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카디온의 콕핏에서 뛰어내린 카온은, 이미 메인프레임의 좌석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앞에 선 검은 갑옷에게, 오늘로써 세번들은 소리를 또 듣고 말았다.
{오늘로 일주일 째다. 카온.}
".....알긴 아는데 말이지."
{안다면, 장관에게 부탁받은 일을 빨리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제길, 시끄러워! 내가 네놈이 용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안단 말 이야!?"
{뭐, 나도 기대는 안했다만.}
전자음이 조금 느껴지는 목소리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에이지에게, 카온은 그를 볼때마다 느끼는 심각할 정도의 위화감을 다시 느꼈다. 색감이 전체적으로 어두위졌다는 것 외에는, 사이보그 가이와 완전히 같았다. 하지만, 얼굴을 가리는 회색의 가면은 가이가 가지고 있었던 부드러움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그 몸이 풍기는 분위기를 아주 차갑게 굳히고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 녀석,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그에게서는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카온의 심안은, 어느 정도라면 사람에게서 풍겨나오는 느낌이라던가를 조금 정도는 느낄 수 있긴 했지만, 에이지를 보고 있자면 마치 백지같은 허공을 보는 것 같았다.
{과연. 큰 전함이다.}
성격으로 보자면, 아직까지는 차분한 것 같은 느낌 뿐.
"...열받으면 미친다던가."
{무슨 소리인가.}
"뭐, 됐어. 그나저나...."
일단 그들이 내려선 곳은, 태평양의 어느 섬에 정박해 있던 나이트 아크. 즉 ARK의 본거지였다. 전장 1 km가 훌쩍 넘는 외우주의 초 거대전함. 로봇으로도 변형하는 등 외우주에서 온 초 거대 전함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듯한 전함이었으나, 전에 파멸탑 지구라트에서의 싸움에 휘말려 버린 탓에 지금은 너덜너덜한 상태로, 보수를 위해 ARK의 직원들이 넘쳐 흘러야 할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국련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상당 수 있었다.
[카온인가.]
"나이트 실버리온..괜찮아?"
[....괜찮은 것 같다.]
ARK가 국련에 관리된다는 소식은 들었기 때문에 카온은 일단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는 나이트 실버리온을 보자마자 왠지 모를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글쎄, 알 수 없지만...누구지?]
나이트 실버리온의 시선이, 이리저리를 둘러보고 있는 에이지에게로 옮겨졌다.
"..아. GGG에 새로 배치된 녀석이다. 에이지라고 하지. 어이 에이지! 인사하라고."
{....에이지다.}
[...그런가. 네가....인사가 늦었군. 나이트 실버리온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아아.}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이렇게 불러내고."
[.....]
"....응?"
순간 의아한 표정을 띄운 카온과 급격하게 표정을 굳혀가는 나이트 실버리온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에이지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 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
[....응?]
{일단은 장관의 명령을 받았다. 이런 초 거대 전함을 이해하는 것도 내가 할 일 중 하나다. 안내를 부탁하고 싶군.}
[....아. 그랬었지.]
{그럼, 가자. 카온, 너도.}
"에? 아, 아."
앞장서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에이지를 따라 카온이 황급하게 따라가자, 나이트 실버리온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전함 내부로 통하는 리프트를 탈 때까지, 그 표정은 걷히지 않았다. 리프트의 문이 닫히고, 셋이 전함 안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카온은 에이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이, 에이지, 그런 명령을 받았던 거냐?"
{그런 적은 없지.}
"엥?"
{하지만 나이트 실버리온은 너와 얘기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뭐어? 나이트 실버리온, 그랬던 거냐?"
[....]
나이트 실버리온은 약간 한심하다라는 표정으로 카온을 내려다 보았다. 점잖은 그로써는 파격적인 감정표현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에이지가 대신해 말했다.
{카온. 심안이라도 써라. 주위에는 국련 병사들이 깔렸지 않았나.}
".....아. 아아....그랬나. 뭔가 곤란한 문제였나?"
