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신화
김 영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양치기를 하던 청년은 이집트의 사막에 있는 피라미드 근처에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꿈을 꾸고 점쟁이 노파를 찾아가 해몽을 받는다. 다시 지혜로운 노인을 만나서 보물을 찾게 되는 대해 격려를 얻는다. 결코 꿈을 포기하지 말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그 보물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준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 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 마음은 우주의 마음으로 비롯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이다.
그는 결국 전 재산인 양들을 모두 팔아 치우고 배를 타고 아프리카로 떠나는 모험을 시작한다. 모로코의 탕헤르라는 항구도시에서 나쁜 친구를 만나게 돼 그는 가진 돈을 몽땅 털린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어떤 크리스털 가게의 점원으로 취직이 돼 열심히 노력하여 장사 수완을 발휘한다. 파리만 날리던 가게가 다행히 번창하여 수입이 늘었다. 그는 주인에게 두둑한 보수를 받고 다시 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일 년 만에 가게 일을 그만 둔다. 가게 주인도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게 무슬림으로서 평생의 의무이자 꿈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을 그냥 마음속에 간직할 뿐 실행에 옮기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봐 두렵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게 아니었다.
청년은 아프리카 사막을 향해 떠나는 대상의 무리에 끼어 마침내 길을 떠난다. 그는 자신의 꿈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자아의 신화는 더욱 더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로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막의 오아시스에 이르러 그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녀 역시 오래 동안 꿈꾸어 왔던 자아의 신화를 미지의 청년과의 만남에서 발견 했지만 계속 보물을 찾아 그에게 떠날 것을 권유한다. 청년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날, 언젠가 반드시 그녀를 찾아오리라는 믿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신비한 능력의 연금술사를 만난 청년은 그의 안내를 받아 피라미드 근처까지 이른다. 납을 금으로 만들어 낸 연금술사는 네 조각으로 나누어 한 조각을 청년에게, 두 번째 조각은 수도승에게, 세 번째 조각은 자신에게, 네 번째 몫은 다시 청년의 몫으로 수도승에게 맡기고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으로 되돌아간다. 청년은 피라미드가 있는 모래언덕에 올라 보물을 찾으려고 애쓴다. 마지막 목표지점에 이르렀을 때 무장한 병사들에게 수상쩍게 여겨져 몸에 지니고 있던 금 조각마저 빼앗긴다. 구덩이 속에 손을 집어넣고 보물을 캔다는 그에게 무장 군인은 한 마디 내뱉는다.
-꿈속에 스페인의 어떤 평원을 찾아 갔는데 거기 다 쓰러져 가는 교회가 있었고 그 옆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보였어. 나무 아래를 파보니 보물 상자가 있더라구. 허지만 바보처럼 꿈을 믿고 그토록 위험한 사막을 건널 수는 없지. 이 바보야.
청년은 무엇에 얻어맞은 듯 깨달음을 얻고 연금술사가 이때를 대비해 맡겨 놓은 금 한 조각을 수도승에게 찾아 들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맨 처음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노파에게 꿈 얘기를 했던 그 자리, 낡은 교회당 터에 무화과 나무 아래로 삽 한 자루를 들고 다가가 보물 상자를 캐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자아의 신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삶은 얼마나 자비로운지 새삼 신의 뜻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약속했던 대로 사막의 여인, 사랑을 찾아 달려갈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1947년. 브라질 소설가)는 연금술사를 통하여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일은 우리 각자에게 예정된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삶의 연금술임을 밝혀 준다.
이혼한지 10년 된 전 직장 동료는 꾸준히 영어 공부도 하고 퇴직과 함께 미국 간호사 시험도 합격했다. 1남 2녀의 자녀 중 큰 딸만 시집보내고 미혼의 자녀를 둔 채 훌쩍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 회갑의 나이에도 태평양을 건넜다. 그의 여행 가방엔 영어판 연금술사(ALCHEMIST, PAULO COELHO 작)가 소중한 재산목록처럼 끼어 있었다. 미국 의사인 한국인 교포와 인연을 맺기 위해 이혼녀와 엄마라는 역할을 벗어나 이제부터 여자로 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자녀들과 주변의 가족 친지들이 만류하는 것도 뿌리치고 자신에게 주어진 보물을 찾기로 한 것이다. 신앙심이 좋다(?)는 나에게 기도와 함께 성구 한 구절을 부탁했다. 모든 걸 과감히 정리하고 떠나기로 한 그의 용기에 마음의 성원을 보낼 뿐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서 41장 10절)
내게 더 큰 용기가 주어졌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또 다른 자아의 신화를 이룩해 냈을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렵게 고등학교 다닐 때 진로 문제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대학 등록금 마련이 힘드니 사립대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국공립대 또는 사범대학에 진학 했으면 어떨까 하던 중 결국 국립 서울대학교를 택했다. 약학과에 가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작가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신체검사에서 색약으로 판명되어 입학 자격이 안 되었다. 할 수없이 국문학과나 독문학과로 가려고 고민하다가 후자 쪽으로 응시했지만 낙방이 되었다. 재수할 형편은 안 되고 국가 5급(현재 9급)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이 되자 우연의 일치로 서울대학교 교무과에 발령을 받았다. 병역 의무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여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은행원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했다. 적성에도 안 맞는 은행원으로 재직하면서 문단에 수필가, 시인으로 연이어 등단하여 퇴직후 10여 년 동안 이제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어릴 적 나의 꿈은 능력 부족으로 퇴색 되었지만 ‘자아의 신화’에 그런대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을 간절히 원한다면 연금술사처럼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과 삶의 위로를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