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화
2021년 3월 9일(화), 광양 매화마을
임포(林逋, 967~1028)가 그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에서 ‘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성긴 그림자 맑
은 물에 비스듬히 비치고, 그윽한 향기 황혼녘 달빛 아래 풍기네)’라는 구절 이후 많은 문인들이 ‘암향(暗香)’을
매화 시에 즐겨 썼다.
지난 세 차례에 걸쳐 매화 꽃 사진을 올릴 때 우리나라 문인들 중 ‘암향’을 매화 시에 쓴 예로 몇 수를 골랐는데
이어서 더 들어본다.
愛梅應與衆殊科 매화 사랑 대중들과 취향이 다른지라
淸坐看來興轉賖 앉아서 감상하면 갈수록 흥이 나지
疎影不曾留一葉 성긴 그림자 일찍이 잎 하나 남았는데
暗香寧待吐群葩 다른 꽃 피기 전에 향기를 전하는구나
―― 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 1369~1430), 「무제(無題)」에서
野外梅花草裏開 들판의 매화가 풀숲에서 피어나니
細風吹送暗香來 산들바람이 그윽한 향기를 날려 보내네
世人不貴和羹實 세상사람 국에 간맞추는 열매를 귀히 여기지 않으니
誰肯移渠近地栽 누가 그 나무를 옮겨 가까이 심으려 하랴
―― 간송 조임도(澗松 趙任道, 1585~1664), 「진양 가는 길에 들판의 매화를 노래하다 신해년(1611, 광해군3)
봄 〔晉陽途中詠野梅 辛亥春〕」
一區寥落鎖烟扉 한 구역 쓸쓸히 사립문이 연기 속에 잠겼고
松蔭高臺柳拂磯 누대엔 솔 그늘지고 강가엔 버들 늘어졌네
掩淚來時寒磵咽 눈물 훔치며 올 때에 찬 시냇물 오열하고
傷心朢處遠山圍 마음 상해 바라보는 곳에 먼 산이 둘렀네
流傳只恐訛言眩 전해져서 그릇된 말로 현혹할까 두렵고
想象深憂墜緒微 맥 끊어질까 깊이 걱정하던 모습 상상해 보네
惟有數梅依舊在 몇 그루 매화나무만 옛날처럼 남아있어
暗香踈影襲人衣 그윽한 향기 성긴 그림자 옷깃에 스미네
―― 간재 이덕홍(艮齋 李德弘, 1541~1596), 「김희중의 〈도산을 지나다가 매화를 보고 느낌이 있어〉라는 시에
차운하다 기묘년(1579, 선조12)〔次金希仲過陶山見盆梅有感 己卯〕」
微紅玉色先春天 옥색 연분홍 꽃이 맑은 색 봄날 앞서 피어
遠揷雷罇的的鮮 멀리서 술동이에 꽂아 보내니 선명히 고와라
疏影暗香驚起我 성긴 그림자 은은한 향기 나를 놀라 일으키니
雅懷知是舊逋仙 임포의 고아한 회포를 알겠노라
――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1517~1563), 「이매암이 홍매를 꽂은 술단지를 보내왔기에 차운하여 사례하다
〔次謝李梅巖送紅梅揷罇〕」의 3수중 제1수
破臘階前雪 섣달 계단 앞에 눈 내리는데
先春閣下梅 봄보다 앞서 누각 아래 매화 피었어라
未知新萼動 새 꽃망울 움트는 줄도 모르다가
秪覺暗香來 그윽한 향기 스며들어서야 알았네
――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 「매화 창에 내리는 밤눈〔梅窓夜雪〕」에서
暗香疏影占黃昏 은은한 향기와 성긴 그림자 황혼을 독차지하고
靑鳥枝頭亦斷魂 가지 끝의 청조에 또한 넋을 잃도다
