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루머(Laura Loomer)란 서른한 살의 이 여성. 미국의 강경 우파 음모론자다. 최근 며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유세 현장에 줄줄이 따라다녀 눈길을 끌고 있다고 영국 BBC가 12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녀를 의심하는 이들은 몇몇 공화당원들도 있다. 지난번 의회 선거에 나왔다가 논란에 휩싸였던 그녀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루머는 반무슬림 수사에다 9∙11 테러가 미국 정부의 "내부 작업"(inside job)이었다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전날 9∙11 23주기 기념식에 트럼프와 함께 참석했는데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분노를 도발하는 모습이 미국 매체들에 비쳤다. 지난 10일 대선 토론 참석을 위해 필라델피아로 날아가는 비행기에도 몸을 실었다.
아마도 이번 토론 중에 가장 기억할 만한 장면으로는 아이티 출신 불법 이주민들이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스프링필드 주민들이 기르는 반려동물을 잡아 먹는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시 관리들은 BBC 베리파이(Verify)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믿을 만한 보고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텔레비전에서 들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는데 루머는 바로 전날에도 근거 없는 이론을 방송에서 설파했다. 프린지 해설가 겸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인 그녀는 120만 팔로워를 거느린 엑스(X, 옛 트위터)에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했다.
루머가 트럼프에 얼마만큼 접근할 수 있는지는 의문인데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 J D 밴스 상원의원도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이론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있다. 루머의 포스트와 필라델피아 출현은 몇몇 공화당원들로 하여금 전 대통령이 허황된 얘기를 공석에서도 늘어놓는 이유 중의 하나로 비난하게 만들었다.
트럼프 캠프와 가까운 익명의 소식통은 뉴스 매체 세마포(Semafor)에 루머와 트럼프의 밀접성에 대해 "100%" 우려한다고 밝히며 “트럼프 캠프가 그녀에게 어떤 가드레일을 놓았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난 그게 먹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소식통은 같은 매체에 루머는 토론 준비에 간여하지 않았으며 "주변에 있으면 긍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공화당 고문인 데니스 레녹스는 트럼프의 토론 성과와 루머에 대한 비판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지적했다. 그는 세마포에 “당신이 부동층이라면 폭스 뉴스와 X 거품 속에 살면서 로라 루머는 말할 것도 없고 맷 가에츠에게 의지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루머는 BBC의 여러 차례 코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트럼프가 "진짜 우리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겨 "독자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라고 X에 설명했다. 그녀의 글이다. "나에게 전화를 걸고 오늘날 얘기해 달라고 집착적으로 조르는 많은 기자들에게 답은 노(no)다. 난 내 스토리와 조사에 대한 작업에 무척 바쁘며 당신의 음모 이론들을 즐길 시간은 없다."
1993년 애리조나주 출신이며, 프로젝트 베리타스와 알렉스 존스의 인포워스(Infowars) 같은 조직들의 활동가 겸 해설가로 일했던, 자칭 탐사기자다. 2020년 그녀는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으로 출마해 트럼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뛰었으나 민주당의 로이스 프랭켈에게 패배했다. 그녀는 2년 뒤에도 플로리다주의 다른 선거구에서 열린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 대니얼 웹스터에게 밀렸다.
현재 그녀는 트럼프를 맹렬히 지지하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겸 민주당 대선 후보는 흑인이 아니며,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트럼프의 암살을 요청하는 암호를 발신했다는 음모론을 오랫동안 퍼뜨려왔다. 이런 전과 때문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들, 심지어 그녀 주장에 따르면 우버와 리프트 등에서도 무슬림 운전자에 대해 공격적인 코멘트를 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그녀는 한때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이슬라모포비(이슬람을 두려워하는 자)"라고 일컬었다.
루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했고 플로리다 주거지 마러라고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올해 초에도 그녀는 아이오와주로 날아가는 그의 비행기에 타고 여행 가 무대로 나오는 그에게 열렬히 환호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여러분은 그녀를 여러분 편으로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녀의 동영상을 여러 편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공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일간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가 그녀를 캠프에 고용하겠다고 관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랬더니 고위 참모가 오히려 선거에 손해만 끼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한 참모는 "그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은 그녀가 골칫거리(liability)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지난 1월 NBC 뉴스는 보도했다.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이번주에 루머와 입씨름을 벌였는데 해리스가 당선되면 백악관에 커리 냄새가 풍길 것이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그린은 루머의 글이 "당황스럽고 극도로 인종주의적"이라며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은 공화당원도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아니다"고 질타해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이런 논쟁이 루머가 트럼프와 함께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9∙11 기념 행사에 등장한 지 하루도 안돼 도드라졌다는 점도 주목된다. AP 통신이 그곳에 갔느냐고 묻자 그녀는 "손님으로 초대돼" 간 것이며 캠페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루머는 대선 토론 중에 자신의 X 계정에 주얼리 디자인 이어폰 브랜드 노바(NOVA)의 H1 제품 사진과 해리스의 귀걸이를 비교한 사진을 올리며 “오늘 밤 귀걸이 선택이 흥미롭다”고 했다. 구글 데이터에 따르면 음모론이 제기된 이후 진주 귀걸이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된 H1 제품의 검색 빈도가 급증했다.
이 제품의 제조사 아이스바흐 사운드 솔루션 전무이사 말테 이베르센은 성명을 통해 “해리스가 우리 제품을 착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제품이 대통령 토론회에서 사용되도록 특별히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면서 "두 후보 모두에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남성용 버전을 개발하고 있다. 주황색은 다른 색상들과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색상 선택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주황색의 수감자복을 입을 것이어서 이와 어울리는 디자인의 이어폰을 만들기 어렵다고 비꼰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스타일을 추적하는 웹사이트에 따르면, 해리스의 귀걸이는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제품이다. 해리스는 토론회 다음 날 9‧11 테러 23주기 추모 행사에서도 같은 귀걸이를 착용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그러자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해리스가 800달러(약 106만원)에 달하는 귀걸이를 착용했다고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