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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출처 : 뮤직태그.넷
음원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Title. # 왕자님께 KISS를… # 번외편 FamCafe. 新열병팸 E-mail. jinyoungchy@hanmail.net Copyright ⓒ 천국보다 All rights reserved. |
# 그가 없는 어느 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요. 규연이한테 그렇게 말하고 난 먼저 나와 버렸죠.”
「꼬맹아, 좀 참지 그랬어.」
“어떻게 참아요.”
「그건 아무래도 네가 잘못한 건데.」
“그렇긴 해도.”
「사과는 했어?」
“아뇨,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갔어요.”
「으이그.」
어느 덧 강해수가 미국으로 가버린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1년은 그가 너무나도 바빠서 한국에 들어오지는 못했고 이렇게 전화나, 이메일만을 주고받고 있었다. 자신의 말로는 미국에 오고 나서 너무 잘 먹은 탓에 살이 쪘다고 그러던데 어제 보내줬던 사진을 보니 또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아저씨 한국 언제 와요?”
「음, 아직 완전히 한국으로 들어가지는 못해. 지금 하고 있는 작업 끝나고 잠깐 들어가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 영화 OST 작업이요?”
「응. 그런데 좀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고.」
“얼마나요.”
「한 6달?」
휴. 뭐 1년을 기다렸는데 6달이라고 더 못 기다릴 이유는 없지.
“6달이든 몇 달이든 기다릴 테니까 얼굴 좀 보자고요.”
「그렇게 보고 싶어?」
이 남자는 미국에 간 뒤로 한 가지 나쁜 버릇이 생겼다. 바로바로 꼭 나에게 말로 확인을 받으려는 버릇.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꼭 나에게 되물어서는 대답을 듣고야 만다. 나로서는 꽤나 귀찮은 버릇이 아닐 수가 없다.
“꼭 그런 걸 말로 해야 되요?”
「응.」
“있죠, 왜 꼭 그렇게 대답을 들어야만 직성이 풀려요?”
「글쎄. 비밀. 나중에 말해줄게.」
게다가 여전히 비밀도 많은 남자.
“에휴. 그래요, 많이 보고 싶어요. 됐죠?”
「응. 됐어.」
그때서야 만족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강해수. 난 괜히 수화기를 붙잡고서 입을 삐죽거리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 벌써 새벽 3시네.
「그러고 보니까 꼬맹아. 너 안 자?」
“자야죠.”
「너 학교도 가야 되면서. 한국이 지금 새벽 3시 정도 됐나?」
“네. 막 3시가 되려고 해요.”
「얼른 자라. 다음번에는 한국이 낮일 때 전화할게.」
아마도 강해수는 모를 것이다. 그에게서 전화가 언제 올지 몰라서 요즘 내가 언제나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다는 것을. 늦어도 그가 전화해 주면 정말 기쁜데. 학교에서 조금 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강해수와 전화를 한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둥둥 떠 있다. 조규연 녀석은 용하게도 항상 내 기분이 좋다는 걸 알아채고 강해수가 전화 했나보네, 라며 짓궂게 놀려대지만.
“다음에 또 전화해요.”
「응. 잘 자, 꼬맹아.」
“아저씨도 좋은 하루 보내요.”
짧은 소음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이렇게 전화를 끊는 게 아쉬워서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한 손으로 꼭 쥐었고, 그리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 + + +
“죄송합니다.”
“얼른 앉아요.”
결국 늦잠을 자버렸다. 1교시부터 수업이 있었는데 그만 수업 시작 30분 전에 집에서 깨고 말았다.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쳐 익숙한 뒷모습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늦잠 잤냐.”
“응.”
내가 자리에 앉자 조규연이 조용히 물어봤고, 나는 서둘러 교재를 꺼내며 작게 대답했다. 교수님께서 이번 시간에 나갈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벌써 반 정도를 놓쳐버렸다. 나중에 조규연한테 물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칠판에 고정시켰다. 나나 조규연이나 대학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우리 엄마나 현수오빠도 그렇고, 강해수까지 합세해서는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고 싶으면 대학을 다니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서 우리는 늦게나마 공부에 열이 올랐고, 결국 그냥 그럭저럭한 실용음악과에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여기서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마느냐에 달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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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늦잠을 잤대.”
