 고통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경험하여 본 사람을 말합니다. 가진 물질과 권력으로 교만하였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에 직면을 했거나 아니면 경제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은 대단히 고통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물질적인 상실과 권력의 상실과 건강의 상실을 통하여 그는 자기 안에 지금 잃어버린 물질이나 권력이나 건강 보다 더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살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는 교만하게 살았다는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해지게 되는 시작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지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을 무시했으며 미천하게 사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면서 자기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살았던 것을 부끄러워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그대로 갚으신다면 자기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심령의 가난이라는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닙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더 본질적인 문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들과 귀신 들려 고통받는 자들과 간질에 걸려 본인도 그리고 힘들어하는 가족들과 중풍병에 걸려 고통받는 자들과 그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업고 혹은 들것에 메고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을 찾아온 자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안에 있는 더 본질적인 고통의 원인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교만이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한때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람 중에는 "하나님을 믿을 바에야 내 주먹을 믿으라" 하면서 자기 주먹을 휘두르면서 교회 가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현장에서 죄를 짓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혔으면서도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앞에 나는 죽을 죄인입니다 하고 진심과 진실하게 말한다는 것은 스스로 깨달아 아니라 그 이상 깨달아도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나온다면 그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한다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이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신이 철저하게 인정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터뜨려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최초로 하시는 사역이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기를 터뜨리듯이 우리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터뜨리도록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종기가 터져 고름이 나오듯이 자신이 본래 죄인이었다는 것과 생각나는 죄들을 토하여 내게 하십니다. 천국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사람의 운명은 여기서부터 갈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수도 더러 하고 좋지 못한 생각 정도 했다는 것은 인정할지 모르지만 멸망 받을 죄인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심령은 아직도 그의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해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천국이 그의 것이 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심령이 늘 가난하여지게 해 주시므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추석 명절에도 음식과 기쁨과 사랑과 화평에는 부자가되게해 주시되 우리의 심령은 가난한 자가 되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명절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