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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싫어 짧게 걸은 능선
봉황산(△148.5)-시어골마을-x207.8-일락산(두리봉271.9)-x211.7-새재-견준산(x232.7)-우금고개-△194.6-x245.2-x274.7-지막곡산(297.6)-주미산(381.9)-철마산(345.7)-x339.1-x224.8-x293.7-x229.4-능치고개-월성산(봉화대313.2)-수원사지-옥룡육교
거리 : 13.1km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계룡면
도엽명 : 공주
금남정맥 널티와 말미고개 사이 x339.8m에서 북서-북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바로 안골산(321.8)을 거쳐서 △302.6m 북쪽에서 철마산을 거쳐서 금강으로 그 맥을 다하는 이 능선을 분기시키고 북서쪽 능선은 복귀산(185.2) 구절산(330.9) 발티고개 밤고개 개승산(172.5)을 지나며 용성천이 금강으로 합수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구절단맥으로 부르면 되겠다
종주한 이 능선은 공주시에서 공주대간으로 이름으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고 공주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는 구간이며 큰 굴곡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으니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겠다.
◁산행후기▷
2023년 1월 15일 (일) 비 진눈개비 후 흐림
홀로산행
당초 대구 인근의 능선을 이어가기로 하고 한 달 전부터 서울역 05시05분 출발 KTX를 예매해놓은 상태였지만 주말 계속되는 비 소식에 토요일 오후 취소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충남 공주의 낮은 능선을 이어가기로 하고 고속버스를 예매해 놓지만 밤새 바뀐 일기예보는 이곳도 약간의 비가 내린단다
큰 강수량이 아니라 강남터미널로 향하는 이른 아침 추절거리며 내리는 비로 갑자기 산행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곧 후회할거라는 생각에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8시 조금 지나 도착한 공주터미널에 하차하니 이곳도 아직 가는 비가 내리고 있다
당초 생각했던 등산로가 있는지 불확실한 곳 비가 내려서 젖은 숲을 걷는 것보다 등산로가 확실한 공주시가지 일대 산 능선을 걷기로 계획을 수정하고 공주북중 인근으로 이동해서 봉황산으로 접근하려는데 머리를 적실만하게 뿌리는 비는 어느새 진눈개비로 변하고 있다
열린교회를 지나고 보련사로 오르는 넓은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니 넓은 수례 길 산책로다
▽ 비가 내리고 있는 공주시가지에서 걸음을 옮긴다
▽ 사찰로 가는 넓은 길을 따르다가 사면을 치고 오르니
▽ 넓은 산책로 남쪽으로 오른다
▽ 극동방송 송신소를 지나 올라선 봉황산 정상「공주404(?) 70.8재설」낡은 삼각점이다
▽ 남쪽 넓은 산책로를 따라 내려선다
▽ 시어골마을 저 편 일락산은 구름을 이고 있다
▽「시어골 2길」표시의 마을에 정겨운 이름 요즘 보기 어려운 샘이 있다
▽ 마을에서 돌아본 봉황산
봉황산은 조선 시대 선화당(宣化堂)의 주산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의 신사가 있었다
현재 이 산의 북쪽 기슭에는 단군을 모신 사당이 있으며「신증동국여지승람」에 봉황산은 서쪽 3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대동여지도」와「조선지형도」에도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조포란형(鳳鳥抱卵形)의 형국이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이 산기슭 언저리에 봉황이란 이름이 있어서 산기슭의 동남쪽 일원이 봉황동이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살면서 예천(醴川 감천甘泉)의 물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하며 더 나아가 천자 또는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풍수에서도 봉황은 학 거북 등과 더불어 그 형상을 길지로서 소중히 다루고 있다
