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18편 여검사의꿈>
③지혜의눈물-24
방송국 신문사 잡지사들의 크고 작은 사진기들 렌즈가 초점으로 모아지고, 녹음기를 걸머메고, 수첩과 필기구를 손에 든 기자들이 달려드는데, 그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튀어나게 특이한 점은 별로 없었어요. 다만, 제 오빠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던 다섯 살배기 지혜가 제 오빠보고, ‘내가 학교 들어가면 일 등하겠다고, 당차게 큰소리를 치던 일이 있었어요.”
“아, 그랬었군요. 어려서부터 공부에 자신감을 가진 것 같군요?”
기자가 감탄하면서 다음 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러는 지혜를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사람이 말을 앞세우면, 실제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 그게 대다수 아빠들의 자녀에 대한 경각심이죠.”
기자는 그의 말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어느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가족들이 더위를 피해 앉았는데, 지혜가 갑자기 저희 오빠한테 그러는 거예요.”
“아, 뭐라고 하던가요?”
기자는 호기심에서 다그치고 있었다.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 박혀있었는데, 저 별이 몇 개인지 아느냐고 묻자, 제 오라비는 말없이 도리질만 하더군요...”
“아, 네. 모른다는 말이겠군요.”
“그러자, 지혜가 말했어요. 왜, 그걸 모르느냐고 질책하더니, 제가 세어본다면서 멍석위에 발랑 눕더니, 하늘의 한쪽에 박힌 별을 세고는 백 몇 개라고 했어요. 그리고 한쪽 센 만큼씩 하늘을 나눠 헤아리더니, 몇 쪽이라고 했어요. 거기다 백 몇 개를 곱했다면서 만 몇 개라고, 산술식으로 정답을 내더라고요,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때, 나는 그 애의 재치를 건너짚었어요.”
“아하하, 다섯 살 아이로선 보통아이들과 구별되는군요.”
기자가 웃으면서 말하자, 다른 기자가 천복의 앞에 다가서더니, 물었다.
“정지혜 따님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 결혼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지혜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한동네 같은 학년 김용신이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킨다며, 학교에서 오면, 그 아이 집에 가서 그날그날 학교에서 배운 걸 복습시켰어요. 졸업 무렵, 그 애와 집으로 들어와 살겠다고, 당돌하게 말하자, 부부로 맺어주고, 신혼생활하면서, 지혜는 졸업한 뒤 집에서 용신의 중등과정을 가르치며, 독학으로 검정고실 치르더군요.”
“아, 그러니까, 지혜 씬, 진학하지 않고, 독학하면서 남편을 가르쳤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지혜 씬, 사법시험사상 최초로 이십 세 최연소 수석합격자로 기록됐는데요, 지금 슬하에 삼남매가 있다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소상하게 들려주시죠?”
“이번 시험과 관련해선 올봄 s대에 입학하자, 학교근처 친지의 집으로, 제게 딸린 가족만 와서 사는데, 이따금 와보면, 학교와 학원을 열심히 다닐 뿐, 집에서 공부에 빠진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어요. 다만...”
“네, 다만?”
“저는 백제고도 부여의 부소산기슭 쌍구란 동네에 살고 있거든요.”
“아, 부여의 쌍구? 동네 이름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쌍구. 한 쌍의 거북이란 뜻의 동네이름이에요, 제 집 뒤꼍에 귀두바위가 있는데, 암수거북이 교미하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집안에 음기가 세다 해서 제 아내가 삼천일을 넘겨 기도해서 음기를 누르자, 천우신조라, 하늘이 돕고 땅이 보듬어 지혜가 재주를 떨친다고 믿습니다.”
“아하하, 아하하.”
천복의 말에 기자들이 반신반의하면서도,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선생님, 따님 지혜 씨가 이번 사법시험에 영광스런 최연소 수석 합격한데 소감과,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밝혀주십시오.”
굵은 테 안경에 구레나룻이 턱과 볼로 검게 번진 중년의 기자가 수첩을 들고, 뛰어들어 물었다.
“소감은 기쁘다는 말뿐입니다! 합격도 중요하지만,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일이 더 크다고 봅니다.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초교를 졸업하고, 한문공부 일 년 마친 뒤 열일곱 살 때, 충청도 한 암자에 들어가 고시법과를 준비하고 나왔으나, 그 이듬해 늦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꿈을 접었습니다. 이제 아비의 소원을 딸애가 이룩했다는, 그 기쁨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군요.”
“아-하!”
“아-하! 지금까지 인터뷰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들이 서둘러 감사의 말을 건네더니, 무리지어 서둘러 자리를 옮기었다.
첫댓글 최연소 수석합격자의 아버지답게 인터뷰도 잘 했습니다.
천복도 재주꾼이죠. 대전 산림녹화공사에서 연구발표와 논제들을
작성하면서 공을세우더니 연구위원회 부위원장에 발탁되고, 집에
서, 대개 여인들의 인기도 사그러들지 않고, 금순 양지숙을 만나는
인연으로 자녀들을 큰돈 쓰지 않고, 교육시킬 수 있는 기회를 획득
하였고, 끝내 지혜를 최고시험에합격자로 등극하게 만들어 말처럼
아버지 소원을 딸이성공시켰으니, 성공했죠. 게다가 모든여인들이
시녀처럼 떠받들고 있으니 대성공이죠. 인터뷰도 잘하잖아요.모나
지 않게 달변으로 할이야기 사실대로 다 한 거죠. 그 기자들의 물음
에 답하는 건 그만큼 기쁨이 있기에, 말이 술술 나온다지만, 웬만한
사람 같으면, 흥분하여 말이 갈팡질팡하겠지만, 침착하고조리닿게
잘 하잖아요. 그걸 보면, 그에게 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는것도
추정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