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cupational hazard (직업상의 위험) 얼마 전에 건강 검진차 패밀리 닥터를 찾았다. 나는 그를 닥터 강이라 부른다. 간호원의 안내로 진료실로 가다가 마침 닥터 강과 마주쳤다.수인사를 하는데 진료실 건너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내 나이 또래의 노인이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야, 너 나 지금 봐줄거니?" 한다. "예 잠깐만 더 앉아 계세요." 노인 말투가 너무 거칠고 투박스러운데 닥터 강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진료실에서 닥터 강의 진찰을 받으며 "아까 그 노인 아는 분입니까?" 하는 내 물음에 좀 게면쩍은 표정의 닥터 강이 "예,그 환자 분 좀 치매기가 있으셔서." 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나는 속으로 의사들이 겪는 '아큐페이셔널 해저드 (occupational hazard)'에 이런 것도 있구나 했다. 우리 말로 직업상의 위험, 또는 직업재해로 직업때문에 감수해야 할 위험 부담이나 불이익을 뜻한다. 라이프가드는 아무리 수영의 달인이라도 물에 빠진사람 구하다 자신이 해 를 입을 위험이 있고, 소방수는 진화 작업중 질식하거나 잘못 화염에 휩싸여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경찰이 총맞고 부상당하거나 숨지는 일 은 흔히 듣는 일이다. 이들은 위험한 직업이다. 그러나 위험 부담이야 정도 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직종에나 따르게 마련이다. 프로 선수가 운동중 입은 심한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일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운동 선수는 위 험한 직업으로 보지 않는다.의사로 말하면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환자로부터 병을 옮겨 받을 위험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단순한 감기로부터 드물게는 에 볼라같은 치명적 전염병에 노출되어 숨지는 경우도 있다. 의사들에게는 의료 과오 소송 (malpractice suit)도 빼 놓을 수 없는 occupational hazard다. 물론 닥터 강이 그날 겪은 반말 지꺼리는 위험이나 재해와는 거리가 멀고 직업상 겪는 불편 혹은 애로 정도라고 함이 더 알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우리가 인생의 진로를 정하거나 취직을 할 때 이런 위험 부담을 심각하고 철 저하게 미리 고민하는 일은 드물다. 대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 고 이런 장애는 구우일모(九牛一毛)정도로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것 이 보통이다. occupational hazard 때문에 일생이 망가지는 일은 흔치 않으 니 설마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랴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출세하고 성공하는 길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었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선망 하는 벼슬살이에도 '아큐페이셔널 해저드'는 있었고 그 중에서도 줄을 잘못 타거나 조선시대의 고질인 당쟁의 희생이 되어 삭탈관직되고 귀양 가거나 심 지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더러는 이런 위험부담을 안고 사느니 차라리 아예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는 일도 있었으니 인구에 회자되는 조선조 중기 장만(張晩)의 시조에: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 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 벼슬길에 올랐다가 당쟁(풍파)에 시달려 배(문관직)와 말(무관직)사이를 오 가며 겪는 고충, 그리고 낙향하여 밭(전원 생활)이나 갈겠다는 의지를 비유 적으로 읊고 있다. 그러나 벼슬 버리고 농사짓기만 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을 무릅쓰다가 일을 당하 기도 하는 것이다.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