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좌파들에게
들려주는 글.
판공비 1원도 안 쓰고,
자기 돈으로 술 사..
대통령 부친 윤기중 교수 인품 사후 화제: "부정한 돈 받지 말고 밥 얻어먹지 말라"
이런 분에게
"잘 죽었다."
조롱이라니..
패륜 당대표,
패륜 혁신위원장,
패륜 지지자들이 모인 곳이 민주당이요, 소위 대한민국 진보좌파다.
*왜 혼자 가셨어요?
*아들도 동행해야지.
*나라 말아 먹을 아들을 생산한 자.
*빠른 시일 내에 아들 부부 데리고 가라.
*저런 인간에게 별세라는 말이 아깝다.
*참 오래도 살았다. 친일 부역자들은 참 오래 산다.
이런 쓰레기,
인간 군상들에게 "진보" 라는 타이틀 달아 주기가 어울리진 않지만, 진보(Progressive 또는 Liberal)라는 진영 용어가 이 나라에서는 쓰레기 급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아들에게 "잘 자라 줘서 고맙다." 라고 말하고 별세한 대통령 윤석열의 부친, 연세대 명예교수 윤기중은 보수우파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 고매한 인품이 신문 부고(訃告, Obituary) 기사로 크게 났을 것이다.
진영 싸움 때문에 진보좌파 언론은 그가 밉고 무시하고 싶어서 안 냈고, 보수우파 언론 매체들은 스스로 눈치를 봐서 일부러 작게 취급했다.
윤기중 교수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다.
그는 소탈하고 검소했으며 청렴 정직한 사람이었다. 소속 대학 (연세대 상경대) 에서 보직을 탐하지 않았고, 판공비를 1원도 쓰지 않았다.
동료 선후배 교수와 교직원들과 회식할 때 아무도 모르게 먼저 계산해 버리기로 유명했다. 아들 윤석열이 9수 끝에 검사가 되자.. 제일 먼저 당부한 말이 "부정한 돈 받으면 안 된다" 라는 것이었고, "밥 얻어먹고 다니지 말라" 라는 경고도 자주 했다.
그는 석사학위 하나로 이 나라 최고수준 대학 교수가 돼 정년 까지 마친 기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왜 박사 학위가 없냐고? 그는 실력이 중요하지 학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소신을 가졌는데, 당시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 선진국 일부 대학 박사 학위는 얼마든지 편법으로 받을 수 있었다.
윤기중 교수는
"난 그런 박사 학위는 필요 없다" 라고 하면서 전혀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아들 윤석열도..
이런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많다. 사법고시 9수는 그가 고속 출세주의자가 아님을 보여 준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재수 않고 들어간 지능과 노력의 소유자다. 그런 사람이 고시에 8번 떨어졌다는 건 다른 일도 열심히 했다는 징표다.
철학, 경제학 등 다양한 독서와 돈 맥크린의 어렵고 긴 명곡
<어메리컨 파이> 를 부를 만큼의 취미 활동, 수많은 친구들과의 교류에 고시 공부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돈도 버는 대로 다 썼다. 김건희 여사와 결혼할 때 50대인 그의 저축액이 불과 2천만원이었다. 나머지 결혼 비용은 부자집 딸 김 여사가 댔다.
이거 하나로 윤석열은 정말 깨끗한 검사였다는 것이 증명된다. 아버지가 아들의 빈 지갑에 용돈을 몰래 넣어 준 일도 있다고 할 정도다. 부전자전이다.
그가 떠난 뒤..
SNS에서는 인간 윤기중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던 한 사람이 올린 글이 패륜 조롱 쓰레기 인간들을 꾸짖고 있다.
다음은 <김광열 님의 글>
전문이다.
윤기중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윤 교수님과 같은 대학에서 같이 근무했습니다.
그분은 많은 선후배 동료들 뿐 아니라 교직원 모두에게 존경받았던 분입니다. 교수님이라기 보다는 동네 아저씨(?) 같은 분이셨어요. 집이 대학의 옛날 농업개발원(지금은 학생 기숙사) 쪽에 사셨는데 늘 걸어 다니셨지요.
그분은 40여년 재직 중 보직을 2개만 맡으셨는데 재무처장과 상경대학장 밖에 하지 않으셨어요. 대개의 정치적인 교수들은 보직을 하기 위해 별 수단을 다 쓰는데, 이 분은 자기가 꼭 필요하다고 하는 보직만 하신 것이지요.
보통의 경우 학장을 마치면 대학원장을 하는 게 코스처럼 되어 있는데 윤 교수님은 더 이상 보직은 안 맡겠다고 하신 것 같아요. 이 분은 보직을 맡으면서 판공비 1원도 쓰신 적이 없고 자기 돈을 써가며 교직원들 회식도 시켜 주곤 했답니다.
아마 윤 대통령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서 돈과 관련된 사건이 하나도 없나 봅니다.
문*앙의 자문역인가 맡았던 문*인은 대학 보직을 맡고 판공비(업무추진비) 알뜰하게 빼 먹어 민심이 흉흉했었던 인물입니다. 뭉가들은 돈에 걸신이 들렸나 봐요. 많이 대비가 되시지요.
또 이 분은 석사학위로 정년을 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답니다. 1990년도 초에 교육부와 대학 당국에서 석사 학위만 있는 교수들은 박사학위를 받도록 권장했었어요.
그 당시 다른 교수님들은 타 대학에 등록하거나 미국 대학에 방학 때마다 가서 학위를 받아 왔었어요. 상경대학 교수님들 대부분이 미국 W 대학 학위자가 많은 이유가 있었답니다.
윤 교수님은 술과 밥을 잘 사기로도 유명한 분이셨어요. 상경대학 교수들 중 이 분 술 안 얻어먹은 분 한 분도 안 계셨어요.
본인이 초대를 많이 하셨던 거지요. 초대를 받아 식당에 가셔도 어느새 계산을 하고 나오곤 해서 초대한 사람을 민망하게 하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교 명예교수실에 나오셔서 책도 보시고 하셨다는데... 저의 집사람 이야기가 윤 대통령 미국에 가셨을 때 돌아가셨으면 임종하는 것도 못 보셔서 천추의 한이 되셨을 텐데 미국 가시기 전에 운명하신 것도 윤 대통령의 복(?)이라고 하더군요.
흰머리 휘날리며 씩씩하고 늠름하게 걸어 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디 천국 하늘나라에 가셔서 영면하옵소서!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좌파들은 답하라.
대한민국에 이렇게 완벽한 인격과 연구 강의 활동을 하고 타계한 인물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아 살 날린게 잘못 갔나"(윤 대통령이 죽길 원했는데, 그의 부친이 별세했다는.) 라고 적은 칼럼니스트라고 하는 작자의 글을 경향신문이 다음 그의 차례에 또 실어 준다면, 제호를 내려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패륜신문> 이란 새 제호를 달아야 맞다. 이 신문은 필자가 1980~90년대에 취재 기자로 일했던 곳이다.
<자유기고가 정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