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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포토그래퍼 / 류형원, 헤어 / 김정한, 메이크업 / 손대식, 의상과 구두 / 구찌, 펜디, 스타일 에디터 / 이지아. (오른쪽) 포토그래퍼 / 커트 맹엄 (Kurt Mang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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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한 달이었다! 2월부터 3월 초까지 릴레이로 열린 월드 와이드 패션위크에서 가장 끝내줬던 건? 70년대를 회고한 뉴욕의 마크 제이콥스도, 패션을 깨끗하게 정돈한 밀라노의 프라다도, 육중한 실루엣으로 좌중을 압도한 이브 생 로랑도 아니었다. 캣워크로 귀환한 다리아 워보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가장 끝내줬던 건 동양 모델들의 맹활약! 모델 엑스포를 방불케 하듯 각 대륙에서 독특한 지방색을 풍긴 채 브라이언 파크와 튈르리 공원 텐트 속으로 걸어온 모델들 틈에서 황인종을 찾는 재미는 짜릿했다. 이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여기 합승한 모델은 혜, 한, 두, 앤, 원, 다울, 타오, 엠마 등등)는 멀미가 날 만큼 흥분됐다. 게다가 이 리스트에 한국인이 무려 4명! 대한민국 유사 이래 없었던 일들이 전 세계 캣워크를 상대로 벌어진 것이다.
패션위크가 다 끝나자마자 <뉴욕 타임즈>패션 섹션은 ‘The Asia Society’란 제목 아래 이런 기사를 썼다. “마침내 두 주앙, 혜박이 세계 모델 순위에 랭크되면서 빠른 속도로 캣워크의 ‘달링’이 됐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중국을 백그라운드로 둔 덕분에 패션월드에서 귀하게 대접받았던 두 주앙은 코리안들에 의해 캣워크에서 죽쒔다. 그리고 앤 와타나베는 꼼므 데 가르송 사단의 눈에조차 들지 못했다. 패션의 얼굴이 극동 아시아, 거기서 다시 한반도로 줌인되고 있다! 애국심을 건드리는 코리안 걸들의 캣워크 무용담을 점검해 보자면, 중국 대륙을 제치고 일본 열도를 밀어낸 뒤 캣워크에 핀 모델 한류 현상이 패션 올림픽처럼 여겨진다. 그 가운데 두 주앙과 박혜림의 대결은 탁구 한중전이나 쇼트트랙에서 중국 선수와의 결승전을 보는 듯하다. 먼저, 올봄 GAP과 H&M 광고 촬영을 한 박혜림. 뉴욕: 마크 제이콥스, 드 라 렌타, 본 퍼스텐버그, 타미 힐피거, 프로엔자 슐러, 데릭 램, 로다테, 캐롤리나 헤레라 등등. 밀라노: 돌체 앤 가바나, 구찌, 마르니, 로베르토 카발리, 막스마라, 버버리 프로섬, D&G, 디스퀘어드 2 등등. 파리: 발렌시아가, 이브 생 로랑, 루이 비통, 드리스 반 노튼, 후세인 샬라얀, 칼 라거펠트, 휘드마일, 웅가로 등등.
돌체 앤 가바나 쇼에서 거창한 모피 코트를 입은 혜박은 그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린 뒤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지금까지 돌체 앤 가바나에서 입었던 옷 중 제일 맘에 들었던 옷. 사랑해, 돌체 앤 가바나! 돌체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라며 꼭 잘하라고 했었다. 피팅 때 돌체랑 가바나랑 ‘She is gorgeous!’라며 나 들으라고 한 소린지, 아무튼 기분 좋게 만들어줬고 이탈리아 말로 ‘예쁘다!’고 해줬다. 리허설 땐 정말 피곤했지만 쇼 때는 제일 신나는 쇼~!” 그리고 구찌 캣워크 사진을 올려 놓자 팬들은 “축하한다!”며 열광했고(“당신이 있어 우리나라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공익광고 캠페인 카피 같은 애국심 절절한 문장도 눈에 띄었다), 카발리 쇼 사진을 올려 놓자 팬들은 다시 광고에 써달라는 소망도 남겼다. 하지만 버버리 프로섬 사진 아래 리플로 혜박은 원래 두 벌을 입기로 했으나 한 벌을 수비에게 넘겼다며 아쉬워했다.