“아, 새벽 늦게까지 깨 있는 바람에.”
“뭐 하느라.”
“전화.”
“누구랑? 아, 강해수.”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까지 2시간 정도 빈 시간이 생겨서 조규연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걸음을 옮겼다. 나에게 먼저 물어봤으면서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조규연. 괜히 알면서 저 자식은 꼭 저렇게 비꼬지.
“잘 지낸대?”
“뭐, 잘 지내지.”
“언제 온대?”
“아직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지는 못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잠깐 들릴 거래.”
“잘 나가네.”
학교 식당에 들어가 식권을 사고 각자 밥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많지 않아서 넓은 식당이 한가했다. 이제 8월의 초기로 들어서서 그런지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이번 주부터 장마도 시작된다고 뉴스에서 떠들어 대던데. 미국도 많이 더우려나?
“머리 자를까?”
“갑자기 왜.”
“아니, 날씨도 덥고. 귀찮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핑계면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를 자를 타이밍을 매번 놓쳤었고, 결국 작년부터 길러왔던 머리는 어느새 내 허리 부근까지 닿아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지나치게 길다 보니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방금도 머리카락에 국물이 닿을까봐 한 손으로 머리를 고정시킨 채 국을 떠먹었고, 매번 어디에 걸리기나 하고 또 조규연은 심심하면 잡아당기고. 이렇게 보니 반드시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드네.
“자르지 마.”
“응?”
“머리 자르지 말라고.”
내 말을 듣고 나서 한참을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뜬금없이 툭 하고 자르지 말라는 말을 내뱉는 조규연. 내가 머리를 자르겠다는데 왜 자기가 반대를 하고 그래.
“왜? 머리 길어서 불편하다니까.”
“긴 게 나아.”
“뭐?”
조규연아 지금 그렇게 맛있게 점심도 먹으면서 목소리가 왜 기어들어가. 조금 더 크게 말하렴.
“크게 말해.”
“아, 긴 게 예쁘다고. 그러니까 자르지 마.”
조규연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쳤고 조용했던 식당에 녀석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규연이의 목소리에도 놀랐지만, 그 아이가 내뱉은 말 때문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식당에 있던 몇 안 되던 사람들의 시선들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 나는 서둘러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 몰라. 나 도서관 가봐야 해. 먼저 간다.”
조규연도 민망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가방을 들고는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가 버린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남은 밥을 깨작대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서 부쩍 이런 적이 많았다. 잘 나가다가 싸우고, 어색해지고. 새벽에 강해수랑 전화하면서 투덜댔던 것도 이런 것이었다. 물론 그 일은 내가 잘못한 거였지만. 일주일 전이였나?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들을 만났던 술자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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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래서 서환이 인디밴드 드럼 치는 거야?”
“응.”
조규연의 놀랐다는 말에 서환이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대답을 했다. 서환이는 정말 실력 있는 드러머니까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항상 생각해 왔었는데 역시나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성과를 거둔다.
“공연은 언제 하는데?”
“8월 마지막 주에. 홍대 근처에 조그마한 클럽에서 하기로 했어.”
“와, 꼭 갈게.”
“안 오겠다고 하면 끌고라도 갈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묘하게 들뜬 상태였고 우리는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술잔을 비워나갔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을 때였나, 역시나 기분 좋게 건배를 외치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을 때였다.
“그만 마셔.”
조규연이 강압적인 말투로 이 말을 하면서 내 팔을 잡았다. 내가 술에 취한 것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조규연이 팔을 잡는 탓에 놀란 것도 있었던 것인지 나는 그만 술잔을 놓치고 말았고, 그대로 술잔은 떨어져 내 발치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서둘러 술집 종업원이 다가와 다치지 않으셨냐고 물으며 조각들을 치우기 시작했고,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조규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녀석은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여 내 발밑을 살펴볼 뿐이었다.
“야, 안 다쳤어? 그러기에 조심 좀 하지.”
