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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가 진정 전지전능하다면 신명기 21장 1~9절의 미제 살인사건 해결에 관한 규례는 어찌된 것인가?
by 꿈꾸는 알바트로스
기독교인들은 흔히들 말하곤 한다. 자기네들이 믿는 신인 유일신 야훼는 전지전능하므로 전 세계의 그 어느 누구도 야훼를 이길 수는 없으며 야훼가 모르는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다고....... 분명 그들의 경전인 바이블을 읽다 보면 야훼는 전지전능한 존재인 듯 해 보인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구절이 야훼의 전지전능함을 뽐내고 자랑하는 데에 쓰인 걸 보면 말이다.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자기네 신은 그 뿐만 아니라 무소부재하기까지 하단다. 그런 내용이 담긴 구절들을 대충 생각나는 대로 뽑아 보았다.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욥기 37:16)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시편 33:13~15)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편 139:1~4)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7~10)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15:3)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레미야 17:10)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예레미야 16:17)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0:2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2~13)
위에서 나열한 이 구절들 외에도 바이블은 일일이 세어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지면을 유대 민족의 토템 신 야훼가 얼마나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고 능력이 넘치는, 그야말로 완벽한 존재인지를 소개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 주장이 정말 맞는 것이라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야훼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해답을 줄 만큼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데 그걸 마냥 묵혀두고만 있는데서야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런데 그 전에 우선 그 대단한 능력이 사실인지에 대한 검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모르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는 위대한 야훼라니, 글쎄, 과연 그게 사실일까?
기독교인들의 말에 따르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고 하는 바로 그 바이블의 내용을 통해서 야훼의 전능성을 한 번 따져보도록 하자. 분명 바이블 여기저기엔 현대 과학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야훼의 기적이 여러 가지 나온다. 모세로 하여금 홍해를 가르게 했다는 둥, 고대 이집트에 열 가지 대재앙을 내렸다는 둥, 암컷 곰탱이 두 마리를 시켜 자신의 똘마니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던 철없는 동네 아이 마흔 두 명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는 둥 (아동학대의 수준을 한참 넘어서 고대 히브리 왕국 판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수준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뼈다귀와 해골바가지들에 생기를 불어 넣어 되살려 그걸로 좀비 군대를 만들었다는 둥, 예수가 물 위를 걷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냈다는 둥 하여간 온갖 믿기 힘든 기적들이 바이블에는 차고도 넘치게 나오며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 기적들이 야훼의 전능함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빛나는 머리 피부를 가진 엘리사 좀 놀렸다고 사람도 아닌 야생동물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판단 능력이 미숙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마치 조승희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 하듯 광란의 살육극을 펼쳐 보인 야훼란 자의 됨됨이에 대해선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그러고 보니 야훼는 32명을 살해한 버지니아 공대생 조승희보다 정확히 10명 더 죽이는데 성공했는데 믿음이 충만한 이들은 이것도 인간에 대한 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할 것인가?) 저 구절들을 읽고 있자니 확실히 신의 능력은 뭔가 인간을 뛰어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기독교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야훼가 진정 전지전능하다면 기적을 얼마나 많이 나타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지와 무능함을 드러내는 구절이 단 한 군데도 없어야 말이 된다는 것이 진정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설령 8백만 가지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무지나 무능함을 단 한 번이라도 드러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전지전능함은 성립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진정 전지전능하다면 모르는 것이나 못하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바이블을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면 야훼의 무지와 불가항력을 보여주는 구절이 심심찮게 나오는 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인 것일까? 무슨 이야기냐고? 신명기 21장 1절부터 9절까지를 살펴보자.
신명기는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40년 간 떠돌다 마침내 가나안 땅 입성을 목전에 둔 유대인들의 사회 통치에 관한 각종 규례와 법률, 그리고 종교 의식에 대하여 남긴 기록이다. 그 가운데서도 신명기 21장은 유목민인 고대 히브리 민족의 온갖 미개한 풍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읽다 보면 기가 차는 몰상식하고 어처구니없는 내용들로 집약되어 있다. (뒤로 가면 포로로 사로잡은 여성을 강제 혼인시키는 과정, 불순종하는 자녀를 부모가 돌로 쳐 죽이는 형법, 범죄자를 나무에 목매다는 규정 등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나온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하기로 하고 지나가자.)
