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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다녀오시는테치!" "오늘도 빨리 오시는테츄!"
든든하게 배를 채운 미도리는, 역시 배가 통통해진 자식들의 배웅을 받으며 골판지 문을 나섰다. 곤히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개운하다. 피로가 싹 가시도록 오래 자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음식 걱정 없이 아침부터 배를 실컷 채운 건 또 얼마만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미도리의 눈시울이 아려왔다.
독라는 벌써 일어나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딜 가는데스까?"
"오늘은 함께 물을 구하러 가는데스."
빈 2L 페트병 두 개를 보여주며 미도리가 말했다.
은밀성으로는 만점인 자리에 위치해 있는 미도리의 집도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수돗가가 멀다는 것이었다. 미도리의 전 주인이 집을 만들어줄 때 한 가지 간과한 점은 실장석은 음수대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30cm에 겨우 닿는 실장석이 음수대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으로 치면 3층 건물 옥상에 수도꼭지가 달린 격. 분노한 실장석들이 똥을 던지지만, 그 똥마저도 닿지 못하는 것이 음수대의 높이이다.
그렇다면 공원의 실장석들은 어디서 물을 공급받는가?
답은 중수도 수도꼭지다.
가뭄 날 화단에 물을 주기 위해서, 더운 여름날 공원을 식히기 위해서, 맨발로 돌아다니던 어린이들의 발을 씻기 위해서 등등의 연유로, 공원에는 사람 정강이쯤 오는 높이의 수도꼭지가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었다. 식수용은 아니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사는 실장석들에게 그 정도가 대수일까. 분수가 멎은 지 오래인 두루마리 공원의 실장석들에게는 그 수도꼭지가 유일한 수원이었다.
물론 아무리 낮다 한들 실장석의 손이 닿기에는 다소 높았지만, 경이롭게도 두루마리 공원의 실장석들은 돌멩이를 쌓아 발판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극복했다. 탈수로 인해 단체로 죽어가던 와중 위기 앞에서 발현된 기적적인 집단 지성의 결실이다.
아무리 수라도인 두루마리 공원이라도 물을 받을 때만큼은 질서를 지켰다. 수도꼭지 앞에 와서는 최대한 귀엽게 아첨하고 물을 튼다. 물을 다 받고 나서는 반드시 수도꼭지를 잠갔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실장석은 곧바로 붙들려 두드려 맞았다. 이들은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귀여운 자신의 아첨과 똑똑한 자신의 행동에 매료된 수도꼭지가 물을 헌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가당찮은 믿음이 언제부터 전해져 왔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보면 썩 괜찮은 습관이다. 이미 반쯤 버려진 공원, 물이 낭비되는 조짐이 보인다면 언제 단수가 이루어져도 이상할 것 없기 때문이다.
미도리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꼭지까지는 실장석의 걸음으로 걸어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장정이다. 그것도 맨몸으로 가는 것만 그 정도지, 몸집만한 크기에 물이 꽉 찬 페트병을 밀고 끌고 굴리며 오려면 반나절은 꼴깍 지나가고 온몸은 녹초가 된다. 체력이 고갈된 사이에 다른 실장석이 습격한다면 꼼짝없이 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 단지 물 한 병을 뜨기 위해서도 실장석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집에 있는 페트병은 넉넉하게도 2L짜리 총 3개였다. 하나를 꽉 채우면 일주일은 넘게 쓸 수 있다. 한병 반 정도의 물이 남아 있어 평소라면 물을 뜨러 가지는 않았겠지만, 독라가 있는 지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평소라면 한 병밖에 떠오지 못할 물도 오늘은 두 병이나 떠 올 수 있다. 일부러 반 병 남은 물까지 자들과 실컷 나눠 마시고 세수마저 한 다음, 빈 병 두개를 갖고 나왔다. 세 병 가득 물을 담아 놓고, 중간 중간 봄비가 올 때마다 빗물을 채워 넣으면 이번 봄은 더 이상 물을 뜨지 않고도 보낼 수 있다. 여름에는 비가 자주 오니까 역시 물 걱정은 없다. 물을 뜰 시간에 최대한 보존식을 마련해 놓으면 여름도 풍족하게, 가을도 풍족하게, 마침내 큰 고비인 겨울마저 문제없이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자꾸자꾸 생각을 뻗어 나가며 공원을 자신의 자로 뒤덮을 망상에 빠진 미도리의 입이 귀에 걸린다.
독라는 독라 나름대로 생각에 잠겨 있다. 어제부터 머릿속 한편에 켕기는 공원 우두머리의 정체. 우두머리가 '독라'를 싫어하는 이유. 실장석들이 '독라'를 두려워하는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갈피가 잡히지 않지만, 불길한 기분은 가시지를 않는다.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동시에 모르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말없이 한참을 걷자 어느덧 수돗가에 와글와글 모인 실장석들이 보였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벌써 수십 마리나 모인 모양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는 질서정연하게 순서대로 물을 받던 수돗가인데, 오늘은 바글바글한 실장석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질서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다들 수도꼭지 주변에 우글우글하게 모여들어 뭐라 뭐라 아우성치고 있었다.
더욱 가까이 다가가니 실장석들의 처참한 모습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꼭지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아첨하고 있는 녀석,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는 녀석, 네 발로 엎드려 위협하는 녀석, 고함을 지르며 투분하는 녀석, 철제 수도꼭지를 토닥토닥 때리다가 부어오른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녀석...
"데스웅~ 데스웅~ 와타시의 아름다움은 초목을 감동시키는데승~ 수도꼭지는 항복하고 물을 줄 수밖에 없는 데스웅~"
"데샤악! 때려눕히기 전에 물을 내놓는데스! 매운 맛을 보여주는데샤!"
"와타시의 운치를 맞았으니 수도꼭지는 와타시의 노예인데슷! 노예는 고분고분히 물을 내놓는데샷!"
"이거나, 먹는데샤! 한대 더, 헥, 맞는데샤! 와타시의, 헥, 헥, 주먹맛이, 헥..."
실장석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접근하자, 미도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까운 한 마리를 붙잡고 미도리는 다급하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스까?"
"보면 모르는데샤! 물이, 물이 어제부터 안 나오는데스!"
"물이 안 나온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데샤!"
