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 산수유마을
2021년 3월 9일(화), 구례 산동 산수유마을
광양 매화마을을 둘러보고 서울 오는 길에 산동의 산수유마을도 들렀다. 매화마을은 꽃구경 오는 사람들이 전
혀 반갑지 않다고 하는데도 주차장은 차를 주차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다. 그러나 산수유마을은 예
년 같지 않게 썰렁했다. 꽃은 만발했는데 …….
한시(漢詩)의 연시(戀詩)를 들어보려 한다.
중국 드라마 청평악(淸平樂, 2020, 69부작)은 북송을 배경으로 조정의 풍운과 사랑하는 가족 사이의 복잡한 정
세 속에 고민하는 송 인종(仁宗)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드라마에서 하송(夏竦, 985~1051)은 조정의 대신으로
수구세력의 중심인물인데 그의 문장은 당대 으뜸이었다. 그가 연인에게 써준 자고천(鷓鴣天)이란 시가 이 드라
마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자고(鷓鴣)는 꿩과의 새로 메추라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자고천은 ‘자고가 나는 하늘’, 또는 ‘메추라기가 나는 하
늘’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같은 시대 소식(蘇軾, 1037 ~1101)과 안기도(晏幾道, 1030?~1106?), 육유(陸游,
1125~1210) 등도 ‘자고천’이라는 시를 지었지만 그중 하송의 이 시가 가장 절창이다.
鎮日無心掃黛眉 종일토록 무심히 검은 눈썹 다듬다가
臨行愁見理征衣 떠나시려 할 때 나그네 옷 시름겹게 바라보네
尊前只恐傷郎意 술잔 앞에서 행여라도 님의 뜻을 상할까봐
閣淚汪汪不敢垂 그렁그렁한 눈물 막으며 감히 흘리지 못하였네
停寶馬,捧瑤卮 보마를 멈추시고 술잔을 드소서.
相斟相勸忍分離 서로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차마 헤어지지 못하네
不如飲待奴先醉 차라리 종에게 술을 먹여 먼저 취하게 해서
圖得不知郎去時 님 떠날 때 언제인지 모르도록 했으면.
다음은 우리나라 드라마 ‘허준(1999, 64부작)’에서 나오는 「옥계원(玉階怨)」이란 시다. 혜민서에서 근무하던 허
준이 궁에 차출되어 공빈마마 동생의 구안와사와 반위(위암)를 치료하려고 밤낮으로 사투를 벌이는 중인데, 그
런 줄을 알지 못하는 허준의 아내가 남편에게 옷가지를 보내면서 이 시를 손수건에 수를 놓아 함께 보냈다.
「옥계원(玉階怨)」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 지은 시다.
굳이 번역하자면 ‘옥계의 원망’이나 ‘궁녀의 슬픔’이라고 하겠다.
주자는 《朱子語類》에서 “이백의 시는 法度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도 가운데에 從容하니, 시에 있어서 성인이
다.[李太白詩 如無法度 乃從容於法度之中 蓋聖於詩者也]”라고 하였다.
玉階生白露 옥계에 이슬이 맺혀
夜久侵羅襪 밤 깊어지자 비단 버선에 스미네
却下水晶簾 돌아가 수정 발 내리고
玲瓏望秋月 영롱한 가을 달을 바라보네
주1) ‘玉階’는 옥으로 만든 섬돌인데, 宮詞로 볼 경우 궁중의 여인이 거처하는 곳의 계단을 의미한다.
주2) 侵은 侵入 또는 滲透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젖어든다는 의미이다.
주3) 却下는 放下, 즉 풀어 내린다는 뜻이다. 또는 ‘방으로 돌아가 내린다.’의 뜻으로도 풀이된다. ‘水晶簾’이 ‘水
精簾’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지금의 유리구슬로 된 주렴과 비슷하다.
주4) 玲瓏은 밝은 달빛을 형용하는 말이다.
(『동양고전종합DB』에서)
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긴 강둑에 풀빛 고운데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서 임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르려나
別淚年年添綠波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지니
고려의 문인 정지상(鄭知常, ? ~1135)의 「임을 보내며(送人)」라는 시다.
다음은 정민의 『한시미학산책』(1996)에서 발췌했다.
대동강가 연광정(練光亭)에는 고금의 제영(題詠)이 수없이 걸려 있었는데 중국 사신이 오면 모두 떼어내고 정
지상의 이 작품만 남겨두었다. 이 시를 본 중국 사신들은 하나같이 신운(神韻)이라는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중
국 사신들이 무릎을 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2구의 ‘송군남포(送君南浦)’라는 표현에 있었다. 이 구
절은 흔히 임을 남포로 떠나보내며 슬픈 노래를 부른다고 해석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현재 두 사람이 헤어
지는 장소를 말한다.
남포라는 단어에는 유장한 연원이 있다. 굴원(屈原)은 일찍이 「구가(九歌)」 중 「하백(河伯)」에서 “그대 손을 잡
고 동으로 가서, 고운 임을 남포에서 떠나보내네(子交手兮東行 送美人兮南浦)”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 뒤 많은
시인들이 실제 헤어지는 포구가 동포이든 서포이든 북포이든 간에 남포라고 말하곤 했다. 굴원의 이 노래가 있
은 뒤로 ‘남포’라는 말은 시인들에게 으레 ‘이별’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정운(正韻)이 담긴 말이 되었다.
첫댓글 산수유는 구례산동이 최고지요~
굳 입니다요^^...참고로 벚꽃은 구례의 서시천이 최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 성내천변 벚꽃도 그에 못지않다고 봅니다.^^
@악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