신명기 21장 1절부터 9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지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읽어 보아도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애시 당초 온갖 구역질나고 황당무계한 히브리어 원서 내용을 읽는 이로 하여금 피부에 와 닿지 못하게 하려고 번역할 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고어체 문장을 끌어다가 의도적으로 읽기 힘든 비문 투성이로 만든 게 위에 쓰인 개역개정판 바이블이니 그럴 수밖에.
쉬운 새번역판으로 읽어보면 그나마 뭔 뜻인지 이해가 갈지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땅에 어떤 사람이 죽은 채 들판에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누가 그 사람을 죽였는지 아무도 모르면,
여러분의 장로들과 재판관들이 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시체가 주변의 가까운 성들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재어 보시오
그리고 그 시체에서 가장 가까운 성의 장로들이 책임을 지시오.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거나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정하여
항상 물이 흐르고 밭 갈거나 무엇을 심은 적이 없는 골짜기로 끌고 가서 목을 꺾으시오.
그런 다음에 레위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그리로 가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뽑으신 사람들이오. 그들은 여호와를 섬겨야 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어야 하며 온갖 다툼과 싸움에 대해 판결을 내려 주어야 하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사람에게서 가장 가까운 성의 장로들이 손을 씻되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서 손을 씻으시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하시오. '우리는 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죽는 장면도 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구하신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씻어 주십시오. 이 죄 없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죄를 묻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 피흘린 죄를 벗을 수 있소.
그래야 여러분은 죄없는 사람을 죽인 죄를 씻을 수 있소.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시오."
<그것이 알고 싶다>나 <추적 60분>에 나올 법한, 아무 증거 없이 시체만 남겨진 미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사법 기관이 취해야 하는 조치를 설명한 법률 조문이다.
위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자면 무슨 개소리 인고 하니 누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모를 그 시체의 위치로부터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이란 게 한 번도 일해 보지 않은 암송아지를 하나 데려다가 농업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물가의 미개척지로 끌고 가서 목을 부러뜨리고 그 곁의 시냇물에다 책임 구역의 장로들이 손을 씻되 꼭 그 암송아지의 시체 위에서 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으니 하여튼 야훼시여, 이 일 가지고 부디 우리에게 노하거나 날벼락 내리지 말아 주십쇼.” 하고 선언하라는 것이다. (선언이라고 썼지만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렇게 해야지만 비로소 아무런 천벌이 내려지지 않고 무사히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야훼 보기에 옳고 정의로운 행동이란다.
이쯤 읽어보고 나면 야훼의 전능함이 사실인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우선 야훼라는 작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보는 편이 더 급한 일인 듯 느껴진다.
만약 오늘날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미제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야훼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저런 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드는 경찰이 있다면 살인범 당사자보다 훨씬, 몇 갑절 더 욕을 쳐 먹어야 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아니, 대중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기 전에 체계적인 정신 감정을 받으라고 일단 정신병동에 끌려갈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어처구니가 없는 방법을 전지전능하다는 작자가 미제 살인 사건 발생 시 꼭 지켜야 할 대응법이라고 알려 주다니 이걸 과연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기독교인들은 난감할 것이다.
위 구절을 읽으며 드는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 한 번도 경작된 적이 없는 미개척지에서만 그 괴이한 암송아지 경추 골절 의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이 지구상에 그런 미개척지가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마 극지방과 툰드라, 산맥과 사막 지역 정도를 빼고 나면 웬만한 땅은 이미 다 농업의 손길이 최소한 한 번씩은 거쳐 간 곳일 텐데 그럼 매번 미제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희생제물용 암송아지 한 마리 몰고서 황량한 고비 사막이나 만년설로 뒤덮인 안데스 산맥, 혹한의 추위로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는 북부 시베리아 야쿠치야 공화국 같은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암송아지도 당연히 생명이 있는지라 자신을 죽이려 들면 살고 싶은 마음에 막 날뛰고 뿔을 휘두르며 죽지 않으려고 발악하다가 의식에 참여하던 장로들 중 한 사람쯤 머리로 받아 죽이는 일도 생길 법 한데 그런 경우엔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
한 해에도 전 세계에서 몇 만 건씩 미제 살인 사건이 발생할 텐데 그럼 그 숫자만큼의 암송아지도 죽여야 한다는 뜻인데 그럼 생계에 타격을 받은 축산업 종사자들이 항의하다 못해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을는지?
