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s지의 역사-2]
‘Tycoon’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잡지는 ‘식자’를 뜻하는 힌두어 ‘Pandit’와, 영광을 뜻하는 그리스어 ‘Kydos’에서 유래한 ‘Kudos’라는 단어를 명예학위의 뜻으로 사용하여 이를 대중화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Time’지는 많은 신조어를 개발했다.
두 명의 대학생이 꿈꾸었던 잡지의 계획은 전국적인 잡지로,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적인 잡지로 성장했다.
감염병으로 해든이 창간 6주년을 1주일 앞두고 1929년 31살도 되기 전에 사망했을 때 그의 주식 가치는 100만 달러가 넘었다.
슬픔에 잠긴 헨리 루스는 다음 호의 첫 번째 쪽의 박스 고시란에서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간결하면서도 매우 함축적인 글로, 이는 ‘Time’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의 천재성의 산물이며 뛰어난 자질의 후계자인 ‘Time’지는 브리턴 해든의 일대기나 찬사를 새삼 기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헨리 루스가 계속 발전시킨 ‘Time’지는 정기간행물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Fortune’지는 1930년 2월에 첫선을 보였다. ‘Time’지의 제한된 비즈니스란에 직원들이 매주 쏟아내는 수많은 자료를 전부 소화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1928년에 헨리 루스는 남는 자료를 새로운 잡지를 발간하여 이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루스가 ‘Fortune’이라고 명명한 잡지는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다.
잡지의 면 수, 구독자 수 및 다루는 범위가 증가함에 따라 ‘Fortune’지는 보도의 정확성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숫자의 홍수 속에서도 잡지는 정확성을 잃지 않았다.
정확성에 자신감을 가진 잡지 편집자들은 1937년 5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잡지에서 발생한 실수를 지적한 독자에게 실수 하나에 대하여 5달러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런 제안에 독자들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잡지사가 금액을 2배로 늘렸을 때 거의 1,000여 통에 달하는 편지가 쇄도했다. 편집자는 두 개의 중대한 오류와 23개의 소소한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40개의 오차에 대해서는 4,000달러의 현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잡지사는 이내 이 제안을 철회했다.
독자의 편지를 읽고 확인하고 답장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1923년의 ‘Time’지, 1930년의 ‘Fortune’지, 1936년의 ‘Life’에 뒤이어 헨리 루스의 출판제국은 잡지 출판 역사상 또 하나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것이 바로 1954년의 ‘Sports illustrated’와 1973년의 ‘People’지이다. 두 잡지는 진부한 스포츠 저널리즘과 연예 잡지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수준도 높이고 구독자 수도 늘렸다.
Briton Hadden(1898~1929)
1948년의 Henry Luce(1898~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