{.....아마, 처음 보는 나한테는 꺼내기 힘든 중요한 문제일 거다. 그렇지 않나?}
[.....에이지라고 했나. 네가 요즘 소문의 주인공이로군.]
"소문?"
[가이의 G스톤을 이어받은 휴머노이드가 너였나.]
{안드로이드다. 별로 그렇게까지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억양없는 에이지의 말을 들으며 그를 유심히 내려다 보던 나이트 실버리온은, 잠시 동안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일인데?"
[......요즘 중앙 블록을 복구하고 있는데....]
"응응."
[기묘한 것을 찾았다.]
"헤에? 뭔데?"
먼저 발을 옮기며, 유난히 넓은 통로를 지나가는 나이트 실버리온의 뒤를 따라, 카온과 에이지가 뒤를 따랐다.
[....그란로드 성단에서 페이시드 스테이션을 보고 왔다고 했지?]
"아. 그랬지."
[그 중앙쯤에, ES윈도우를 응용한 전송룸이 있었지?]
카온은 대답을 하는데 한참을 소비해야 했다.
"...아..맞아. 그런게 있었지."
[여기에도 그런것이 있다. 하지만 그쪽 부근은 무너져서 무사한 지 알 수 없었지. 그것을 오늘 찾았다. 그런데...]
"그런데?"
[...가동을 하고 있어.]
그 때, 프랑스의 하늘을 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도쿄라는 변방의 도시가 소멸해 버리건 말건, 세계는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 선량한 사람은 하루하루에 바빠 혼란을 잊고, 범죄자는 혼란의 틈새를 파고들어 범죄를 저지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국 모두 그 일을 잊을 것이다.
르네 카디프는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붉은 스포츠카의 차체에 기대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프랑스의 하늘 답게 맑았지만, 샤를 드 골 공항의 소음은 그 하늘을 무참하게 깨트리고 있었다. 그것이 섬세한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줄여서 말하자면, 르네는 지금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쩌지, 포러씨. 여왕님이 점점 짜증을 더해가시는데.]
"괜찮습니다. 페이드씨의 동체라면 그 짜증에 견뎌낼 수 있을거에요."
붉은 차체가 크게 출렁였다. 등을 기대고 있던 르네가 힘을 세게 주자, 시판차보다 수십배는 강할 동체가 멋대로 흔들려 버린 것이다. 붉은 스포츠카, 현재 샷셀 소속의 용자로봇, AISG를 탑재한 페이드는 비명을 올렸다.
페이드에 타고 있던, 샷셀의 중견 수사관이자 르네의 파트너인 에릭 포러는, 온화한 눈매를 찡그리며, 그리고 단련된 육체를 움츠리며 르네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연착하는 게 페이드씨의 탓도 아니잖아?"
"AI로봇에게 일일히 씨(Mr.)를 붙이지 마!"
[저런 걸 일본에서는 '찔러넣는다'고 하던가?]
"과연. 아플정도군요. 한국어로야 '딴죽 건다'고 해서 좀 재미가 없지만."
점점 험악해지는 르네의 인상에 에릭과 페이드는 일단 정색을 했다. 아무래도 서로 엉망진창의 파트너만 보아오다가 의기투합 해 버린 게 화근이 된 듯 싶었다. 너무 떠들었어요.
"자아, 페이드씨. 다시 한 번 작전목적을 브리핑 해볼까요."
[그러자구, 에릭씨. 이렇게 중요한 작전이다. 실패할 수 없지.]
단지, 일본에서 오는 두 꼬맹이를 보호하는 것 뿐이잖아! 르네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울렸다. 도쿄의 소멸로 온나라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든 것을 기회로 바이오네트의 활동이 격화되고 있었다. 그런 바쁠때에, 일본에서 오는 VIP의 호송에 자신과, 에릭, 그리고 샷셀의 에이전트 유 하인의 부재로, 차고에서 벽과 대화하고 있던 페이드가 그 둘의 호송임무에 끌려나왔다.