왜 희생제물이 하필 한 번도 일을 시켜 본 적이 없는 순진무구한(?) 암송아지여야만 하는가?
그런 괴상한 의식을 치른다고 해서 그게 과연 진범에게 털끝만큼의 피해라도 줄 수 있을까?
또한 유가족들은 암송아지가 죽은 것으로 진범이 잡혔다고 치고 그냥 퉁 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 전지전능한 야훼는 어째서 진범이 누구인지 뻔히 다 알고 있다면서 애꿎은 암송아지만 대신 죽게 하고 정작 진범은 꽁꽁 감추기에 급급한 것인지?
분명히 앞서 살펴본 바이블 구절들 중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시편 33:13~15)
라는 내용이 있었다. 시편 기자의 말에 의하면 하늘에서 그 누구든지 다 내려다보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일명 살아있는 천국의 CCTV 역할을 한다는 야훼는 왜 미제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이 누군지 알려주는 데에는 그토록 인색하게 구는 것일까? 왜 암송아지 목 부러뜨려 죽이는 쇼를 하면서까지 진범이 누군지 드러나는 것을 그리도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천국에 설치된 CCTV가 범행이 일어나는 그 순간 동안 잠시 회로가 나가서? 야훼가 공범이라서? 아니면 그냥 범인을 숨겨주고 경시청의 수사에 혼선을 주면서 그 광경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일하기 귀찮아서?
물론 대답은 그냥 간단하다. 바이블에 쓰인 내용은 그냥 고대 유목 민족의 야만인 같은 짐승 도축 문화가 반영된 설화 내지는 이렇다 할 수사 기법이 전무했던 고대 유목민 사회의 허접한 법률 조항이었을 뿐이며 그 내용을 직접 말해 주었다는 야훼 따위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야훼가 그리도 전지전능하고 공의로운 존재였다면 각각 지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발생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과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의 진범이 몇 십 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는 이 현실은 무어라고 설명할 것인가? 말로는 걸핏하면 공의와 정의를 떠벌이는 녀석이 정작 밤 꼬박 세워 가며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수사하는 형사들에게 진범이 누군지 알려주기는 그리도 귀찮은 일이란 말인가? 진범이 하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감춰 주고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나서 못 잡게 훼방하는 건가?
이런 괴이하고 황당무계한 구절까지 현대 사회에 적용시켜가며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기독교 측에서는 이런 류의 구절이 나올 때마다 ‘그건 당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서 읽어야 하는, 현대인들이 꼭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용도 폐기된 구절이다.’라는 식으로 야훼의 병신 짓을 합리화시키곤 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예수는 지나간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는 그 어느 세부 사항 하나도 빼놓지 말라고 엄중히 지시했는데? 성서 해석에 있어 자기네들이 예수보다 우위에 있어서 ‘이건 아니다’ 싶은 구약의 구절은 임의대로 막 폐기해도 된단 말인가? 전 세계 기독교인의 교주 격인 예수는 모세 오경의 ‘모든’ 계율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분명 다 지켜 행하라고 시켰는데?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17)
예수가 말하기를 지나간 구약 시대의 율법이 자기가 등장함으로 인해 폐기처분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란다. 저 정신 나간 신명기의 미제 살인 사건 처리 방법이 현재까지도 폐지됨 없이 유지되어야 한단 뜻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은 더 가관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19~20)
예수는 후세의 그 누군가가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구약의 율법을 지키길 그만두거나 없애거나 그럴 듯하게 고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신신당부하는 말을 남겨 놓았다. 얼마나 구약의 시시콜콜한 규례 사항까지 집착했으면 그런 이야기를 다 했을까?