"직접 가서 보란데스! 우린 다 끝난데스! 집에는 물 한 방울도 남지 않았는데, 이제 어떡하라는데스! 오로롱!"
공황 상태에 빠진 실장석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두건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애가 타는 건 미도리도 마찬가지다. 아침까지만 해도 속 편히 물을 들이켜고 왔는데 삽시간에 날벼락을 맞았다. 집에 남은 물 한 병은 아무리 아껴 써도 2주일이면 동난다. 그 안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아니, 당장 내일부터라도 물을 먹지 못해 포악해진 실장석들 때문에 집 밖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미도리는 페트병도 내던지고 울음을 터뜨리며 수도꼭지로 달려갔다. 몰려든 실장석들을 뚫고 수도꼭지를 돌려보지만 끼릭끼릭 헛도는 소리만 들릴 뿐. 늘 들려오는 촤악 하고 물 쏟아지는 소리는 감감무소식이다.
"데, 데 데스웅~ 데승데스우웅~ 데숭~"
넋이 나간 미도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귀엽게 아첨해 보지만 수도꼭지는 묵묵부답이다. 더, 더, 더 귀엽게 아첨해야 한다.
“테츙~ 테츙테칭테츄웅~“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자실장의 목소리를 흉내 내 아첨하는 미도리였지만 물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레츙~ 레츙~ 렛훙! 수도꼭지상, 프니프니해주는데훙~"
주변의 실장석들은 이미 자실장을 지나 엄지, 구더기의 흉내까지 내면서 수도꼭지에게 간청하고 있다. 마치 PT 8번을 하듯 누운 채 다리를 치켜들고 좌우로 뻣뻣하게 흔들며 조르는 그 모습은 인간이 봤다면 배꼽을 잡고 웃을 모양이다.
"테츙테...데샤아아! 당장 물을 내놓아라데스! 주인님을 불러 달마로 만들어버리겠다데스!"
마침내 광분해 수도꼭지를 부여잡고 흔드는 미도리의 머릿속에 묘안이 스친다.
'다른 곳에서는 분명히 물이 나올 것인데스!'
다른 수도꼭지가 공원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미도리지만, 그런 염려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됐다. 집어던졌던 페트병을 주워들고 아무데로나 달려 나가려는 미도리. 하지만..,
"데에, 데엑...혹시 여기는, 데엑, 물이 나오는데스까?"
미도리의 소망은 깔끔하게 날아갔다. 페트병을 든 몇 마리의 실장석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초췌한 몰골로 나타나 미도리에게 말을 걸었다.
"무, 무슨 소리인데스? 이곳만 물이 안 나오는게 아닌데스까?"
"어제부터 온 공원을...돌아다닌데스. 한 군데도... 물이... 나오는 곳이... 없는데, 데에..."
실장석은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풀썩 쓰러져 기절했다.
"데, 데, 데에엥! 데에에엥!"
미도리는 페트병을 투둑 떨어뜨리고 풀썩 주저앉아 아이처럼 통곡했다.
"데에엥! 데에엥!"
"분명 잘 찾아보면 물을 구할 수 있을것인데스."
미도리는 위로하는 독라에게 달려들어 헐떡대며 울부짖었다.
"뭐라도 해보는데스! 오마에는 산실장이잖은데스까! 산실장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히 알 것인데스!"
"와타시는 저 수도꼭지라는 것도 오늘 처음 본데스."
"와타시는 모르는데스! 몰라몰라데스! 책임지고 뭐라도 해보는데스! 데갸아아!"
독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수도꼭지를 향해 실장석 무리를 헤치며 다가갔다. 넋두리를 늘어놓던 실장석들이, 수도꼭지로 다가가는 독라를 보고 헉 하고 숨을 멈춘다. 눈에는 공포의 빛이 잠깐 어리지만, 저 독라가 뭔가 해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공포감을 몰아냈다.
웅성웅성하며 길을 터주는 무리들 사이에서 기대에 찬 목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보스가 나선데스!" "보스가 뭔가를 해 보려는 것 같은데스!"
"와타시는 보스가 아닌..."
수도꼭지에 손을 올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독라는 우뚝 멈췄다.
아하. 그런 거였군.
멍하니 서있는 독라에게 수십 마리 실장석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된다. 독라는 정신을 차리고 수도꼭지를 돌려 보지만, 아무리 돌려 보아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내려오는 독라의 모습에 실장석들은 다시 엉엉 울며 발버둥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라는 황급히 미도리에게 되돌아갔다. 벌써 행복회로에 빠진 미도리는 양손에 든 가상의 콘페이토를 날름날름 핥으며 기뻐하고 있다.
철썩
"데베게엑!"
따귀를 얻어맞고 소리를 지르는 미도리를 부여잡고 독라가 외쳤다.
"보스! 보스는 어디있는데스까!"
"데에?"
"공원의 우두머리 말인데스! 와타시를 빨리 우두머리에게 안내하는데스!"
미도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데, 데데데...“
겁먹은 미도리는 또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데에엣!"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미도리의 눈은 초점을 잃은 게 아니라, 독라의 어깨 너머 뒤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3녀가 말한 세 녀석들! 바로 저 놈들인데스!"
미도리가 치켜든 팔 끝을 따라 독라는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랗고 투실한 실장석 세 마리다. 녹색 옷과 갈색 머리는 매일 공들여 씻은 듯 깨끗하고 보송보송했다.
"거기 독라, 보스가 오마에를 보고 싶어하는데스."
가운데의 실장석이 입을 열었다. 미도리는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중얼거렸다.
"다 끝난데스...“
"아직 멀은데스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거 입 한번 무거운데스."
싱글거리며 말하는 독라의 옆구리에 주먹이 꽂힌다. 들실장 치고는 손맛이 꽤 맵다. 독라는 얻어맞은 옆구리를 문지르며 주위를 계속 살폈다.
걸어도 걸어도 공원은 끝이 없었다. 우두머리의 부하 한 마리는 독라를 붙들고, 두 마리는 기절한 미도리를 들쳐 메고 걷고 있다. 멀리 뒤쪽에서 호기심 많은 실장석 몇몇이 조심스럽게 뒤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몇 십 분 전,
"와타시는 아무 상관 없는데스! 수돗가에서 처음 만난 사이일 뿐인데스우!"