한혜진 역시 온라인 팬클럽에선 패션위크 동안 캣워킹 사진이 실시간 업데이트됐다. 뉴욕: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프로엔자 슐러, 베라 왕, 잭 포즌, 피터 섬, 템펄리, 3.1필립림 등등. 런던: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밀라노: 돌체 앤 가바나, 버버리 프로섬, 닥스, 페라가모, 보테가 베네타, D&G, CNC, 모스키노, 스포트막스 등등. 파리: 샤넬, 클로에, 후세인 샬라얀, 칼 라거펠트, 빅터 앤 롤프, 셀린, 커스텀 내셔널 등등. 뉴욕 패션위크 마지막 즈음 그녀는 싸이월드를 통해 마크 제이콥스 쇼가 제일 좋았다고 고백했다. 버버리 프로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혜에겐 한 벌, 한에겐 두 벌을 입혔는데, 그가 한혜진의 강렬한 인상을 특히 좋아했다고 버버리 측은 전했다. 또 한은샬라얀 쇼에선 피날레 오프너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한편 한국에서 장윤주, 한혜진과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린 김원경도 이번 시즌부터 뉴욕과 밀라노 캣워크에 발을 디뎠다. 그녀는 뉴욕에선 베이비팻, 3.1필립림, 제로 마리아 코르네조, 밀라노에선 푸치와 D&G에 섰다.
이렇듯 ‘Han’과 ‘Hye’, 그리고 ‘Won’의 닮은 듯 다른 외모로 인해 패션쇼 관객들은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에서 다시 코리안 익스프레스로 환승한 채 4대 패션위크를 유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눈엔 ‘한’이든 ‘혜’든 ‘원’이든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눈치다.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혼동한 채 표기하고 있으니까. 일례로 스타일닷컴은 돌체 앤 가바나 백스테이지에서 뷰러로 속눈썹을 올리고 있는 ‘한’을 ‘혜’로, 빅터 앤 롤프 쇼의 ‘한’ 역시 ‘혜’로 표기했다. 그러자 빅터 앤 롤프 해프닝과 관련해 한혜진 미니홈피엔 이런 리플들이 오갔다. “정재영: 스타일닷컴에 혜박으로 나와 속상…(02.27 20:33) 한혜진: ㅜ.ㅜ어쩔 수 없죠~ 한국 사람들만 알아보면 돼요~(02.28 06:47).” 한국인끼리 그 정도니 서양인들에겐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구분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푸치 쇼의 ‘원’은 일본계 모델 ‘타오’로 표기됐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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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 류형원(Hyungwon Ryoo), 헤어 / 김명수(Myungsoo Kim), 메이크업 / 김은정(Eunjung Kim), 미주(Mizu), 의상 / 진유(Jean Yu), 스타일리스트 / 애리 윤(Aeri 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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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한국 아가씨들이 서양인들의 눈엔 얘가 쟤처럼 보이고 저 모델이 이 모델 아닌가 싶겠지만, 우리 눈엔 셋 다 각각 다른 특징과 매력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맨 처음 캣워크 위에서 코리안 익스프레스의 시동을 건 혜박부터 탐구해보자. 도날드 트럼프가 운영하는 트럼프 모델 매니지먼트(Trump Model Management)의 총아가 된 혜박의 첫인상을 부사장 코린 니콜라스(Corinne Nicolas)는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기억한다. “혜박이 나타나기 전까지 글로벌 마켓에서 잘나가는 동양 모델은 아이 토미나가뿐. 당시 우리는 인종의 경계를 초월하는 젊고 신선하고 모던한 이미지를 발굴하고 있었죠.” 박혜림의 ‘클래시즘이 가미된 강한 외모’에 대해 부사장은 더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폴라로이드에 찍힌 신인들은 개성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혜박의 폴라로이드에서는 그녀가 꽤 노련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인에게선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점이죠. 또 톱 스타일리스트와 매거진, 디자이너들이 중요히 여기는 기품과 개성이 그녀 안에 있음을 발견했어요. 그러니 그녀의 폴라로이드를 처음 봤을 때 바로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요.”