봉황 지명이 있는 곳에 오동나무와 관련한 지명이 많이 나타나며 오곡동(梧谷洞)은 지명 유래가 봉황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이 산 가까이에 오동나무 골이라는 땅 이름을 만들어 놓은 것이며 이는 비보 풍수의 대표적인 예이다
▽ 해발 60m 마을길을 따르다가 (주)광성 공장 앞에서 우측 외딴집 쪽으로 산으로 붙었다
▽ 외딴집으로 막혀있지만 대나무가지를 헤치며 오르니 벌목지다
▽ 우측 흐릿한 능선으로 무조건 치고 오르니 흐릿한 족적을 만나서 아주 가파르다
▽ 해발 200m 가파르게 올라서면 북쪽 박산소 쪽 넓은 등산로를 만나면서 남쪽 넓은 길을 따른다
▽ 등산로를 만나서 남쪽으로 금방 의자가 설치된 x207.8m다
▽ 진눈개비가 내리면서 시야는 전혀 없이 圖上 일락산 정상을 향한 오름이다
▽ 두리봉 정상석에 공주경찰서1.4km↔우금치2.2km 圖上 일락산 정상
▽ 내려선 갈림길에서 한동안 완만한 능선이다가 오름이다
▽ 오르며 잠시 우측(서)으로 트인 지대 저편 방아달산(△160.1)을 본다
▽ 잠시 올라선 x211.7m에서 잠시 내려선다
▽ 새재로 내려서니 좌측 일락산1.3km를 알려주는데 북동쪽「해지기」쪽 x167.2m로 보이고 나는 우측 우금티터널1.3km로 향한다
일락산은 공주시가지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해가 지는 모양이라 하며 공주중동초등학교 뒷산인 일출산의 상대적 개념에서 따온 산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월락산 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광복 후에 일락산 으로 다시 고쳤고 현재는 두 이름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내려선「새재」에는 좌측으로 일락산1.3km 이정표 갈림길인데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의 지도에는 해지기 쪽 x167.2m고 좌측사면 잘 조성된 무덤을 끼고 우금고개로 향하는데 걷는 능선「공주대간」길로 조성되어 있어 일기불순 한 오늘 같은 날 걷기가 좋다
▽ 약208m 동쪽 성황당이 방면 분기봉에서 내려선 후
▽ 올라선 x232.7m 다음지도에 견준산으로 표기되고 국가지점번호에 우측(남서) 열미산(192.1) 분기점이며 좌측으로 틀어 가파르게 내려선다
▽ x232.7m에서 내려서려면 바위들이 보이며 바로 아래는 오래 전 채석을 하다만 흔적이다
▽ 남동쪽으로 틀어 내려서면 우측(남) 능선 분기점 직전 주미소류지1.1km 갈림길이다
▽ 우금고개로 내려서는 편안한 능선
▽ 발아래 우금티터널이 지나가는 우금고개 두리봉2.2km↔봉화대7.0km 좌측 우금치전적비0.1km다
▽ 두리봉에서 우금고개로 내려선 곳을 돌아보고 주미산2,2km를 보며 오른다
▽ 능선을 좌측으로 두고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갈림 능선 좌측 뱁새울0.6km 갈림길 우측으로 오른다
▽ 우측으로 올라선 분기봉에서 좌측으로 틀어 내려선 안부 좌우 흐릿한 족적이다
우금고개는 1894년(고종31) 동학군이 관군과 맞서 싸우다 크게 패해서 10만여 명이 죽은 곳이기도 하며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있으며 최근에는 터널이 개설되었다
이 고개의 북쪽 금학동에는 성황당이 등의 마을이 있고 남쪽 주미동에는 음달 양달 등의 마을이 있다
또한 이 고개의 서쪽에는 새재가 동쪽에는 능치고개(陵峙) 북쪽에는 봉황산(鳳凰山) 일락산(日落山) 수원지(水源池)가 그리고 남쪽에는 태봉산(胎封山) 주미소류지(舟尾小溜池)가 각각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우금치(牛禁峙)라고 표기되어 있고 우금리(牛禁里)라는 지명도 나타나고 있다
지명은 우금(牛禁)고개와 우금(牛金)고개로 모두 불리며 우금(牛禁峙)라고도 불린다
우금(牛禁)고개는 이 고개에 도둑이 많아서 날이 저물면 소 몰고 가는 것을 막았다는 데서 유래하며 우금(牛金)고개는 이 고개에서 금송아지가 나왔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 안부에서 표고차 약40m 오름이면
▽「공주488 ??복구」낡은 삼각점 △194.6m에서 우측(남)으로 틀어 계속 오름이다
▽ 좌측 수원지1.2km 갈림길을 지나고도 잠시 더 오른 평탄한 능선의 x245.2m에서 잠시 내려선다
▽ 파묘 흔적을 지나 내려선 후 오른 x274.7m