"독라와 노란 리본의 핑크색 원사육실장이 같이 다니는걸 본 실장석이 수두룩한데, 자꾸 헛소리하면 한 대 맞을 거 두 대 맞는데스."
"오, 오로롱! 왜 와타시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스!"
발버둥을 치며 난동부리던 미도리는 안면에 몇 차례 주먹이 꽂히자 축 늘어져 움찔거렸다.
"저 독라는 어떻게 하는데스?" "도망가면 골치아픈데스." "귀찮으니 저놈도 기절시키는데스."
셋이서 작당하는 모습을 보고 독라가 능글맞게 말했다.
"와타시는 꽤 무거울 텐데, 셋이서 어른 둘을 옮길 수 있겠는데스까?"
"쓸데없이 입 놀리면 좋은 꼴 못 보는데스." 왼쪽의 실장석이 험악하게 말했다.
"좋은 말 놔두고 왜 이렇게 무섭게 구는데스까? 와타시도 마침 오마에들 보스를 찾던 참이었던데스. 도망칠 생각 없으니 서로 힘 빼지 말고 좋게 좋게 가는데스."
세 마리 실장석은 말없이 독라를 노려보았다.
"수작 부리려 들면 가만 두지 않는데스."
독라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 붙들어 매고 어서 출발하는데스."
네 마리와 기절한 한 마리 실장석은 길을 벗어나 공원 중심부, 울창한 숲 속으로 진입했다. 계속 걸어 들어간 끝에, 이들은 마침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빛나는 우두머리의 집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나무 옆에 붙어 있는 거대한 파란색 박스집이다. 어찌나 큰지 인간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물이 샐 만한 틈이란 틈은 비닐로 꼼꼼히 틀어 막혀 있고, 외벽은 수많은 장신구와 잡동사니로 난잡스럽게 치장되어 있다. 저 많은 물자를 어떻게 이곳까지 옮겼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서 들어가는데스."
독라를 붙들고 가던 실장석이 재촉했다.
"가기 전 잠깐 하나만 묻는데스."
"안 되는데스."
"와타시는 어떻게 되는데스까?"
"독라는 죽는데스."
"와, 와타시는 어떻게 되는데스까!" 어느새 깨어난 미도리의 목소리다.
"물론 오마에도 죽는데스."
"오로로옹!"
"오마에의 보스도 혹시 와타시와 같은 독라 아닌데스까? 그러면서 독라를 이렇게 미워하는 이유가 오마에는 궁금하지 않은데스까?“
독라가 외쳤다.
"저 나불대는 아가리를 부숴놓지 않으면 안되겠는데스."
독라를 붙들고 있던 실장석이 짱돌을 집어들고 독라에게 다가갔다. 독라의 목덜미를 옴켜쥐고 입가에 내리찍으려는 순간, 독라는 자신의 손가락을 쫙 펴서 실장석의 눈앞에 내밀어 보였다.
"와타시의 손을 보는데스. 보스의 손도 이렇게 생기지 않은데스까?"
돌을 치켜들던 실장석이 움찔한다.
"와타시는 고향에서 언니를 찾아 온 보스의 자매인데스! 손가락이 닮지 않은데스까!"
독라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애절하게 호소했다. 실장석은 미심쩍어하면서도, 돌을 든 손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정말인데스까?"
"아니. 구라인데스."
독라의 주먹 쥔 손이 그대로 전진해 실장석의 인중에 꽂혔다.
기세 좋게 문을 박차고 들어간 독라의 눈에 우두머리의 집 내부의 전경이 들어왔다.
반짝반짝하고 형형색색의 온갖 잡동사니, 해진 옷 장식, 깨진 장신구 나부랭이가 너저분히 장식되어 있다. 수건이 빼곡히 덮인 바닥은 알록달록하고, 갖가지 나무열매와 고기조각, 실장푸드, 그리고 여타 처음 보는 음식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골판지집의 끝 쪽, 그러니까 독라가 들어온 문 맞은편 벽에는 인간의 거대한 외투가 양 팔을 활짝 벌린 채 펼쳐져 있었다. 옷자락에 덮인 바닥 위에는 버려진 메모리폼 베게가 왕좌처럼 놓여 있었고, 화려한 천조각이 그 자루를 덮고 있다.
독라를 연행했던 셋과 비슷한 몸집의 실장석 둘이 왕좌의 양 옆에 서 있고, 베개 위에 반쯤 눕듯이 앉아 있는 건 그보다도 비대한 대머리 알몸 실장석. 공원의 우두머리였다.
정말로 비대한 실장석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비대했다. 팔뚝 살은 물을 담은 가죽부대처럼 출렁이고, 뱃살은 늘어지다 못해 흘러내려 하체를 덮을 지경이었다. 볼 살의 무게로 얼굴 가죽 전체가 밑으로 축 처졌고, 목살은 둥글게 퍼져 지방질의 목도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저런 상태로도 걸을 수 있다면, 그건 웬만한 실장석의 허리보다 두툼한 허벅지가 그 무게를 간신히 지탱하기 때문일 것이다.
침이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며 수북한 실장푸드를 집어먹던 우두머리는 독라를 보고 우물대던 입을 멈추었다.
"무슨-"
"이런 곳에서 길실장을 보게 될 줄은 몰랐던데스."
우두머리의 말을 끊고 독라가 쾌활하게 말했다.
"공원을 지배할 정도로 강한 독라라면 역시 길실장일수 밖에 없는데스요. 물론 길실장이 그런, 어, 풍만한 모습일줄은 더더욱 몰랐던데스. 하여튼!"
독라는 손가락을 쫙 펼치고 인사하듯 과장되게 흔들었다.
"와타시도 길실장인데스. 서로 반가운데 말이라도 좀 나누는 게 어떤데스까?"
"와타시의 자들은 어디 가고 오마에 혼자 기어들어온데샤!"
"그 셋이 오마에의 자들이었던데스까? 어째 덩치가 좀 있는 게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데스."
혀를 빼문 세 개의 머리통이 독라의 손에서 던져져 우두머리의 발치로 데굴데굴 굴렀다. 우두머리가 새된 고함을 질렀다.
"데엑! 7녀! 10녀! 11녀!"
