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승리한 카니 대표, 공영방송 존속 선언
공영방송 지키기 위한 1억5,000만 달러 증액 카드
캐나다 공영방송 CBC가 연초까지만 해도 폐지 위기에 몰렸지만, 총선에서 마크 카니 자유당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일단 생존의 숨통을 틔우게 됐다.
자유당은 CBC에 대한 연방 정부의 예산을 법정 예산으로 고정해 향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예산이 임의로 삭감되거나 폐지되지 않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공영방송의 기능 강화와 체질 개선을 위한 전면 개편도 예고했다.
스티븐 길보 문화부 장관은 15일 “CBC/라디오-캐나다는 캐나다의 정체성과 문화, 주권을 지켜내는 공공 자산”이라며 “자유당 정부는 이를 더욱 강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크 카니 자유당 대표가 약속한 공영방송 개편안에 따라, 지역 뉴스 기능 강화, 허위정보 대응, 긴급 재난 정보 전달 체계 보강, 운영 거버넌스 개편 등 구체적인 실행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총선에서 CBC의 존폐는 핵심 쟁점이었다. 피에르 폴리에브 보수당 대표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CBC는 납세자의 돈을 낭비하는 정치 편향적 방송”이라며 폐지를 공식 공약으로 내세웠다.
CBC는 2019년 총선 당시 보수당이 제작한 선거 광고에 대해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보수당과 CBC 간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당시 보수당은 공영방송이 편파적 보도를 한다고 주장하며, 법적 충돌 이후 CBC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자유당이 CBC 예산을 법정 예산으로 고정하려는 이유도 이러한 정치적 개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CBC 예산은 매년 전체 연방 예산안에 포함돼 국회에서 통과되며, 정권의 의지에 따라 예산 삭감 혹은 폐지 논란이 반복돼왔다.
예산을 법으로 지정하면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재원이 확보되고, 공영방송의 독립성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자유당은 CBC의 예산을 1억5,000만 달러 증액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예산은 지역 뉴스 확대, 허위정보 차단, 재난 발생 시 응급 정보 전달 기능 강화 등 공공적 기능 수행에 집중 투입된다.
또한 CBC 젬 등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유료 정책을 축소하고, 뉴스 콘텐츠 중간 광고 금지 등 기존 수익 구조 개편도 추진 대상이다. 다만 스티븐 길보 장관은 일부 조치는 전임 파스칼 생토니유 장관이 제안한 방안을 참고하되, 전면 수용은 아니라고 밝혔다.
공영방송 개편은 내부 혁신과도 맞물린다. CBC 이사회는 최근 수년 간 논란이 됐던 임직원 성과급 지급 제도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CBC는 수백 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하면서도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고위 간부들에게 지급해 왔고, 보수당은 이를 반복적으로 공격하며 ‘세금 낭비’라고 비판해 왔다. 이사회는 해당 제도가 공영방송의 이미지와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해 전면 폐지를 결정했다.
이번 총선 기간 동안 시민 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했다. 미디어 감시 단체인 ‘프렌즈 오브 캐네디언 미디어’는 전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CBC를 지켜야 한다”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고, 유권자 다수는 보수당의 폐지 공약을 견제하는 선택을 했다.
이 단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를 ‘51번째 주’라고 조롱하고 관세를 부과한 이후, 캐나다 국민들이 주권과 문화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흔들리면서, CBC가 단순한 뉴스 기관을 넘어 캐나다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문화적 자율성을 지키는 ‘공공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적 갈등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CBC는 정부 발표, 긴급 상황 전파, 지역 사회 연결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해 왔다.
마크 카니 자유당 대표는 선거 내내 ‘경제 안정’을 핵심 메시지로 내세웠고, CBC 개편안 역시 과도한 예산 투입보다 점진적 체계 개편을 통해 공영방송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데 방점을 뒀다.
예산 증액 규모는 필요 수준으로 제한됐고, 운영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됐다. 자유당은 이번 개편안을 통해 CBC가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독립적인 공공 미디어로서 자리를 지켜가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총선 결과 CBC는 법적 보호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논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CBC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당의 이번 조치는 CBC의 생존과 개편을 위한 제도적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CBC는 이제 다시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