東閣數株尤絶俗 동각의 몇 그루 더욱 속세에서 벗어나니
羅浮不必訪花村 나부산의 꽃 핀 마을 찾을 필요 없어라
―― 서하 이민서(西河 李敏敍, 1633~1688), 「관사 동산의 열 가지를 읊다〔官園十詠〕」에서 ‘매화를 읊었다’
孤山人去暗香殘 고산 주인 떠나서 매화 향기 쇠잔하니
零落殘魂底處看 영락한 매화 넋을 어디에서 볼 것인가
氷骨雪肌嫌俗韻 찬 가지와 하얀 꽃이 속세 기운 싫어하여
遠移潛入翠巖間 멀리서 옮겨 와 몰래 바위사이에 심었네
――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1532~1587), 「장난삼아 진사 이운장에게 드리다〔戲呈李上舍雲長〕」
一時才氣冠劉曹 한 시대 재기는 유조가 으뜸이었고
文彩風流擅楚騷 문채와 풍류는 초나라 〈이소〉가 최고였네
細雨池塘春草綠 가랑비에 연못가의 봄풀이 푸르고
東風梅萼暗香高 봄바람에 매화의 은은한 향기가 짙네
―― 선조대왕(宣祖大王), 「해숭위에게 하사하다〔賜海嵩尉〕」에서
주) 유조(劉曹)는 유정(劉楨)과 조식(曹植)을 말하고, 초소(楚騷)는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을 말한다.
積雪初消暖氣生 쌓인 눈 막 녹아 따스한 기운 생기니
寒梅忽拆數枝明 매화가 홀연 피어 몇 가지가 환하여라
暗香浮動風前細 그윽한 향기 움직여서 바람 앞에 가늘고
疎影參差月下橫 성긴 그림자 들쭉날쭉 달 아래 비꼈다
苦節每登騷客歎 곧은 절개는 언제나 시인의 감탄에 오르고
芳姿長留墨翁情 아름다운 자태는 오래 묵객의 마음에 남는구나
年年好信先春報 해마다 좋은 꽃 소식 봄에 앞서 알려
愧幷千紅列衆榮 화려한 뭇 꽃들을 모두 부끄럽게 하네
―― 옥담 이응희(玉潭 李應禧, 1579~1651), 「매화를 보고[見梅] 」
伊昔勤封植 예전에 정성껏 심고 가꿔
平生癖此花 평생 이 꽃 사랑했네
暗香通竹塢 그윽한 향기 대나무 언덕까지 퍼지고
春色護苔槎 봄빛은 이끼 낀 가지를 감싸는구나
冷韻氷同潔 차가운 운치는 얼음처럼 깨끗하고
淸標玉絶瑕 청아한 모습은 티 없는 옥 같아라
紛紛姚與魏 울긋불긋 모란꽃
笑爾競繁華 우습다, 화려함 뽐내네
―― 옥오재 송상기(玉吾齋 宋相琦, 1657~1723), 「매화〔梅〕」 4수 중 제1수
주) 요여위(姚與魏)는 위자요황(魏紫姚黃)으로 모란을 말한다. 옛날 낙양(洛陽)의 위씨(魏氏)와 요씨(姚氏) 두 집
에서 각각 자주색과 황색의 진귀한 모란이 피어났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霜後精神雪裏姿 서리 뒤의 정신이요 눈 속의 자태이니
暗香時覺透輕帷 은은한 향기 때때로 휘장으로 스미는구나
箇中淸意無人識 이 속의 청신한 의미 아는 사람 없고
惟有孤山夜鶴知 오직 고산의 밤 학만 알뿐이라오
―― 지봉 이수광(芝峰 李睟光, 1563~1628), 「매학헌 차운 〔梅鶴軒 次韻〕」의 2수 중 제2수
臘月窮邊見物華 납월에 먼 북변에서 매화를 보니
暗香來處影橫斜 향기 은은한 곳에 그림자 비끼었네
騷翁不識春光早 시인은 때 이른 봄인지도 모르고
錯認枝頭雪作花 가지 끝에 눈꽃이 핀 줄 착각하네
―― 지봉 이수광(芝峰 李睟光, 1563~1628), 「재차 읊다 3수〔再詠三首〕」 중 제1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