독라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정당방위였던데스."
"장녀! 차녀! 저 분충을 붙잡는데샤!"
우두머리는 빽 소리 지르며 넓적한 은빛 막대기를 쥐고, 양옆의 실장석과 함께 달려들었다.
"거 성질도 급한데스야."
독라는 중얼거리며, 왼쪽에서 달려오던 놈을 붙잡아 우두머리를 향해 집어던졌다.
"데갸아아악!" "데에엑!"
묵직하게 날아간 녀석은 우두머리가 겨누고 있던 막대기에 보기 좋게 박혔다. 균형을 잃은 우두머리가 나동그라지는 것을 확인하는 사이, 오른쪽에서 달려온 실장석의 주먹이 독라의 얼굴에 전력으로 꽂혔다.
퍽!
"데겍!"
악! 이건 정말로 아프다! 실장석의 주먹치고는 이상하게 단단하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손에는 웬 압정이 박혀 있었다. 독라를 때린 반동으로 압정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줄줄 흘렀다.
'저러면 맞은쪽보다 때린 쪽이 더 아플 텐데, 미친놈인데스.'
다시금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며 독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발을 걸어 놈을 넘어뜨리고 압정을 뽑아낸 독라는, 주먹을 움켜쥐고는 압정의 바늘 부분을 쥐어 잡았다.
"이렇게 하면 되는걸 뭐 하러 그렇게 고생하는데스까."
비틀대며 일어나는 실장석에게 헤드락을 걸고, 가슴에 강철 펀치를 먹이며 독라가 비웃듯 말했다.
퍽 퍽 퍽 퍽
"데벡! 덱! 데켁!"
한 대 두 대 주먹이 꽂힐 때마다 신음을 토하는 실장석의 가슴은 순식간에 빈 깡통처럼 우그러져 들어갔다. 우드득 우둑 하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조각난 뼈가 살과 옷을 찢고 튀어나온다. 허파가 찢어졌는지, 피가 왈칵왈칵 쏟아지는 세모꼴 입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새어나왔다.
몇 대 더 때리자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실장석의 흉곽이 완전히 박살났다. 가슴 속으로 쑥 들어간 주먹을 빼내자, 흉강에 고여 있던 피가 뭉개진 허파 조각과 함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반쯤 파열된 심장이 굵은 핏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가슴에 난 구멍 밖으로 쏙 빠져나와 흔들렸다. 힘차게 맥동해야 할 심장은 이미 청색으로 굳어가며 파르르 떨기만 하고 있다.
구멍으로 철철 흘러나오는 피를 타고 녹색 돌조각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헤..커허..."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위석을 향해 애처롭게 뻗으며, 실장석은 애원하듯 목소리를 짜내지만, 독라는 무방비하게 노출된 위석을 망설임 없이 밟아 부쉈다.
파킹
"장녀어어어!"
위에 엎어진 차녀를 치우고, 뚱뚱한 몸을 버둥버둥 간신히 일으키던 우두머리가 그 광경을 보고 절규했다. 우두머리의 무기에 배가 뚫린 차녀는 동맥이 심하게 손상되었는지 대량의 피를 흘리며 창백하게 헐떡이고 있다. 독라는 득달같이 달려가서 우두머리를 걷어차 다시 쓰러뜨리고, 엎드린 채 기어 달아나던 차녀의 상반신을 짓밟았다.
"데...케에엑!"
한발로 상체를 누르며 양 다리를 잡아 뒤로 당기자, 한계에 달한 척추가 뿌드득거리며 부서진다.
"데갸아아아아!"
떨어뜨린 무기를 줍고 몸을 다시 일으킨 우두머리가 본 것은, 양손에 각각 차녀의 상하체를 들고 탈탈 터는 독라의 모습이었다. 양 반신이 흔들릴 때마다 두 몸뚱이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창자가 고무줄처럼 흔들린다. 이윽고 독라가 찾던 것이 떨어져 나왔다. 탁하게 변한 차녀의 위석이 이미 조각나 있는 것을 확인한 독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녀의 몸뚱이를 휙휙 내던졌다.
"차, 차녀어어어어!"
"오마에는 왜 이렇게 자에 집착하는데스까?"
"죽여버리는데샤!"
"그보다는 이제 1대1로 공평해졌으니 잠깐 멈추고 얘기 좀 나누는데스."
"곧 죽을 분충한테 할 얘기 없는데스!"
우두머리는 은빛 막대를 휘두르며 독라에게 쿵쾅쿵쾅 달려들었다.
느리다. 너무 느리다. 게다가 찌르라고 있는 뾰족이를 저렇게 느릿하게 휘두르다니, 우두머리는 기본조차 안 되어 있었다. 독라는 가볍게 뒤로 물러서며 우두머리가 휘두르는 창을 공중에서 붙잡았다.
그러자 독라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데?"
잘려나가 피를 펑펑 뿜는 왼손을 보며 어리둥절하는 독라의 머리 위로 우두머리의 무기가 바람을 가르며 떨어진다. 황급히 몸을 옆으로 날린 독라의 귀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맨숭해진 귓가를 더듬자 손에 피가 흥건히 묻어나왔다.
"한 입 크기로 썰어주는데샤!"
우두머리의 무기는 창이 아니라 처음 보는 무기, 커터칼이었다.
널찍한 골판지집 안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독라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듣도 보도 못한 무기였다. 창이었다면 어떻게든 피하며 파고들면 되겠지만, 저렇게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지는 무기를 휘두른다면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다.
몸통을 노리고 날아드는 칼날을 간신히 피하자, 팔뚝에 깊숙한 자국이 생기며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우두머리는 의기양양해서 커터칼을 마구 휘둘렀다.
언제까지나 도망 다닐 수는 없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생각하자. 생각, 생각, 생각...
바닥에 깔린 수건이 독라의 눈에 들어왔다. 독라는 엉겁결에 한 팔로 수건을 집어 들고 휘둘렀지만, 우두머리의 질량이 실린 커터칼은 얇은 손수건을 손쉽게 갈랐다.
이 천은 너무 얇다. 이걸로는 저 무기를 막을 수 없다.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피하며 옆걸음질 치던 독라의 발치에 우두머리가 깔고 앉던 왕좌, 메모리폼 베개가 닿았다.
