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 선방 뱀소포 사건 이야기
대구 동화사 선방에 철웅스님이 죽비를 잡고 있을 때 사건인데
여름 어느 날 점심 후 조금 앉아서 쉬는 사이인데 어떤 스님이 화장실 갔다 오더니
“화장실에 긴 짐승이 나왔다” 소리쳤어요. 그러자
“보자! 보자!” 하면서 대중들이 모였는데 거기서 시작도 밑도 끝도 없는 장난이 벌어진 거예요.
“좋은 일이 생겼다, 서울 총무원장에게 보내자.”
“이거 먹고 생각 고치라고 보내자.”
“그래 보내자! 보내자!”
이게 아무 고의성도 없고 앞뒤도 없는 그런 장난이 벌어졌어요.
그때가 되면 나이 많고 젊고가 없어요. 앞도 뒤도 없이 재밌다고 좋다고 같이 동참해버리는 거고,
선방에서는 간혹 가다가 그런 장난이 아무 계획도 본성도 없는 장난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 어디 가서 큰 분유통을 갖고 오는 사람이 있고,
그 분유통에 그 짐승을 넣고 뚜껑을 닫아 창호지로 봉하여 소포로 만들어 조계사에 보내게 되었어요.
동화사 선방 뱀소포 사건 이야기
질 문 : 조계사로 보내셨어요? 수좌들이 왜 그러셨어요?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우룡스님 : 어쨌든지 앞도 뒤도 없이 장난으로 벌어진 거지요.
고의성도 없고 화장실에 어떤 스님이 갔다 와서 화장실에 뱀 나왔다고 하는 통에 그런 장난이 벌어진 거지요.
소포로 만들고 편지를 썼는데 결국 철웅스님이 썼죠.
“다른 사람 말이라고 해서는 안 믿을 테니까 대구 대남한약방에 여동명 거사가 보낸 약이라고 하면 믿을 거다.”
그래서 대구 한약방에서 보낸 걸로 해서 조계사의 총무원장 스님 앞으로 보냈어요.
당시 총무원이 조계사 불교정화회관 건물에 있었죠.
회관에서 원장스님이 소포를 뜯어보니 뱀이 있었어요. 기겁을 하셨겠죠.
지금은 총무원장 하다가 멸빈 당한 의현스님이란 분이 당시에 재무부장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결재를 하러 갔다고,
원장스님이 “대남한약방에서 나한테 산삼이라고 보냈는데 내가 보니까 뱀이다” 그러니까 의현스님이
“연이 없으면 그게 그렇게도 보인답니다. 제가 갖고 가서 시험해 볼께요.” 하고는 자기 방으로 가져 갔다고 합니다.
그 짐승이 한번 두 번 뚜껑을 열다보니까 기회만 노린 거지요.
그래가지고 그 스님이 자기 방에 가서 뚜껑을 여니까 뛰쳐나와 버린 거지요.
감당 못하고 기어 나와서 조계사 그 총무원 마루 밑으로 들어가고 이 사건이 확대되면서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
동화사 선방으로 문책이 내려오면서 선원 입승이었던 철웅스님에게 책임을 물어
징계위원회에서 공권정지 7년인가 중징계를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듯 선방이라는 데는 대중들이 한 데 모여 있으니 아무 계획도 없고 앞뒤도 없고 고의성도 없으면서
누군가가 말 한마디에 모두 “좋다, 좋다” 하여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데, 이런 자리가 선방이에요.
웃지 못할 사건이 또 생각이 나네요. 그게 몇 년도인지 모르겠어요.
극락암 선방 이야기인데 면 굵은 우동 그걸 선방스님들이 좋아해서 그 해 여름에 부산 신도님들로부터
대중공양이 자주 들어왔어요.
그러면 스님들이 좋아하시고 거의 2, 3일 걸러 공양시간에 국수를 잡수시고 맛있다고 미리 두세 그릇이나 받아 놓습니다.
선방에 앉았다가 한두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끄집어내면 서로 뺏어 먹기 작전이 벌어지고 그 국수 그릇을 들고
도망가고 쫓아가고 꼭 아이들 같은 그런 장난이기도 했죠.