신명기의 저 정신 나간 듯한 범죄 수사 기법(?)마저 바이블에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칭송을 듣는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마태복음 저자에 따르자면 저 신명기의 정신 나간 암송아지 살해 구절 역시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유효한 셈이다. 아직 천지는 없어지지 않았고 지구 종말은 오지 않았으며 모든 게 다 그대로 돌아가고 있으니 율법의 지극히 사소한 규례도 허투루 보아 넘기면 안 된다는 저 선언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저 현실과 동떨어진 구절이 거룩하고 흠 없는 신의 말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제정일치 고대 부족 사회의 미개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동시에 야훼가 전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기도 하는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전능신 따위는 없다고 떠벌리는) 말하자면 기독교 입장에서는 자폭하는 자료인 셈이다. 제 무덤을 제 입으로 파는 야훼랄까?
기독교인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야훼가 어지간히도 많이 무식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구절은 저 신명기 21장의 미제 살인 사건 해결 방안 관련된 부분만은 아니다. 바이블 곳곳에는 저 정도로, 아니, 저걸 뛰어넘는 수위를 가진 몰상식한 ‘야훼의 거룩한 명령’(?)들이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이 있다. 일일이 그걸 다 찾아보자면 식음을 전폐하고 몇 년간 그 작업에만 매달려야 할 정도일 테니 딱 한 구절만 더 짚고 넘어가 보자. 지금 소개할 구절 역시나 야훼의 빈약한 깜깜이 정보력과 무능함에서 비롯된 주먹구구식 엉터리 수사 기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수기 5장에 보면 부부 사이에 남편이 아내에게 의심이 갈 경우 간통한 부인의 혐의를 입증하는 기상천외한 재판 방법이 나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탈선하여 남편에게 신의를 저버렸고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그의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더럽혀졌거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
제사장은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의 머리를 풀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하게 하여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몸을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제사장이 그 여인에게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가 마르고 네 배가 부어서 네가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를 마르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 가서 쓰리라
제사장이 먼저 그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그 소제물을 여호와 앞에 흔들고 제단으로 가지고 가서
제사장은 그 소제물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그 여자에게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로 제단 위에 불사르고 그 후에 여인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할지라
그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의 배가 부으며 그의 넓적다리가 마르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
이는 의심의 법이니 아내가 그의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더럽힌 때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자기의 아내를 의심할 때에 여인을 여호와 앞에 두고 제사장이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
(민수기 5:11~31)
이 대목은 읽고 나서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까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가히 전근대성과 미개함의 종합선물세트 급이라 할 수 있을 만 하다. 저 본문을 읽고도 “믿습니다. 아멘! 아멘!” 소리가 나도 모르게 절로 튀어나온다면 진지하게 정신과 진료를 받아 보길 권한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일단 말하면서 쓰는 용어 자체가 아주 여성 비하의 결정판이다. 남편 말고 다른 남자와 동침한 유부녀에 대해서 무슨 비행청소년에나 쓸 법한 ‘탈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며 전체적인 말투는 간통의 책임이 전적으로 여성에게만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간통 혐의를 받은 아내에게 ‘더럽혀졌다’라는 표현까지 거리낌 없이 써 가며 여성을 마치 벌레 보듯 하는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혼인 관계 이외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성적 행동이 사람의 몸을 더럽힌다고 생각하던, 아직 의학이나 생물학이라 할 만한 것이 없던 무지몽매한 시절의 이야기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유부녀가 남편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다른 남자랑 놀아난 것을 야훼가 비난하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묻는 이가 혹여 있을까 봐 미리 말하는데 저 시대 유대인 사회는 여성의 독신주의를 허용하지 않았던 터라 결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오늘날과 같은 개념이 아닌 마치 병역의 의무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었다. 더군다나 외삼촌에게서 자신의 사촌 누이들을 아내로 ‘품삯 대신 받은’ 야곱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중근동에서는 물건이나 화폐마냥 여성이 매매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결혼도 거의 대부분이 신부 측 집안 아버지가 남편 쪽에게 자기 딸을 선물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매매혼 형식으로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그렇게 시댁에 팔려간 여자가 남편에 대한 애정 따위가 생길 리 없었을 것이다. 연애결혼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도 결혼하고 나서 몇 년 만 지나면 사랑은 다 식고 애들 봐서 의리로 달갑지 않은 결혼 생활 억지로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는데 아무런 애정도 없이 시간에 쫓겨서 그저 의무나 다 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결혼한 사이에서라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여자 측에게 남편에 대한 정절과 신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자기가 원해서 한 결혼도 아니고만. 더군다나 간통을 혼자서 저지를 수도 없고 분명 간통을 했다면 불륜의 대상이 된 남자가 있을 텐데 그 간통 대상인 남자를 찾아내고 붙잡고자 하는 의지는 위 대목 그 어느 구절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남편과의 신의를 저버린 만만한 아내만 잡아다 족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만이 드러날 뿐.
