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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dreaming...Sixteenth-꿈속으로
조마조마하던 저녁식사가 끝나고 나는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하인이는 가지 마라며 같이 자자고 졸라댔고, 그 사람도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만하라며 하인이를 말렸다.
나는... 집에 안 가도 되는데... 방목이라서... 후~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당연한 듯 그 사람은 나를 집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하~ 하인이가 자랑하던 영하씨의 밥을 오늘에서야 드디어 먹어봤네요~"
"근데, 정말 맛있었던거 맞아요? 먹는 내내 왠지 억지로 먹는 거 같던데?"
"무슨~ 그런거 아니예요. 다만 하인이가 자랑하던 것 보다는 별로였다고 해야하나...?"
"뭐예요?!"
내게 실망을 안겨주는 말을 하는 그 사람을 나는 힘껏 째려봤고, 그 사람은 멋쩍은 웃음을 하더니 나를 안아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이지. 최고였어요. 당신이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사람일 줄이야... 다행이예요. 영하씨를 만나서..."
그 사람의 고백이 내 귓바퀴를 타고 고막으로 흘러 들어왔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그 사람의 말은 엄청 늘어져서 내 귓속으로 들어왔고, 이내 심장은 쿵쾅쿵쾅 뛰어댔다.
이 심장박동소리가 그 사람의 귀에 들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끝까지 그 사람의 품에 안겨 있었다.
'미쳐 미쳐 미쳐 ~ 미쳐 미쳐 미쳐~ 날 사랑한다면 날 사랑한다 해줘~'
이런 중요한 때에 언놈이야!!
"누구예요?"
"아~ 민이요. 저번에 집에 갔을 때 같이 갔던 친구요."
"그럼 얼른 받아요."
하필 이럴때 왜 전화를 하냐고! 중요한 땐데... 씨...
어서 전화를 받아보라며 제스쳐를 취하는 그 사람에게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폴더를 열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어디냐.]
"어디기는 집 앞이야. 왜!"
[그래? 그 형이랑 같이 있냐?]
"어! 왜! 빨리 말해!"
나는 그 사람에게 들리지 않게 눈치를 보면서 작게 민이를 다그쳤다.
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이 느껴져 나는 또 멋쩍은 웃음을 그에게 날려야만 했다.
도대체 왜 전화한건지 빨리 말하라는 내 말에도 민이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울화통이 끝까지 치밀어 올라 결국엔 소리를 빽- 질러버리고 말았다.
"야! 빨리 말하라고! 아니면 집에 가서 얘기하던지! 끊는다!!"
"어라... 영하씨 이렇게 터프한 면도 있었네요? 크큭..."
"아?"
화가 너무 치밀어 오른 탓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소리를 질러버리다니.
당황해 하는 내 모습이 어지간히도 웃겼는지 그 사람은 배꼽을 잡고 웃어댔고 나는 또 멋쩍은 웃음을 날려야만 했다.
예쁜 웃음만 보여줘도 시원찮을 판에 3번이나 연달아서 멋쩍은 웃음만 날려야 하다니...
한영하! 어쩌려고 이러니.... 정말...
강승민 집에가면 죽었어.
그렇게 그 사람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이를 갈며 집으로 올라갔다.
"강승민!! 너 어딨어!! 불 끄고 없는 척 하면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아?! 어딨어....."
어두컴컴한 집 안에 들어 섰을 때, 민이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불을 켰는데, 정말 사람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막했다.
마치 아침에 민이와 내가 집을 나선 이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방마다 민이를 찾아 다녔지만 민이는 없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에 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통은 10초에서 20초 사이에 무조건 전화를 받는 민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금방 들어오겠지. 들어오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나는 쇼파에 앉아 민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으음......"
언제 잠이 들었던건지 눈을 뜨니 벌써 아침이었다.
민이가 처음으로 말도 없이 외박을 했다. 내가 어지간히도 무서웠던걸까? 갑자기 불간감이 엄습해왔다.
일단은 출근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테이블 위의 쪽지 한 장.
무언가 불길한 기분이 더운 커져 다가왔다.
'한영하. 이제 우리 따로 사는게 나을거 같다. 다 큰 남녀가 한 집에서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 같다.