▽ 잠시 또 내려서고 뭐가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저 걷는 행위다
▽ 오름은 남동쪽으로 이어지며 올라선 圖上 지막곡산 정상은 국가지점번호 뿐이다
▽ 남동쪽으로 틀어 내려서면
▽ 내려선 안부 좌측 산림휴양관0.5km 갈림길 우금고개2.2km↔주미산0.6km 허기가 져서 막걸리 한잔 하고 간다
▽ 좌측사면이 가파르게 형성되며 오르고
▽ 약325m 지점 테크도 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 주미산 정상 x381.9m 살짝 옆 북쪽 금학저수지 쪽 능선이 분기한다
주미산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주미산(舟尾山)은 남쪽 5리에 있다"라는 기록과 함께 사공암(沙工巖)은 남쪽 3리에 있다 세간에서 이르기를 고을의 형세가 물 위에 가는 배와 같기 때문에 주미(舟尾) 정지(艇止) 사공(沙工)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라는 관련 내용이 있어 지명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며「대동여지도」에도 주미산이 표기되어 있다
사료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공주의 풍수 형국과 관련이 있다
공주는 북부 일부만 트여 있은 분지 지형으로 사람들을 가득 실은 배가 출발하기 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행주형(行舟形) 지형인데 이 산이 풍수지리로 볼 때 배 끝의 꼬리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산이 있는 동네도 주미동(舟尾洞) 또는 고물리라고 부른다고 전하며 배가 산을 넘어가 배꼬리가 걸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한편 공주에는 행주형 지형의 구성요소로 주미산 이외에 뱃머리 부분으로 배를 멈추어 두는 지점에 해당하는 정지산(艇止山)이 산성동(山城洞) 내 금성동(錦城洞)에 있고 정지산 아래엔 뱃사공에 해당하는 사공바위 선박들이 정박했던 곳에 해당하는 정자방(正子方 일명 정지방 증지방)이 있다
▽ 주미산에서 거의 남쪽 거의 평탄한 능선 좌측사면은 가파르다
▽ 살짝 내려선 곳에서 오르나 하지만 고만한 능선 바위들이 밟히고
▽ 주미산에서 0.4km「공주315 1992재설」철마산 정상이다
삼각점의 철마산에서 잠시 갈등을 하는 것은 본래 산행계획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안골산(321.8) 거묵바위산(△345.9)을 거쳐서 계룡면 소재지로 하산한다는 것 이었는데 현재까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저 걷기만하는 행위가 마땅찮아서 고민하다가 그냥 등산로 좋은 공주대간으로 짧은 거리 산행 후 일찌감치 귀가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동쪽으로 향한다
거묵바위산 쪽은 다른 능선과 연계해서 다음 겨울에 이어가도 될 것 같다
▽ 철마산에서 고민하다가 동쪽으로 약295m로 내려선 후
▽ 오름에도 친절한 이정표들이다
▽ 올라선 우측 점골이나 거사원 쪽 능선이 분기하는 x339.1m에서 막초 마시며 느긋하다가 북쪽으로 고도를 줄이며 내려간다
▽ 내려서다가 살짝 오른 약278m 우측 가마울 능선 분기점 좌측으로 틀어 간다
▽ x224.8m 오름 직전 좌측 바로 아래 임도로 내려서는 족적이 있다
▽ 봉우리도 아닌 x224.8m에서 몇 걸음 후 좌측능선이 분기하는 곳 이정목 살짝 우측이다
▽ 내려서고 다시 오르는 곳에는 졸참나무 희귀목 안내판
▽ 완만한 오름
▽ 약275m 큰골 능선 분기봉 오름 직전 봉화대2.2km고 우측으로 틀어 오른다
▽ 바위들의 x293.7m에 오르니 소나무가 보기 좋고 날씨가 좋다면 조망터 겠다
▽ 편안한 능선 그러나 난 보이지 않는 산행은 별로다
▽ 안부로 내려서기 전 약200m 두리봉7.6km↔봉화대1.4km 좌측 생태공원0.8km 갈림길이다
▽ 좌측 공주여고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틀어 내려선 안부
▽ 안부에서 북쪽으로 오르다가 동쪽으로 틀어 잠시 가파르게 오른 x229.4m
▽ 봉화대 쪽을 보며 내려서면 잘 조성된 무덤을 지나 내려선 푹 패어진 능치고개
