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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총회 부산신학 . 대학원 [합.정]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소나무
아가 서론 |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낭독했다는 아가서는 히브리 성경이 다섯 두루마리의 하나이다. 아가서의 주된 내용은 사랑에 관한 것인데, 본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너무나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복음주의적인 주장과 비평적인 주장은 거의 반대되는 입장을 서로 표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듯 큰 견해 차이 중에서도 서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본서의 주제를 '사랑'으로 본다는 것이다. 본 서론에서는 어떠한 특정한 견해가 옳다는 식의 윤리적 판단은 지양하고 되도록 각 입장의 견해를 있는 그대로 밝혀 주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이 아가서에 대해서 보다 다양한 지식을 개략적으로나마 대하길 바라며 아가서를 보는 시각이 넓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제1부: 아가서의 역사적 배경
I. 명칭
아가서는 성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책으로 히브리 성경에는 본문의 첫 번째 두 단어를 따라서 <!yriyvih' ryvi ; 쉬르 하쉬림>이라고 명명했는데 그 뜻은 '노래 중의 노래'이다. 이를 70인역에서는 <asma ajsmavtwn ; 아스마 아스마톤>, 라틴 불가타역에서는
II.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아가서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탈무드의 바바 바트라 15에서는 히스기야 왕과 그의 동료들이 아가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하며, 현대의 많은 성경학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제 솔로몬 저작설과 솔로몬 저작을 부인하는 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아가서의 저자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솔로몬 저작을 부인하는 설
(1) 본서가 솔로몬의 작품임을 부정하는 학자들은 언어학적인 근거에서 본서가 비교적 후기의 작품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 실례로 1:2이나 2:7의 내용은 파사 시대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고 3:9의 <@/yr]Pia' ; 아피레욘>은 헬라어에서 빌려온 말로서 이 모든 것들은 솔로몬의 시기보다 더 늦은 때임을 시사하므로 결국 이 말은 솔로몬의 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를 반박하는 자들에 의하면 솔로몬 시대의 무역은 매우 거대하게 행해졌으며 당시에는 외국말이 널리 통용되었으므로 다른 나라 말들의 단편적인 사용이 솔로몬 저작설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2) 아가서에 나타나는 지명이 대부분 북왕국의 지명이라는 (다메섹, 틸사, 샤론, 갈멜, 헤바논, 아마나, 헬몬) 점은 이 작품이 솔로몬 저작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만약 솔로몬이 아가서의 저자이라면 이렇게 편중되게 북왕국의 도시들만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 또 아가서가 솔로몬의 저작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에 의하면 본서가 한 사람에 의한 저작이라고 보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정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문학 작품으로 완전한 형식을 갖추기 전의 민속 가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저자가 단일 저자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단지 백성들 속에 유행하던 민속 가요를 어떤 편자가 종교 의식적인 필요에서 편집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특히 이 작품의 내용들을 보면 남방 유대 사람으로 기록된 것보다 북왕국 사람의 저작이라는 흔적이 많이 있다고 한다.
2) 솔로몬 저작설
아가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사실은 성경 자체가 가장 분명하게 밝혀 준다. '솔로몬의 아가라'(참조, 아 1:1). 이 1:1의 구절에 포함된 전치사의 뜻이 '… 에게', '… 위하여', '… 관하여'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는 솔로몬의 저작을 말하기도 하면서 그에게 바쳐진 노래로 생각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가서에 6회나 솔로몬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고(참조, 아 1:5; 3:7, 9, 11; 8:11, 12), 1:5과 8:11, 12에는 솔로몬의 장대한 부를 설명하고 있으며, 3:7, 9, 11에는 솔로몬의 장엄한 행렬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국가 전역의 여러 곳들을 같은 왕국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외국산 동물들과 식물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것 등은 솔로몬이 저자라는 사실들을 직접 간접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 저작설의 다른 가능성 하나는 왕상 4:32에 솔로몬이 1,005개의 노래를 작곡한 유능한 작곡가임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솔로몬의 아가서와 같은 시를 충분히 지을 수 있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솔로몬 저작설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은 '영'(Young), '헹스텐버그'(Hengstenberg), '델리취'(Delitzsch), '스타인뮐러'(Steinmueller) 등이며, 우리가 성경의 영감설과 무오류성을 믿을 때 성경 자체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견해가 더 합당하다 하겠다.
