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창비의 사과문
이영관 기자
입력 2022.12.07 03:00
“저는 몇 년간 창비를 대표한 작가였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바, 저보다 덜 알려진 힘없는 창작자들이
더 큰 고통에 몰래 숨죽이고 있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손원평이 자신의 소설 ‘아몬드’(창비)의 연극 상연 논란에 대해 기자에게 한 말이다.
2017년 출간된 이 책은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 판매됐고, 이미 세 차례 공연화됐다.
문제는 지난 3~4일 극단 청년단(민새롬 대표)의 연출로 공연한 네 번째 상연.
다시 원작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작가는 몰랐고, 그가 이 소식을 접한 건 연극 4일 전이었다.
작가는 “출판사 편집부, 저작권부, 연극 연출자가 ‘저작권’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허약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은 1차적으로 저작권 문제를 늦게 인지한 민 대표의 잘못이지만, 창비의 오만과 태만이 일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창비는 10월 중순부터 연극 상연 사실을 인지했지만, 약 6주 뒤 작가에게 이를 알리며 허락을 구했다.
창비는 “기존에 상연된 전례에 따라 협의했다.
저작권자의 허락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간과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창비의 사과는 처음이 아니다.
창비는 5년 전 자사 온·오프라인 문학잡지에 실렸던 임솔아 작가의 단편소설 ‘병원’을
원작자 동의 없이 희곡으로 개작한 것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다.
의도치 않은 실무상 누락으로 동의를 받지 않았고,
저작권 문제와 작가의 권리에 대한 각성을 이어가는 계기로 삼겠다는 설명이었다.
손 작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과거 ‘아몬드’ 출간 이전 겪었던 일도 털어놨다.
독자들에게 가제본을 제공해 서평을 쓰게 하는 홍보 과정에서,
출판사 창비가 작가가 넣으라고 했던 부분이 빠진 가제본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작가에겐 알리지 않아,
한참 뒤에서야 자신의 작품이 출판사에 의해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창비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창비의 사과문은 반복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학 출판사 중 한 곳의 저작권 인식이 이 정도라면 부끄럽지 않은가.
“저작권에 대한 일들이 늘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잊힐 일”이라는 손 작가의 말이 부디 틀리기를 바란다.
이영관 기자
조선일보 이영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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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 년간 창비를 대표한 작가였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바, 저보다 덜 알려진 힘없는 창작자들이 더 큰 고통에 몰래 숨죽이고 있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2022.12.07 05:17:13
저작권은 작가나 예술가에게 하나의 권리이다.
창작과 열정의 원동력이기에 충분한 보장과 보상이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