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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4일 [연중 10주간 금요일]
마태오 5,27-32
우리 마음까지 정결하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순결해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구약은 실천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천할 수도 없고, 실천하더라도 위선적으로 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줄거리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후반 런던입니다.
바질 홀워드(Basil Hallward)는 나이 든 화가입니다.
그는 도리안 그레이(Dorian Gray)의 인상적인
초상화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도리안은 젊고 아름답고 돈도 많습니다.
그것을 오래 남겨놓고 싶은 것입니다.
그림을 본 헨리 워튼 경은 쾌락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냉소적인 귀족입니다.
그는 도리안에게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전에 즐기라고 충고합니다.
도리안은 헨리의 말을 듣고 앞으로 잃어갈 자기 아름다움을 미리 아까워합니다.
그리고 초상화를 질투합니다.
초상화는 늙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상화와 자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초상화는 늙어가는데 도리안은 초상화처럼 그대로 젊음을 유지합니다.
도리안은 자기 아름다움을 통해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이 와중에 그를 좋아했던 여인이 자살합니다. 그래도 도리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런던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도리안은 자기의 비밀을 알고 초상화를 지닌 화가 바질을 다시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감추기 위해 바질을 살해합니다.
초상화까지 없애기 위해 칼을 댔더니 초상화가 원래 그대로 젊어지고 도리안은 그 초상화의 나이 든 추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가 찌른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도리안은 외모에 집착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추해지는 그림은 없애고 싶어 합니다.
이는 육체에 반대되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외모에 치중하면 마음이 죽고 마음에 치중하면
육체가 죽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옵니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 8,5-6)
“성령의 관심사”로 번역하기보다는 “영의 관심사”로 번역했어야 옳습니다. 영이나 성령이나 다 마음에 관계됩니다.
마음 안에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믿음을 넣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제 믿음이 어떻게 마음까지 정결하게 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면의 정결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얻어집니다. 만약 내가 욕망하던 여인이 나의 누이동생임을 알게 되었다면 어떨까요? 혹은 ‘엽기적인 그녀’에게서처럼 성전환자라면?
아마 올라오던 욕망이 바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영화 ‘더 몽크’(2011)는 매튜 그레고리 루이스(Matthew Gregory Lewis)의 1796년 고딕 소설을 원작으로 도미니크 몰(Dominik Moll)이 감독한 프랑스 영화입니다.
주인공 암브로시오는 어렸을 때 수도원에 버려져 처음부터 수도원에서 자라며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성적인 욕망에 눈을 뜨고 결국엔 처음부터 마음에 두었던 여인을 범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자기 여동생임이 밝혀집니다. 그러자 그는 곧 회개하고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지옥에 가는 것을 택합니다.
욕망은 정체성에서 나옵니다.
개라고 믿는데 두 발로 서고 싶다는 생각이 생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자녀라고 하십니다.
그 정체성만 가지면 우리는 모두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이 됩니다.
성적인 욕망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정결함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6월14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5,27-32
성인(聖人)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돈보스코의 제자 가운데 도미니코 사비오란 성덕이 출중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 들어와서 그가 제시한 성덕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고 있던 중 안타깝게도 중병을 얻어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오래가지 않아 교회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성인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그가 짧은 생애 동안이지만 생명처럼 지켜왔던 모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죄보다는 죽음을!”이었습니다.
아마도 소년 사비오는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마태오 복음을 눈여겨봤을 것입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9)
1855년 6월 24일 돈보스코가 마흔살 되던 해 영명축일 때의 입니다.
오라토리오 아이들은 성극이나 성가, 합창이나 시 낭송 등, 정성껏 축제를 준비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지극한 사랑에 크게 감동을 받은 돈보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자 받고 싶은 선물을 쪽지에 적어 내게 주세요.
뭐가 됐든 여러분의 기대에 실망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수많은 종이 쪽지들을 들고 당신 사무실로 돌아온 돈보스코는 하나 하나 쪽지를 열어봤습니다.
어떤 아이는 작은 성모상을 신청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운동화를 적었습니다.