"이제 도망갈 곳은 없는데스! 죽는데샤!"
망나니의 도끼처럼 번쩍 들렸다 떨어지는 칼날을 향해, 독라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자기 몸뚱이만한 베개를 들고 갖다 댔다.
성공이었다.
칼날은 베개를 찢으며 독라를 향해 나아갔지만, 실장석의 힘으로는 두툼한 스펀지를 완전히 가르지 못하고 커터칼은 베개 중간에 푹 박혀버렸다.
그대로 베개를 옆으로 던지자, 칼날은 베개에 딸려 챙그랑 날아가며 우두머리의 손에서 벗어났다.
"데에엑!"
당황한 우두머리가 황급히 칼을 주우러 달렸지만 명치께에 날아든 독라의 무릎이 더 빨랐다. 배를 움켜쥐고 헐떡이며 쓰러진 우두머리를 몇 번 더 발로 찍고 숨을 고른 뒤, 독라는 베개에서 커터칼을 뽑아내 그대로 우두머리의 다리를 슬근슬근 썰기 시작했다.
"데히이익! 데갸아아악!"
워낙 투실한 다리이다 보니 자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베고 나서 작두를 밟듯이 칼등을 콱콱 밟아대자, 나뭇가지가 꺾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다리뼈가 잘려나갔다. 피가 쏟아지는 단면으로 희멀겋고 누리끼리한 비계가 걸쭉하게 흘러나온다.
양 다리를 잘라내고 왼팔에 칼날을 갖다 대자, 눈물을 줄줄 흘리던 우두머리가 황급히 외쳤다.
"그, 그만! 살려주는데스! 제발 살려주는데스!"
독라는 우두머리를 흘낏 보더니 말없이 왼팔을 잘라냈다.
"데에에에엑!"
물컹한 팔뚝을 휙 던지며 독라가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와타시를 죽이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살려달란 건 또 뭐인데스까."
"오해인데스! 다 오해인데스! 제발 살려주는데스!"
"와타시를 설득해 보는데스."
"와타시는 오마에가 그냥 평범한 독라인 줄 알았던데스! 길실장인줄 알았으면 죽이려 하지 않았을 것인데스! 그런데 오마에가 먼저 와타시의 자들을 죽이지 않은데스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데스? 목숨 구걸치고는 건방진데스야."
"와, 와타시는 오마에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데스! 와타시의 부하, 집, 전부 주겠는데스! 목숨만 살려주면 오마에의 부하가 되겠는데스!"
"집이고 뭐고 오마에를 죽이고 가지면 되는 것 아닌데스까?"
비굴하게 간청하던 우두머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독라를 올려다보았다. 독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좋은데스. 와타시가 원하는 건 대답 몇 개 뿐인데스.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살려주겠는데스."
"약속하는데스까?"
"약속하는데스."
한숨 돌린 우두머리의 만면에 희색이 가득 찼다. 독라는 너덜거리는 베개를 끌고 와 앉은 다음 질문을 시작했다.
"먼저, 오마에는 길실장이 맞는데스까?"
"물론 맞는데스." 우두머리는 한 짝 남은 오른팔을 들고 손가락을 펴 보였다.
"길실장이 없어진지 한참이 지난데스. 그런데 오마에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데스? 오마에도 인간의 곁에서 살아온 것인데스까?"
독라의 질문에, 우두머리는 혀를 쯧쯧 차더니 말했다.
"말하는 걸 보니 오마에도 다른 마을들이 다시 길실장을 만들도록 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에 넘어가 이 고생을 하는 모양인데스."
독라는 가슴이 철렁했다. 마을을 떠날 때 장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고 있지 않은가.
우두머리는 눈을 둥그렇게 뜬 독라를 딱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와타시의 장로도 똑같은 말을 했던데스. 와타시도 오마에처럼 길실장이 사라진 다음에야 마을을 나왔다는 말인데스요. 오마에, 세상은 넓고 우리 같은 실장석의 마을은 많은데스. 길실장이 사라지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정말 다른 마을들은 놀고 있기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스까?“
"그렇다면... 와타시와 같은 임무를 띠고 길을 나선 실장이 훨씬 더 있다는 말인데스?"
"'임무'라...참 거창한 말인데스. 아직도 그런 걸 믿는 걸 보니 와타시도 옛날 생각나고 좋은데스야."
우두머리는 킬킬대며 말을 이었다.
"뭐, 아주 많지는 않을 것인데스. 와타시의 마을에서도 길실장이 끊긴 후 마을을 나선 건 와타시가 처음이었던데스. 하지만 그런 실장석이 세상에 우리 둘뿐인 건 절대 아닌데스."
"그렇다면 그 길실장들은 모두 어떻게 된데스? 왜 와타시의 마을에는 그런 실장석들이 찾아오지 않았던데스까?"
우두머리는 한쪽밖에 남지 않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와타시가 어떻게 아는데스까? 굶어 죽었거나, 얼어 죽었거나, 닌겐에게 죽었거나, 짐승에게 죽었거나, 아무튼 정처 없이 헤매다 죽은 게 뻔한데스. 오마에 말고 다른 길실장을 옛날에 딱 한번 봤는데, 이미 팔뚝만 남은 시체였던데스. 손끝에 손가락이 간신히 붙어 달랑거리기에 겨우 알아본데스."
우두머리는 낄낄대며 말했지만 낯빛은 어두웠다.
"거 운수 나쁜 친구가 분명한데스... 아니면 혹시 모르는데스까? 진작 어느 길실장이 기어이 다른 마을에 닿아서, 지금도 어느 마을들은 매년 길실장을 내보내고 있을지? 다른 마을들은 이미 길실장을 통해 연락하는데, 어쩌다 보니 오마에와 와타시의 마을만 외톨이인 걸지도 모르는데스. 우리가 알 수는 없는데스."
혼란스러워 하는 독라를 위로하듯이 우두머리는 말을 계속했다.
"뭐,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뿐이지 확실하다는 건 아닌데스야. 궁금하면 오마에가 직접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는데스까? 그래도 확실한 건, 우리 말고도 많은 길실장이 지금도 세상에 많이 있을 거라는데스. 운이 좋다면 금방 죽을테고, 아니면..."