그렇다면 다른 아시아 모델에 비해 박혜림이 월등한 건 뭘까. 혜가 좀더 모던하고 프레시한 얼굴이라고 트럼프 사람들은 평한다. “그녀는 무명 시절 4장의 폴라로이드로 뉴욕에 도착해 이탈리아와 미국 <보그>에서 스티븐 마이젤과 작업한 유일한 아시아 모델입니다. 그로부터 2주 후, 뉴욕과 밀라노, 파리에서 열린 빅 쇼들이 그녀를 불렀어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진 거죠.” 그리하여 혜는 하룻밤 만에 성공을 거둔 캣워크의 신데렐라가 됐다. 니콜라스는 혜박이 패션 크리에이터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고 감격스럽게 덧붙였다. “혜박은 최고의 모델에게 중요한 요소인 카멜레온의 느낌을 지녔어요. 사진가와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걸 먼저 내놓는 배우와 같아요.” 패션계의 거물인 미국 <보그>에디터 앙드레 레옹 탈리가 고정 칼럼에서 “내가 좋아하는 모델 혜박”이라며 애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며 혜의 사진을 기사에 자주 올리는 통에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루머에 의하면 혜박을 향한 취향만큼은 편집장 안나 윈투어와 정반대라나?). 혜박의 얼굴에서 압권은 바로 코 오른쪽 아래에 박힌 애교점과 섬세하게 아름다운 작은 입술! 순진한 처녀에서부터 요부 같은 캐릭터까지 맘대로 넘나들게 하는 매직 포인트다.
그런가 하면 대담한 광대뼈와 당나귀 귀처럼 장군감인 귀, 분화구가 있는 산을 연상시키는 뾰로퉁한 입술, 아랫입술을 뗐을 때 토끼처럼 드러나는 윗니와 표정 주름 사이에 낀 ‘얌체 보조개’는 한혜진의 트레이드 마크. 그래서 프로엔자 슐러 쇼에서 20년대풍 모자를 푹 눌러 썼을 때도 다이아몬드형 입술만 보고도 한혜진인 걸 알아챘다. 그녀가 소속된 마릴린 모델 매니지먼트(Marilyn Model Management)의 에이전트 에릭 섄델(Eric Schandel)은 한의 이중적 신비로움에 홀딱 반했다. “처음 한을 봤을 때 마스크는 강했지만 조용한 소녀였죠. 그 양면성에 반했죠. 재치를 겸비한 우아한 모델입니다.” 에릭이 언급한 강한 인상은 한혜진의 암코양이 같은 매력에서 비롯되며 그건 서양인들에게도 제대로 먹힌다. 지난 시즌 안나 몰리나리 광고가 그 예다. 레오파드 팬티 스타킹에 역시 레오파드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은 모습은 영락없이 관능적인 암코양이다.
“그녀는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걸 바로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했고, 그들조차 몰랐던 걸 제시하는 카멜레온 같은 모델입니다. 그게 한혜진의 성공 요인이죠.” 마릴린의 에이전트들은 다른 동양 모델들이 할 수 없던 걸 한혜진이 해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러면서 “모델에게 아름다움과 품위는 아주 중요한 요소지만 이 둘을 동시에 지닌 건 거의 드물다”며 한에겐 그게 있다며 찬사를 날렸다. 다른 동양 모델은 물론 같은 한국 모델들과 한혜진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면 바로 보디 실루엣. 에릭은 그녀의 몸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의 보디라인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예요. 패션계에서 손꼽히는 라인 중 하나라구요!”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들과 사진가들이 한의 보디라인이 완성하는 각도를 아낀다고 귀띔한다. “정말 모두가 그녀의 움직임을 사랑합니다. 한혜진의 유연함에 대한 찬사는 에이전시로 끝없이 접수되고 있다니까요.”
가운데 똑같은 문자를 쓰는 박혜림과 한혜진을 살펴보자면, 둘의 닮은 듯 다른 얼굴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혜가 납작한 윤곽에 소극적으로 생겼다면, 한은 볼드하고 적극적인 외모다. 혜가 미간이 넓고 선이 가늘며 센시티브하게 느껴진다면, 한은 굵고 대범하며 드라마틱하다. 혜가 서민정처럼 상냥해 보인다면, 한은 김아중처럼 도발적으로 보인다. 혜는 옆가르마가 예쁘고, 한은 앞가르마가 더 예쁘다…. 예리하기 짝이 없는 패션 네티즌들이 이런 차이를 놓칠 리 없다. 이와 관련해 혜와 한이 볼을 맞대고 찍은 사진을 보고 한혜진의 미니홈피에서 어느 팬은 이렇게 결론냈다. “평면형과 유선형!”
