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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伊는 제3국과 난민 이송 합의… EU도 추방 기준 완화
‘反이민’ 극우정당 돌풍 속 난민에 등돌리는 유럽
불법 입국 지난해보다 17% 늘어… 난민 몸살 앓던 유럽 전반에 영향
‘反이민’ 가치 건 극우정당 돌풍… “망명-이민 쓰나미 종식시킬 것”
英, 2300억원 들여 ‘난민 르완다행’… 伊, 알바니아에 ‘난민센터’ 설립
올 4월 소형 배를 이용해 이탈리아로 향하던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국 출신의 난민들이 북아프리카 튀니지 인근 해안에서 당국의 제지를 받고 멈춰 서 있다. 작은 보트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AP뉴시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에서 강력한 반(反)난민 정책을 내세우는 극우 성향 정당과 지도자가 속속 약진하고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난민의 신규 유입을 불허하고 기존 난민이라도 우리나라에 동화되려는 노력이 없으면 추방하겠다”고 외친다. 극우 성향이 아닌 지도자가 집권한 영국 등에서도 난민을 제3국으로 보내려는 ‘난민의 외주화’ 시도가 한창이다.
이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2021년 아프가니스탄 수니파 무장단체 탈레반의 재집권,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올해 초 튀르키예(터키) 남부와 시리아 북부의 강진, 9월 모로코 강진 등으로 10년 넘게 이들 나라의 난민이 속속 유럽으로 몰려드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올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선제 공격을 단행해 민간인을 납치하고 학살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행보 또한 유럽 전반의 반난민, 반이슬람 기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와중에 유럽연합(EU) 최대 경제대국 독일이 최근 연거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다른 국가의 경제 상황 또한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난민을 바라보는 유럽 전반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난민을 둘러싼 사회 갈등도 심각하다. 성장을 중시하는 우파 진영은 “난민으로 유럽 전체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하나 인권과 연대에 무게를 두는 좌파는 “난민을 소포처럼 처리해선 안 된다”고 맞선다. 주제프 보렐 EU 외교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가디언에 “난민을 둘러싼 논란이 EU를 해체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反이민’ 기치 내건 극우 정당 돌풍
지난달 22일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 극우 성향 자유당이 하원 150석 중 37석(24.7%)을 차지하며 원내 1당에 올랐다.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는 승리 직후 “망명과 이민 쓰나미를 종식시키겠다”고 외쳤다. 과거에도 “길거리의 모로코인 쓰레기를 치우겠다”는 과격한 발언을 일삼았던 인물이다. 그가 연정 구성에 성공해 총리에 오르면 대대적인 반난민 정책의 실행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올 4월 핀란드 총선에서도 극우 핀란드인당이 2015년 의회 입성 8년 만에 원내 2당 자리에 올랐다. 핀란드인당은 중도 우파 국민연합당이 이끄는 연정에 참여했다. “길거리 갱단과 젊은 범죄자 대부분이 이민자”라고 주장하는 리카 푸라 핀란드인당 대표는 현 연정에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맡고 있다. 현 연정은 연간 1050명인 난민 수용 규모를 500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도 백인우월주의와 빈이민 기치를 내건 극우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제2당에 올랐다. 임미 오케손 스웨덴민주당 대표 또한 “스웨덴어를 모르고 범죄만 저지르는 이들을 추방해야 한다”며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에서 온 난민은 스웨덴에 통합되지도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도 높다”고 했다. 2010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유럽인과 비(非)유럽인이 섞인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난민에게 적대적이다.
● ‘죽음의 바다’ 오명 쓴 지중해
유럽 난민 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통계에 따르면 올 1∼11월 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던 난민 가운데 2510명이 숨졌거나 실종됐다. 시리아 난민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온 후폭풍이 가시지 않았던 2016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유럽으로 오는 불법 입국자의 숫자 또한 급증했다. EU 역외 국경관리기관 ‘프론텍스’에 따르면 올해 1∼11월 불법 입국 건수는 35만53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늘었다. 역시 2016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이들 난민을 태우고 유럽으로 오는 배는 불법 밀수업자가 운영하기에 안전장치가 없다. 수용 인원도 지켜지지 않아 침몰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난민들이 유럽으로 오는 주요 통로인 지중해에 ‘죽음의 바다’ ‘유럽 최대 공동묘지’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올 6월에는 약 750명의 난민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가던 낡은 난민선 ‘아드리아나’호가 그리스 바다에서 침몰했다. 생존자는 100여 명에 불과했다. 특히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침몰 사실을 인지하고도 구조 작업을 펼치지 않아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생존자 증언, 이 배의 항로 등을 분석한 결과 침몰 13시간 전부터 아드리아나호가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그리스 당국이 무시했다며 “모두가 침몰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유럽의 정치 지형이 우경화하면서 주요국이 난민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 것 또한 대규모 피해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 英-伊 “난민을 제3국으로”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자국 난민을 제3국으로 보내는 시도가 한창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6일 아프리카 르완다에 일부 불법 입국자를 보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지난해 4월부터 불법으로 온 이주민을 6400km 떨어진 르완다로 보내는 대신 총 1억4000만 파운드(약 2300억 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주민을 다 수용하기도 어렵고 비인도적으로 내쫓기도 어렵우니 강대국 원조가 시급한 저개발국을 끌어들여 고안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이 합의에 따라 르완다로 간 불법 이민자들은 현지 수용소에서 난민 심사를 받는다. 그곳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에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다. 르완다 입장에선 안 쓰는 땅에 난민 수용소를 지어 큰돈을 벌 수 있으니 마다할 필요가 없다.