2. 기록 연대
전통적으로 솔로몬 저작설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본서의 저작 시기는 솔로몬의 활동 시기인 B.C. 10세기경이다(B.C. 970-980년경). 특별히 이를 증명하는 근거는 본문 6:4인데 여기에 보면 디르사가 마치 예루살렘과 대비를 이루는 북이스라엘의 도시인 것처럼 언급되어 있는데 이 디르사에 대한 언급은 본서의 연대가 B.C. 10세기경임을 나타내 준다. 왜냐하면 오므리 왕조(B.C. 885-841) 이전에 디르사는 북왕국의 수도였지만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오므리는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기어 그곳에 화려한 궁전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건축물을 세웠고, 성벽을 건축했으며, 따라서 만약에 6:4의 디르사가 정말로 남왕국의 예루살렘의 필적하는 북왕국의 수도였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 확실하다면 아가서는 B.C. 10세기경 때 기록된 작품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본서의 문화적 배경이 본서가 쓰여진 왕국에 긴 기간의 정착 생활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으며, 또 본서의 내용이 포로기나 포로기 이후의 어려운 생활 여건들보다도 초기 왕조 시대의 상황에 더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서 안에 아람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본서의 저작 연대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러한 표현은 단지 지방적인 방언의 결과에 불과하여 당시의 활발했던 무역 활동을 미루어 보아 얼마든지 가능한 현상일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솔로몬 저작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아가서의 언어학적인 문제로 인하여 특히 파사말(참조, 아 4:12), 헬라어(참조, 아 3:9), 그리고 아람어 등이 섞여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본서가 포로기 이후에 쓰여졌으며, 그 구체적인 시기는 대략 B.C. 3, 4세기경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들은 아 6:4이 예루살렘에 비견되는 도시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저작 연대를 솔로몬시대 때보다 늦은 분열 왕국 시대 때임을, 혹은 그보다 훨씬 이후인 포로기 이후인 B.C. 3, 4세기경임을 말해 준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으므로 받아들일 만한 견해가 못 된다.
III. 기록 연대
아가서의 기록 목적은 본서의 주제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달라질 수 있다.
1) 대부분의 비평학자들은 본서가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나 본서의 대한 전통적인 견해, 즉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사랑을 그 주제로 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본서의 기록 목적은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의 순진한 사랑을 찬양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 사랑의 주인공인 술람미 여인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과 격리되어 있고 그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랑을 강요당하고 있다. 마땅히 사랑할 사람을 자유스럽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순탄한 사랑이라면 원하는 사랑과는 분리되어 원치 않는 사랑을 강요당하는 것은 고난이 따르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사랑의 위기가 있고 가장 절실한 열정과 진실이 있다는 사실은 시적으로 주장함이 그 목적이라고 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사랑을 강요한 자가 솔로몬 왕이며, 그 처녀는 끝내 솔로몬의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의 진실한 사랑인 목동에게로 돌아갔다 한다. 그래서 그 사실적인 근거로 왕상 2:13-25를 내세우는데 이 구절은 솔로몬이 수넴 여인 아비삭을 그의 아내로 취하려다 실패한 일에 대한 내용이다. 또 다른 비평적인 견해는 본서가 결혼 축제를 위한 의식적인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실제적인 내용이 솔로몬과 파라오의 딸과의 결혼을 위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본서가 남녀의 연애시의 수집물이라는 데서 머물러야 할 것이며, 이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인 해석은 이 책이 성(性)과 사랑 및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을 말한다는 것이다.