혜와 한의 공통된 특징인 검정 비단처럼 길고 윤기 있는 머릿결은 서양인들이 보기에 접근하기 힘든 강한 카리스마를 선사한다. 하지만 김원경은 다른 동양 모델들과의 차별을 위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버렸다(뉴욕 패션위크 초반부에 이탈리아판 <베니티 페어>에서 뽑은 신인 모델 5로 뽑혀 뉴욕에서 촬영을 마친 원은 그때만 해도 풍요로운 긴 머리로 <보그>촬영도 함께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서게 된 3.1필립림 쇼에선 아주 짧은 단발로 등장했다). 현재 패션계를 장악한 특급 모델들이 줄줄이 포진된 IMG의 뉴페이스 모델팀 에이전트 리사 디루코(Lisa Diruocco)는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김원경의 가능성을 쉽게 간파했다. “원은 패션 감도가 높은 한국의 톱 모델로, 우린 그녀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잠재력을 지녔음을 바로 알아봤죠. 그녀의 놀라운 캐릭터와 스타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모델이었죠!” 최근 살이 많이 빠진 그녀는 예전의 글래머 대신 모던 앤 스키니 쪽으로 터닝 중이다. 특히 볼의 젖살이 많이 빠져 홀쭉해져 사선으로 두드러진 광대뼈와 구강 구조로 인해 아프리카나 남방계 이미지까지 풍긴다.
IMG엔 현재 가장 잘나가는 동양 모델 중 한 명인 두 주앙이 진을 치고 있다. 그래서 두 명의 동양 모델들이 서양인의 눈에 비슷해 보이지 않느냐고 묻자, IMG의 모델 전문가들은 전혀 닮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녀들은 각각 다른 캐릭터와 개성을 지닌 모델입니다. 물론 닮지도 않았죠. 비교하는 건 불가능해요.” 대신 캣워크 위에서 김원경의 존재감은 특출났다고 덧붙였다. “다른 모델들은 잘 모르지만 원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런웨이에 있을 때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아주 천재적 재능을 지닌 모델이라 할 수 있죠.” 실제로 <베니티 페어>촬영 때 뉴요커 사진가 클리프 와츠(비욘세, 요한슨, 졸리, 던스트, 그리고 리야, 유제니아 등을 찍은)는 다른 톱 모델과의 촬영은 다 필요 없으니, 오직 ‘원’과 단독 화보를 촬영하게 해달라고 스타일리스트(<보그>밀라노 통신원)을 조르기도 했단다. 몇몇 디자이너들로부터 하이 패션을 위한 최고의 몸매를 지녔다는 평판을 얻은 김원경은 톱 디자이너와 사진가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춘 채 이번 시즌 캣워크 위에서 워밍업을 막 끝낸 상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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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포토그래퍼 / 클리프 와츠(Cliff Watts), 헤어 / 펠릭스 피셔(Felix Fischer for Bumble & Bumble@Factory Downtown), 메이크업 / 카리이아키 사브라니(Kyriaki Savrani@Factory Downtown), 의상과 구두 / 질 샌더(Jil Sander), 스타일리스트 / 김예영(Yeyoung Kim). (왼쪽) 포토그래퍼 / 류형원, 헤어&메이크업 / 홍현정, 스타일리스트 / 애리 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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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필연인지, 셋이 한무대에 섰다. D&G 캣워크 위에 한이 25번, 원이 뒤를 이어 26번, 혜가 30번 룩을 입고 나온 것. 그리고 돌체 앤 가바나 무대 위엔 혜와 한이 올랐다(후일담에 의하면, 원도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발 사이즈가 너무 작아(235mm) 두 주앙에게 뺐겼다). 코리안 트리오를 캐스팅한 스테파노 가바나는 이들이 “아주 훌륭하고 우아하고 섬세하며, 동시에 아이러니한 매력을 지녔다”는 품평을 <보그>에 전해왔다. “도미니코와 저는 그들을 통해 돌체 앤 가바나의 아시안 버전을 완벽히 형상화 할 수 있었어요. 센슈얼하고 핫하고 우아하고 아이러닉한 여성상!” 또 돌체 앤 가바나 밀라노 PR팀은 그들이 한국 모델들에게 열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다. “도미니코와 스테파노는 한국 모델들의 애티튜드가 아주 훌륭하고 사교성도 뛰어나다고 칭찬했어요.” 그러곤 다른 동양 모델과 코리안 트리오가 어떻게 다른지 도미니코는 설명해줬다. “모두 톱 모델이기에 무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완벽히 알고 있었죠. 피팅할 때조차도 말입니다. 