“조규연. 네가 갑자기 놀라게 해서 그런 거잖아.”
“너 너무 마셨잖아. 어떻게 집에 가려고 그래?”
왜 그랬을까. 조규연의 이 말이 왜 그렇게 귀에 거슬렸던 걸까.
“왜 네가 그런 것 까지 신경 써. 나 아직 멀쩡하거든. 괜히 보호하려고 하지 말라고. 너 요즘 좀 이상하다.”
그리고 이내 내 입에서는 조규연의 눈을 잔뜩 흐리게 만든 그 말이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내 남자친구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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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진짜 미쳤지.”
분명 저 일이 있던 날 뒤부터다. 조규연하고 내 사이가 미묘하게 틀어진 것은.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술에 취한 척 우왕좌왕하며 집에 가봐야 하는 일이 생겼다고 하고 술집을 나와 버렸고, 다음 날 잔뜩 흐린 눈을 한 채 날 바라보는 규연이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규연아, 나 어제 무슨 실수한 거 있나? 기억이 잘 안 나네.’
사과라도 제대로 했으면 마음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진짜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거짓말까지 한 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백 번 후회하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 동안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기회도 잡지 못하고, 오늘은 또 이렇게 녀석과 어색해졌다.
“아직도 날 좋아하는 건가.”
내가 소리 내어 말하고도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조규연은 대학에 와서도 고등학교 때의 인기가 어딜 가겠냐는 듯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상당히 많은 여자들에게 고백을 받았었다. 그런데 녀석은 아직도 혼자이다. 그리고 아직도 내 옆에 붙어 다닌다. 그래서 한 번은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도대체 왜 연애를 하지 않는 거냐고. 그 때,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규연은 그냥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지만.
‘아직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나타났어.’
하아, 모르겠다.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물어볼 수도 없고. 나중에 장난 식으로 물어볼까.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그릇을 비우고 시계를 보니 아직도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머리를 자르지 않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나는 학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미용실에 갔다가 행여나 수업에 늦을까 종종걸음으로 달려왔고 나는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서 나에게 꽂히는 하나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조규연은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교수님께서 들어오시고 나서야 시선을 거둬간다. 왠지 모르게 찔리는 느낌에 나 역시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자를 보내는 척 하다가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내가 저번 시간에 내준 과제는 다 해왔겠지? 그럼 과제 검사 전에 목부터 풀자. 자, 발성 1번.”
교수님이 피아노의 ‘도.’음을 누르셨고 학생들은 열심히 발성을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보컬 수업은 항상 진지하게 참여하자는 생각이 있었으므로 열심히 목을 풀었다.
“자, 그럼 제일 왼쪽에 앉은 사람부터 차례대로 나와 보자.”
한참 발성을 하고 나서 교수님께서 시선을 돌려 가장 왼쪽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학생은 자신이 처음이라서 조금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지난 시간의 과제는 조금 특이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노래를 골라 연습해서 앞에서 불러 나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라고 학생들이 지목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시겠다는 교수님의 특이한 과제에 나도 집에서 꽤나 골머리를 썩였었다. 앞에 나간 학생이 곧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역시나 내가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다. 몇 명의 학생이 계속해서 나가서 노래를 불렀고, 내 차례도 지나갔다. 나는 우리 엄마가 즐겨 들었다는 팝송을 골랐는데 학생들의 표정이 다행히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 아니라 안도하며 불렀다.
그리고 가장 뒤쪽에 앉아있던 조규연의 차례가 되었다. 앞에 서 있는 조규연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의 쑥 커버린 키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도 키가 큰다고 하던데 조규연은 저번 일 년 사이에 8cm는 큰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 아이의 코 근처에 내 머리 끝이 닿았는데 요즘 옆에 서면 턱에 간신히 닿는다. 앞에서 조금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은 조규연이 잠시 후 노래를 시작했고, 그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나는 멍하니 녀석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른한 오후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따스한 햇살에 졸고 있는 당신을 봤어
문득 너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다짐하고 다짐하지
쓰러지지 않으리라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매일매일 꿈을 꾸며 살아왔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이제 상처만으로 가득한 가슴을 안고 삐걱거리며 살아가면서 나는 이렇게 외친다.