우두머리는 심상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면 와타시처럼 깨닫게 될지도 모르는데스.“
"깨닫는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데스!"
혼란에 빠진 독라가 날카롭게 묻자, 우두머리는 찌푸린 얼굴로 반문했다.
"오마에는 왜 길실장이 된 데스? 정말로 오마에는 장로의 말만 믿고 마을을 떠난데스까?“
"..."
물론 아니었다. 우두머리는 독라의 생각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아니었을 것인데스. 오마에와 와타시가 길실장이 된 이유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인데스."
독라의 대답에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라는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면 오마에는 행복의 의미를 찾은데스까?"
"물론인데스. 하지만 지금의 오마에라면 절대 그걸 이해할 수 없는데스."
우두머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느니, 지식을 얻어 모두에게 전해준다느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으면 절대 행복을 찾을 수 없는데스야."
"하지만 배우고 달라져야만 행복을..."
"헛소리!"
우두머리가 별안간 빽 소리질렀다.
"언제까지 순진하게 그런 헛소리를 믿을 것인데스까! 앞으로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셀 수 없이 많은 실장석이 그 거짓말에 속아 발버둥 치며 죽어도 소용 없는데스. 우리는 영영 행복해질 수 없는데스!"
"하지만..."
"저 밖의 약하고 멍청한 들실장들을 보는데스. 들실장은 맛있는 음식에 욕심 부리고, 가득한 자들에 욕심 부리고, 예쁜 옷과 머리에 욕심 부리고, 편안한한 집에 욕심 부리는데스. 그래서 들실장들은 음식을 먹을 때, 자를 안을 때, 독라를 보고 비웃을 때, 따뜻한 잠자리에 누울 때 행복을 느끼는데스. 우리가 모르는 그 '행복'데스!“
"하지만 편안함은 실장석을 불행하게 하는데스!"
"불행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 있는 것인데샤! 우리 모습을 보는데스. 행복을 위해 옷도 버리고, 머리도 버리고, 온갖 즐거움을, 끝내는 자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버린데스. 그렇게 악착스럽게 버려 온 우리에게 결국 뭐가 남은데스까? 아무것도 없는데스! 행복을 찾으며 닥치는 대로 버려온 우리는 행복 자체마저 버리게 된데스. 행복을 이미 버려놓고 무슨 행복을 찾겠다는 말인데샤!"
우두머리는 절절하게 소리쳤다.
독라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들실장은 매일 매일 괴롭게 죽는데스! 편한 것만 찾다가 비참하게 죽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란 말인데스까! 오마에가 말하는 건 고작해야 실장석의 행복인데샤! 실장석이 집착하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닌데스!"
우두머리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고함쳤다.
"오마에, 착각하지 마는데스. 옷을 벗고 머리를 뽑았다고 해서, 오마에가 닝겐이라도 된 것 같은데스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는 결국 실장석인데스! 실장석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데스!"
쉬어 버린 성대로 쇳소리를 내며, 우두머리는 온 힘을 다해 절규했다.
"실장석으로 태어났으면, 주제를 알고 실장석답게 살라는데스!“
말을 마친 우두머리는 콜록대며 기침을 토하더니 숨을 골랐다. 독라는 벌어진 입술만 달싹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먼저 연 것은 우두머리였다. 우두머리는 재차 한숨을 쉬고는, 침으로 목을 축이고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을 나올 때만 해,도 와타시는 오마에와 같았던데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다보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데스. 하지만 세상을 돌아다니고 다른 많은 실장석들을 만나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 버린데스. 오히려 어리석고 한심한 들실장이 우리가 알지 못한 행복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데스."
미간을 찌푸리고 힘겹게 침을 삼키고 우두머리는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와타시가 몰랐던 정말 많은 행복이 있었던데스. 코로리를 핥던 들실장은 피를 토하며 죽었지만, 단 맛을 느끼던 그 순간만큼은 행복한 얼굴이었던데스. 먹이를 구하고 돌아다 닝겐에게 잡혀 독라가 된 실장석은 까만 눈물을 흘렸지만, 그날 아침 머리와 옷을 씻을 때는 행복하게 노래했던데스. 집을 비운 사이에 자들이 잡아먹힌 친실장은 울다 지쳐 죽어버렸지만, 전날 밤에 자들을 안고 잠들 땐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던데스."
독라는 자들을 위해 사육실장의 삶을 버렸다는 미도리의 모습을 잠깐 생각했다. 우두머리는 말을 이었다.
"들실장이 짓던 그 표정. 와타시는 마을에 있을 때는 한 번도 그런 표정을 본 적도, 지어본 적도 없었던데스. 하지만 들실장의 그 얼굴을 봤을 때, 그것이 바로 행복의 표정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던데스. 그 표정을 짓는 잠시나마, 들실장은 분명 행복을 맛보고 있었던데스."
독라는 태어나서 처음 봤던 마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들을 찌푸린 얼굴로 흘겨보다 자매들을 모조리 솎아내던 어미의 표정에는 과연 한 점의 즐거움도 보이지 않았었다.
우두머리는 계속 말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된 데스. 와타시는 어느 공원에 자리잡고, 들실장을 잡아먹고 옷을 빼앗으며 겨울을 견딘 데스. 하지만 그 해의 겨울은 특히 길었고, 결국 월동식이 모두 떨어져 버린데스. 굶어죽기 직전 다행히 날이 풀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와타시는 이상한 것을 본 데스. 처음에는 나무토막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손가락이 달린 팔이었던데스. 뜯긴 지 얼마 안 된 길실장의 팔이었던데스.
피 묻은 돌멩이가 옆에 놓여 있었던데스. 다른 실장석에게 죽임당한 것이 분명했던데스. 와타시는 그 팔을 집어든데스. 와타시의 것과 똑같이 생긴 팔이었던데스. 둘 다 잘라 놓으면 누구 것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똑같이 생겼던데스."
오른팔을 들고 우두머리는 계속 말했다.
"살기 위해서 와타시는 그걸 먹은데스. 먹으면서 와타시는 죽은 길실장이 어떤 실장석이었을지 상상해 본데스. 와타시와 똑같이 어느 봄에 길을 떠나, 행복을 찾으며 고생고생해서 살아남았지만, 결국 들실장에게 습격당해 잡아먹힌데스. 그리고 한 조각 남은 팔뚝은 같은 길실장의 뱃속에 들어간데스. 와타시도 언젠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데스."
