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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옛날 생각난다. 학교에 온 게 몇 년 만이지? 젊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이라부는 들어오자마자 창문으로 다가가더니 닫아둔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
“어? 마당에 잔디 심었네, 깔끔한데. 벤치와 테이블까지 있으니 자그마한 공원 같아.”
잔디밭에서는 학생들과 수련의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잔디에 누워있는 사람도 있고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전나무 아래에서는 노무라가 등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오호, 저기가 특등석인가? 우아하네. 잠이 올 만도 하겠어.”
“야, 제발 부탁이니 그만둬. 나는 인생이 걸려있다고.”
다쓰로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것만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괜찮아. 잠들었을 때를 노리면 돼.”
“들키면 끝장이야.”
“흐흐흐” 이라부는 기분 나쁘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조그만 병을 꺼냈다. “여차하면 이걸 쓰면 돼.”
클로로폼이었다. 다쓰로는 눈을 부라렸다.
“가발을 살며시 벗기고 나서 정원에 있는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소동이 일어나기 전에 원래대로 해놓고 사라지는 거지. 그러면 완벽해.”
“바보냐? 뭐가 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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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안 들킨다니까. ‘교수님의 가발을 벗긴 사람이 있었어요.’라고 누가 학장에게 일러바치겠냐고? 주임교수도 그런 말은 못 하지.”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한편으로 생각하니 그럴싸했다. 목격자가 아무리 많아도 본인이 자고 있으면 들킬 일은 없다. 물론 소문은 퍼지겠지만 본인 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자질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저것 봐. 노무라 선생이 그새 졸잖아.” 이라부가 말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노무라가 책을 무릎에 내려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너는 사진을 맡아.” 이라부가 디지털카메라를 건네준다.
다쓰로는 말없이 카메라를 받았다.
“그럼, 가자!” 이라부가 앞장을 섰다.
“야, 잠깐 기다려.” 다쓰로는 조마조마했으나 뒤를 따랐다.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조교는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당으로 나간 이라부는 곧장 노무라에게로 다가갔다. 중간쯤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노무라의 뒤쪽으로 돌았다. 망설이는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잔디밭에서는 궁금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다쓰로는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부둣가에 서서 출항하는 친구를 배웅하는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