또 극락암에서 그 무렵, 저녁 7시에 입선(入禪)하면 8시 반이나 9시 되면 “국수 삶아먹자.” 합니다.
밤에 삶아 먹으면 배가 불러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콩쿨대회가 벌어지는 거지요.
대회가 벌어지면 판치는 사람이 지금 통도사에 계시는 ㅇㅇ스님이죠.
이 분은 출가 전에 일부러 가수 되려고 남인수 판을 사다가 익히신 어른인데 노래를 잘 하셨죠.
또 지금 입적했습니다마는, 경봉 노스님 상좌 벽산스님이란 분은 마을에 계실 때 동네 대항 무슨 노래자랑 벌어지면
자기 동네가 우승을 못 하면 화가 나서 밥을 안 먹던 그런 어른이었는데,
이 어른은 재래식 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시골 농촌에서 추는 춤 같은 것을 잘 하셨죠.
그리고 총무원장 경선에 나가셨던 ㅇㅇ스님은 성량이 풍부해서 명곡 같은 외국 곡이나 가곡을 잘 하셨는데,
이런 분들이 판을 치는 겁니다. 그러면 큰방 노장님한테 누군가가 점수 따려고 고자질하는 사람이 있어요.
노장님이 날벼락이 떨어지는 거지요. ‘공부하러 온 거지 너희가 먹고 놀려고 하느냐.
그러면 차라리 집으로 가거라.’ 날벼락도 떨어지고 노장님은 큰방에 나오셔서 직접 공사를 하시는 게 아니고,
뒷방에 삼소굴에서 앉아서 그랬으니까 불려가는 것은 다른 대중은 안 가고 당신 상좌인 벽산스님이 불려가는 거지요.
실컷 꾸지람만 듣고 벽산스님이 오면서 하는 소리가
“그래도 대중인데 어쩌냐 대중 편에 서야지 내가 우짜노”하기도 했는데,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선방이라고 하는 데가 딱딱한 정진만 하고 그런 것 같지만 때로는 그런 재미있는 장난도 벌어지고 그런 자리가 선방입니다
재가 공부인
질 문 : 스님 그때 혹시 재가자 중에 공부가 제법 된 분도 있었는지요?
우룡스님 : 진주 사람으로 안씨 성으로 법명이 일지(一指)라 하는 거사님이 계셨어요.
이 분은 한평생을 선방에 계셨어요. 40대부터 70대가 되도록 30년을 선원에만 다녔습니다.
극락암 선원에도 지내고, 오대산, 법주사 선원에도 계셨던 분입니다.
이 분은 말은 안 해도 공부 힘이 있으셔서 언제나 큰방에서 공양을 하고 큰방에서 같이 주무시고 정진을 꾸준히 같이 하셨는데
이런 분들은 스님들보다 정진도 무섭게 하셨고, 어떤 체험도 하신 어른인데도 표를 안 내셨지요.
하나에서 열까지 스님에게 미루시고 그러셨죠.
극락암 경봉 노스님이 해제철이 되면 글 한 마디씩 써내라 그래요.
해제 때 되면 늘 그걸 해서 당신이 이 사람이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늘 저울질하시는데
그때 안거사님도 양보 없이 글을 적어 내시고 평소에 스님들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시치미 떼고 간혹 한마디 던져놓고도
“아이고, 실수했습니다.”
감추어 버리고 한평생 그렇게 지내셨지만 무서운 어른이었지요.
만사를 감추어놓고 젊은 스님들의 갖은 학대라고 해야 될까요?
그걸 웃음으로 받아넘기시면서 애써서 정진하신 분이 계셨어요. 그 외에도 더러 거사님이 있고 간혹 가다가 아는 소리 한마디씩 툭툭 던지시는 분들도 계시기는 했어요.
하지만 이런 분들은 주로 한번씩 왔다 갔다 했고
안 처사라는 이 분은 한 30년 한 선방으로만 도시고 그렇게 하신 어른이 계셨어요.
첫댓글 소포로 보낸 걸 보니, 독사는 아닌 것 같네요.
읽다보니 특이한 결말을 기대했는데, 일반 중생이랑 같군요.