능치고개는 공주시의 금학동(金鶴洞) 물안주(舞雁州) 새말과 신기동(新基洞) 윗말 작은요골 사이의 고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대동지지」등에서는 능현(陵峴)'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州) 동쪽 5리에 옛 능터가 있기 때문에 이름이 유래한 것인데 속설에 백제왕릉이라 전해 온다"고 되어 있고「동국여지지」 에는 주 동쪽 5리 주미(舟尾)와 월성(月城) 양산(兩山)사이에 있고 백제왕릉 이라고 세상에 알려진 옛 왕릉 터가 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능치(陵峙) 농치고개로도 불렸으며 지명은 이 고개 부근에 백제의 왕릉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능치고개에서 거의 동쪽의 오름
▽ 남쪽 x134.5m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틀어 오름이다
▽ 우측 요골 능선 분기점 갈림길도 보인다
▽ 월성산 봉화대에 올라섰다
▽ 좌측 보이지 않지만 공주시가지고 북서쪽 금강 건너 공주터미널 들이 있는 시가지다
▽ 북쪽 능선 바위 턱을 내려선 후
▽ 올라선 테크에서 동쪽 아래 철저천 인근을 본다 이제야 시야가 터진다
▽ 능선 분기점 저 앞에 정자가 있고 옥룡정수장2.1km 좌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월성산은 산의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능안리(陵案里)와 능치(陵峙)가 나오는데 이곳이 백제의 왕릉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지명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성산(月城山)은 동쪽 5리에 있다"라는 기록과 월성산 봉수는 남쪽은 이산현(尼山縣)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은 고등산(高燈山)에 응한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봉수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택리지」에서는 이 산의 형국을 기술하면서 공주의 진산으로 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주의 동남편으로 40리 되는 곳에 계룡산이 있다 곧 전라도 마이산맥의 끝이며 금강 남쪽에 있다 산맥의 한 가지가 서쪽으로 내려오다가 크게 끊어져서 판치(板峙)로 되고 다시 솟아나서 월성산(月城山)이 되었는데 공주의 진산이다"라 하여 매우 중요한 지명이었음을 보여준다
「대동여지도」에도 지명이 표기되어 있는데 산의 동쪽 기슭에 월성(月城)의 옛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 북서쪽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면
▽ 가파른 내림 약175m 안부 전면 x193.7m 쪽 옥룡정수장1.9km 좌측 수원골0.4km다 몇 장 남지 않은 15시 고속버스를 예매한지라 좌측으로 내려간다
▽ 밤나무들이 보이면서 저 앞 서쪽 아침에 올라갔던 일락산 두리봉이 보인다
▽ 옥룡주공아파트들이 보이고
▽ 수원사지
수원사는「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백제 위덕왕 대에 창건된 사찰로 여겨지며 수원사지가 있는 마을의 이름이 수원골인 점을 중시하여「삼국유사」및「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수원사 터로 인정하여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이전의 유구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고 1982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7,219㎡. 수원사에 대해서는「삼국유사」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 진자사(眞慈師)조에 “웅천주의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를 볼 수 있다”는 진자의 꿈 내용이 적혀 있어 ‘수원사’가 이미 신라의 진지왕대인 6세기 후반에는 존재하였음을 알게 하여 준다
산에서 3좌석 정도 남은 15시 고속버스를 예매한터라 수원골로 내려서서 공주터널 앞을 지나 옥룡육교 인근에서 택시로 터미널로 도착하니 소주 한 병 마실 시간이 충분하고 일찌감치 귀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