게다가 본문의 경우와는 반대로 아내 측이 남편이 간통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하는 경우에 대한 수사 방법이나 절차 따위는 바이블 전체 그 어디를 뒤져 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여자를 완전히 똥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을 남편과 시댁의 소유물로 보는 이러한 시각은 본문의 맨 마지막 부분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 (민수기 5장 31절)
남편이 설령 아내가 너무 싫어서 무고로 “제 마누라가 아무래도 바람을 핀 것 같습니다!”라고 제사장에게 고소를 하더라도 그런 남편의 무책임한 고소를 틀어막는 규정이나 제동 장치는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라면서 일부러 무고죄를 저질러도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보장까지 해 주고 있다. 무고를 하건 말건 죄는 무조건 아내 쪽에만 있을 수 있고 남편은 그 어떤 경우에도 무죄라고라? (염병할. 이게 말이여, 막걸리여?)
이러니 남편 입장에서는 그저 ‘꼴 보기 싫은데 이년, 어디 한 번 얻어나 걸려 보아라.’하는 마음에 운 좋게 얻어 걸리면 성공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고소를 남발할 수 있으니 (횟수 제한이 있다고는 안 했다.) 당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이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하나 더! 솔직히 나는 일부일처제 사고방식에 기반 한 결혼 제도 자체를 싫어하는 자유연애주의자이기 (굳이 말하자면 결혼으로 성교 파트너를 한정짓는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 입장이다.) 때문에 미묘한 감정의 문제인 간통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긴 하지만 지금 논점은 간통의 범죄 성립 여부가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실제로도 지난 2015년 2월의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판결 이래 대한민국 형법상 간통은 범죄가 아니기도 하다.)
간통을 사법 기관에서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 여부를 떠나 여기서 따지고자 하는 것은 과연 야훼가 가르쳐준 그 ‘비범한 방법’대로 하면 아내의 간통 여부를 진짜로 판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 판별 방법이 실제로 고대 유대인들 사이에선 야훼의 공정성(公正性)과 전지성(全知性)에 대한 근거로 자주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야훼는 정말로 남편이 성직자한테 재물을 갖다 바치고, 그러면 그 성직자가 성전 바닥의 먼지를 한 움큼 집어다가 저주의 쓴 물에 풀어 넣고, 그 다음 혐의를 받는 여자에게 만약 다른 남자와 잤다면 저주를 기꺼이 받겠다고 맹세를 시키고, 온갖 저주의 말이 적힌 두루마리를 물에다가 빨아서 그 ‘마법의 물’을 마시게 하는 과정을 거쳐 그걸 마신 여자가 아무 일도 없으면 무죄고 탈이 나면 유죄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지....... 온갖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득실대는 성전 바닥의 먼지를 물에다 넣어 휘휘 젓고 그것도 모자라 표면이 온통 잡스런 미생물 덩어리인 이스라엘 판 저주의 부적 두루마리도 넣어서 열심히 빤 물을 마시라고 하다니 이랬다간 없던 병도 새로 생길 지경이다. (본문에 기록된 두루마리는 당연히 종이가 아닌 양피지 두루마리다. 당시 중동 지방엔 파피루스 같은 것 말고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식의 나무 펄프로 만든 종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모든 기록을 양피지나 점토 같은 데에 의존했는데 양피지 두루마리는 포유류의 가죽을 원료로 한 그 특성상 표면이 미생물의 온상이다.) 그 ‘저주의 물’을 마시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여성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것 참, 무슨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법사들 세계관도 아니고. 아니, 마법사들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은 비록 허황되긴 했어도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상상력이라도 키워 주지만 민수기의 저 기괴한 재판 이야기는 단순히 허황된 것에 그치지 않고 읽는 이의 기분을 (특히나 여성이라면) 참 더럽게 만들고 역겨움을 불러일으키니 비교할 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모세 오경은 엄연히 공권력의 성격을 띤 당시 사람들의 법조문이자 사회생활의 지침서였다. 그 말은 곧 저 황당하고 거지발싸개 같은 여성혐오적 발상의 재판으로 인해 실제로 누명을 쓰고 처벌받은 억울한 피해자가 무수히 발생하였다는 뜻이다. 야훼는 자신이 친히 가르쳐 준 저 마법학교 입단식 같은 같잖은 재판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 여성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사죄한 적이나 있는가? 당연히 없다. 사과를 하려고 해도 실체가 있어야 하든가 말든가를 하지.