2) 본서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는 자들은 이 책의 목적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혹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그리스도와 인간(성도)과의 관계를 시의 형태로 찬양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왜 이 책이 유월절에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출애굽 역사를 기념하는 데 읽혀지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고 한다. 실제로 그 내용 면에서도 저자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고귀하고 순수한 사랑을 말하면서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사랑의 근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또한 인간의 모든 사랑보다 더 높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게 하는 데 그 직접적인 목적이 있다.
IV. 특징과 구조
1. 특징
아가서의 가장 큰 특징은 완전한 시적 형식을 갖춘 지혜 문학이라는 것인데, 지혜 문학은 이스라엘의 현인들에게서 유래한 것으로서 그 초기로부터 후기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전 역사에 걸쳐서 이어져 내려왔다. 이들이 말한 지혜는 주로 인생의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에 대한 것으로서 인간 경험의 세계를 하나님의 실재와 연관시켜 성찰함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인생을 이해하려고 한 지혜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지혜의 본질적인 기능은 다분히 현실적 교훈을 제시하면서도 심원한 생에의 철학을 분명하게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아가서는 단지 피상적으로만 신성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세속적인 내용의 노래는 아니다. 오히려 그 노래는 율법과 제의와 예언이라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언어와 형식에 의존하지 않고서 인간의 삶과 그 사랑의 경험에 관하여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아가서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 주제와 내용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고도화된 상징적 수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데, 이는 신약의 요한 계시록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분에서는 볼 수 없는 서술 방법이다. 그 한 예로 아 3:11은 혼인날을 소재로 서술한 내용인데, 여기서 왕은 그의 신부를 찾는 연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혼인 제도를 통해 얻는 한 남자와 여인의 신비로운 사랑에 대한 지혜의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아가서가 인간적 사랑 자체를 찬양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상 어울리지 않는 논리적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랑 자체가 찬양되는 것은 성경에서나 이스라엘의 지혜 문헌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연인(인간)의 사랑 행위가 아니라 그 이면에 깊이 내재해 있는 참다운 지혜의 정신이다. 적어도 저자는 여기서 한 남자와 아내 사이의 사랑이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고귀한 가치를 지닌 소멸될 수 없는 힘이며, 죽음보다 강한 것임을 이해하면서 그 사랑의 조건을, 즉 궁극적인 사랑을 말하려는 것이다. 결국 아가서의 비유적 표현은 예언적인 문헌의 구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그의 성도를 향한 사랑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구조
아가서는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다.
① 1:1-2:7; 신부가 신랑을 연모하면서 그를 찬양함
② 2:8-3:5; 신부가 신랑에 대한 사랑이 깊어짐에 따라 신랑의 아름다움을 자연에 비유하여 한층 더 칭송함
③ 3:6-5:1;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
④ 5:2-6:9; 신랑이 떠나 있는 동안 신부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를 찬양함
⑤ 6:10-8:4; 신부의 미모에 대한 서술
⑥ 8:5-14; 참사랑의 의미를 서술함
제2부: 아가서의 특별 주제들
I. 아가서의 정경성 문제