그러니까 나 찾을 생각하지 말고, 때가 되면 다시 연락할게. 연락하지마라.'
쪽지를 보는 순간 너무나 멍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서 유치원으로 향해야 하는데 도무지 움직일수가 없었다.
민이가 처음으로 헤어짐을 선언했다.
나한테는 23년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납득할 수 없었다.
고작 다 큰 남녀가 한 집에서 사는 것이 핑곗거리가 될 리가 없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남녀사이였던가? 태어나 민이랑 함께 자라면서 이성으로 생각한 적도, 이성으로 대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 큰 남녀를 핑계삼아 나를 떠나갔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민이 때문에 유치원에서 일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나를 눈치 챘는지 원장님이 나를 불렀다.
"한 선생님. 무슨 고민 있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만난지 몇 일 되지도 않았는데, 도훈이가 힘들게 하는 건 아니죠?"
"아, 예... 도훈씨는 충분히 잘 해주세요."
"그럼 다른 걱정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원장님. 사실 저, 아, 아니예요."
"음~? 고민거리 하나 말도 못 하는 사이였나요? 우리가."
"아..."
그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던 원장님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민이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원장님은 내가 민이랑 같이 산다는 것부터 약간 충격을 받은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 말이 다 끝나자 무언가 알았다는 듯이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친구가 저번 우리 회식 때 한 선생님 데리러 왔던 그 친구 맞죠?"
"네? 그게 저... 저는 그 때 너무 많이 취해서 잘 기억이... 하하!! 그런데 아마 민이가 맞을거예요."
"그럼 그 친구가, 한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민이가요? 저를요? 에이~ 아니예요! 민이가 저를 왜 좋아해요~ 가족같은 애라니깐요. 에이...
그래도 원장님한테 말씀 드리고 나니까 뭔가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 그런가요? 하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 친구를 다시 한 번 돌아보도록 해요."
"아아, 예~ 곧 돌아오겠죠~ 그럼 전 나가볼게요."
"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세요! 이제 실습기간도 얼마 안 남았어요. 알죠?"
"네!"
그렇게 힘차게 대답을 하고 원장실에서 나왔다.
원장님한테는 뭔가 기분이 풀리는 것 같다고는 했으나, 원장님의 말씀 때문에 마음이 더 턱턱 막혔다.
민이가 나를 좋아하는걸까?
생각해보면 민이가 나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중학교 때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겼을 때 민이의 반응과, 그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내가 몇 날 몇 일을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때
민이가 그 남자아이를 크게 혼내주었던 것. 그리고 지금... 내가 도훈씨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을 때 민이의 표정.
솔직히 가족 같은 친구이자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였고,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그런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민이의 쪽지에 '다 큰 남녀'가 계속 거슬렸다.
민이가 나를 가족이 아니라 여자친구로 생각했던 것일까?
"....님!!"
"......"
"한 선생님!!!"
"아!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몇 번을 불러도 못 들으시고~"
"아! 아니예요!"
왜 하필 최 선생님이 내 앞에 있었던거지?
도훈씨와 만나기로 하고 나서 부터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서 거슬렸던 최 선생님이
이럴 때 내 눈 앞에 보이다니...
누구라도 잡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싶은 내 앞에 왜 아필 최 선생님일까?
"얼핏 원장님하고 말씀 나누는거 들어보니까... 그 때 그 친구가 집을 나간거 같던데, 그 친구 때문에 그런거예요?"
"아... 엿 들으셨나요?"
"아니... 지나가다가 한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길래요..."
"에휴... 그럼 제 얘기 좀 들어주실래요?"
"얼마든지요~"
나의 도움의 손길에 바보같은 여자, 최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이렇게 착하고 매력적인 여잔데, 내가 당신의 자리를 대신하려고 하는데... 참 주제도 모르는 년이죠. 저...?
그렇게 유치원 근무를 다 마치고 나와 최 선생님은 사거리에 있는 한 카페로 갔다.
창 밖이 훤히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는 최 선생님을 따라 나도 같이 앉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뭘로 드실래요?"
"저는 카라멜 마끼아또요."
"아~ 마끼아또 좋아하시는구나~ 저는 아메리카노 주시구요. 설탕 많이 주세요~"
"네. 카라멜 마끼아또 하나, 아메리카노 하나 주문 받았습니다."