"VIP야, 르네. 브레이브 폴리스의 대장, 토모나가 유우타와 잉글랜드 브레이브 폴리스의 기술 주임, 레지나 아르민이라고? 그런 VIP들이 바이오네트라 다른 녀석들에게 납치라도 되면 큰일이야."
[뭐, 토모나가씨야 직위 해제 된 상태라 유학생 신분일까~ 이거 혹시 허니문? 청춘이구만~]
실제야 레지나가 유우타를 억지로 끌고온 것일테지만, 르네에게야 아무런 상관없는 사정이었다.
"영국으로 가는 거면 잉글랜드의 기름통들 에게 맡기면 되는 거야! 젠장, 귀찮아!"
기름통들이라면, 영국이 자랑하는 브레이브 폴리스를 말하는 건가. 에릭은 별 볼일없는 애국심에 호소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걸 피력하면 당장에 이 사자의 우아한 폭행이 그를 향할 것이 분명했다. 육체의 피해를 감수할지, 정신의 상처를 어루만질지의 양자선택. 에릭은 후자를 택해, 점잖게 입을 다물었다.
[오. 왔다.]
페이드의 음성에, 르네와 에릭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 보았다. 선명한 도장의 KAL기가 공항으로 있었다.
"...JAL이 아니군. 확실한 겁니까?"
[저거야 저거. KAL이라고 했어. 전세 낸 것 같으니까.]
"아마 지금 일본으로의 직항기는 없는 것 같으니까......"
그 때, 르네가 문득 말을 멈췄다.
".......응?"
"? 왜 그래, 르네?"
"....아니, 저건...!"
그 순간, 에릭의 눈에도 무언가가 보였다. 제트기의 엔진에서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불꽃이었다.
"!? 엔진에 불이!"
--그리고, 앗차 하는 사이에, 점보기의 모든 엔진이 폭발했다---
"뭐야! 제길!"
"아, 르네, 잠깐!"
[에릭씨, 내려! 빨리 구조를!]
폭발한 엔진에서 옮겨붙은 불이 날개를 잡아먹으며 기체를 지상에 떨어뜨리기 시작 했을 때, 르네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시속 60km의 주행속도를 가진 사이보그의 육체가, 땅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거대한 점보기의 동체에---
"!"
다다르기도 전에, 무서운 폭발이 그녀의 몸을 휩쓸었다. 날개와 이어진 연료탱크가 연폭을 일으켰던 것이다.
"큭!"
반사적으로 사이보그의 몸이 지령을 내렸다. 순간에 경화된 냉각코트가 그녀의 몸을 열풍과 열기로 막아주고, 눈에 열린 바이저가 열풍의 안에서 시야를 찾아줬다. 시속은 이미 30% 이상 증가되어, 그녀의 몸은 화살같이 폭염을 갈라 아직 완전히 타지는 않은 기체를 향한다. 아직이라면 어떻게든 구해낼 수 있다----
--후훗--
순간,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들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바이저에 있는 간이 AI가 청각센서에 잡힌 음성의 파장과 데이타베이스에 기록되어 있는 데이터의 동일함을 확인해, 르네의 시각 바로 위에 정보를 띄웠던 것이다.
인터폴의 특급 암살자 리스트의 맨 위에 올라와 있는 그 이름은.
"...뭣, 비스트 불렛(Beast Bullet)!?"
르네가, 가슴에 강력한 충격을 받은 것은 그때였다.
쿠궁!
[윽?!]
에릭을 내려놓고 인간형으로 변신해 달려오던 페이드의 복합센서에, 기묘한 방향의 열풍이 느껴졌다. 폭발이 일어난 여객기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폭발. 그것은, 르네가 달려들어간 장소와 아주 가까운 곳 이었다.
