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인제 여행........................조선일보에서 데려옴
남녘에서 자라는 북방의 나무… 만해의 詩·國·佛을 품은 백담사. 모순의 풍경 속에서도 볕은 평등하더라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감정을 이끄는 동기는 계절마다 다르다.
봄엔 들뜬 마음으로 떠나되, 가을엔 적요한 마음으로 떠난다. 낙엽 지고 스산한 바람 불 때
떠나는 마음이 연둣빛 새싹 돋고 봄꽃 필 때 떠나는 마음과 같을 수 없다.
자연히 여행의 방식도 달라진다. 가을에 훌쩍 떠나는 여행은 부지런 대신 여유를, 복작거림 대신 한적함을 품게 된다.
많은 곳을 찾기보다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한두 군데면 족하다.
인제의 이른 겨울은 그 조건을 충족한다. 국내 최대 자작나무 숲과 만해 한용운의 흔적이 거기 있다.
자작나무는 대부분의 활엽수가 단풍의 절정을 지나 황량할 때 홀로 빛난다.
백담사 가는 길은 한적해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태생과 겪어온 세월은 다르나, 인제 자작나무 숲과 백담사는 자아내는 분위기가 닮았다.
고요 속에 정갈해진 감정들이 높은 순도로 조응하거나 서로 부딪친다.
이를 풍경이라는 창(窓)으로 오롯이 지켜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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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 어둠이 서로 스며 구별되지 않는 기슭에서 자작나무는 홀로 빛난다. 그 빛은 적막을 품어 눈부시지 않고 다만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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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담사 앞 계곡은 간절함으로 빼곡하다. 돌 하나에 소망 을 하나씩 담은 돌탑이 마른 계곡의 빈자리를 채운다.
◆하얗게 출렁이는 환영, 자작나무
인제군 남면 수산리 마을 들어가는 길은 깊다. 면 소재지를 지나 산 넘는 굽잇길에 접어들면
지나는 차 한 대 없이 고요하다. 그 고요의 풍경에 더해지는 건 상록수와 더불어 출렁이는 낙엽송,
그리고 소양호 끝자락이다. 낙엽송과 소양호는 시간 따라 다른 풍경을 선보인다. 낮에 출렁이는 낙엽송은
색의 환영처럼 햇살 받아 금빛으로 아른거리고, 소양호는 새벽이면 하얀 물안개를 피워 올린다.
낙엽송도 소양호도 길과 멀어질 무렵 표지판을 하나 만난다. '여기부터 수산리입니다.'
수산리란 단어는 자작나무 숲과 바꿔도 무방하다. 길을 깊숙이 파고들면 그 끝에 수산리가 있고,
마을을 감싼 응봉산이 있으며, 계곡마다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가 있다.
여기서 고요는 한 단계 더 침잠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수산리라는 마을의 위치가 오지에 가깝다. 한때 번듯한 초등학교를 갖췄던 마을은 1973년 소양강댐이 들어서며
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연기 피워 올린 집들은 하나의 집이 개별의 마을이듯 제 간격을 갖추고 띄엄띄엄 서 있다.
응봉산은 그 집들을 모두 감싼다. 기슭마다 집을 품은 응봉산이 사방을 둘러, 수산리에서 해는 늦게 뜨고 일찍 진다.
그 짧은 시간, 새는 울며 날고 소는 여물을 뜯고 개는 외지인을 향해 짖는다. 인적 드문 응봉산에서
새와 소와 개가 내는 소리가 메아리치다 잦아든다.
응봉산이 품은 건 마을만이 아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자작나무가 기슭마다 흰빛으로 출렁인다.
전체 2000㏊의 조림지역 중 600㏊에서 자작나무 90만 그루가 자란다.
본래 자작나무는 북방의 나무다. 북위 45도 위에서 잘 자란다. 백두산이 북위 41도다.
그보다 아래인 한반도 남쪽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드물다.
다시 말해, 남방의 자작나무는 대개 심어 기른 나무다.
응봉산 자작나무도 사람이 길렀다. 1984년 응봉산 도유지를 동해펄프가 매입해 2년 뒤 기존의 나무를 베어내고
자작나무를 심었다. 펄프 재료로 쓰기 위해서다. 자작나무는 빨리 자라는 데다 고급 펄프의 원료로 쓰인다.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 자작나무는 밑동 지름 20㎝에 키는 20m에 이르게 성장했다.
응봉산 자작나무 숲을 제대로 보려면 임도(林道)에 올라야 한다. 흙길과 시멘트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임도에서 자작나무의 마력은 확연하다. 걸어서 자작나무 숲을 스쳐 지날 때 한데 모인 자작나무는 환영 같다.
