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니메데스 유괴(Le Rapt de Ganymede, 1989년 ) / 도미니크 페르낭데즈(Dominique Fernandez)

가니메데스의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그려졌다. 가니메데스는 꽃다운 미모를 지닌 양치기였다. 때문에 그를 마음에 둔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신해 유괴해서는 올림포스에서 신주(神酒)인 넥타르를 따르는 시동으로 삼았다고 한다. 넥타르를 따르는 일은 영원한 젊음과 불사를 약속받는 일로 원래는 제우스와 헤라의 딸 헤베가 맡고 있었다. 제우스에 의해 가니메데스가 이 일을 하게 되자 헤라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니메데스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제우스는 가니메데스를 별로 만들었는데 그 별이 바로 '물병자리'라고 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 이야기를 사이에 두고 여러 의견을 냈다. 플라톤은 소년애, 동성애를 종교적으로 긍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 생각했고, 크세노폰은 '가니메데스'라는 단어의 어원이 '지성을 만끽하다'라는 의미이기에 제우스는 소년의 육체가 아닌 정신을 사랑했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많은 그림들 중 코레조의 그림은 '동성애'와 '소년애'와 밀접한 듯 보인다. 소년의 표정은 '유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꽤 평온하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이나 적어도 '유괴'라면 발악하거나 저항하는 표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 이 그림이 '동성애'와 '소년애'로 설명될 수 있는 이유는 소년의 몸을 보면 알 수 있다. 발버둥은커녕 사뿐히 날아가는 두 다리와 끌려간다고 하기보단 매달려서 자의(自意)로 가는듯한 두 팔.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림이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는 코레조의 색체표현이 자연스러우면서 아름답고 우아하기 때문에 더욱 역겹게 느껴진단다.
이 그림은 코레조의 <제우스의 사랑 이야기>연작 중 하나로 절대 권력자였던 카를 5세의 대관식을 축하하는 선물로 주문된 것이라 한다. 주문한 이는 물론이고 선물 받은 이의 마음까지 충족시킨 이 그림은 왕궁에도 걸렸다. 나 같으면 조롱하는 듯 느껴졌을 것 같은데…….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보면 ‘육체적 사랑’이라고해도 비이상적이고 정신적인 사랑, 좋게 말해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해도 유괴라는 단어가 붙는 이상 이상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 그림은 어린아이를 유괴하는 장면을 나타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의 매력에 홀려 실제로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 현실이 있기에 무서운 그림이지 않을까 싶다.
도미니크 페르낭데즈(1929년∼ )는 프랑스의 문학사가이자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다. 그는 역사 속의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한 50여 권의 작품을 써 ‘상상적 전기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1986년에 펴낸 <사랑>은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역사의 한 국면 속으로 들어가 예술세계의 풍경화를 그려보이는 소설이다. 19세기 실존인물인 프리드리히 오버베크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간명한 제목의 소설은 나폴레옹의 위세가 유럽의 하늘을 찔러대던 때에 독일의 젊은이가 ‘예술의 이상향’ 이탈리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긴 호흡으로 풀어간다. 주인공의 가장 큰 욕망은 무한한 존재에 형태와 색깔과 생명을 불어넣는 화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화가가 되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이 지극한 사랑은 그와 동행하는 남성과의 동성애적 사랑과 엉키면서 이야기를 진전시켜 나간다. 지은이는 주인공의 행로에 베토벤·앵그르·스탕달 등 당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등장시켜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독자를 이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