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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자매 단톡방
함영연
“선생님, 뭐 그릴 거예요?”
수아가 미술 준비물을 꺼내며 질문을 했다. 마지막 5교시 미술시간을 엄청 기다린 표정이다. 수아는 명랑자매 단톡방 친구이다. 같은 영어학원을 다니는 다섯 명이 있는 방으로 수아가 만든 것이다. 단톡방 이름처럼 수아와 자매처럼 붙어 다니는 예서와 민지가 있는 반면에 이름만 올려 있는 선아도 있다. 선아는 말을 건네지 않으면 먼저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친구들 말은 묵묵히 들어준다. 우희도 엄마가 입원해서 슬프다고 선아에게는 속마음을 보일 수 있었다.
“자, 오늘은 환경에 대해 그림을 그릴 거예요. 잘 그린 그림은 환경그림그리기 대회에 보내려고 해요.”
“선생님, 수상자는 독도에도 보내준대요.”
뒤에 앉은 민지가 말했다. 우희도 환경그림그리기 대회 수상자는 독도 탐방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게시판에서 보았다.
‘엄마…….’
병원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가슴이 아팠다. 하필 퇴근하는 엄마에게 간식을 사오라고 전화했을까. 엄마는 집에 거의 왔다가 차를 돌려가는 중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아빠는 퇴근해서 엄마 병간호를 하고, 출근길에는 우희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엄마, 미안해요. 빨리 나아서 집에 오세요.’
우희는 눈물이 차올라서 눈을 꾹꾹 눌렀다.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당연히 뽑힐 거야.”
예서가 수아를 한껏 추켜세웠다.
“훗, 내가 좀 그리지.”
수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을 뿜어냈다. 우희도 자신의 그림이 뽑힌다면 엄마가 기뻐서 빨리 나을 것 같았다. 잠시 뭘 그릴까 고민하던 우희는 코에 빨대가 꽂혀 고통스러워하는 돌고래를 그렸다. 그림 제목으로 ‘빨대 주인을 찾습니다.’ 라고 썼다. 빨대를 버린 사람들 때문에 돌고래가 고통당한다는 내용을 담기 위해서였다.
“주제를 잡아서 잘 그리는걸.”
선생님이 우희 그림을 보고 칭찬했다.
“저도 잘 그리거든요.”
수아가 샐쭉하게 말했다.
“맞아요, 선생님. 수아는 미술학원에도 다니고 화가가 꿈이에요.”
민지가 맞장구를 쳤다.
“수아 그림도 좋구나.”
“제가 좀 그리지요.”
수아가 흡족해 했다. 우희는 스케치를 한 뒤에 색칠을 했다. 한참 집중고 있는데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자, 다 못 그린 친구들은 집에서 완성해 오도록 해요.”
선생님 말에 아이들은 가방을 챙겼다. 집으로 가는데 우희 휴대폰에 문자 알람이 울렸다.
-훗, 난 독도에 꼭 갈 거야.
명랑자매 단톡방, 수아의 문자였다.
-좋아, 좋아. 너는 갈 수 있어!
예서가 가장 먼저 답문자를 달았다. 나머지 두 명도 수아를 추켜 주는 문자를 달았다. 우희는 집에 가서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그림을 완성하느라 답문자 다는 걸 깜빡했다.
다음 날 선생님은 우희와 수아 그리고 아이들 몇 명의 그림을 대회에 접수했다. 얼마 있다가 발표난 수상자 명단에 우희 이름만 있었다. 우희는 엄마에게 빨리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자리로 가던 우희는 수아와 눈이 마주쳤다. 수아가 눈을 피했다. 이상했다. 아니 예서도 그렇고 민지의 표정도 싸늘했다. 우희는 선아에게 눈으로 물었다. 선아는 말없이 책을 폈다. 우희는 어색한 분위기를 떨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잘 그리는 줄 몰랐어.”
“그러게 말이야. 혹시 누가 그려준 게 아닐까?”
수아와 예서가 뒤에서 쑥덕거렸다. 엄마 생각만으로도 힘들어서 흘려들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예서에게 문자가 왔다.
-네가 우리 뒷담하고 다녀서 단톡에 같이 있을 수 없대.
-내가 언제 그랬니? 누가 그래?
우희는 놀라서 문자를 보내는 손가락이 떨렸다.
- 난 아는 게 없어. 전할 뿐이야.
우희는 몸까지 떨렸다. 단톡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나가고 선아만 남아 있었다. 선아에게 전화를 했다.
“선아야, 난 억울해. 내가 언제 애들 말을 하고 다녔니? 넌 알잖아. 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 없어.”
“내가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네 친구인 건 변함없어.”
선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운했다. 우희는 더는 할 말이 없어서 전화를 끊었다.
‘말 한마디 못해 주면서 그게 무슨 친구야?’
우희는 명랑단톡 아이들에게 개별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난 그런 적 없어.
-…….
-속상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
답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물어보았으나 모른다고 발뺌을 했다. 급기야 우희를 봐도 못 본 척했다.
“수아 덕에 케이크 두 개 놓고 생일 축하했어.”
예서가 케이크 받은 것을 자랑했다. 수아는 명랑자매 단톡방 아이들에게 무척 잘하는 것 같았다. 어떤 아이는 문구세트를 받았고, 어떤 아이는 갖고 싶은 머리핀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더 속상한 건 선아의 행동이었다. 변함없는 친구라면서 단톡방 아이들이 따돌려도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이 없는 말을 만들어서 할 때도 우희 편을 들어서 무슨 말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우희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안 보고 안 들으면 불편한 게 덜할 것 같았다.