빛과 어둠이 서로 스며 구별되지 않는 기슭에서 자작나무는 하얗게 제 존재를 알린다.
그 흰색은 주위의 소리를 빨아들여 적막하고, 스스로 적막함을 못 이겨 금방이라도 어둠에 묻힐 것만 같다.
이 느낌과 상관없이 자작나무는 끝내 하얗게 빛나, 자작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모순된 감정을 자꾸만 일깨운다.
응봉산의 임도는 가파르게 치고 오르다 8부 능선에서 수평으로 나아간다.
거기서 시야는 확 트여 대단위의 자작나무 숲이 낙엽송, 소나무와 함께 출렁인다.
흰색과 금빛, 녹색이 한데 어울린 풍경은 인제 응봉산의 백미다.
해의 방향 따라 색은 때로 등불처럼 환하거나 그림자처럼 아른거려,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
해서 응봉산의 풍경은 두 가지 선택안을 제시한다. 오래오래 머물거나, 다른 시간에 다시 찾거나.
◆서정과 지조와 자비가 포개진 길
만해 한용운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설악산 기슭에 있다. 만해 마을과 백담사(百潭寺)다.
만해 마을은 2003년 8월 건립됐다. 만해문학박물관을 비롯해 문인의 집·만해학교·강당·운동장 등을 갖췄다.
설악산 기슭에 낮게 엎드린 만해 마을은 회색 콘크리트벽으로 묵중하다.
박물관에서 만난 한용운은 모순된 의미에서 자작나무를 닮았다.
'님의 침묵'의 나직한 목소리가 "백척간두 진일보, 홀연히 생각하였다. 나는 적어도 한 푼 없는 맨주먹으로
세계 만유를 떠나지 않느냐"('북대륙의 하룻밤')고 쓸 때, 두 목소리는 쉬이 겹치지 않는다.
1919년 독립선언문의 민족대표 33인으로 서명해 투옥된 흔적인 수형기록부에서
한용운의 눈빛은 이글거린다. 그러나 창 밖에 서 있는 한용운의 동상은 한없이 자애롭다.
독립운동가와 승려와 시인이라는 정체성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독립된 이미지로 박물관의 어두운 공기를 맴돈다.
그 이미지들은 백담사 가는 길에서 비로소 화해한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마을버스가 다녀
걷는 이 거의 없다. 해서 외려 한적하고, 걷기 좋다. 7㎞, 편도 1시간 40분 거리다.
이 길은 100년 전 한용운이 걷던 길이다. 시인 한용운도, 독립운동가 한용운도,
승려 한용운도 모두 그 길을 걸었다. 서정과 지조와 자비가 함께 걸었던, 혹은 차곡차곡 쌓여간 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안다. 세 심성(心性)이 어떻게 겹칠 수 있는지. 계곡을 넘거나 따르며,
고개를 넘거나 능선을 걸으며 이어지는 길은 적적하다. 길을 걷는 마음은 한없이 침잠해가다
골을 훑고 가는 바람에 순간 서늘해진다. 물 적은 백담계곡은 하얀 거암(巨巖)의 힘으로 생기를 북돋는다.
해서 적적함으로 서정을 품은 마음은 서늘한 바람에 곧추섰다가, 자연의 생기로 부드러움과 힘을 동시에 얻는다.
그 길 끝에서 맞이하는 건 계곡을 수놓은 간절함이다. 돌 하나에 소망을 하나씩 담은 돌탑들이
계곡 따라 숱하게 서 있다. 이들을 수심교(修心橋)로 넘어서야 비로소 백담사를 만난다.
백담사의 터는 넓다. 길을 압박했던 산세는 멀리 물러난다. 길에 들지 않던 볕이 백담사에선 환하다.
기실 백담사 역시 모순된 공간이다. 만해 한용운이 깨달음을 얻었으되, 한 전직 대통령 역시 여기 머물렀다.
만해 한용운 기념관과 함께 대통령이 있던 요사채는 '화엄실'이란 이름으로 엄연하다.
그 모순과 상관없이 볕은 공평해, 기념관에도 화엄실에도 똑같이 볕이 든다.
때문에 백담사를 보고 돌아 나오는 마음이 들어갈 때와 동일하지 않다.
그 마음은 백담사에 세워진 숱한 시비 중 한 시비에 쓰인 글귀와 궤를 같이한다.
고은의 시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첫댓글 응봉산 자작나무 숲을 가 보고 싶은데 길을 확실히 몰라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스크랩을 막아 놓으셨는데 조선일보 며칠자에 나온 기사인지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