종업원이 우리의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내 앞에 놓인 물잔만을 어루만지며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순간 아까 충동적으로 최 선생님께 손을 내민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I'm dreaming...Seventheenth-꿈속으로
"무슨 일인데 그렇게 고민하세요~"
"최 선생님."
"네~ 한 선생님~ 얼른 말씀 해보세요~"
"... 민이가요... 저를 좋아하는건가요?"
"네?"
"선생님이 봐도... 민이가 저를 좋아해서 떠난거 같아요?"
나의 급작스런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는지 최 선생님이 멈칫거렸고
그런 최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두어번 절레절레 거리고는 질문을 다시 거두었다.
"하... 최 선생님이 어떻게 아시겠어요~ 그쵸? 하하. 제가 참 바보같은 질문을 했네요~"
"아, 하하하. 뭐예요. 그것 때문에 하루종일 넋이 나갔던거였어요? 하하하! 난 또 뭐라고~"
나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최 선생님은 한참을 웃어재꼈고, 그러는동안 커피가 나왔다.
간만에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는다.
학교를 다닐 때, 항상 민이랑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러 같이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고는 했었다.
마끼아또를 보니 또 집 나간 민이가 걱정이된다. 에휴-
그나저나 최 선생님에게... 도훈씨와 나와의 관계를 말해야 하나...
"한 선생님."
"네?"
"저 알고 있어요."
"네,네? 무...뭐를요?"
"하하. 말을 왜 그렇게 더듬으세요~ 괜찮아요 전... 그 사람 행복하게 웃는 모습 보면 그걸로 됐으니까,
한 선생님이 그 사람 웃게 해주세요."
너무나 깜짝놀라 할 말을 잃었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나를 간파라도 했다는 듯이 너무 쉽게 말해버리는 최 선생님.
그 사람 웃게 해달라는 최 선생님의 표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슬픈 표정이었다.
순간 너무나 미안해졌다.
정말 죄 짓는 기분이었고,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여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죄송해요...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혼자 바라보려고 했어요..."
"사랑은 혼자 하는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한 선생님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말하는 최 선생님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자신이 그렇게 믿던 원장님에게도 배신당한 기분일테고, 사랑했던 남자도 자신보다 어린 여자한테 뺏긴 기분일테다.
그런 최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정말 참을 수 없을만큼 죄송스러웠다.
"정말 미안해요..."
"아이~ 괜찮대두 그러네요.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만 신경써줘요. 우정은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사랑은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알죠? 제가 무슨 말 하려는지..."
"네... 참... 원장님한테도 듣지 못 했던 통쾌한 대답을 최 선생님께 듣네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미안해요... 그 사람한테 정말 최선을 다 할게요."
"하하. 그럼~ 우리 좀 가까워졌다고 생각해도 되죠? 헤헤~"
"그,그런건가요...? 하...하..."
이렇게 통쾌한 답변을 해준 것은 고마웠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까운 사이가 되기엔
아직은 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가 좋은 인연도 아니거니와, 실습이 끝나고나면 다시는 보면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나 다정하게 구는 최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건가요... 저도 정말 힘들거든요!!
"음... 한 선생님이 나보다 1살 어리니까... 말 놔도 될까요?"
"에? 에에... 최 선생님 편하실데로 하세요."
"에이~ 영하두 이렇게 바깥에서는 미란언니라고 불러! 난 괜찮으니까!
나한테 이제 미안해 하지마~ 계속 그렇게 미안해하면 도훈이 내가 다시 확! 뺏아간다? 헤헤~"
어쩜 저렇게 무서운 말을 쉽게 쉽게 내 뱉을 수 있는거지?...
한숨을 푹 쉬며 그러겠다고 기꺼이 '미란 언니'라고 불러주었다.
흡족했는지 내게 웃으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미란씨.
참... 순진한것도 정도가 있지...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몰라주는 건지...
"우움... 영하야~ 우리 무슨 영화 볼까? 너, 도훈이랑은 영화 본 적 있어?"
"네? 아니요... 아직..."
"그래? 하긴~ 도훈이가 여간 바쁜애여야 말이지~ 괜찮아! 그래도 도훈이랑 데이트하면 재밌으니까!"