자신의 오른팔을 새삼스럽다는 듯 들여다보며 우두머리는 말을 이었다.
"피 묻은 돌멩이를 집어 들고 와타시는 일어난데스, 방울방울 이어지는 핏자국을 따라가자 나무뿌리 사이의 동굴이 보인데스. 겨울을 버텨낸 들실장과 자들이 볼록해진 배를 문지르며 서로 껴안고 행복하게 잠들어 있었던데스.
그날, 들실장 가족의 시체를 깔고 앉아 생각한 끝에 와타시는 알게 된데스. 길실장의 길에는 행복이 없는데스, 행복이란 그저 배고플 때 먹고, 싸고플 때 싸고, 자고플 때 자면서 모심받는 삶에 있는데스. 그래서 와타시는 새롭게 깨달은 행복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데스.
주변의 들실장을 때리고 죽이고 잡아다 노예로 부린데스. 와타시가 행복의 의미를 찾은 그 나무 옆에 노예들을 시켜다 으리으리한 이 집도 짓고, 산더미 같은 음식도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진상받은데스. 자들도 가득가득 낳아 와타시에게 대드는 분충은 전부 솎아내고, 영리하고 고분고분한 자들만 키워낸데스."
그 자들 중 벌써 다섯을 죽인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도 잊은 듯, 우두머리는 어느 새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싱글벙글 말했다.
"와타시에게 복종하는, 와타시를 닮아 강하고 똑똑한 열둘의 자들은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분충들을 무릎 꿇리고 고귀한 와타시의 위엄을 널리 떨친데스. 공원의 분충들은 어느새 와타시의 모습만 보여도 운치를 질질 흘리게 된 데스. 와타시는 공원의 보스가 된데스! 귀찮은 일들일랑 잊어버리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노예들의 시중을 받으며 세레브한 삶을 즐기는 것이 바로 행복이 아니면 뭐인데스까!"
우두머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독라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세레브한 삶이 그렇게도 좋다면 왜 사육실장이 되려 하지 않는데스?"
우두머리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공원 보스의 삶으로도 충분한데, 고작 닌겐의 시중 따위를 받아 보겠다고 목숨을 버릴 이유가 어딨는데스까?"
독라는 눈가를 긁으며 말했다.
"공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금 공원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 난리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스까?"
우두머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이 안 나오다니 무슨말인데스?"
"동그란 것을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들실장들이 난리치고 있는데스."
우두머리는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 수도꼭지 말인데스까? 너무 옛날에 써 봤던 거라 와타시도 가물가물한데스. 그게 뭐 어쨌단 말인데스까? 노예들이 목말라 죽는 거야 자기들이 해결할 문제인데스."
"그렇지만 오마에가 마실 물은 어떻게 구한다는데스?"
우두머리는 귀찮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런건 노예들이 해결할 문제인데스. 한두 마리 본보기로 족치면 그런 것이야 어떻게든 구해오는 걸로 정해져 있는데스."
독라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뭐, 좋을 대로 하는데스. 마지막 질문인데스. 왜 공원에는 독라가 없는데스까? 실장석들이 와타시를 무서워한 건 왜인데스? 와타시를 오마에로 착각해서인데스?"
"간단한데스."
우두머리는 검지를 치켜세우고 말했다.
"편안한 집, 세레브한 장식, 맛난 음식, 귀여운 자들. 와타시는 들실장이 바라는 것을 모조리 손에 넣은데스. 하지만 잃어버린 머리카락과 옷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데스. 노예의 옷을 빼앗으려 해도 너무 작아 입을 수가 없고, 머리카락은 아무리 해도 다시 나지 않은데스."
우두머리는 매끈한 머리를 슥슥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분충들은 앞에서는 와타시를 두려워 하지만, 뒤에서는 와타시가 독라라고 비웃는 것이 뻔했던데스.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데스. 그래서 와타시는 생각한 끝애 답을 내린데스. 와타시는 독라를 벗어날 수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닌데스. 오히려 와타시는 독라이기에 행복한 것인데스!"
갸우뚱하는 독라에게 우두머리는 신나게 떠벌였다.
"우리가 독라가 된 이유가 무엇인데스까? 독라가 더 우월하기 때문인데스! 냄새나고 지저분한 머리와 옷을 휘감고 다니는 분충들은 얼마나 우스운데스까? 이렇게 매끈하고 홀가분한 독라의 모습을 보는데스! 분충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스. 독라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한데스. 와타시의 세레브함은 와타시가 독라이기에 더욱 빛나는데스!"
우두머리는 득의양양하게 미소지었다. 육중했던 뱃살은 팔다리를 재생하느라 지방을 급격히 소모해, 물컹한 가죽만 남아 바닥에 옷자락처럼 질펀하게 늘어져 있었다.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공원의 독라를 모조리 죽인데스. 감히 노예 주제에 와타시와 맞먹는 세레브함을 가지겠다니, 말이나 되는데스까? 다른 실장석을 독라로 만든 분충 역시 죽여버린데스. 독라와 같이 있기만 했던 분충도 마찬가지인데스. 와타시의 손에 죽을 독라라도, 독라는 독라인데스야. 천한 분충들이 우월한 독라와 눈을 마주치고 말을 섞다니, 죽어 마땅한 죄가 아닌데스까? 와타시는 공원 곳곳에 자들을 보내서, 버르장머리 없는 실장석을 찾아내 전부 죽여버린스. 반대로 이웃을 신고한 실장석에겐 큰 상을 내려준데스. 결국 그 계절이 끝나기도 전에 공원의 독라는 모두 사라지고 세레브한 와타시만이 남은데스!"
기가 차는 논리였다. 한심하게 우두머리를 바라보던 독라는 불쑥 물었다.
"그래서 와타시를 죽이려고 한 데스까?"
"그야 당연한..."
우두머리는 신나게 지껄이다 아차 하고 입을 딱 벌렸다.
독라는 피식 웃으며 칼을 치켜들었다.
"아까는 죽일 생각 없다더니, 말이 왜 다른데스까? 이거 몹쓸 분충인데스."