“우희야, 오늘은 서둘러야 해. 부서 회의가 있어서 빨리 가야 하거든.”
우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아빠가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렇긴 하지만 거리도 있고, 학교에 가는 걸 봐야 마음이 놓여 그러지.”
우희는 거절할 수 없어서 아빠를 따라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교실에 한 명도 없을 시간이었다. 교실 문을 열던 우희는 그 자리에 멈췄다. 선아가 우희 책상에 몸을 굽혀 뭔가를 하고 있었다. 우희가 들어오는 걸 본 선아는 책상을 보지 못하게 막아섰다.
“내 자리에서 뭘 한 거니?”
우희는 선아를 살짝 밀쳤다. 가짜, 엉터리, 거짓말쟁이, 꺼져……. 책상은 낙서로 가득했다.
“이게 뭐니? 설마 네가?”
“무슨 생각하는 거니?”
선아는 물티슈를 들고 있었다. 책상에 있는 낙서를 닦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참…….”
“우린 친구잖아.”
“친구라면 힘들어할 때 힘이 되어줘야지. 말로만 하면 친구가 되니?”
선아는 우희의 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
우희는 낙서들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선아는 부지런히 낙서를 지웠다.
“그냥 놔둬. 낙서한 애들이 봐야지.”
“걔네들이 본다고 달라지는 게 있니? 너만 기분상하지.”
선아는 우희 마음을 지켜주려고 애썼다.
명랑자매 단톡방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우희는 큰소리로 물었다.
“민지야, 네가 나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렸니? 솔직히 말해줘. 선생님께 책상에 낙서 사진을 보일 거거든.”
민지가 놀라서 손을 저었다.
“아냐! 난 예서에게 들었어.”
우희는 예서를 보았다.
“아니야. 난 아니야.”
“그럼 누가 그랬니?”
그때 수아가 들어왔다.
“수아야, 네가 나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렸니?”
수아의 눈이 커졌다. 우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누가 그래? 말이 되는 말을 해라.”
수아가 빈정댔다.
“내가 들었어. 네가 애들한테 선물을 주면서 그랬잖아.”
선아였다. 말을 시키지 않으면 먼저 말하는 법이 없는 선아가 진실을 밝히고 있었다.
“내, 내가 어, 언제 그랬니?”
수아가 말을 더듬었다.
“미술학원 다니는 너는 상을 못 받았는데, 우희가 받아서 기분 나쁘다고 했잖아. 우희가 네 그림을 따라 그렸다는 말도 했어.”
“너, 우희에게 고자질하려고 떡볶이 같이 안 먹었니?”
수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내가 네 그림을 보고 그렸다고? 넌 내가 상 받은 게 그렇게 배 아프니? 정말 못됐다.”
우희는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독도 가고 싶다고 할 때 넌 답문자 안 달더라. 네가 가고 싶었던 거지? 가게 되어서 좋겠다.”
수아가 쏘아댔다.
“집에 가서 하려다가 잊었어. 답문자를 반드시 달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없는 말을 만들어 따돌리니? 날 나쁜 사람으로 몰고 마음 편했니? 사과해. 안 그러면 내 책상에 낙서한 사진과 단톡방 문자, 그리고 너희들이 한 행동을 선생님께 말씀드릴 거야.”
우희가 소리쳤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어지럼증이 와서 몸이 휘청거렸다. 선아가 얼른 팔을 잡고 자리에 앉게 했다. 우희는 사과를 받을 때까지 끝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 정도면 학폭위가 열릴 수 있어. 빨리 빌어야겠다.”
뒤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수업을 모두 마칠 때까지 사과하는 명랑자매는 없었다. 수아는 어느 새 교실을 나가고 없었다. 예서가 우희를 보자,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수아도 사과하라고 할게.”
예서는 빠르게 말하고 후다닥 교실을 나갔다.
선아가 곁으로 왔다.
“네가 힘들어할 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도 알지만 내가 나서서 하는 걸 잘 못해.”
“그래서 내 책상 낙서를 날마다 지운 거니? 애들이 한 번만 한 게 아닐 텐데.”
우희는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봐도 기분 나쁜데 너는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어.”
“고마워.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 엄마가 교통사고 당한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나쁜 아이라는 생각에 시달렸어. 그런 중에 애들이 날 따돌리니 내가 정말 나쁜 아이 같아서 견딜 수 없었어. 죽고 싶을 정도로.”
선아는 우희의 마지막 말에 놀라워했다.
“그런 생각하지 마. 나쁜 아이는 너랑 친구들을 멀어지게 한 수아인데 약한 소리하고 그러니.”
“명랑자매 단톡방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뛰고 불안해.”
“잘못한 걸 알 테니 사과하겠지. 나도 말하고 나니 후련해. 아님 비겁하다는 생각에 계속 괴로워했을 거야.”
선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이 따돌리며 수군거릴 때, 묵묵히 곁에 머물러 준 선아! 우희는 선아의 진실한 우정이 전해져서 가만히 두 손을 맞잡았다.
출처 : 펜문학 2022. 9.10월 vol.169
첫댓글 좋은 친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멋진 동화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선아같은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네요. 주인공,대립인물,조력자 역할이 잘 그려진 작품, 많이 배웁니다. 좋은작품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