[이런 제길, 뭐야!? 어이 르네씨!!]
폭염을 헤치며 폭발의 중심으로 나간 페이드 였지만, 그의 센서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G스톤의 파장마저도 잡히지 않았다.
[이런 제길!!!! 어이 르네씨!!! 어디있는 거야!!!!]
소리치는 페이드의 눈 앞에서, 여객기가 대폭발 하기 시작했다.
그 때, 세이지와 얀차, 히카루는 맥없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ARK의 인수인계에 도쿄 사건으로 발생한 난민의 처리에 눈코뜰새 없는 틈새에서 아슬아슬하게 틈이 났기 때문이었다. 차를 가져 온 것은 사쿠라코우지 호타루. 그녀는 심히 지친 그들을 배려하기 위한 건지, 조용히 차를 끓여주고는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있었다.
"....쯧....딴지를 걸려면 좀 더 센걸 걸어야지..."
"세이지군."
"나라면 좀더...응?"
"연락없이 찾아와서 폐가 된 거 미안해...."
그러면서 고개를 숙이는 호타루에게, 세이지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전혀! 어쨌던간에 조금 쉬고 싶었으니까 말야! 이쪽도 이런 천막같은 거에서 호타루를 맞아서..."
".....아...그럼, 괜찮을까..."
"응?"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데려왔어."
투닥거리던 히카루와 얀차도, 세이지도 놀라 그녀를 바라 보았다. 호타루는 그다지 사람과 접촉을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를 데려온다는 것을, 셋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의아해 하고 있던 사이, 호타루의 뒤쪽, 천막의 문이 걷혀졌다.
"Excuse me~"
셋의 눈이 커졌다. 호타루가 데려왔다는 사람 치고는 엄청나게 이상한 사람이었다. 딱잘라 말하자면,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외국인. 땀에 젖은 목덜미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푸른 눈빛의 여성. 아마도 이국의 평균신장보다 조금은 더 클 몸에, 녹색 코튼 셔츠와 슬리브드 블레이저(Sleeved blazer), 그리고 흰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굉장한 미인. 이미 세이지와 얀차에게는 호감플래그가 떠 있는 상태.
"아...그러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를 소개할 말을 찾는 호타루. 그런 그녀에게, 미녀는 씩 웃어 주었다.
"Sorry. I guess I didn't introduce myself to you, Ms. Sakurakouji."
정중한 그 말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 히카루가 얼떨결에 소리쳤다.
"...엑. 모르는 사람!?"
"...내 이름에 너희들 이름을 계속 말하길래...일단 데려왔는데..."
"..오는 길에 만난거야?"
"...하긴 호타루가 외국인을 알리가 없지..."
뭔가 납득해 버린 셋에게, 토종 일본인인 호타루는 조금 토라진 투로 말했다.
"영어는 약해....아랍어는 조금 하지만."
"........"
문득, 언젠가의 새해맞이때의 그녀의 '농담'이 기억나 퍼뜩 정신 차리는 셋 중, 일단 금방 회복한 히카루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My name is Hikaru Kousaka. How can we help you?
"Oh, so you are Hikaru! Then those two guys are Seiji and Yancha! What an honor! I tried so hard to meet you all together, at this time!!"
"......Mind if I ask who you are?"
"Well....first of all, do they understand English or Korean? Since what I'm going to talk about is really, important, I want all of you to understand."
"...역시 히카루다."
"응응. 영어라면 역시 나나 세이지 보단 히카루다..."
"...이상해..옛날엔 영어 없이도 다른 나라 사람들 하고 잘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I don't think nobody understand English, Miss. Korean is fine. At least guys can understand."
전면에 나선 히카루와 그녀의 뒤에서 수군대는 셋을 보다가, 미녀가 말했다. 완벽한 억양의 한국어 였다.