"아니, 아니, 아닌데스! 이야데스! 다메데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오마에를 살렸다가는 와타시를 죽일 게 뻔한데스야."
"절대 아닌데스! 와타시를 믿어주는데스! 와타시가 이 공원을 떠나겠는데스! 목숨만 살려주는데스!"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도리도리 저으며 우두머리가 울부짖었다. 커터칼을 이리저리 놀리듯 흔들 때마다 우두머리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낄낄 웃으며 칼을 내린 독라는 웃음기를 거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두머리가 불안한 표정으로 독라를 쳐다보았다.
생각에 빠졌던 독라가 입을 열었다.
"하나만 더 묻겠는데스. 길실장의 삶과 우두머리의 삶에서 오마에가 찾은 행복이란 무엇인데스까?"
"그..그건 지금까지 와타시가 열심히 말하지 않은데스까?"
"맛있는 음식, 따뜻한 집, 이런 것들은 행복에 이르는 길일 지는 몰라도, 행복 그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스. 오마에의 생각은 어떤데스까?"
적녹색 피딱지로 뒤덮인 소름끼치는 칼날이 우두머리의 눈동자에 비쳤다.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려 우두머리의 눈에 들어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눈물과 섞여 연한 적색으로 변한 땀은 다시 눈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톡 떨어졌다.
침을 꿀꺽 삼키고 우두머리가 대답했다.
"틀린데스.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드는 삶이 진정한 행복인데스.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인 것인데스."
"그런데스까."
독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골판지 집의 문이 벌컥 열리고 다섯 마리의 실장석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보스사마! 밖에 분충들이 우글우글하게 몰려 있는.."
쓰러진 우두머리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독라의 모습을 보고 실장석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잘 온데스! 3녀! 4녀! 6녀! 8녀! 12녀! 빨리 이 분충을 죽이는데스!"
우두머리가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3녀와 4녀와 6녀와 8녀와 12녀는 서로 쭈뼛대며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다급하게 재촉했다.
"뭘 하는데스! 마마가 핀치데스! 어서 마마를 구하는데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데샤앗! 당장 이 분충을-"
"오마에들의 마마는 와타시에게 실각한데스."
독라가 우두머리의 말을 끊고 말했다.
"하지만 와타시는 보스가 될 생각이 없으니, 오마에 중 가장 강한 자가 새 보스가 되는데스.“
어물어물하던 실장석들은 독라의 말을 듣자마자 서로 데샤악 하고 달려들어 싸우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데스! 당장 마마를 구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똥애미는 닥치는데스!"
서로 쥐어뜯으며 싸우던 실장석들이 저마다 욕설을 내뱉었다.
"이제 오마에한테 얻어맞으며 노예처럼 사는 삶도 끝인데스!"
"추한 독라 주제에 그 꼴이 되고도 어디다 대고 명령질인데스! 새 보스는 와타시로 정해져 있는데스!"
"지금까지 오마에를 고문하고 죽일 날만을 상상하며 살아 온 데스! 와타시가 보스가 되면 달마, 자판기, 다양하게 손봐 줄 테니 닥치고 기다리는데스, 똥노예!"
"데, 데뎃, 데에에에?"
경악하는 우두머리와 콩가루가 나는 가족의 모습을 독라는 낄낄대며 구경했다.
후들후들 떨며, 우두머리는 자신의 자들을 바라보았다. 귀신들린 듯 싸우는 자들은 간간히 고개를 돌려 증오서린 눈으로 우두머리를 쳐다보고는 더욱 투지를 불태웠다.
우두머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시를..여..는..데스."
"뭐라고 한 데스까?"
"와타시를 죽여주는데스!"
눈물을 흘리며 우두머리가 독라에게 매달려 간청했다.
"아까는 살려달라 하지 않은데스까?"
"제발 부탁하는데스. 독라노예로 사는 삶은 다메데스! 와타시를 제발 죽여주는데스!"
독라는 우두머리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칼날을 들어올렸다.
숨을 몰아쉬는 우두머리의 얼굴에 뾰족한 칼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두머리는 피눈물이 펑펑 흐르는 눈을 질끈 감고 목을 쭉 뺐다.
"자꾸 꼼지락대지 마는데스. 한 방에 못 죽으면 오마에 손해인데스."
높게 올라간 칼날이 호를 그리며 떨어지는 순간, 우두머리는 눈을 번쩍 뜨고 피를 토하듯 외쳤다.
"죽기 싫-"
저녁놀을 받아 붉게 빛나는 골판지상자의 문이 열렸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십 마리 실장석의 이목이 독라에게 일제히 집중되었다.
발치에 기름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내던지며 독라가 말했다.
"보스는 죽은데스."
웅성대는 소리는 멈칫하더니, 환성 소리가 주위를 메웠다.
"보스가 죽은데스!" "보스는 무슨! 독라분충이 드디어 죽은데스! 데퍄퍄-!" "분충이 죽은데스! 만세데스!"
실장석들의 작은 함성이 공터에 작게 울려퍼졌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미도리가 독라의 손을 꼭 붙잡고 외쳤다.
"오로로옹! 고마운데스! 드디어 보스가 죽은데스! 이제 공원의 실장석들은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데스!"
"독라노예를 부리는 행복말인데스까."
비꼬는 줄도 모르고 미도리는 뿌듯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황급히 말했다.
"물, 물론 오마에는 예외인데스. 오마에는 우리들의 친구인데스. 아무도 오마에를 노예로 생각하지 않을 것인데스."
하지만 미도리의 말이 무색하게, 몇몇 실장석들은 벌써 독라를 곁눈질하며 저들끼리 수군수군 뭔가를 작당하고 있었다. 독라는 한숨을 쉬고는 뭉툭하게 재생된 왼손을 바라보았다. 손을 째어 다시 손가락을 만들어야겠지만 너무 피곤했다.
"와타시는 내일 아침 공원을 떠나겠는데스."
"뎃? 벌써 가는데스까?“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데스. 와타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데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공원에서 나가는 길이나 알려주는데스."
우두머리의 커터칼을 들쳐 매고, 등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끌며 독라는 실장석들을 뒤로 하고 앞서 걸었다. 미도리의 조그만 그림자가 서둘러 그 뒤를 따른다.
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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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오..타이밍이...
구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