너와 함께 한 시간들은 끝난 것이 아닌 앞으로 계속 될 미래라고
너와 나의 마음에서 피어날 희망을 가득 안고
내가 녀석에게 만들어 줬던 노래. 내가 옆에 있다고 그렇게 말해 줬던 노래를 조규연은 부르고 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강의실 가득 울렸고 잠시 후 그 아이가 노래를 끝마쳤을 때, 강의실은 처음으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박수를 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그저 가만히 앉아 조규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 가산점 받을 사람은 정해진 것 같네. 규연군, 그 노래 제목 물어봐도 될까?”
교수님께서 부드럽게 웃으시며 조규연에게 물어보셨고 조규연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대답을 한다.
“제목은 없습니다, 교수님. 제 친구가 만든 곡이거든요.”
“규연군 친구가?”
“네.”
“실력이 대단한 친구네. 어쨌든 수고 했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조규연이 자리로 돌아가서 가방을 들더니 내 쪽으로 걸어와서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나는 조금은 긴장한 채로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조규연은 앞쪽만을 말없이 바라보고. 결국 짧은 한숨과 함께 나도 시선을 앞으로 돌리려고 했을 때, 조규연의 말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만들어 준 친구는 나한테 굉장히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조규연을 보았고 조규연은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예전에도 좋아했고, 지금도 많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 좋아한다는 감정이 조금 차이가 있지만요.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조규연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바보 같다. 바보같이 착하다. 나는 그런 심한 말로 상처를 줬는데도 이런 말로 날 감동시킨다.
“내가 널 혼란스럽게 했다면 미안. 그런데 난 너의 가장 친한 친구잖아. 친구면서 동생이면서 오빠면서 그리고 강해수가 없을 때 가끔 어깨를 빌려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보영아,”
조규연의 눈을 바라보자 녀석이 생긋 웃는다.
“나 괜찮아.”
“바보.”
헤실 거리는 녀석의 얼굴에 나는 바보라는 퉁명스러운 말만을 남기고 조금은 시큰거리는 코를 느끼며 다시 앞을 바라본다. 옆에서 기분 좋다는 듯 낮은 웃음을 내뱉는 조규연이 느껴졌지만 난 그 아이가 내 붉어진 눈을 알아차릴까 눈을 깜박이며 애써 눈물을 삼키고만 있었다.
+ + + +
「그래서 결국 아직도 사과 못했다고?」
“내일 할 거에요, 내일.”
「근데 꼬맹아 너 네 친구 랑만 너무 친한 거 아니야?」
“에? 설마 아저씨 질투해요?”
「응. 질투해.」
“하하, 무슨 질투를 해요.”
「난 네 목소리 밖에 못 듣는데 그 친구는 매일매일 널 보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질투나.」
언제나 솔직한 강해수. 언제나 자신의 생각에는 떳떳한 강해수.
“있죠, 나 아저씨의 그런 면이 좀 부러워요.”
「어떤 거?」
“생각에 솔직할 수 있는 거요.”
「꼬맹아,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나 이거 너한테 배운 거야.」
“나한테요?”
「응. 처음에 너 만났을 때 할 말 다하는 꼬맹이 보면서 기가 찼는데 나중에 널 조금씩 더 알아가니까 솔직한 게 정말 좋은 거라는 걸 알겠더라. 나 그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본심을 숨기는 어른이었다고.」
“몰랐어요.”
내가 그랬던 적이 있구나. 내가 고등학생 때는 그랬었구나. 근데 나이를 먹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남한테 상처 주는 말이나 하고, 그래놓고 사과도 못하고.
「가서 친구한테 사과해. 미안하다고.」
“네. 아저씨랑 전화한 다음에 바로 전화해야 겠어요.”
「그래. 난 그럼 이만 끊어야겠다. 내일까지 완성해야 하는 곡이 하나 있거든.」
“네. 또 전화해요.”
「응. 보영아.」
“또 보영이. 심심하면 보영이죠.”