기독교인들이 제아무리 우기기를 잘 하는 뻔뻔스런 인간들일지라도 오늘날 저 야훼의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는다. 자기네들 스스로도 저 재판 방식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려고 했다간 정부 공권력의 철퇴를 얻어맞을 뿐 아니라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보도 탐사 취재 방송에서 조사한다고 들이닥치고 온통 사회적 여론의 지탄을 한 몸에 받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자기네가 구약의 역겨운 규례들을 현실에서 지키지 않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논거 자료가 되는 것 또한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다 보니 별 해괴한 말 같잖은 변명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예수가 구약의 계명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폐기했노라”고. 그래서 “과거 구약의 율법 가운데 어떤 것들은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고.
따지고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변명이다. 예수는 구약을 하찮게 여겨도 좋다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예수는 분명히 구약의 가장 사소한 규례와 계명까지도 빼놓음 없이 다 지켜서 행하라고 말했다. 위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5장 다시 읽어 보길. 예수가 모세오경에 대해서 무어라 말했는지.
사실 저런 식의 신원 미상의 범인이나 혐의 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처리 방법은 근대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지구의 어느 지역에서나 주술적 또는 미신적 힘에 의존해서 풀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생체 조직 유전자 검사도, 지문 채취 기술도, 반감기를 이용한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도, CCTV도, 블랙박스도 없었던 당시 사람들로써는 그런 미신과 마법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을 게 뻔하다. 고대 히브리인들만 저런 미개한 풍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어서 현대 영국인들의 조상 뻘인 앵글로 색슨족의 8~9세기 경 재판 법규를 보면 범죄 혐의를 받고 있되 아무 증거가 없는 피의자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끓는 솥에 넣어 달구어진 돌멩이를 손에 쥐고 한 동안 버티게 하여 손에 화상을 입은 경우 유죄, 화상 흔적이 없으면 무죄로 처리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며 (그냥 죄 짓지 않은 사람도 고문받기 싫어서 거짓말로 죄 지었다고 자백하게 생겼다.) 중세 유럽 각국에서는 마녀 혐의를 받는 여자를 일단 호수에다 빠뜨려 놓고 떠오르는지 여부를 보아 마녀 여부를 판명하는 것이 마녀 식별법이었는데 수면에 떠오르면 유죄, 바닥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못하면 무죄였다 한다. (그냥 한마디로 이러나저러나 죽으란 소리다.)