짓꿋은 한 아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초콜릿 100킬로 그램’
수많은 쪽지들 가운데 유난히 돈보스코의 눈길을 끄는 쪽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도미니코 사비오가 쓴 것이었습니다.
“성인(聖人)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깜짝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크게 감동받은 돈보스코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비오! 성인이 되는 비결을 네게 선물하고 싶구나. 자, 여기 있다.
첫째 명랑하게 지내는 것이다.
둘째, 네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 공부와 기도의 의무에 충실한 것이다.
셋째, 친구들에게 선을 베풀거라. 설령 네게 희생이 따르더라도 항상 네 친구들을 도우렴.
이 세 가지만 잘 지켜도 충분히 성인이 될 수 있단다.”
천사표였던 도미니코 사비오는 돈보스코가 선물로 주신 세가지 성화의 비결을 마음 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오라토리오 안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 매일 충실히, 지속적으로, 일상적으로...
그 결과 도미니코 사비오는 오래 지나지 않아 꿈에 그리던 성인의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15세였던 1857년 3월 9일 병사(病死)한 그는, 1954년 6월 12일 비오 12세 교황님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한번은 세상을 떠난 도미니코 사비오가 돈보스코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보스코, 보시는 것처럼 저는 지금 행복이 가득한 곳에 서 있습니다.”
이어 도미니코 사비오는 돈보스코에게 장미, 바이올렛, 백합, 용담꽃, 밀이삭이 어우러진 풍성한 꽃다발을 한 아름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꽃다발을 신부님의 아들들에게 보여주세요. 장미는 사랑을, 바이올렛은 겸손을, 용담꽃은 회개를, 백합은 순결을, 밀이삭은 성체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답니다.
돈보스코, 그럼 안녕히!”
어떻게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세례를 통해 성화의 길로 초대받았습니다.
우리도 ‘죄 보다는 죽음을!’이란 굳은 각오를 세우면 좋겠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도 성인이 되고야 말겠다는 강한 결심을 세우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강론>
(2024. 6. 14. 금)(마태 5,27-32)
<신앙생활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5,27-32).”
1) 사람들은 흔히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는
행동으로 짓는 죄보다 작은 죄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행동으로 짓는 죄와 똑같이 큰 죄라고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눈’과 ‘손’은 죄짓게 하는 내적 충동이나
욕망을 뜻합니다.
눈을 빼어 던져 버리라는 말씀과 손을 잘라 던져 버리라는 말씀은,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철저하게 욕망과 욕구를 다스려서 죄를 물리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라야 할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마음과 생각을 무슨 수로 자를 수 있는가?
마음과 생각을 자르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도 한 번 한다고 해서 금방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꾸준히,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마도 평생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극기고행’을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극기고행’이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기도가 먼저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극기고행만 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또 어떤 수련이나 도를 닦는 등의 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효과가 있는 것 같다가 금방 무너집니다.>
2) 예수님 말씀에서 요한복음 8장의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요한 8,3-5)”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9-11).”
돌을 던지지 않고 그냥 가버린 사람들은, 자신들도 죄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고백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도 간음죄를 지은 적이 있거나, 그 죄 속에서 살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마음으로 간음죄를 지은 적이 있음을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양심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여자 자신 한 명뿐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꾸짖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만일에 남 탓을 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변명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3)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겉으로만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겉만 깨끗하게 하려고 하고, 속을 깨끗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위선자들을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마태 23,25).”
이 말씀은, ‘속만’ 씻어도 된다는 가르침이 아니라,
또 ‘속’을 씻으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속과 겉을 똑같이 깨끗하게 씻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겉도(몸도) 씻어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속을, 즉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겉과 속이, 또는 안팎이 똑같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씻는 방법은? ‘기도와 회개’입니다.
4)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곧 여러분이 불륜을 멀리하고, 저마다 자기 아내를 거룩하게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인들처럼 색욕으로 아내를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형제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고 또 엄숙히 경고한 바와 같이, 주님은 이 모든 일에 보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1테살 4,3-7).”
<신앙인이 ‘겉’과 ‘속’을 똑같이 깨끗하게 씻는 것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서, ‘깨끗함’과 ‘거룩함’은 사실상 뜻이 같은 말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