"레이어 맥케이 라고 합니다. 차원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라이바루 죠는 불쾌한 일을 겪고 있었다. 블랙가인이 불러내어 공장에 온 것은 좋은데, 그 블랙가인은 기동정지되어 있는지 쓰러져 있었고, 이즈미인가 뭔가 하던 비서와 하마다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데다가, 직원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게다가 그 자신은 그 셋의 앞에 서 있던 괴한에게 총을 쏘려던 자세에서 단 한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그 괴한이 그의 뒤에 서서, 자신의 목에 무시무시하게 날카로운 칼날이 들이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칼날같은 손톱이라고 해야 정상이겠지만, 하나로 모인 그것이 그의 권총을 두동강 냈기 때문에, 칼이라는 것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었다.
괴한은 갑옷을 입고, 흉악한 모습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빌어먹을, 뭐하는 놈이냐? 어째서 이런 짓을...."
"...저 로봇에 대한 거라면, 내가 한 게 아니다. 라이바루 죠."
"누가 믿겠냐?"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입니다, 라이바루씨! 기동정지 되어있던 블랙가인을 회수하던 중이었는데, 저..저게 들어온 거에요!"
등 뒤에 서 있던 지라 냉막한 낮은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상대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굴욕적이겠지만 협력해라."
"닥쳐!! 내 목덜미에 칼을 댄 놈에게 누가 협력할까..!"
"시간이 없다. 미쯔히코 하마다, 이리 와라. 마츠바라 이즈미는 그 곳에 있어."
"무..무슨 소립니까?"
남자는 하마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라이바루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가, 허공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젭토다. 준비 되었다."
".....나이트 실버리온."
[....말해라.]
"설마 보여주기로 한 것에, 미인이 옵션으로 따라 오는 거 였나?"
[....일단 첨언하자면, 기사로서 레이디에게 사소하더라도 모욕적인 발언은 용납하지 않는다.]
중앙블록은 커다란 방이었지만, 그 방 전체는 기묘한 보라색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바로, 중앙의 구조물에서 생긴 ES윈도우때문이었다. 그 앞에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동작하고 있었고, 지금 그들의 앞에는...
{나도 이 사람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은 용납하지 않겠다.}
"......너도 기사냐?"
{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검은 장발을 아름답게 흩날리는 미인이 있었다. 검은색 탑코트를 흰색 블라우즈 위에 입고, 골든 메탈릭 로즈가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는 검은색의 롱스커트로 날씬한 몸을 감싼, 날카로운 눈매의 미인이--
--에이지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확실히 인간이다."
하지만 무시하면 안될 것 같았다. 셋이 들어올 때, 방의 끝에서 기계를 조작하다가 한 순간에 접근해, 안드로이드인 에이지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은,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검을 겨누고, 보폭도 바르게,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그 모습은, 셀 수 없는 연습을 거듭해 만들어진 달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불쑥 말했다.
"안녕하세요."
잠시 침묵 후, 카온과 나이트 실버리온은 경쾌하게 말했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어이어이. 이 칼은 안중에도 없나?}
"걱정 마, 에이지. 살기는 없는 것 같다."
[벨 거면 첫 합에 베였다.]
카온과 나이트 실버리온의 한가한 음성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그러나 에이지의 목에 겨눠진 검은 치워질 기미가 없었다.
"미안해요. 모르는 얼굴이 있어서 순간 경계했네요."
"모르는 얼굴?"
"두 분의 얼굴 만은 알고 있어요. 카온, 그리고 나이트 실버리온."
그 둘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중에도 산더미처럼 있기 때문에, 둘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조금 더 경계하기 시작한 둘 대신, 에이지가 말을 꺼냈다.
{누구냐, 너는?}
"이름을 알고 싶으면 먼저 대답하세요. 누구시죠?"
{그런 말 따위 돌려주...}
구우웅!
에이지의 푸념에 가까운 말은,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가로 막혔다. 반사적으로, 카온과 에이지, 그리고 나이트 실버리온의 시선이 뒤로 옮겨졌다.