우리 옷을 입은 그들을 보니 편안하고 완벽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캣워크에서 아주 새롭고 신선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이렇듯 유럽에서 온 깊고 짙은 쌍꺼풀보다 홑꺼풀에 눈두덩이가 평평한 눈매가 보내는 윙크에 패션이 푹 빠지기 시작했다. 그 상징적 마스크 혜박이 ‘세계 최고의 동양 모델’이란 수식을 달 무렵, 미술학자 겸 얼굴 전문가인 한서대 조용진 교수는 그 얼굴을 이렇게 품평했다. “혜박의 얼굴을 보면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외모와 전혀 겹치지 않는 극단적 동양인의 얼굴 특징을 매력으로 느낀다는 걸 알 수 있다. 각진 듯한 턱, 눈이 작고 찢겨진 눈, 치켜 올라간 눈, 끝이 작은 코, 납작한 얼굴, 검은 생머리가 그것.” 몇 달 전 <보그>에서 어느 성형외과 전문의도 코리안 트로이카의 동양적 순수성을 강조했다. “황인종은 검은 머리카락에 얼굴의 수평이 길고, 광대 부위가 넓으며, 낮은 코와 작지만 넓은 콧볼이 특징. 쌍꺼풀이 없고 도톰한 눈두덩이와 광대뼈가 나온 그들이 극동 아시아인의 특성을 지녔다.” 코리안 트로이카의 상징인 홑꺼풀은 캣워크에서 한류 모델 현상을 일으킨 또 한 명의 한국 모델 김다울과 크게 다른 점이다(그들의 홑꺼풀은 뮬란이나 우디 알렌의 아내 순이처럼 서양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혜박을 처음 봤을 때 니콜라스는 쌍꺼풀 없는 눈에서 놀라움을 발견했다며 금광이라도 채취한 듯 기뻐했었다. “당신도 혜의 눈을 통해 개성과 파워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서양인들이 한국 여인들의 쌍꺼풀 수술 붐에 대해 의아해하는 지금, 그녀들의 눈은 쌍꺼풀 없는 한국 여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 한혜진의 홈페이지 한 대목을 보자. “정신엽: 언니 덕분에 쌍꺼풀 없는 제 눈이 사랑스럽게 느껴져요(02.21 10:33).”
그렇다면 패션월드는 왜 지금 쫙 찢어진 홑꺼풀 눈매와 광대뼈에 숨 넘어가는 걸까. 극동에 대한 일시적 호기심? 아시아 패션 마켓을 향한 서비스? 한혜진을 대형 스타로 키울 만반의 준비를 끝낸 마릴린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향한 패션의 본능이 큰 작용을 했다고 분석한다. “패션계는 그들이 어디서 왔든 상관없이 그들만의 유니크한 미모에 끌렸습니다. 한은 결정적으로 그걸 갖고 있었죠.” IMG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패션 비즈니스가 진보할수록 하나 이상의 아름다움을 원하고, 그게 바로 다양성임을 깨달은 거죠.” 혜박을 캣워크의 신데렐라로 키운 니콜라스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이 아시안 모델의 순간!”이라 얘기한다. “몇 년 전, 패션이 브라질 모델에 열광했듯 지금은 아시아 모델을 향한 수요가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 니콜라스는 패션 비즈니스 매커니즘을 들었다. “패션지와 디자이너들이 아시아 마켓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겁니다. 아시아에 큰 이익이 될 수 있는 장치를 찾은 거죠.” 도미니코 돌체 역시 <보그>에 아시아 마켓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아시아의 영향과 문화에 개방적으로 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한 거죠. 이건 아주 중요한 사인입니다.”
캣워크가 백색 화선지라고 상상해보자. 벼루에 먹을 갈아 흑묘필로 동그랗게 얼굴 선을 쓱 그은 뒤, 홑꺼풀 없는 눈을 그려 넣은 다음, 채색필로 농담을 표현하고 나면, 21세기 패션 미인도의 여인이 된 ‘Hye’와 ‘Han’, 그리고 ‘Won’이 아른거릴지 모르겠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이 새로운 미인형에 탄성을 지르며 패션의 새 얼굴로 등록한 채 그들에게 가장 예쁜 옷을 입히려고 야단날 것이다(언젠가 마크 제이콥스는 혜박이 가장 못생겨서 가장 예쁜 옷을 입힌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러니 김원경이 ‘나는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TV 광고 속에서 양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위로 치켜 올리는 장면을 파리와 뉴욕의 사진가들이나 디자이너들이 본다면? 니콜라스는 새로운 패션의 얼굴이 될 코리안 뷰티들을 향해 이렇게 감탄했다. “천부적으로 기품 있는 센스와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들을 누가 포기할 수 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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