물론 오늘날 더 이상 영국 사람들은 혐의를 받는 피의자에게 달궈진 돌을 손에 쥐고 있게 하지 않으며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더 이상 마녀인지 알아보겠다며 여자를 물에다 빠뜨리지 않는다. 과학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건 그냥 미개했던 조상들의 오래 전에 지나간 흑역사이며 반면교사로 기억해야 할 대상일 따름이다. 그런데 그것과 같은 성질의 구약성서의 각종 쓰레기 같은 내용들은 그저 그것이 기독교인들이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야훼란 신이 말한 내용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아무런 지탄도 받지 않고, 미개했던 시절의 반면교사로 가르쳐지지도 않으며, 오히려 거룩하고 신령한 말씀(?)이라며 분에 넘치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사실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땐 그냥 가루가 되도록 까여야 하는 쓰레기만도 못한 구절임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분명 예전 부족 시대 사람들의 그런 미신적 풍습이나 엉터리 재판을 보고선 ‘어쩌면 사람이 저리도 미개할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미개하기로 따지자면 자기네들이 섬기는 신이 알려준 불륜녀 식별법이나 음행을 저지른 제사장의 딸을 산 채로 화형 시키는 율법(레위기 21장 9절)이 예전 바이킹들의 뜨거운 돌 쥐게 하는 재판이나 중세 시대 엉터리 마녀 식별법보다 더 미개했으면 미개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데 자신들도 그걸 알면서도 모든 이를 감시한다는 하늘의 수염 달린 영감이 두려워서 말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도 믿겨지지 않는 소설을 억지로 믿으려다 보니 진짜로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이 통째로 마비되어서 자기가 지금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모든 종교의 신도들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머릿수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것이 진리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그런 류의 역겨운 구절도 함부로 욕해선 안 된다는 어떤 기독교 옹호자의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글쎄다. 그런 논리로 따지자면 만약 모종의 이유로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진영을 멸망시키고 전 세계를 하켄크로이츠 깃발 아래 놓는 데 성공한 경우라면 함부로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당(NSDAP) 욕을 하는 것도 안 될 일이겠고 중화인민공화국이 G2 상태를 뛰어넘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후 정복전쟁에 나서 전 세계를 자신들의 점령지 삼아 우리가 중국 공민이 되는 날에는 습근평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비난은 결코 입에 올려서는 안 되겠구나.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식의 논리는 전형적인 다수결의 오류에 기반 한 잘못된 결론이다.
그냥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는 있을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이블 내용이 사실이라고 여기며 자기 기만적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지 어쩐지 여부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만 중요할 뿐이다.
야훼의 실존 여부를 떠나서 최소한 야훼가 전지전능하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만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기독교인들이 야훼의 전지전능함의 근거로 내세우는 바이블 자체가 그까짓 증거 인멸하고 도주한 살인범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야훼의 무식함과 무능함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체면은 서질 않고 해서 애꿎은 암송아지만 살인범 대신 잔인하게 죽이라고 자기가 선택한 백성들에게 시키고 자빠졌다. 그냥 일반적인 평균 수준의 인간이 한 고을을 다스려도 저보다는 잘 다스리겠다.
무능하면 착하기라도 해야지 유대인들의 신 야훼는 저 엉터리 재판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날마다 여자만 달달 볶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신, 심술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는 신인데 이미 상당한 진보를 이루어 낸 현대 사회가 그런 신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여성혐오를 금과옥조마냥 신조로 여기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런 가치관을 강요하는 신이라니, 여성의 한 사람으로 참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 여성혐오적 신이 자신의 딸랑이들과 아첨꾼과 행동대장들의 사후 복지를 위해 만들어낸 천국은 얼마나 끔찍한 곳일까? 남녀평등 사상을 가진 사람이 과연 단 한 사람이라도 거기에 있을 수나 있을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이 욕을 먹거나 조롱을 당할 때마다 야훼의 권능이 무섭지 않느냐고 걸핏하면 불신자들에게 저주하듯이 외친다. 활활 타는 유황불 지옥을 예비해 놓고 있는 전능자가 무섭지 않느냐고? 그 좁은 팔레스타인 지방 안에서 달아나 봤자 벼룩인 살인범 하나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애먼 무고한 여성들만 간통녀로 누명 씌워 모든 유대 백성들의 대대손손 저주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엉터리 재판관 주제꼴에 권능은 무슨 놈의 권능이고 사후의 심판은 다 무어란 말이냐? 신앙인들은 그런 멍청하고 무기력하며 편협하고 포악하기까지 한 신을 섬기는 자신들의 수준이나 한 번 돌아보고 부끄러운 줄이나 깨달으면 오죽 좋으련만.
2015년 10월 22일
첫댓글 개독신 여호와 놈은 흠없고 보기 좋은 처녀에 집착증을 가진 변태 성욕자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소고기를 찾을때도 흠없고, 곱게 자란 암송아지만 먹으려는 거고~
추잡하고 더러운 신이죠.