구약 39권의 정경으로 형성된 역사를 살펴보면 아가서가 가장 늦게 정경으로 인정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랍비 문헌에 따르면 본서가 히브리 성경의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이는 그 내용이 너무도 세속적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아가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로 인하여 A.D. 95년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얌니아'(Jamnia) 회의에서는 팔레스틴 계통의 '샴마이'(Shammai) 학파의 바벨론 계통의 '힐렐'(Hillel) 학파의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결국 그곳에 모인 학자들은 랍비 아키바의 주장에 따라 최종적으로 본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본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것과 그 해석 문제에 있어서도 본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사랑을 표시하는 것이라는 데 기인한 것이다. 랍비 아키바는 아가서에 대해서 '이 세상의 모든 날들 중에서 아가서가 이스라엘의 주어진 날 만큼 복된 날은 없다. 모든 성경들은 다 거룩하지만 아가서는 이 거룩한 책들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책이다'라고 말하였다. 본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데 대해서 반대한 자들은 본서가 다분히 색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가장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이러한 반론은 결국에 가서 본서를 솔로몬의 작품으로 보는 히브리 전통과 본서에 수록된 시들을 단순히 색정적이고 육욕적인 차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해석에 의하여 그 힘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랍비 아키바는 본서의 정경적 타당성을 지키기 위해서 본서에 수록된 시들을 연회석상에서 부르는 것을 금지하여 '연회석상에서 아가서의 시가를 노래하고 이 거룩한 시가를 세속적인 노래로 취급하는 자는 장차 올 세계에 들어가지 못 한다'고 말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본서가 정경으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최선의 방도는 본서에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방편은 랍비들이 본서를 해석하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II. 아가서의 해석 문제
1. 비유 유형론적 해석(Allegorical-typological Interpretation)
이 해석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택한 해석 방법인데 기독교 역시 이 해석 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1) 유대인들의 해석
유대교의 성경 해석서인 탈무드, 미쉬나, 탈굼에서는 아가서에 대해서 비유적인 해석을 취하고 있는데 특히 A.D. 6세기에 나타난 탈무드의 해석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여기에서의 신랑은 여호와이며, 신부는 유대 민족이다. 그들이 이러한 해석을 취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의 역사상 일어난 사건 즉 출애굽으로부터 메시아 출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민족적 경험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몇몇 유대 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 학자들은 이러한 비유적 해석을 취하지 않는다.
2) 기독교의 해석
교부 '오리겐'(Origen)에 의하면 본서의 내용이 솔로몬 왕과 바로의 딸이 결혼하게 된 사건을 말하는 것인데, 이 사건 기록의 배후에는 깊은 하나님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신부는 교회, 혹은 성도 개개인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와 성도 간에 있어야 할 순결하고 진실 된 본질적 사랑을 가르치는 책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제롬, 어거스틴 등의 교부들을 비롯하여 헹스텐버그, 카일 등의 신학자들은 이 견해를 받아들이나 '영'(Young) 박사는 아가서의 내용이 어떤 풍유나 비유를 가리킨다는 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러한 비유 유형론적 해석을 반대한다.
2. 희곡적 해석(Dramatic Interpretation)
이 해석은 본서가 희곡 같은 문학적 양식으로 서로의 사랑을 노래했다는 주장인데 그 대화자의 수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 두 인물을 중심한 희곡적 해석
이것은 이 책이 두 인물이 화자가 되어 서로 사랑을 말하는 희곡이므로 이 책을 해석하는 방법은 거기에 나오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과 '알렉산더 사본'(Codex Alexandrinus) 각주에 화자를 두 사람으로 말하고 있는데 기인한 것으로서 본문의 두 사람은 목자로 분장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란 것이다. 이 해석을 가장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델리취' (Delitzsch)이다.
2) 세 인물을 중심한 희곡적 해석
18, 19세기에 성행된 이 해석 방법은 유대인 '이븐 에즈라'(Iben Ezra)가 본서에 세 인물이 출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해석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1771년 '자코비'(J. E. Jacobi)란 학자의 설명이 있은 후의 일이다. 이들에 의하면 본서에 등장하는 인물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 그리고 술람미 여인의 애인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에발트'(Ewald)이다.
