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한국소설일반
한승원 장편소설『달개비꽃 엄마』. 이 작품은 백 세를 앞두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질긴 생명력과 사랑에 대해 ‘탐구의 기록’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솔직하고 치밀한 문장들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십일 남매를 온전히 키워내는 일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그것조차 시대의 저항에 막혀 버거워했던 어머니의 삶을 절절하고 생명력 있는 언어들로 담아냈다.
저자 : 한승원 (소설가)
저자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고향인 전남 장흥의 율산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오고 있는 작가는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미망하는 새』 『폐촌』 『포구의 달』 『내 고향 남쪽바다』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희망 사진관』,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우리들의 돌탑』 『해일』 『시인의 잠』 『동학제』 『까마』 『아버지를 위하여』 『연꽃바다』 『해산 가는 길』 『꿈』 『사랑』 『화사』 『멍텅구리배』 『초의』 『흑산도 하늘길』 『원효』 『추사』 『다산』 『보리 닷 되』 『피플 붓다』 『항항포포』 『겨울잠, 봄꿈』 『사랑아, 피를 토하라』 『사람의 맨발』 『물에 잠긴 아버지』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달개비꽃보다 질긴 어머니의 생명력과 사랑,
그 원천에 대한 탐구의 기록이자 가슴 먹먹한 마지막 인사……
산수傘壽의 나이를 눈앞에 둔 소설가 한승원이 또 한 권의 장편소설 『달개비꽃 엄마』를 펴냈다. 반세기 가까이 자신만의 소설 영토를 확고하게 구축해오며 수십 편의 장편소설을 써낸 바 있는 작가에게도 이 소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백 세를 앞두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질긴 생명력과 사랑에 대해 ‘탐구의 기록’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솔직하고 치밀한 문장들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아울러 문단 등단 50주년을 맞아 펴내는 ‘한승원 문학의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승원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어 등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이보다 이태 전인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가증스런 바다」가 가작으로 당선되어 문단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완전히 소실되어 지금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한승원은 그간 고향인 장흥을 중심으로 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끈질기게 추적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닌 한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자들만이 남길 수 있는 위대한 발자취임을 증명하는 데 천착해왔다. 이러한 작가의 오랜 집념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오롯이 그려낸 이 소설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십일 남매를 온전히 키워내는 일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그것조차 시대의 저항에 막혀 버거워했던 어머니의 삶을 절절하고 생명력 있는 언어들로 담아냈다.
“오냐, 오냐, 니 쓰라린 속, 이 어메가 다 안다, 내가 다 안다.
울어야 풀리겄으면 얼마든지 실컷 울어버려라.”
섬 처녀인 점옹은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다부진 성격으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줄곧 “우리 일등짜리”란 말을 듣는다. 특히 여성들이 교육받을 기회가 몹시 적었던 당시로서는 드물게 학교에 다니며, 학생들을 대표해 학교를 홍보하는 연설까지 할 정도로 당찬 인물이다. 게다가 재취 자리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선생이자 ‘아담’ 같은 숙명의 상대인 한웅기와 결혼한다. 그 사이에서 십일 남매를 낳지만 그들의 삶은 점옹처럼 당차거나 다부진 것이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둘째 아들인 ‘승원’만이 “우리 집안의 기둥”이 되어 형제들을 건사해가며 삶을 꾸려간다. 승원의 삶 역시 소설을 발표해 받는 쥐꼬리만한 원고료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버는 박봉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하늘 저울’이 되어 승원을 지켜낸다. 특히 문학에 큰 뜻을 둔 승원이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 문제를 두고 아버지인 웅기와 어머니인 점옹이 대립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학교 선생을 하며 진보적인 생각을 하던 웅기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수적인 노인의 모습이 되어 승원의 책을 모두 찢어발길 정도로 승원의 서울행을 반대한다. 그러나 점옹은 끝까지 승원의 편에 서서 승원을 웅변한다.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을 갈고닦아야 장래가 환히 트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옹의 진보적인 생각은 “조선이란 나라는 제사만 지내다가 망했다”면서 여러 조상님들의 제사를 한날로 잡아 지낸 것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점옹과 웅기의 갈등은 승원을 절망하게 만들고, 때마침 사귀던 여학생에게도 절교를 당하면서 승원은 절망을 넘어 분노에 이르게 되는데……
“요즘은 마른나무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라우.”
작가 자신이 동명의 등장인물로 분한 이 소설은 어머니에 대한 ‘깊이 읽기’인 동시에 한승원 자신의 삶과 문학 인생을 반추하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소설쓰기에 매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학생들을 가르치고, 형제들을 훌륭하게 건사해내며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소설’ 때문이었다. 한승원은 지난해 출간한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열심히 쓴 결과다. 동생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는 걸 소설 쓰면서 다 해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소설이란 삶의 동아줄을 굳게 붙잡게 해준 구원 같은 존재가 바로 어머니였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처자식과 동생들에게는 보일 수 없었던 깊고 고단한 울음도 어머니의 품안에서만큼은 마음껏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한승원은 남해안을 비롯한 바닷가 마을의 정서를 대변하는 소설가로 알려져왔지만, 이제 우리는 바다의 포용력과 생명력을 지닌 어머니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낸 소설가로 한승원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삽화가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고故 이청준 선생과 어머니의 일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이청준 선생의 손을 어루만지며 “요즘은 마른나무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며 이른봄의 생명력이 자신과 멀지 않음을 선연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성실하고 건강하게 한 생을 살아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감과 직관, 그리고 삶의 지혜…… 우리는 그것을 어머니의 뒷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