그런 저질 수준의 잡신을 숭배하고 있는 개독놈들의 정신 상태가 어떨지는 당연한거고...
생각이 여자라면 개독경을 조금이라도 읽어 보면 골수 반기독인이 되어야 정상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개독에 미쳐있는 여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건지... 황당하죠~
개독에 미쳐있는 여자들은 한마디로 골빈 여자들 인 거겠죠~ㅎㅎ
그러게요. 여자라면 여성 혐오하는 대상을 미워하고 멀리해야 당연하건만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여자들이 신도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지요.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보면 선배 언니들이나 주위 동기들 대부분이 여자인데도 (압도적인 여초 학과임) 신앙심이 독실한 경우가 그 반대보다 더 많아요.
예전에 이런 모순적인 종교계의 여초 현상을 분석한 글도 쓴 적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 같아요. 찾아내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천치무능의 극치 여호와놈의 내용은 창세기 부터 줄줄이 이어지고 있죠.
에덴 동산에 선악과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한심한 놈이죠~ㅎㅎ
따먹어라고 에덴 동산 한 가운데 선악과를 둔 거라 할 수 밖에 없을 거 같은데...
이놈은 자기가 관리를 잘 못해서 따먹었는 줄도 모르고서, 선악과 따먹었다고 분노하면서 온갖 저주를 다 퍼부어서 아담과 하와를 쫒아 내어 버리죠~
정신 병자도 저렇게 한심한 정신 병자도 없을 겁니다.
노아 방주는 또 어떤가요...ㅎ
자기 형상대로 만든 인간이 자기 능력을 능가할까 싶어 쫄아서 인간들을 멸하죠~
인간들이 그렇게 번성하게 될 줄도 몰랐던 놈이 무슨 전지전능하다는 건지....ㅎ
자기가 만든 인간들에게 위협을 느끼지나 않나... 그런 인간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도 없지...
고작 한다는게 성질이나 내면서 모조리 수장 시켜 몰살 시키는 수준 밖에 안되는 한심한 놈이죠.
기본적인 인간들 보다 자기 감정 조절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정신 병자 수준 밖에 안되는 잡귀를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숭배하고 있으니...
저런 신을 맨날 추종하고 있으니, 개독놈들도 정신병자가 되어가는 건 당연한 거겠죠~!!
그러고 보니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도 야훼의 멍청함과 무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네요.
사이코 같은 됨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 덤!
뭔 듣보잡같은 성경구절같이생긴거 뭐죠?
저 성경구절같은거 님이 지어내셨어요?
창의력 참 뛰어나시네요^^
당신은 뭔데 글과는 상관 없는 창의력이 어쩌니 저쩌니 시비를 걸고 그러시나요?
본인이 떳떳하지 못해서 한국말도 아닌 일본말로 아이디 만들어서 가면 뒤에 숨기나 하고 말이죠.
스스로가 떳떳하면 한국말로 저게 무슨 뜻인지 풀어서 공개해 봐요. 어디 한 번...
@상자 두 개 싫어요 전 일본어 닉 쓰고싶으니까 쓰는겁니다만?
그리고 전 해석할 생각도 없어요 ㅋ
그렇게까지 해석을 원하시면 님이 하시지 왜 저한테 하래요?
님은 제가 무슨 일본어 번역기인 줄 아시나보죠?
거기다 제 닉은 아이디가 아닙니다만?
어디까지나 닉입니다만?
그리고 제 닉은 원래 제가 처음에 지었을 때부터 일본어로 지었기 때문에 바꾸기 싫은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거기다 남이아 닉을 어떻게 짓든 님이 왜 껴드시는지? 낄끼빠빠좀 하시죠?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거 재밌으신지?
거기다 전 시비건 적 없고요 님이야 말로 남의 댓에 선시나 걸지마세요
아주 인성 클라스가 오지고 지리는 부분 ㅇㅈ? ㅇㅇㅈ ㅋㅋㅋㅋㅋ
철병거에도 두려워하는 자가 전지전능?
철병거라는 표현에 웃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