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에 이르다
/어은희
딜쿠샤에 갔다. 가끔 참여하는 역사 문화 탐방 프로그램에 속한 코스 중 하나였다. 안내 펌플릿에 기재된 딜쿠샤의 간략한 소개다.
1923년 광산기술자이자 AP 통신원으로 3.1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부부가 인왕산 성벽을 따라 산책하다가 만난 큰 은행나무 아래에 지은 집. 1942년 테일러 부부가 일제에 의해 조선에서 추방당하게 되자 타인에게 매각되었다. 이후 국가 소유 건물이 되었으나 방치되어 빈집으로 남게 되었다. 2005년 테일러 부부의 아들이 집터를 찾아내 방문하면서 우리나라 근대건축물로 주목받게 되었고 2016년 서울시는 원형 복원을 시작하여 2020년 12월에 완공하였다.
외벽이 붉은 벽돌로 된 2층 건물 안과 밖이 그들이 살던 시절 모습대로 잘 복원되어 있다. 초가집들이 대부분이였던 시절,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색다른 2층 양옥이었으니 눈에 띄고 특별했을 것이다.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쁨' 또는 '이상향'이라는 뜻으로 아내 메리가 방문했던 인도 러크나우의 궁전 이름을 따서 붙인 거라고 한다.
100년 전 경성, 젊고 부유한 서양인 가족이 그 집에서 누렸을 길지 않은 화양연화와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추방, 어쩔 수 없는 퇴락.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들의 딜쿠샤 찾기와 손녀의 애정으로 복원되기까지의 여정이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느꼈다. 그들에게 이곳은 영욕의 현장이었으며, 즐거움과 그리움 그리고 아픔과 상처가 점철된 가족사의 파노라마였을 것이다. 잊혔던 과거에서
되살아나 면면히 이어지는 삼대에 걸친 한 가문의 이야기에 나는 매료되었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200년 이상 된 할아버지의 한옥은 시대적 가치를 인정받아 조부 사후에 중요민속자료 제131호로 지정되었다. 어릴 때 그 집은 우리 형제들이 편하게 드나들며 머물던 곳이었다. 이제는 들어가서 묵는 일은 힘들고 관광지 구경하듯 <어명기 가옥> 이란 이정표를 따라가서 안팎을 휘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하는 곳이 되었다.
청년 시절 기독교인이 된 아버지는 유교 의식으로 똘똘 뭉친 문중에서 제사 지내지 않는 예수쟁이라고 핍박을 많이 받았다. 요양차 머물던
설악산 산골에 교회를 세울 정도로 독실하셨던 아버지는 집성촌에서 종손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본가에 맘편히 드나들지 못하셨다.
그래도 자식들만큼은 방학 때마다 한 달씩 데려다 놓았다. 아마도 집안 내력과 전통을 가르치려는 아버지의 의도였겠지만 그리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테다. 이런 속뜻을 짐작하신 할머니께서도 말로는 '이 마한 년!(망할 년ㆍ고성 지방 사투리)'이라고 짐짓 타박하시면서도 밤이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독다독 살뜰히 잘 거두어 주셨다. 어린 내겐 넓디넓어 보이던 기와집 구석구석이 탐험지이자 놀이터였다.
할머니가 안 계실 때면 나는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세간을 뒤져보곤 했는데 특히 뒤란 툇마루 끝 구석진 방이 가장 궁금한 곳이었다. 그 방에는 어떤 가구도 없이 사극에나 나옴직한 괴나리 봇짐을 연상시키는 하얀 광목 두루마기 보따리가 갓을 쓰고 벽에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