지난달 대법원은 “르완다가 안전하지 않다”며 이 계획에 일시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수낵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난민의 아프리카행을 관철시키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영국의 발표 후 덴마크, 오스트리아 또한 르완다와 비슷한 협정을 맺으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극우정당 출신 총리로 취임한 조르자 멜로니 총리 또한 지난달 “알바니아에 불법 이민자를 최대 수천 명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해안에서 구조한 이주민들을 곧바로 알바니아 북서부 항구도시 셴진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주민들은 최대 28일이 걸리는 망명 신청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셴진에 지어질 수용 시설을 벗어날 수 없다. 멜로니 총리는 “난민 문제의 유일한 해결법은 이들의 출발을 막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반난민 성향이 강하다.
유럽의 인도적 난민 수용을 주도해온 독일마저 다르지 않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는 10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메르켈 전 총리가 속한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에서는 최근 “이탈리아처럼 제3국에 망명 접수 센터를 만들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곳곳에서 극우파가 약진하자 중도우파 정당까지 경쟁적으로 나서서 이민 강경책을 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EU 또한 내년 4월까지 ‘신규 이주·난민 협정’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동 및 아프리카와 가까운 그리스, 이탈리아에 도착한 망명 신청자를 회원국이 경제 및 인구 규모에 따라 나눠 수용하고 수용하기 싫으면 난민 1인당 2만 유로(약 2800만 원)의 기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망명을 거부당한 이민자를 ‘안전한 제3국’으로 추방하되 안전한 국가에 대한 판단은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내리도록 했다. 난민 추방 기준을 느슨하게 만들어 추방을 쉽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난민 떠넘기기’도 한창
각국이 난민 수용을 서로 떠넘기는 모습도 역력하다. 중도좌파 성향인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올 9월 “지중해의 난민을 구조하는 각종 비정부기구(NGO)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즉각 “이탈리아와 상의 없이 불법 구조 활동을 지원하기로 한 사실에 경악했다”며 발끈했다. 지중해와 면한 이탈리아가 난민으로 인한 온갖 피해를 다 떠안는데, 독일은 국제사회에 자국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기에 바쁘다는 의미다.
영국과 프랑스 또한 영불해협에서 밀항선 전복 사고로 여성과 어린이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날 선 책임 공방을 벌여 왔다. 한때 자국 영해에서 상대국의 조업권을 제한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 일로를 달렸지만 올 3월 수낵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겨우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시적 화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청아 기자, 김보라 기자
“난민도 등급 있다?”… 우크라인에는 온정적, 무슬림에는 적대적
‘反이민’ 극우정당 돌풍 속 난민에 등돌리는 유럽
출신지에 따라 대우 다른 유럽 난민정책
우크라 난민, 망명 안해도 취업 가능… 중동 난민은 난민 인정에만 수년
종교-인종 차이, 무슬림 테러가 영향“
우크라이나인은 유럽인이며 똑똑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은 자국에 우크라이나 난민이 오는 것을 환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라데프 대통령은 “정체성을 확신할 수 없고 테러범일 수도 있었던 과거 (중동계) 난민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최근 AP통신은 라데프 대통령 같은 유럽 각국 지도자가 우크라이나 난민을 보는 시선이 2015년 유럽으로 대거 몰려 왔던 시리아 난민을 보는 태도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백인이며 기독교권인 우크라이나 사람에게는 온정적이지만 종교와 인종이 다른 중동,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슬림 난민에겐 상당히 적대적이라는 의미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2017년부터 이달 13일까지 재임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전 폴란드 총리는 1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수용했다. 폴란드 국경보안대 또한 이 난민들에게 식사, 담요, 쉼터를 제공했다. 반면 중동 난민은 종종 구타하거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과 중동계 난민이 받는 처우 또한 ‘극과 극’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4월 난민에 대한 ‘임시보호 명령’을 사상 최초로 발동했다. EU 역외 국가에서 온 난민에게 거주 허가증을 발급하고 취업 교육을 하고 병원 치료 등의 복지 혜택도 제공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난민은 공식적인 망명 신청을 하지 않아도 최장 3년간 EU에 머물 수 있다. EU 주요국에서 취업하는 것도 가능하고 미성년자 난민은 해당 국가에서 교육도 받을 수 있다.
반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난민들은 난민 인정을 공식적으로 받는 데만 최소 수년이 걸린다. 그리스의 한 난민접수센터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은 로이터통신에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은 아직도 난민촌 텐트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고 일부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은 모든 나라에서 환영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 관리 또한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우크라이나인은 백인이고 기독교인이기에 (비백인 난민과) 다른 감정을 느낀다”고 시인했다.
유럽 전반의 반(反)러시아 감정이 깊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타리크 아부샤디 유럽정치 부교수는 WP에 “많은 유럽인이 러시아의 제국주의식 확장을 반대한다. 이에 따른 피해를 입어 조국을 떠난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유럽 곳곳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 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김철민 한국외국어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과 교수는 “기존 난민으로 인한 유럽 곳곳의 사회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선제 공격으로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한 것 또한 난민 전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강화시켰다”고 진단했다.
다만 유럽 내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가 시리아 난민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측 난민에 대한 유럽 사회의 사뭇 다른 태도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엔에 따르면 5일 기준 유럽 내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590만 명이다. 시리아 난민은 최대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