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는 1843년에 처음 출판되었고(The Saturday Evening Post, 8월 호),
같은 해 출판된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 1843)과 한 쌍을 이뤄
광기의 폭발을 인상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포는 소설이 독자에게 강한 인상과 감명을 동시에 전달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공포’는 매우 중요하고 또 효과적인 정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포의 작품은 특이한 정신의 작용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또 기괴한 범죄 등,
평범하지 않은 주제들이 치밀하게 엮여
특유의 환상적이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검은 고양이」 역시
인물과 배경이 제한된 짧은 이야기이지만,
포 단편소설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화자 ‘나’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
교살당한 ‘검은 고양이’와
불길한 ‘두 번째 검은 고양이’,
그리고 끔찍한 가정 내 살인 사건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무엇보다 「검은 고양이」의 표제가 된 ‘검은 고양이’,
특히 ‘두 번째 검은 고양이’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 ‘두 번째 고양이’는
마치 교살당한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혼이 덧씌워져
한 인간을 몰락으로 몰고 간 초자연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검은 고양이’를 영물로,
종종 망자와 산자를 이어주는 영매로 간주해 왔는데,
이런 전래의 미신이 활용되면서
이야기의 공포와 긴장감은 한껏 고취된다.
또한 「검은 고양이」는 주인공의 독백 형식으로 전달된다.
그런데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독자는 1인칭 화자인 ‘나’의 정신 상태에 의문을 품게 된다.
작품 첫 머리에서 화자는
“나는 미친 것도 아니고 꿈을 꾸는 것도 아니라”며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간 독자라면
그가 정상이라기보다
자기 이야기에 빠진 일종의 광증이나 편집증 환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믿을 수 없는 화자’가 전하는 이야기 자체가
사실의 증언인지 그의 환상인지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화자뿐 아니라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한
독자의 신뢰와 기대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런데 바로 이런 불확실한 의문들 때문에
플롯의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고
더불어 독자는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집중할 수밖에 없다.
포는 단편소설이 강한 인상을 통해
독자를 몰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은 고양이」는
작가의 이런 시론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미 영미문학의 범위를 넘어
세계 문학사 속에서도 최고의 단편소설로 꼽힌다.
‘나’, 화자("I", the unnamed narrator) :
이름을 밝히지 않은 화자이자 주인공 ‘나.’ 사형 집행 전날
기괴하게 끝나버린 자기 삶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한다.
부인(the wife of the narrator) : 주인공 ‘나’의 부인.
기르는 동물들에게도 정성을 다하는 다정다감하고 온순한 여성이다.
플루토(Pluto) :
화자 부부가 키우던 영특한 검은 고양이. 화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두 번째 고양이(the second cat) :
플루토가 죽은 얼마 뒤 우연히 나타난 고양이.
플루토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Illustration for "The Black Cat" by Aubrey Beardsley (1894–1895)
이름을 밝히지 않은 수감자 ‘나’는
사형 집행 전날 자기 생을 되돌아보는 짧은 증언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심성이 유순한 ‘나’는 늘 주위의 동물들을 돌보고
이들과 어울리길 좋아했다.
성인이 되고 아내를 맞는데,
그의 부인 역시 착하고 정이 많아
‘나’만큼이나 동물을 보살피는 데 정성을 다한다.
결혼 후 ‘나’는 차츰 술을 찾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전에 없던 포악한 성격이 표출된다.
어느 날 만취 상태의 ‘나’는
집에서 기르던 영특한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 쪽 눈을 도려내는데,
얼마 후 아예 플루토를 나무에 매달아 교살시킨다. 그날
밤 집에 큰 불이 나고 ‘나’는 가산을 몽땅 소실한다.
한편 죽은 플루토와 외눈박이 생김새까지 꼭 닮은
검은 고양이가 집 주변을 배회하는데
아내는 이를 거둬 애지중지 돌본다.
‘나’는 왠지 이 두 번째 검은 고양이가 섬뜩하고 마땅찮아서 피하려 하지만
이 고양이는 끈덕진 감시자처럼 잠자리까지 ‘나’만 따라 다닌다.
화재 이후 생활도 곤궁해지고 고양이 때문에 점점 예민해진 ‘나’는
그만큼 자주 술에 의지하게 되고 술에 취해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고 심지어 폭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느 날 우발적인 사고로 아내를 죽인 ‘나’는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 외벽과 내벽 사이에 감추고
벽을 새로 발라서 범행을 완전하게 감춘다.
범행 며칠 후
경관들이 집을 훑어보고 무심히 지나려는데,
이상한 심리적 광기가 발동한 ‘나’는
급기야 아내의 시체를 감춘 지하실 벽을 두드리고 만다.
이때 벽을 타고 기괴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되울린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관들이 벽을 허물게 되고
그 안에서 아내의 처참한 시체,
그리고 그 시체와 함께 산 채로 묻힌 두 번째 검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내 목적은 바로 이렇소.
쉽고 간명하게 어떤 설명도 붙이지 않고,
가정에서 벌어진 단순한 사건의 연쇄를 세상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는 것이요.”
작품의 첫 부분이다.
1인칭 화자‘나’는
다음 날 있을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자기 인생의 파멸을 부른 사건을 정리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야기가 1인칭 독백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알리면서
화자가 뒤에 나올 우발적인 아내 살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팡이로 두드렸던 소리가 가라앉자마자
어떤 목소리가 무덤 속에서 대꾸하더이다. ...
(그 소리는)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나 낼 법한 공포와 의기양양함이
절반씩 섞인 울부짖음으로 터져 나왔소.”
작품의 마지막으로 불길하고 초자연적인 존재였던
‘두 번째 검은 고양이’를 통해
전체 이야기가 괴기하게 해결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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