보랏빛의 광채, ES윈도우에서의 굉음과 함께, 한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남자였다. 중절모를 쓰고 코트를 입어 얼굴도 체격도 단 한번에 보고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남자. 무언가를 어깨에 지고, 다른 무언가를 다른쪽의 손으로 끌며, 아주 자연스럽게, 허수 공간인 ES윈도우를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엇차."
카온과 에이지, 나이트 실버리온이 침묵과 함께 보고 있는 사이에, 그는 아주 자연스러운 자세로 짊어지고 있던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내려 놓았다. 그 짐같은 것은 카온에게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어라. 유우타에 레지나 잖아."
둘이 아주 편안한 얼굴로 기절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앞으로 뛰어 나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이밍을 놓친 바람에, 카온은 그 남자가 다른 손으로 끌던 것을 앞에 내팽겨졌을 때 까지도 움직일 수 없었다.
{...르네 카디프 시시오?}
유우타와 레지나의 곁에, 쓰러지듯 팽개쳐진 것은, 이큅상태의 르네 카디프 시시오였다.
"아니!?"
[리온 레이느!?]
경악하는 둘을 흘끗 보고, 그녀가 중절모의 남자에게 말했다.
"비스트 불렛. 르네 카디프는 데려올 계획이...."
"......."
단 일별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서 몸을 돌린 남자는, 방의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지만, 카온과 나이트 실버리온은 그것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또, 누군가가 걸어나왔기 때문이다.
".......세이지?"
"...어, 카온?!"
[...얀차 부사령관, 히카루..?]
"나, 나이트 실버리온!?"
"그, 그럼 여기, 나이트 아크야!!?"
"에..."
세이지와 얀차, 히카루에, 호타루까지, 그 ES윈도우를 '걸어나오고'있었다.
"뭐야 뭐야!? 이거 어떻게 된..."
"자아 자아. 조금 진정하자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 허수터널에서 걸어나온 사람이 또 있었다. 카온과 나이트 실버리온은 굳어버렸고, 아까 그 모습을 익히 본 넷까지, 지금 걸어나온 그녀를 보자마자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레이어 맥케이씨?"
"정답입니다. 미스 사쿠라코우지."
금발머리에 벽안의 여성이, 등에 커다란 금빛의 날개와 함께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자아, 빨리 비켜주세요! 다음에 오실 분은 좀 까다로운 분이셔서!"
레이어에게 떠밀리며 '문'에서 멀어진 넷의 시선에, 누군가가 던져지고 있었다.
"우왓!?"
공교롭게도 세이지의 위에 떨어진 둘이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넘어지고, 세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놀람에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저건? 문에서 또 다시 걸어나오는 인영에 카온은 기가 막힐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엔 갑옷인가 장갑복 같은 걸로 전신을 감싸고, 기묘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누군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붉은 색은 눈인가. 하지만 그것도 하나 뿐. 왼쪽의 '눈'은 흉하게 긁혀 부서져 있었다.
첫댓글역시나. 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31원종 시대로 돌아서면서 또 새로운 전개입니까? 일단, 하나하나 부활하는 것이 앞으로의 전개겠군요. 기대하고 있습니다(무거운 돌 하나 올려놓기). 뭐.. 당연한 거겠지만 1기의 글들보단 무겁고 어둡군요.. 어찌되었던 사라진 도쿄. 사라진 용자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이상, 멋
첫댓글 역시나. 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31원종 시대로 돌아서면서 또 새로운 전개입니까? 일단, 하나하나 부활하는 것이 앞으로의 전개겠군요. 기대하고 있습니다(무거운 돌 하나 올려놓기). 뭐.. 당연한 거겠지만 1기의 글들보단 무겁고 어둡군요.. 어찌되었던 사라진 도쿄. 사라진 용자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이상, 멋
진 전개 기대할게요^-^ (돌 두개).. 그나저나 난 언제 다시 시작한대?-_-
전설은 계속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