「아니, 무드 잡을 때 보영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제는 전보다 익숙해진 강해수의 ‘보영아.’라는 말에, 그렇지만 여전히 날 두근거리게 만드는 강해수의 ‘보영아.’라는 말에 내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하다.
「I love you.」
부드럽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음미하며 그렇게 전화기를 잡고 있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강해수의 ‘And you?' 라는 장난스러운 물음이 들린다. 매번 나만 당황할 수야 없지. 강해수가 놀라게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에이, 영어쓰기는. 강해수씨, 사랑합니다.”
나의 큰 목소리에 놀라버렸을, 그리고 그 내용에 한 번 더 놀라버렸을 강해수의 얼굴을 상상하며 나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고 한참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헤헤헤 웃기만 했다. 아,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간질간질하기도 한 이 느낌.
“뭐, 싫지는 않은 느낌이네.”
빙긋 웃어보이고는 다시 핸드폰을 열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용기를 내서 나도 말해야겠다. 미안, 이라고.
「응, 보영아.」
“조규연, 나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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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저씨.
아저씨, 나 편지 너무 오랜만에 쓰는 것 같아요. 그동안 바빴다고요, 아저씨도 알죠? 모른다고 하기만 해봐요, 나 화 낼 거야. 어제 아저씨랑 전화하고 나서 규연이한테 전화했어요. 나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규연이는 정말 잃고 싶지 않은 친구니까, 그런 친구한테는 더 솔직하게 말해야하는 거 맞죠?
미국은 어때요? 설마 지금 쭉쭉 빵빵 금발의 미인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거나 그런 거 아니겠죠? 나 같은 애인을 한국에 놔두고 바람을 피우면 안 되죠. 아저씨 나 어느 날 갑자기 미국 가서 아저씨 집에 쳐들어갈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바람피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요. 무섭죠? 헤헤.
보고 싶어요. 우리처럼 장거리 연애하는 사람들도 정말 없을 거야. 여자 친구 한국에 버려두고 1년이나 코빼기도 안 비추는 남자 친구가 어디 있어. 얼른 일 끝내고 돌아와요. 우리 아직 못해본 거 진짜 많잖아요. 나 하고 싶은 거 적어놨는데 어느새 50가지가 넘었어요. 아저씨 돌아오면 나랑 그것들 다 해봐야 하니까 각오해요.
한국은 무지 더운데 미국은요? 거기도 덥겠죠? 그래도 덥다고 에어컨 틀어놓고 자거나 그러지 마요. 감기 걸리잖아요. 여름 감기 걸리면 고생하는 거 알죠? 밥도 잘 챙겨먹고요. 사진 보내준 거 보니까 살이 찌긴 뭐가 쪄요. 전보다 마른 것 같던데. 일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 몸도 생각해요, 아저씨. 아저씨는 일에 빠지면 주위가 안 보이는 사람이니까.
아, 나 이제 나가봐야 해요. 오늘 교양 수업 조모임이 있거든요. 대학은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멋있는 사람들도 많고. 헤헤. 장난이에요.
아저씨 정말 보고 싶고요, 우리 얼른 봐요. 건강 조심하고요.
마지막으로 사랑해요.
Love. 꼬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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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자님께 KISS를 》
오랜만에 왕키스에서 인사를 드리니 감회가 새롭군요 후훗.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
그동안 새로 연재 시작한 후속작을 쓰느라 바빠서 왕키스 번외가 조금 늦었답니다! ㅜ_ㅜ
해수랑 보영이 아직 잊으신건 아니시죠? ^*^
꽃잎②에 있어서 어리둥절 하셨을 수도 있는데 꽃잎①에서 연재하고 있는 다른 소설 덕분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번외편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
앞으로 번외편은 2편 정도가 더 있을 것 같아요.
비록 짧은 만남이 되겠지만, 남은 2편에서도 해수와 보영이의 알콩달콩을 마음껏 느끼시길 바래요 !
남은 번외편에서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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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달콤, 간질한 소설을 좋아하시군요:) ㅎㅎ 감사합니다 ㅜ_ㅜ
ㅋㅋㅋㅋㅋㅋ아, 좋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