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59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7편 원앙루의 석양녘 27-3
무송은 층계 밑에서 달려 나와 단칼에 옥란과 시녀 둘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바느질을 하고 있던 계집들까지 칼로 벤 다음에야
집에서 나왔다.그는 문고리에 걸어 두었던 전대를 떼어 허리에 차고 급히 걸었다.
‘만약 성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면 필시 붙잡힐 것이다.’무송은 곧 성 위로 올라갔다.
맹주성은 작은 고을이어서 토성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때는 10월 중순이어서 냇물이 얕았다.
무송은 신발을 벗고 무릎보호대를 풀고 바지춤을 걷어 올려 물을 건넜다.
그러나 무송은 멀리 가지 못했다.미처 날이 밝기 전 가슴에 열불이 끓어올라
많은 사람을 죽인 그는 몸이 너무 피곤한데다가 부스럼까지 재발해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그는 숲속에 있는 작은 옛 묘가 보이자 그 안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그가 막 잠들려는 순간 갑자기 묘문이 열리면서 장정 네 명이 달려들어
무송을 굵은 밧줄로 묶어버렸다.무송은 두 눈을 멀뚱히 뜬 채로 마을로 끌려갔다.
“이놈 살이 푸짐해서 먹음직하네.”무리들은 어느 작은 초가집 안으로 무송을 끌고 가서
작은 방에 던지더니 무조건 무송의 옷을 모두 벗기고 기둥에 단단히 묶어 놓았다.
무송이 눈을 들어 보니 부뚜막 위의 들보에는 사람 넓적다리 두 개가 걸려 있었다.
한 녀석이 안채를 향해 소리쳤다.“아주머니, 어서 와보십시오. 오늘은 횡재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여인이 들어섰다.
그 뒤로 기골이 장대한 남자 둘이 들어오더니 무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분은 무도두 아니신가?”
그 사나이는 바로 채원자 장청이었고, 부인은 모야차 손이랑이었다.
네 명의 무리들이 깜짝 놀라 그를 풀어주고 옷을 입혀 주었다.
장청 부부가 관리하는 십자파 점포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무송은 그날 그들 부부와 헤어진 후 맹주 노성영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은
장청에게 모두 말해 주었다.한편, 맹주성의 장도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날이 밝자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무송은 장도감을 비롯하여 무려 남녀 15명을 무참히 칼로 찔러 죽인 것이다.
관가에서는 즉시 맹주성 사대문을 굳게 지키게 한 다음 군병을 동원하고,
체포조를 조직하여 흉악한 무송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무송은 장청의 집에서 며칠 동안 숨어살면서 사태가 위험한 것을 깨달았다.
매일 관군들이 무리를 지어 성에서 나와 마을의 집들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청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무송에게 말했다.“내가 겁나서 하는 말은 아니네만
아무래도 자네가 안심하고 머물 곳으로 떠나야 할 것 같네. 자네의 의향은 어떤가?”
“나는 단 한 분 계시던 형님이 세상을 떠난 후로는 세상에 피붙이라고는 없는 몸이오.
내 한 몸 의탁할 곳이 있다면 어디로든 가겠소.”
“그렇다면 청주의 이룡산 보주사로 가게. 그곳에는 노지심과 양지가 살고 있네.
청주 관군들도 그곳은 넘보지 못하는 곳이네.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편지 한 장 써주겠네.”
“편지를 써주신다면 오늘로 당장 떠나겠소.”그러자 손이랑이 말했다.
“지금 이룡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관가에서 각처에 현상금 3천관을
내건데다가 범인의 인상을 그린 그림까지 여기저기 걸려 있습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소?”손이랑이 생각난 듯 말했다.
“2년 전에 몽환약을 타 먹여 죽인 남자 옷이 있습니다. 그 남자의 철망으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를 자르시고 행자로 가장하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장청은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무송은 곧 앞뒤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철 옷을 입고, 염주를 들고, 완전히 행자로 변장하여 길을 떠났다.
“부디 매사에 조심하게. 제발 술 좀 적게 마시고, 남과 시비를 걸지 말며 일거일동을
출가한 스님처럼 행세해야 하네.무사히 이룡산에 가거든 꼭 편지를 하게.
우리도 조만간 이룡산으로 갈 것이네. 그때까지 몸 성히 지내게.”
무송은 장청부부와 작별하고 이룡산을 향해 걸었다.
- 60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