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53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5편 십자파 주막 25-1
무송이 귀양 가는 6월에는 햇볕이 이글거려 돌을 달구고 쇠를 녹일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었다.호송관들은 새벽에 길을 나서고, 무더운 대낮에는 쉬면서 20여일 걸려
마침내 맹주 땅 도령이라는 험한 고개를 넘어 십자파(十字坡)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맹주의 노성은 아주 가까웠다.무송의 일행은 주막에 들렀다.
그때 창가에 앉아 있던 한 부인이 나와서 그들 일행을 맞았다.
여자는 머리에 야생화를 꽂고, 고운 명주 치마를 입고, 연지와 분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잘 여미지 않은 치마 사이로 도화 꽃 같이 여린 허리가 살짝 엿보였으나 눈썹에는
살기를 띠고, 눈은 험상궂은 빛을 띠고 있었다.그들 일행은 땀에 흠뻑 젖은
적삼을 벗었다.호송관들이 무송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보는 사람이 없으니 칼을 잠시 벗어 놓고 술 한 잔 하시구려.”
그들은 무송의 봉인된 형틀을 벗겨 주었다.
그때 술집 여자는 독한 혼색주를 따끈하게 데워서 나왔다.
혼색주는 데울수록 취기가 빨리 온다.“자아,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두 호송관은 사발을 들어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그러나 무송은 술 사발을
마시지 않고, 그들이 안 볼 때 구석에 슬쩍 쏟아버리고 마치 다 마신 것처럼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술맛 좋구나. 정말 감로주로구나.”
호송관들은 두어 잔 술을 들이 킨 후에 모두들 취해서 나가떨어져 버렸다.
무송은 그들이 쓰러지자 자기도 재빨리 눈을 감고 거짓 쓰러진 체했다.
그 광경을 보자 술집 여자는 깔깔 웃으며 주방 안에 대고 소리쳤다.
“소이와 소삼아, 이놈들 맛이 갔다. 어서 데려가거라.”여자의 말이 떨어지자 안에서
얼굴이 흉악스러운 사내 둘이 뛰어나와 호송관들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들은 나그네들에게 독주를 주어 곯아떨어지게 만든 후 돈을 빼앗고, 사람을 잡아서
만두 속을 만들어 파는 인간 백정들이었다.소이와 소삼이 호송관들을 끌고 갔지만
무송은 무거워서 두 사람의 힘으로는 끌어갈 수가 없었다.
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우물쭈물하자 여자가 꾸짖었다.
“이런 빙충맞은 놈들, 밥이나 술을 걸귀같이 잘 처먹는 녀석들이 그깟 놈 하나
못 끌어가느냐? 저리들 비켜라, 내가 들어올릴 테니.오호, 요 녀석은 돼지같이
살이 쪘으니황소 고기로 팔기 딱 좋겠다. 말라깽이 두 녀석은 물소 고기라고 해라.
아무튼 이 녀석부터 먼저 잡고 보자.
여자는 푸른색 적삼을 벗고 붉은 치마도 벗어부치더니 팔다리를 허옇게 드러내고
무송을 힘 하나 안 들이고 번쩍 들어올렸다.무송은 정신이 말짱했지만 그들이 하는
꼬락서닐 보려고 모른 체 가만 두었다가 여자가 자기를 내던지기 전에 번개같이
여자의 목을 휘감아 쓰러뜨리고 다리로 여자의 허리를 눌렀다.
여자는 죽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요동을 쳤다.그때 소이와 소삼이 덤벼들었으나
무송의 큰 호통에 그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고 얼이 빠진 채 서 있었다.
여자는 자기 힘으로 무송을 당할 수 없게 되자 빌기 시작했다.
“에구구 다시는 안 그러겠으니 제발 좀 살려주슈.”그때 한 사내가 황망히 안으로
들어서며 외쳤다.“보시오,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저 사람을 살려주시오.
이 사람이 꼭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무송이 발로 여자의 가슴을 밟고 서서 그 사내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쓰고, 흰 적삼을 입고, 무릎 보호대를 메고, 짚신을 신고,
전대를 찬 남자였다.이마는 툭 불거지고 광대뼈는 불쑥 나오고, 얼굴에 수영을
길렀는데, 나이는 서른대여섯쯤 되어 보였다.그는 무송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공손히 물었다.“호걸은 뉘십니까?”“나는 양곡현에 사는 무송이오.”
“그러면 바로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으셨다는 그 분 아닙니까?”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존함은 일찍이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이 여자가 형장의 안 사람이오?”“네, 그렇습니다.”
무송은 그때서야 여자를 놓아주었고, 사내는 비로소 자신의 내력을 밝혔다.
- 54회에 계속 -
첫댓글 매일 수호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작가님과 이준황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