3. 서정시적인 해석(Lyrical Interpretation)
이 해석은 '데오도르'(Teodore : A.D. 360-429)란 학자가 처음 주장한 학설인데 그에 의하면 아가서가 일반적인 세속의 사랑 노래를 수집하여 만든 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이방 종교 축제에서 온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한 것도 아닌 5세기 동안(B.C. 10세기의 솔로몬 시대로부터 B.C. 5세기의 파사 시대까지) 수집된 28개의 '사랑의 노래'로 묶여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 학설은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하여 배척하였으나 히브리 시문학의 대가인 '폰 헤르더'(J. G. Von Herder)는 본서를 '세속 연애가집'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였고 그의 학설은 '로버트 고디스'(Robert Gordis)의 '아가서 연구 새 번역 주석'이란 책에서 구체적으로 지지되었다. 그러나 이 견해대로라면 본서가 어떻게 정경에 속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4. 종교 제의적인 해석(Liturgical Interpretation)
고대 근동의 여러 문서적 자료들에서 찾을 수 있는 이방의 제사 의식에서 도입해 왔다고 주장하는 이 해석에 의하면 아가서가 '이방 나라들의 신년 축제 때 거행된 제사 의식의 이스라엘화'라는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태양신과 어머니신을 섬기는 종교 의식이 매해 신년에 행해졌었는데 이것은 자연을 통해 만물의 생명이 소생하는 것을 축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도 여호와를 그 생명의 주인으로 간주하여 그분과 생명의 관계를 늘 새롭게 하는 것을 거룩한 신앙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예언자들이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했는데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관념의 표현이다. 이러한 히브리인들에게도 신년 축하제가 있었는데 그때에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 임하는 것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아가서는 그러한 의식에서 불러진 제의적 노래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아가서의 해석은 난해하기 그지없다. 왜 이러한 책이 정경 속에 들어왔으며, 기독교는 왜 이러한 책을 경전의 하나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문제는 아가서의 해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가서의 정경성에 회의를 표명하는 사람들은 남녀의 사랑을 취급했기 때문에 신성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본서에 하나님이란 언급이 한번도 없을뿐더러 신앙적인 분위기가 조금도 풍기지 않는 책이 거룩한 경전으로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 책이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 해석은 좀더 용이해진다. 물론 남녀간 사랑의 순결성과 절개를 가르치는 면도 있지만 이 책이 어떤 상황적 배경에서 산출되었는가를 고려해 볼 때 그것은 다분히 종교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서는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종교 생활의 한 사건으로 지켜온 예배 의식에 부르는 노래를 모은 책이라 하겠다. 본서의 노래 자체는 서정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이 노래는 밀실이나 밀림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고 백성들과 함께 그들의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공공연한 예배 의식의 하나로 행해진 것이라 생각할 때에 그것은 신성한 의미를 충분히 지니는 것이다. 또 이 노래가 신년 제의뿐 아니라 유월절과 관계된 것이라 할 때 본서를 세속적인 책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전 생활과 역사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을 포함하고 있는 유월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면서 본서와 같이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표현하였다는 주장은 결코 무모하지 않다. 또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본서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어도 분명히 그리스도와 성도의 사랑을 말함과 동시에 버려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본서의 정경성과 기독교적인 은유적 해석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III. 아가서의 신학 사상
아가서는 구약성경 중에서 뚜렷한 신학을 지니고 있지 않은 단 하나의 성경이다. 민족 시가의 관점에서 본서의 자료들을 논의하는 자들은 본서가 확실한 삶의 정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본서의 신학적 입장은 추론적으로 고찰되어질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와 같은 논거에서 본서가 이스라엘인들의 신앙에 대한 종교적 전통을 확실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록 본서가 히브리인들의 결혼 제도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를 거의 제공해 주지 않고 있다 할지라도 본서는 기본적인 일부일처제 정신에 그 근거를 두었던 작품이며, 그 일부일처제 정신은 모든 인간이 맺어야 할 하나님과의 유일한 관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본서의 시적 이미지들이 현대적인 의미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본서는 동?서양 어느 문명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퇴폐적이거나 외설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상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본서는 모세의 율법 안에 포함된 성윤리에 관한 전통적인 규범들을 잘 반영해 주고 있으며,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서는 남녀가 결혼함으로써 정신적, 육체적 합일을 이룬다는 창세기의 기록(참조, 창 2:24)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으며, 또 서로 사랑하는 자들의 감정에 대해서도 그 감성과 도덕성에 있어서 매우 정결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외관상으로 볼 때 본서의 지배적인 신학 사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이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사랑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영위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오히려 이러한 사랑의 풍요함은 더 크신 하나님 사랑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은 의미에서 본서가 의도하는바 그 신학 사상은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들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본질인 그리스도와 그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성도들의 원형적인 관계에 대해서 논구하고 있는 것이다. |
첫댓글 좋은 信仰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