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점심 식사를 하러 코리안 레스토랑으로 갔다. 철규는 혼자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외롭게 앉아 있었다. 이제는 미국에서의 방황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다. 경화가 없는 LA도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한국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잘 못보던 분인데요.”
“예. 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곧 서울로 돌아갈 겁니다.”
“그래, 관광은 잘 하셨습니까? 무척 피곤해 보이시네요.”
“예. 그저 그러네요. 근데, 사장님은 이곳에 사시나요?”
“예. 저는 이민온 지 벌써 30년이나 되었어요. 이곳 터주대감이지요.”
“아 그래요.”
“이곳에는 아는 분이 계신가요?”
그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철규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30년이나 LA에서 생활한 교포라고 하기에 혹시 경화에 대해 물어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은 제가 아는 사람이 LA에 사는데, 이번에 온 기회에 한번 만나볼까 했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네요.”
“아! 그래요. 혹시 누군지 말해주시면 제가 알아볼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워낙 이곳에서 오래 살고 발이 넓어서 한국 사람들은 대개 다 알아요.”
철규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록 처음 만났지만 겉모습과 말하는 젊잖은 태도가 충분히 믿음이 갔기 때문에 정 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매달렸다. 철규가 경화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정보라고는 오직 이름과 미국 휴대전화였다.
“예. 사장님 저는 이 사람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으니, 좀 도와주세요.”
“알았어요. 이따 저녁 7시에 이곳에서 만나요. 그때까지 내가 알아보고 올테니까요.”
“예. 정말 고맙습니다. 꼭 좀 알아봐 주세요.”
철규는 왠지 이 사람을 통해서 경화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고 생기가 돋았다. 시내를 걸어서 구경을 하다가 어느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히 사고 싶은 물건은 없었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수입을 하고 있었고, 물건의 품질도 한국이 낫고 값도 싸보였다. 쇼핑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남자 혼자 백화점 안을 구경하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백화점 입구에서 경찰 순찰자가 서있고, 경찰관 2명이 동양계로 보이는 나이 든 여자를 수갑을 허리 뒤로 채워서 포승줄로 묶고 있었다. 대낮에 백화점 앞에서 무슨 일인가 싶었다. 구경꾼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관심도 갖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철규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50살 정도로 보였는데, 그렇다고 거지 행색을 아니었다. 아마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힌 것 같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철규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 경찰관에게 사건 내용을 물었다가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철준도 그 자리에서 수갑을 차거나 여자 범인의 공범이나 기둥서방으로 오해를 받아 함께 순찰차에 태워질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궁금해서 미칠 정도였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들은 연약해 보이는 여자 범인을 무슨 살인범처럼 아주 심하고 가혹하게 대하고 있었다. 경찰은 여자를 순찰차에 태우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현장을 떠났다.
철규는 미국법이 얼마나 무섭고 미국의 법집행이 얼마나 인정사정 없이 냉정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느꼈다. 그 전에 철규는 서울에서 백화점을 갔다가 어떤 여자가 옷을 하나 몰래 가지고 나가다가 들키는 장면을 목격한 사실이 있었다. 그때 보니까 백화점 내에는 보안요원들이 여기 저기 감시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고객들이 계산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지 여부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둑은 아무래도 수상한 행태를 보인다. 특히 계산대를 거치지 않고 빠져나갈 때는 두리번거리면서 누가 보나 확인하고, 신속하게 나간다. 그러면 멀리서 보고 있던 보안요원이 재빠르게 뒤를 쫓아가서 붙잡는다.
그러면 계산을 하지 않고 새옷을 들고나갔기 때문에 달리 변명을 할 여지가 없다. 범인은 순순히 자백을 한다. 이때 범인은 비록 그렇게 비싸지 않은 옷이지만, 도둑질을 하다가 걸렸기 때문에 풀이 죽는다. 만일 강심장의 범인이 도망가면 백화점 직원은 죽기살기로 쫓아가서 잡는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경우에 따라서는 범인이 체포를 면하기 위해서 폭행을 가하면 그에 대항하여 범인을 폭행하고 제압할 수도 있다. 그러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112신고를 해준다. 경찰차가 오고, 범인은 그 자리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지구대로 연행된다. 옷은 절도죄의 장물로써 압수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백화점 부근에서 붙잡히면 조용히 백화점 사무실로 가서 자인서를 쓰고 풀어준다. 그리고 백화점에서는 그 범인에 대해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러면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불구속상태에서 경찰서에서 소환하여 피의자로 조사를 한다.
경찰관은 범인에게 백화점측과 합의하여 합의서와 형사처벌불원서를 제출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백화점에서는 좀처럼 합의서를 써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워낙 좀도둑이 많아서 일벌백계 차원에서 혼을 내줄 필요도 있고, 도둑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보안요원을 많이 두고 그에 따른 인건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합의를 해주기도 하는데, 이때는 훔친 물건의 판매가만 받는 것이 아니라, 보통 10배 정도의 합의금을 받는다. 이런 합의서를 경찰에 제출하면 검사는 범인이 절도죄 초범인 경우 대개 기소유예를 해준다. 백화점에서 도둑질하는 물건은 대개 고가품이 아니다.
왜냐하면 고가의 시계나 귀금속류는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만원 내외의 물건을 한 두점 훔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도둑들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장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들키면 엄청난 망신을 당하게 되고, 만일 동네 마트에서 들키면 두 번 다시는 그 마트에는 가지도 못한다.
경찰관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젊잖은 여자들이 명품옷을 입고 들어와서 도둑질을 하다가 걸린다고 한다. 특히 생리때가 되면 도둑질을 하는 여자들이 있다. 사회적 신분이 있는 여자들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것이 심한 경우에는 불기소처분을 하고 치료감호청구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