"아...네... 근데요... 도훈씨가 나이 더 많지 않...나요?"
마치 친한 친구라도 되는 마냥 도훈씨의 이름을 막 부르는 미란씨가 조금 거슬린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미란씨에게 물었다.
"아~ 도훈이랑 나랑은 내가 6살 때, 도훈이가 7살 때 부터 만나서 거의... 음... 20년이 다 되가는구나!
아무튼 그 때부터 이렇게 편하게 이름 불러서... 버릇이 되어버렸네. 하하하~ 아, 도훈이 보고 싶다!"
이제는 대놓고 도훈씨와 자신의 과거를 내게 자랑하듯 늘어놓는 미란씨.
게다가 보고싶다며 내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미란씨였다.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미란씨가 같은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보다 언니가 아니었다면 그냥 확 죽빵을 날려버렸을텐데...
어느새 미안함보다는 괘씸하다는 감정이 더 커져버렸다.
그런데도 난 그런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 멍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란씨에게 이끌려 영화관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 영화 평이 엄청 좋던데~ 우리 같이 유치원 선생들은 하루하루가 교구 준비로 바빠서 영화 볼 시간이 없거든..."
"아... 그렇겠죠. 아무래도... "
"응! 영화 시작한다~ 히히. 영화보러 오면 항상 이렇게 영화 시작하기 전에 잠깐 불이 꺼질 때 도훈이가 갑자기 뽀뽀하고 그랬는데...
그 때 생각난다. 히히. 너는 도훈이랑 뽀뽀해봤어?"
"네? 저... 그..."
"에이! 아직도 안 한거야? 음... 실망인데~?"
"저기... 영화 시작하는데요..."
뽀뽀야 나도 해봤다고!! 아씨...
그게 짧은 뽀뽀여서 좀 아쉬웠긴 했지만...
도대체 이 여자는 언제까지 내가 모르는 자신과 도훈씨와의 과거를 들먹일 샘인가.... 에휴...
얼른 영화가 빨리 끝나고 집으로 갔으면 좋겠다.
'우우우웅-'
진동이 울렸다. 혹시나 민일까 해서 폰을 열어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자의 주인공은 도훈씨였다.
'뭐해요? 보고싶은데.'
뭐라고 답장을 보낼까 하다가, 그냥 답장을 하지 않았다.
옆에서 최미란씨가 계속 뚫어져라 나의 폰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답장을 하지 않은게 아니라 못 한거였다.
에휴...
"도훈이 아니야? 답장해~ 왜 답장 안해?"
"아니예요. 뭐... 급한것도 아닌데요~"
"음... 그래?"
"근데 언니,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응? 응. 알았어~ 얼른 와~?"
"네."
겨우겨우 최미란씨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장실로 냉큼 달려가서 도훈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간 후에야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여보세요?"
[에이~ 문자를 했는데 답장을 해야죠!]
"아... 영화 보러 왔거든요. 근데 중간에 잠깐 나와서 전화한거예요."
[영화요? 지금 바람피는거예요?!]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애교가 많은 사람이었던가? 갑자기 웃음이 확 번졌다.
최미란씨 때문에 언짢았던 내 기분들이 모두 사글아드는 기분이었다.
질투를 하는 도훈씨 때문에 작게 조금 웃어버리고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뭐예요~ 사실 최...."
[사실 뭐요? 빨리 말해요! 바람 피는거죠? 그렇죠?]
"하하!! 아 웃기다... 도훈씨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었어요? 아... 못 살아 정말...!"
[그러니까 누구랑 있냐구요!]
".... 최 ...선생님이랑 있어요..."
최 선생님과 함께 있다고 말 하기 싫었다.
괜히 최 선생님하고 같이 있다고 했다가 그 사람이 최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말하기 싫었지만, 이렇게 애교를 떨며 질투를 하는 도훈씨가 너무 귀여워서 말해버리고 말았다.
[최 선생님...? 최미란 말하는거예요?]
"네. 최미란 선생님이요."
[아... 왜 같이 영화를 봐요?]
"그냥요~ 직장 동료끼리 같이 영화도 못 보나~?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알았죠?"
어쨌든 남자랑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랑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도훈씨의 마지막 말...
[남자보다... 최 미란이랑 같이 있다는게 더 걱정되요.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